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애인 같은 여자, ‘박현진’

치열하게 연애하듯 살아온 연극 인생

김지원 인턴기자 | 기사입력 2007/02/09 [16:16]

애인 같은 여자, ‘박현진’

치열하게 연애하듯 살아온 연극 인생

김지원 인턴기자 | 입력 : 2007/02/09 [16:16]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표현하는 배우 박현진의 스산한 표정     ©구현령 기자

 
여자는 죽을 때까지 ‘여자’다. 언제나 사랑을 꿈꾸며, 또 언제든지 20대처럼 사랑할 수 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연륜과 경험이 쌓여 그러한 욕망을 조심스럽게 감추고 있을 뿐이다. 연극 ‘댈리의 애인’에서 40대 여성인 주인공 댈리는 20대의 미청년과 사랑을 나눈다. 농염하고 성숙한 댈리의 배역을 자기 자신처럼 소화시키고 있는 연극배우 ‘박현진’을 만났다.

청주 연극계를 주도하는 상당극회의 대표이자 2006년 한국연극배우협회 한국배우상을 수상한 그녀는 ‘댈리의 애인’ 막바지 공연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댈리 부인과 그녀의 상관관계


▲극중에서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댈리부인 역 박현진     ©구현령 기자

‘댈리의 애인’은 40대 중년 여성과 20대 남성의 페이소스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다. 그녀는 댈리 부인 역을 맡으면서 젊은 두 남자배우와 함께 연기하게 된다. 성격이 서로 다른 두 배우와 번갈아 연기를 하다 보면 같은 작품인데도 전혀 다른 작품을 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늙어가면서 다시 한 번 가슴 절절한 연애를 해 보고 싶다는 꿈을 꾸죠. 저도 마찬가지에요. 작품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연애 할 수 있으니까 참 좋네요(웃음). 사실 처음에는 이 나이에 댈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이번 연기를 통해 제 연기 생활에 또 다른 색깔을 입힐 수 있어 좋습니다.”

두 달 전 같은 작품으로 청주 공연을 마친 그녀는 이달 6일부터 시작된 서울 공연을 위해 연습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그녀의 연극 인생, 청주 ‘상당극회’

청주가 고향인 그녀가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당시만 해도 연극배우는 딴따라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녀는 집과 학교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었다. 어린 시절 잠깐 아동극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대학교 연극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것이 그녀가 연극인생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지방의 연극 상황은 열악해요. 제가 젊었을 때 청주의 ‘시민극장’이라고 유일한 극단이 있었는데 학교 졸업 후에 거기서 ‘성난얼굴로 돌아보라’는 연극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 작품을 끝으로 10여 년간 극단이 쉬게 되니까 연극에 미친 사람들 몇이 모여 우리끼리 작품 할 수 있는 극단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죠. 그게 바로 ‘상당극회’에요.”

‘상당극회’는 청주 연극계를 주도하고 있는 극단이다. 대표인 그녀는 청주 연극계를 대변하는 얼굴이다. ‘상당극회’는 84년 창단작품 ‘아일랜드(A.후가드 작/박천하 연출)’ 공연 이후 현재까지 1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올리고 있다.
 
지난 1992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연극제에서는 ‘사로잡힌 영혼’으로 대통령상,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따라서 이번 [댈리의 애인] 서울 공연이 상당극회 서울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연극 [댈리의 애인]에 출연 중인 박현진     ©구현령 기자

연극인으로서의 삶,
여자로서의 삶

열악한 제작 여건상 서울도 아닌 지방 연극 극단이 꾸준히 작품을 올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청주에서 연극배우로 주목받던 그녀는 젊은 시절 서울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하였으나 거절했다. 청주 연극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가난할 수밖에 없는 연극배우 생활이었지만 10년 넘게 연극에만 몰두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극장에 가서 수십억원을 들여 제작한 대작 영화들을 보면서 적은 돈으로 아웅다웅해야 하는 연극계에 깊은 회의와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관객들의 눈은 계속 높아져 가는데 제작비가 없어 작품의 수준을 낮춰야 할 때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괴로웠어요. 1999년도에는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죽으려고까지 했었죠. 그런데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우연히 지원금제도가 생겨 살아났어요. 지금은 어차피 열악한 상황이니 어떻게 되든 제대로 된 작품을 올리고 보자는 생각이에요.(웃음)”

그녀와 함께 ‘상당극회’의 창단멤버 중 한 사람인 ‘박천하’ 씨는 그녀의 남편이다. 그녀에게 ‘박천하’는 연극인으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는, 무한한 라이벌 의식을 갖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남편으로서의 그와는 많은 고충이 있었다.

“부부가 둘 다 연극을 하겠다는 건 제정신이 아닌거죠.(웃음) 가난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게다가 멋모르던 시절 남편을 만났고 남편과의 이른 만남에 아이가 생기면서 제가 꿈꾸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어요. 일부러 한 명만 낳은 아들의 학비도 제 때 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원래 그녀의 목표는 연극이 아니라 방송이었다. 대학 시절 DJ활동으로도 상을 많이 받았으며 지금도 가끔 프리랜서로 방송 일을 하고 있다. 원래 목표는 방송이 본업, 연극이 부업이었으나 지금은 거꾸로 된 상태다.

“한때는 한 사람의 여자로서 남편을 많이 원망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도 계속 연극을 같이 해 나갈 수 있는 동반자로서 또 부부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있어요. 지금의 저에게는 참 좋은 남편이죠.”


무대가 곧 삶이었던 배우로 남기 원해
 
‘2006 한국배우상’ 외에도 그녀는 여러 차례 상을 탔다. 자신이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눈에 더 띄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겸손한 배우 박현진. 그녀는 연극무대에 청춘을 바쳤던 지금까지의 삶처럼 후에도 무대가 곧 삶이었던 배우로 남고 싶다고 했다.

올해 이미 3~4개의 작품이 예정되어 있는 그녀는 힘들게 작업했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그녀의 원숙한 연기와 무대를 기대해 본다.

 

뉴스컬쳐(원본 기사 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포토]지리산 노고단에 핀 진달래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