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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에(7)- 정신병자들의 이야기 ; 철부지 서양인들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06/09 [18:12]

옛날옛적에(7)- 정신병자들의 이야기 ; 철부지 서양인들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0/06/09 [18:12]

 

 

. 정신병자들의 이야기

 

 1.철부지 서양인들(근세까지의 서양역사 개괄)

 

지난 세기들우리가 현재는 암흑의 세기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어두운 과거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지난 세기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빚은 잘못된 세계적 현상들은 사고방식의 과감한 대전환을 통해서만 고칠 수 있었다. 그 잘못된 사고방식은 바로 서양식 역사관에서 생겨났고, 따라서 그 당시 세계를 야만으로 몰아넣었던 서양식역사관을 그 뿌리부터 뜯어 고침으로써만 진정한 문명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지구와 인류를 송두리째 죽음으로 몰아넣어 가던 소위 최첨단과학문명은 사실상 끝없는 서양인들의 탐욕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컬럼버스라는 스페인의 해적두목이 저 풍요로왔던 미주대륙을 약탈하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으로 달아 오른 서양인들의 축재욕망은 그 후의 암흑세기들을 연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는 그러한 비극적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도 서양적 역사관을 철저히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의 역사적 시초는 소위 오리엔트사회로부터 시작되는데, 사실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인류 전체의 역사적 상한선을 크게 밑도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미 상식화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그 오리엔트문명이 단기전 2,0003,000년 경(서기전 4,0005,000년 전)에 발생한 데 비하여, 한민족을 그 연원으로 하는 인류문명의 기원은 대략 단기전 약 5,000여년(서기전 7000여년전) 경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한민족에 비해 이삼천년이나 뒤늦게 발생한 오리엔트문명조차 서양역사의 기원을 거기에서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억지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서남아시아와 북부아프리카 일대는 셈족과 햄족의 활동무대였을 뿐이며, 유럽지방의 역사를 주도해 온 도리아인이나 라틴족게르만족노르만족 등과는 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나마 오리엔트지역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캄캄한 야만속을 헤매고 있던 지중해 연안의 잡다한 유럽지방 종족들이, 가끔씩 오리엔트로부터 문화적 충격을 받아오면서 그러한 외부적 문화들을 자신들의 생리에 맞게 적당히 변형시켜 가면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역사의 진정한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그리이스지방 소국가집단들의 내외적 투쟁은 서양인들의 기본적 정서를 특징짓고 있다. 서양인들의 기본정서는 저들의 신화이자 저들의 역사이기도 한 소위 그리이스신화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대부분 인간이 아닌 짐승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야만적 인종들의 약육강식적 투쟁의 기록들인 것이다. 한민족사회와 같은 문명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들이 서양인의 조상들이 살던 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짐승과 인간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한 예의나 생활규범 등은 거의 완전히 무시된 채, 동물적 정욕(情慾), 욕심사나운 소유욕과, 적자생존에 입각한 생존경쟁 등이 신화라는 미명하에 적나라하게 벌어졌던 것이다.

 

거기에는 약탈살인방화인신매매동성연애윤간혼음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수간(獸姦)까지도 보편적 현상으로 등장한다. 수간이란 곧 스스로가 동물이외의 아무 것도 아님을 나타내는 행위로밖에 볼 길이 없다. 그러다보니 크레타섬에 있었던 미노스왕이 만든 미로에 소머리에 사람의 몸체를 가진 괴물까지 발생하여 아테네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도 했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 기록이나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문명의 표시는 아니다. 야만의 기록이란 곧 갈 데 없는 야만의 표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기록은 기록이되 수치스런 기록으로서 엄격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그리이스 폴리스세계의 정신착란적 후유증은 소위 헬레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로마에 이어졌고, 널리 전해져 왔다.

 

로마시대에 가서는 그리이스적 전통이 참문명을 향하여 보다 바람직한 방식으로 발전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폭력적야만적으로 퇴화되었고, 로마의 통치력이 미치는 곳마다 생존권을 박탈당한 노예들의 신음과 절규가 넘쳐 흘렀다. 지중해연안은 거의 대부분 로마의 판도에 속했는데, 인종적으로도 한민족을 주축으로 하는 아시아계인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종들과 종족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었다.

 

지중해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확장을 거듭해가고 있던 로마왕국도 말기에는 폭정과 권력다툼 등으로 인하여 내부 분열을 거듭하다가, 보다 더 야만적인 게르만족에게 침범당하여 동서 로마로 나뉘어졌다. 서로마는 완전히 게르만족의 판도로 변해 버렸으며, 발칸반도와 소아시아반도 지방의 동로마와는 그 문화적 성격을 달리하며 소위 암흑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이성이 최대한으로 부정되었던 유럽지방의 중세는 약 천여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절대자에의 무조건적 복종 이외에는 달리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던 그러한 중세는 오래 갈 수 없었다. 유럽지방의 최북방인 스칸디나비아반도로부터의 노르만족(바이킹)의 대침략, 이베리아반도와 시칠리아섬까지 뻗혀들어 온 이슬람세력의 확장,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정부패 등으로 인한 민심의 혼란때문에 유럽사회는 크게 동요하게 되었다. 정말로 말세가 눈앞에 닥친 듯한 극도의 불안감에 몰린 유럽인들은 소위 최후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종교적 광신에 쉽사리 휩말려 들었다.

 

그리하여 유럽사회에 사회적 불안감이 팽만해 가자 당시 유럽의 지도층이었던 로마교회와 국왕들은 그 해결방안을 대외침략노선에서 찾았다. 그것은 10여 차례에 걸친 십자군침략전으로 표출되었으나 성공할 수는 없었고, 뒤이어서 닥친 몽골군과 오스만투르크의 대공세는 더욱 유럽인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하여, 궁지에 몰렸다고 판단한 저들은 마침내 물불 가리지 않는 막무가내적 해외침략이라는 최악의 방법을 해결책으로 선택하고 말았다. 이로부터 유럽해적들의 광란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어진 이른바 식민지쟁탈시대(또는 대해양시대)가 막을 올렸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서해안 일대가, 다음에는 미주대륙의 문명세계(마야잉카아즈텍 등)일대가, 그 다음에는 동남아시아 일대가, 그러고도 더 막 나가서 유럽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가 유럽해적들의 철면피한 노략질에 희생되어 갔다. 그러한 노략질은 이성과 문명의 전파(또는 백인의 짐 ; whites’ burden)라는 허울 번지르르한 명분하에 태연히 저질러졌다. 전 세계를 약탈한 유럽지방은 급격하게 물질문명을 이루면서 풍요를 구가하였고, 그러한 침략전쟁에서의 자신감은 세계정복의 야망이라는 더욱 비뚤어진 방향으로 진행되어 갔다. 그리하여 저들 서양의 패권주의자들은 결국 전 세계를 건 도박판인 두 차례에 걸친 전세계적 규모의 전쟁들을 터뜨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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