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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있는 한 나는 계속 도자기를 구을 것” - 엄기환 UNESCO 세계도자 명장

2010년 세계유네스코 도자명장 최초로 선정돼

한준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6/18 [13:31]

“흙이 있는 한 나는 계속 도자기를 구을 것” - 엄기환 UNESCO 세계도자 명장

2010년 세계유네스코 도자명장 최초로 선정돼

한준현 기자 | 입력 : 2019/06/18 [13:31]

  전통 가마 고집 현대풍 가미한 창작품에 ‘혼신’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은 모두가 인연이다. 내가 이천(利川)에 태어나 도자기를 늘 가까이 하고, 평생을 도자기 모으는 일에 열중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해주(海洲) 엄기환(嚴基煥, 73) 선생의 말이다. 1946년 영월 엄 씨 29대손으로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난 그는 2010년 세계유네스코(UNESCO)‘도자 명장’으로 선정됐다. 본래 중국 사신(使臣)이었던 선대 엄흥도 10대 할아버지가 조선에서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려 했지만, 당시 임금이 영월을 줄 테니 세금을 받으며 살라는 청원 끝에 터를 잡게 됐다. 그러다 정치적인 문제로 이천으로 가족이 이주했다. 

 

 

- 도자기에 입문하게 된 배경은.

▲ 내가 태어난 시절은 모두가 어려운 때였다. 그래서인지 생활 속에서 늘 함께 했던 도자기에 대한 열정이 많았고,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당시는 비싼 도자기 보다 저렴한 옹기나 칠기가 생활용품으로 많이 쓰였다. 주로 깨소금,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양념그릇으로 사용했다. 특히 칠기는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할머니와 나는 부엌에서 도자기 유약용 재를 만들어 칠기와 맞바꾸는 일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할머니가 재를 모으면 나는 재를 지게에 지고 점촌마을로 가서 재와 칠기를 바꿔 가져오는데 어떤 때는 양손에 가득 들고 온다. 하지만 흠집이 있고 찌그러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 어린 시절부터 도기(陶器)와 가까웠다.

▲ 그릇을 다 구워 그릇을 꺼낸 전통 가마는 우리들에게 멋진 놀이터였다. 가마 안은 며칠 동안 따듯하기 때문에 그곳에 숨기도 하고, 장난도 많이 쳐서 어른들에게 쫓겨나거나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과 가마에 몰래 숨어들었는데, 가마 끝 칸에 도자기가 몇 점 보였다. 우리는 신기하기도 하고 갖고 싶은 마음에 한 개씩 나눠 갖고 누가 볼 새라 집으로 도망쳐 몰래 숨겨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흠집 났거나 잘 구워지지 않은 도자기를 가마에 그냥 둔 것 같다. 그렇다고 함부로 주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도자기는 나의 인생이 되었다. 지금도 내 희망이자 미래가 됐다.

 

- 청년 시절은 어땠나.

▲ 월남전에 하사로 참전했다가 돌아와 제대한 후, 아는 지인과 함께 흙벽돌을 찍으러 다녔다. 당시 각 요장(窯場)은 벽돌을 찍어서 전통 가마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흙벽돌이 많이 필요했다. 그때는 일기예보도 부정확했고 비가 오면 벽돌이 모두 망가지기 일쑤였다. 요행히 잘 마른 흙벽돌은 소나 마차에 실어 공장까지 날라 주었다. 때로는 가마를 만들 때는 지게로 날라주기도 했다.가마 불을 땔 때면 밤새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고, 도자기를 꺼내면 한두 점 얻었는데 보물처럼 소중하게 보관했다. 흙벽돌 만드는 일 때문에 도자기를 수집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 해주도자박물관에 소장된 명장들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해주 선생.     © 한준현 기자

 

- 도예 입문은 언제부터였나.

▲ 1959년 14세 때에 이천에 있는 해강 유근형 선생이 운영하는 해강청자에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해강청자는 잘못 나온 도자기는 그 자리에서 깨 버렸다.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다. 다른 데서는 잘못 나온 도자기를 모아두어 팔아서 나무를 사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더 좋은 작품을 위해 깬다는 것을 알았다. 좋지 않은 작품은 요장의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분에게 전수받은 전통기술로 도예가의 외길을 올곧게 걸어왔다. 전통의 맥도 중요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현대적인 분위기와 전통을 가미한 도예작품도 만들고 있다. 

