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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오늘, "민속무용의 본보기작품 중 '돈돌라리' '룡강기나리'" 소개

김일미 기자 | 기사입력 2020/03/31 [09:16]

조선의오늘, "민속무용의 본보기작품 중 '돈돌라리' '룡강기나리'" 소개

김일미 기자 | 입력 : 2020/03/31 [09:16]

 [+코리아타임즈=김일미 기자] 북 조선의 오늘은 '민속무용의 본보기작품으로'라는 제목에서 "민족문화보존정책에 의해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민속무용유산들이 적극 발굴고증되여 시대적요구와 인민들의 지향에 맞게 훌륭히 계승발전되고 있다"며 "그 가운데는 우리 나라 동서해안지방의 대표적인 민속무용으로 널리 알려진 《돈돌라리》와 《룡강기나리》도 있다"고 소개했다.

 

▲ 무용《돈돌라리》. 사진=조선의오늘     © 김일미 기자

 

다음은 조선의 오늘이 보도한 기사 전문.

 

민속무용의 본보기작품으로

 

우리 공화국에서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와 조선로동당의 옳바른 민족문화보존정책에 의해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민속무용유산들이 적극 발굴고증되여 시대적요구와 인민들의 지향에 맞게 훌륭히 계승발전되고있다.

그 가운데는 우리 나라 동서해안지방의 대표적인 민속무용으로 널리 알려진 《돈돌라리》와 《룡강기나리》도 있다.

《돈돌라리》춤은 함경도의 동해바다가 지역들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이 지방특유의 민속무용이다. 그러던것이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착취와 압박이 없는 자주적인 새 생활을 바라는 인민들의 지향과 념원을 반영하여 《동틀 날이 오리라》라는 말이 줄여진 《동틀날》로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되면서 대중적인 춤으로 추어졌다.

한편 《룡강기나리》는 룡강, 온천지방에서 널리 불리워진 로동민요인 룡강타령에 기초하여 건드러지면서도 활달한 춤동작을 펼쳐보이고있는 민속무용이다.

이 민속무용들에도 인민들속에서 널리 전해오는 문화유산들을 적극 발굴하여 시대적미감에 맞게 발전풍부화하시려는 위대한김정일장군님의 령도의 손길이 뜨겁게 깃들어있다.

위대한령도자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민족의 우수성을 살리고 내세우는데서 중요한것은 민족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는것이다.》

주체64(1975)년 12월 위대한장군님께서는 새로 발굴형상한 민속무용들인 《돈돌라리》와 《룡강기나리》를 보아주시였다.

춤을 다 보아주신 그이께서는 민속무용형상에서 나타난 부족점과 수정방도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장군님께서는 원래 《돈돌라리》춤은 손동작을 맞추어 추는 특색이 있는 춤인데 원래의 곡은 다 없애고 현대화된 곡에다 손동작을 맞추어놓으니 흥취가 나지 않는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돈돌라리》를 하자면 민속무용대로 해야지 원래의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현대화하면 누구도 그것을 보고 《돈돌라리》라고 하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룡강기나리》와 관련하여 주제를 잘 잡았다고 하시며 농민들의 로동생활을 형상한 정서적인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무용수들이 무대에 호미를 가지고 나왔으면 처음부터 마감까지 쓰도록 하여야 하겠는데 빠른 동작을 하는 대목에 가서 처리하기 곤난하다고 하여 호미를 놓고 춤을 추거나 도중에 들었다놓았다 하여서는 안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룡강기나리》에서는 무용수들이 호미를 들고 나오는것을 잘 살려 농민들의 근면한 로동생활을 형상한 무용작품으로 고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때로부터 석달이 지난 주체65(1976)년 3월 중순 위대한장군님께서는 재형상한 《돈돌라리》와 《룡강기나리》를 또다시 보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그전에 만든 《돈돌라리》에서는 손을 들었다 내리며 어깨를 가지고 재간을 부리는것이 있었는데 오늘 출연한 무용에는 그런것이 없고 손을 머리우에서 놀리는것이 너무 많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음악은 지금대로 고착시키고 춤동작만 《돈돌라리》춤가락들을 살려 완성할데 대한 구체적인 방도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장군님께서는 또한 《룡강기나리》에 대하여 형식도 좋고 소도구도 좋은데 벼를 베는 장면에서 무용적으로 곱게만 형상하였기때문에 로동생활이 진실하게 안겨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농민들의 생활을 깊이 파고들어 예술적으로 잘 형상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장군님의 크나큰 관심과 세심한 가르치심속에 《돈돌라리》와 《룡강기나리》는 그후 시대적요구와 인민들의 지향에 맞게 민속무용의 본보기작품으로 훌륭히 완성되여 주체예술의 화원속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피여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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