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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과연 구원인가, 아편인가?

한목협 조사, 개신교(22.5%) 불교(22.1%) 천주교(10.1%) 기타종교(0.5%)

김용택 칼럼 | 기사입력 2015/12/28 [11:43]

종교는 과연 구원인가, 아편인가?

한목협 조사, 개신교(22.5%) 불교(22.1%) 천주교(10.1%) 기타종교(0.5%)

김용택 칼럼 | 입력 : 2015/12/28 [11:43]
▲ 지난 9월 충북 괴산군에 열린 제19회 대한민국 종교문화축제. 사진=괴산타임즈     ©편집부

 

학교는 왜 종교교육을 하지 않을까?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가 지난 2012년 9월부터 12월까지 (주)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2013년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55.1%가 종교를 갖고 있고, 44.9%가 종교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별 현황을 보면 △개신교(22.5%) △불교(22.1%) △천주교(10.1%) △기타종교(0.5%)로 나타났다.

 

이보다 먼저 2015년 초 조사전문 연구회사인 한국갤럽이 1984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30년간 5차례 실시한 '한국 종교 인구 분포 조사'에서 불교신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비종교인의 호감 종교는 1984년에 이어 2014년에도 불교가 여전히 1위로 확인됐다.

 

먼저 2014년 현재 한국인의 종교 인구 분포는 불교 22%, 개신교 21%, 천주교 7%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보면 불교인 비율은 2030세대(약10%)와 5060세대(30%)의 차이가 큰 데 반해, 개신교인과 천주교인의 연령별 분포는 상대적으로 고르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지역에서 불교 신자가 많았다. 반면 개신교는 광주와 전라, 인천과 경기 지역의 신자가 높게 나타났다.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종교를 갖고 있다는데 학교에서는 종교 교육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뭘까? 이런 국민들에게 특정 종교인들이 찾아가 나눠준 종교서적을 읽거나 그들의 선교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학교에서는 윤리와 사상 시간에 ‘동양과 한국윤리사상’이라는 단원에서 한국윤리사상의 흐름이나 유교, 불교, 도교… 에 대해 ‘서양윤리사상’ 단원에서 그리스도교윤리사상에 대해 가르치고 있지만 종교의 본질이나 제대로 된 종교교육을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준이나 철학이 필요하다. 사관이 없이 배우는 역사란 지식만 암기할 뿐, 현실에서 종교를 만나면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가정이 파괴되는 경향을 종종 보게 된다. 예수와 석가모니가 공자가 언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 무슨 말을 남겼고… 이렇게 배운 지식 정도로는 종교가 무엇인지 그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1월 터키를 여행하던 고교 자퇴생 김 모 군이 터키와 시리아의 접경 지역에서 행방불명됐다가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IS)에 가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이 청년이 종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아니 알고 있었다면 IS에 가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청년뿐만 아니다. 살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종교를 찾고 종교관이 없는 사람이 종교에 빠지거나 가정이 파괴되는 비극적인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종교란 무엇일까? 자구적으로 해석하면 종교란 ‘으뜸, 기둥, 근본’이라는 뜻의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을 의미한다. 인간이 생, 노, 병, 사의 문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초월적인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노력이 종교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유한한 인간이 ‘인간의 능력 밖의 문제’를 신에게 의존해 그 ‘절대자에 대한 외경’이 예배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종교가 아닐까? 대부분의 종교는 현세의 무상을 내세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보고, 보다 도적인 삶의 보상으로 내세의 삶이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으로 불교의 윤회사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 죽음 후의 세계, 내세란 정말 있기나 한 것일까? 이 지구상에는 21억의 기독교, 13억의 이슬람교, 힌두교 9억, 유교와 불교 각각 4억… 그밖에도 아프리카의 토속신앙 등 수많은 종교가 있으며 무신론자도 11억 정도가 살고 있다. 종교는 정치 및 경제 문화에서 존재하는 사회 질서 안에서 악을 선으로 바꾸려는 노력과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준다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지만 인류의 역사는 종교가 만든 살육과 전쟁의 역사 속에 살고 있다.

 

“종교는 억압을 정당화 하는 장치다. 그러나 동시에 억압으로부터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종교적 고난은 현실적 고난의 표현인 동시에 현실적 고난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종교의 부정적인 기능이다. 오역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종교는 사회의 기존 질서를 간접으로 영속시키고, 기존의 문명을 유지하도록 조장하는 이데올로기 기능도 부인할 수 없다.

 

<이미지 출처 : koreamonitor>

 

역사를 일컬어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 ‘IS’가 악의 축이 되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세계를 자기네 종교를 정당화하기 위한 헤게모니 쟁탈전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나 유교가 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 했던 지난 역사를 보면 그렇다. 오늘날 공유사상인 기독교가 사유사상의 자본주의와 공존하면서 기독교의 교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에서 타락한 종교의 얼굴을 만난다.

 

해탈을 위해 세속과 결별한 불교가 승과제도를 두고 권력이 됐던 불교, 처음부터 지배이데올로기를 마다하지 않고 권력과 손잡은 유교며 억압자가 된 기독교는 정말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이 세상에 실현할 수 있을까? 환속한 불교가 억압자 구실을 하듯이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를 걷고 있는 기독교는 이미 종교의 본질적 기능을 외면하고 있다. 유신정권의 박정희나 전두환를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종교가 약자의 보호자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자비 없는 불교며 사랑없는 기독교는 그 화려한 사원이나 교회 안에는 기도라는 공허한 구복신앙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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