 

- 요즘도 전통 가마를 쓰는가.

▲ 70~80년대 초까지 전통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웠지만, 80년대 중반부터 가스 가마로 전환됐다. 전통 가마는 정성을 다해도 실패율이 높다. 몇 가마 실패하면 요장으로서의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에 가스 가마는 그 당시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것도 일본에서 수입됐는데 가격이 워낙 비싸 몇 군데 없었다. 지금은 대부분 국산가스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전통 가마를 고수하는 분들도 있다.

 

- 도자기 수요는 어땠는지 알려 달라.

▲ 그때만 해도 최고 호황기였다. 주로 일본인들이 많이 구매해 갔다. 특히 이천의 해강, 고려, 광주요에서 주로 사갔다. 서울의 유명백화점 아케이드나 호텔, 남대문 상인들도 이천으로 몰렸다. 요장에게 아예 선불을 주고 주문할 정도였다. 제일 좋은 작품은 일본인이나 백화점으로 갔고 그 다음에 아케이드나 남대문, 인사동에 판매하던 때였다. 남대문이나 인사동에서 손수레에 얹어 1점에 몇 천만 원씩에 팔기도 했다. 요장에서 A급 상품은 그렇게 팔고 C급 도자기는 모아두었다가 C급만 전문적으로 사가는 사람에게 넘겼다. 그 돈으로 나무를 샀다.

 

- 2010년 세계유네스코 선정 명장이 됐는데.

▲ 2010년 8월 이천시가 세계유네스코로부터 창의도시로 선정되었고, 도자부문에서 내가 유일하게 명장(名匠)으로 선정되었다. 이천시와 이천도자기조합이 추진해 온 도자기 예술촌도 이제 빛을 발하고 있다. 1200억 원을 투입해 기반공사도 끝났다. 지금 230여명의 도예인들이 작업장을 건립하고 있다. 나 역시도 1300여 평 부지에 해주도자박물관을 세워 평생 수집한 1700여 점의 도자기 작품을 전시하는 중이다. 

 

- 이천 도공과 도자기 역사를 말한다면.

▲ 먼저 가진 도공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 고민도 많았다. 경기도 광주나 여주도자기조합에 도공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지만, 이천에만 없다.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를 치르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자의 명소 이천에 도공의 역사와 추모비가 없다는 것은 조상의 은공을 져버리는 일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486년 전부터 이천도자기가 왕실에 납품된 역사가 있음을 알아냈다.이것을 근거로 2004년 4월 윤달에 혼과 불로써 완성되는 도자기를 만드신 선조 도공들의 넋과 정신을 기리는 ‘혼불제’를 시작했다.

 

- 좀 더 설명해 달라.

▲ 마침 그해는 50년 만에 온 가장 좋은 달이다. 신둔면 마을을 중심으로 40여 요장이 혼불제에 참석하기로 하고 날짜를 4월3~5일로 잡았다. 한식과 청명이 든 날이다. 4일에는 이천을 빛낸 근현대 도공과 돌아가신 아정 김완배, 해강 유근형, 광호 조소수 선생 등에 대한 제를 올렸다. 5일에는 먼저 가신 22명에 대한 제를 준비하려 했는데, 3천만 원이 필요해 당시 유승우 이천 시장을 만나 지원약속을 받아 냈지만 결국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혼불제를 위해 고생도 많았지만 보람은 컸다.

 

- 도자기 수집광이다.

▲ 나는 도자기라면 체면불구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미친 사람처럼 도자기를 찾아다닌다. 지금 찾지 않으면 가치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도자기를 찾아 헤맨다. 모든 여건이 어려웠던 60년대에 우리 것을 재현하려 했던 도예인들의 작품을 도공의 한 사람으로서 묵과하기 어려워 이일에 뛰어 들었다. 예술이란 돈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왜곡돼서도 안 된다. 도자기는 도공들의 순수한 혼이 담긴 예술이다. 돈 몇 푼에 혼을 팔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명예와 나라를 명예를 파는 일이나 다름없다.

 

- 얼마나 모았나.

▲ 흙과 불로 구운 것은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다. 분신이며 예술혼이다. 현재까지 모은 도자기는 1500점 정도지만 나의 꿈은2000점을 모으는 것이다. 그동안 수집한 도자기 장인들의 작품은 중광스님, 해강, 고려, 광주, 수광 등 열여섯 분은 이미 작고했다. 그러나 이분들의 작품은 해주도예 이천도자역사박물관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분들이 내게 도자기를 맡긴 것은 자신들의 혼을 잘 보존하고 더 나은 예술품의 본보기가 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이천과 도자기로 맺어진 나의 숙명인 듯싶다.

 

- 도공으로서 종교가 도움이 되는지.

▲ 고려청자 재현을 위해 도공으로서 불교를 믿는다. 욕심을 비워야 진정한 예술이 나온다. 예술은 끝없이 비우는 작업이다. 불교는 그런 면에서 내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된다. 인생에 있어서 철학이 없으면 길을 잃기 쉽다. 자신이 정한 길을 가기 힘들다.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 옆에는 항상 도자기가 있었다. 그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절대 좌절하지 않았다. 나는 미래를 위해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향후 포부는.

▲ 내가 만약 60년 동안 돈을 목표로 살았다면 지금쯤 성공했겠지만, 그런 것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소명이 뚜렷하고 자랑스럽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만족하고 교만하고 과욕하면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성공에만 함몰하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모든 것을 이뤘다는 생각에 공허감이 몰려온다. 그래서 술과 여자, 노름에 쉽게 빠진다. 나는 일시적인 성공은 싫다. 그래서 매일 땀을 흘리며 항상 수도하는 마음으로 보낸다. 후대가 빛을 볼 과업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

 

- 현재 도자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 나의 호가 해주다. 그 이름을 따서 해주도자박물관으로 지었다. 경기도 이천지역의 1세대 도공을 비롯해 작가부터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 1700점을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이천도자 역사와 차원 높은 예술적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려는 목적에서다.도예의 역사와 전통의 소중함을 사람들 마음 속 깊이 각인시키고 간직하게 하려는 뜻에서 건립했다.

  

- 전통 가마는 소중한 역사다. 

▲ 이곳 도자예술촌의 백미는 전통 가마에 불을 때는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4년부터 시작한 도자순례는 이천도자축제 3대 체험행사다. 도자기를 구울 때 옛날 전통도예방식 그대로 하고 있다. 번조(불 때기) 기법으로 불을 때는데 소나무 장작을 쓴다. 장작 가마 불 지피기 방식을 통해 48시간 동안 1260°C 이상의 고온을 유지해야 좋은 도자기가 나온다. 불 온도가 도자기 품질을 좌우한다.

 

- 청소년과 학생에게 좋은 체험이 될 것 같다. 이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소개해 달라.

▲ 도자순례비용은 해주도자박물관 체험을 기준으로 1만원이다. 3가지 이상 체험을 할 경우, 할인혜택이 있다. 특히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생 기준으로 체험비가 적용되고 일반인은 제외다. 이 밖에 한국다도대학원 출신의 전문적으로 다도교육을 이수한 선생님과 함께 전통 차 종류와 유래, 예법 등 다도체험을 할 수 있다. 직접 차를 우리고 따라 마시며 생활예절과 올바른 도덕적 정신문화를 함양시킬 수 있다. [체험문의 : 010-9037-7120, 010-3702-7120, 010-2245-7701]

 

한준현 편집위원 

 

1959 수금陶窯(현 광주窯) 입문

1964 해강 고려청자연구소 유근형 선생 사사

2011 한국다도대학원 정사과정 수료

19회(1989), 27회(1997), 28회(1998) 경기도 공예품경진대회

 

1998 한-일 도자교류전(가고시마 수교 400주년기념)

1999-2001 세계도자기 EXPO 추진위원

1999 태국 왕실초청 전

1999 현대미술대전 문화관광부 장관상(박지원)

2000 일 NHK 초청 한-일 합동 가마 시현(가고시마 현에서 세계 생방송)

2000 일본, 중국 이스라엘 국제도예가 초청, 장작 가마불 지피기 시현

2001 한국 茶器 명품 특별전(국립민속박물관)

2002 프랑스 도자전(한국문화원)

2002 캐나다 초정 도자전

2008 전통가마협회 전시회(일본 도쿄)

2008 문화부 장관상(유인촌)

2010 UNESCO 세계도자명장(이천시 창의도시 선정)

2012 경기도 이천시 예술부문 문화상

2013 한국건축조합 이사장

2015 21세기를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2018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홍종학)

現 해주도자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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