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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

배정규 문학칼럼 | 기사입력 2014/06/30 [23:23]

마음의 문

배정규 문학칼럼 | 입력 : 2014/06/30 [23:23]
▲ 배정규 백제문화예술협회운영위원장     © 고현자 시인
문; 드나들거나 여닫도록 된 시설 (대문, 방문, 창문 등)
거쳐 가거나 통과해야 하는 것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
사전적 의미에서의 문의 표현이라면 마음의 문은 어떻게 표현함이 적절한가?
달팽이 제 몸 감추듯 숨는 문인가 새둥지처럼 열려진 문 이여야 할까?
 
어릴 적 고향의 대문은 늘 열려진 체 비스듬히 누워있던 사립문이 편안함의 상징처럼
되었던 대문. 꼿꼿함 보다는 비스듬히 비껴 부드러운 마음씨들이 아니었든가.
반달 모양의 깊게 패인 땅바닥에 그어진 대문 자국, 어쩌다 한 번씩 여닫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커다란 대문.

보편적으로 시골엔 방문과 대문의 거리가 꽤나 먼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타작마당을 지나 옆으로 채전 밭과 퇴비무덤자리, 그리고 변소 마지막 끝자락에 위치한 대문이 있다.
늦은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술래잡기며 자치기 손에 잡히는 것이 모두다 놀이 도구이였다,

그런 놀이로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놀다가 어스름 별빛 뉘엿뉘엿 어둠이 몰려 올 때,
각자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할 때 제 발자국 소리에 무섭기도 하고 달걀 귀신이야기며
변소 귀신 이야기에 공포에 질려 있는 힘 다하여 달려서 집 앞에 이르면 한숨 돌리고
활짝 열려진 대문에서 큰 소리로 엄니! 부르면 기다렸다는 듯 어김없이 방문을 열어 주시며
방안에 들 때까지 방문 열고 기다려 주시던 어머니의 방 문, 그건 사랑이다.
방안에 뛰어 들어 어머니의 품에 안기면 그 품이 어찌나 포근하고 평안하던지.
온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그 어머니의 품안.
문; 자기 영역을 위한 공간 확보를 하는 수단이 된 울타리와 더불어 생성 된 문,
언제쯤부터 문이 필요했을까.

가족 단위가 구성 되고 가족의 보호의 필요를 느끼고부터?
가족의 우리 안에서 사회와 연결 되는 연결 고리의 역할을 담담하게 된 문.
우리 가족들의 집안 모습들이 투명한 비눗방울 속처럼 환하게 비추이기를 거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인 문이 아닌가.
어느 때부터인가 인기척에 놀란 토끼 귀처럼 비스듬히 누웠던 대문이 벌떡 일어나더니
고리가 채워지고 세월 지나 자물통 채워지는 이웃들과의 단절의 대문으로 변신하게 된

슬픈 운명의 대문.
점점 산업화 되면서부터 맞게 되는 문의 변모되어가는 모습을 떠 올리다 보면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지배를 하게 된다.
자물쇠를 채우고 걸쇠를 걸고 그도 모자라 이중 삼중 채워야
비로써 안심이 되는 생활의 삭막함이 어디 나만의 생각일까
노란 폴리스 라인처럼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는 문의 변신이 슬픈 일이 아니고 무얼까.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져 가면서 봄날처럼 따스하게 흐르던 이웃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식어가는
가지 중심적으로 변하면서 대문의 역할도 이웃과의 소통의 의미 보다는
단절의 의미로 변화해가는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편승해 가야하는 나약함에 대문은 비웃을까
 
한 때는 담장 위의 철조망이나 유리 파편들이 담장 허물기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그 흉물스럽던 담장을 허물고
넝쿨 장미도 푸르른 싱그러움으로 가꾸며 이웃들과의 더불어
화목한 회복의 시간들이 있는가 싶더니 작금은 먼 옛 날 이야기.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문을 반쯤 열고 손 흔들어 준 후, 오늘도 무사히 하며
하루의 안녕을 기원해야 하는 세태.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 닫고 고리까지 걸고 자물쇠 채워야
고요의 요람처럼 느끼게 되는 가정.
그런 모습에 문은 어떤 감정일까.
 
마음의 문은 어떨까?
누구나 드나들며 희희낙락해야 하지 않을까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처럼 거대 피라미드에 묻혀있는 것처럼 어두운 은둔의
마음이라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포용하고 배려하는 것은 닫힌 마음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
겨울을 인내하고 봄을 기다려 대지에 한 가득 희망을 불어 넣음같이
마음 문 활짝 열고 서로를 받아 드림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용서는 자기가 결단하고 스스로 하는 행위라면 화해는 쌍방이 하는 행위가 아닌가?
용서하기가 쉽지는 안다고 하지만 스스로 결단하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처럼 쉬운 일이 또 있을까?
열고 산다는 것. 화들짝 핀 봄날이 아닌가?
마음의 문고리를 제거하는 일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사랑은 다가가서 나를 열고 보여 주며 감싸주고 채워 주는 것이 아닐는지.
아플 때 같이 아파하기는 쉬울 수 있으나
기쁠 때 진정으로 같이 기뻐해 주는 것. 같이 공감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싶다.
이 또한 열려있는 마음에서나 가능한 일.

연다는 것은 곧 그대로를 받아 드린다는 의미로서 긍휼이 여길 줄 아는 마음이겠지.
오뉴월 활짝 핀 장미, 가을 하늘의 맑음 같이 그런 아름다움은 여는 데서부터 시작 되는 법.
우리가 보여 주고 표현 할 수 있는 사랑은 너무나 작기에 겸손함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체지방이 1kg 늘어나면 미세혈관 또한 1km 늘어나 그 만큼 심장에 압박을 더 한다 네요.
그러므로 늘어난 체지방을 줄이지 않으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네요.
닫고 막으면 배출 할 수가 없으므로 고이고 썩기 마련이잖아요.
걱정 ,근심, 염려, 활짝 열린 마음의 끝자락에서 다 털어 버리세요.

마음의 문 활짝 열고 원망, 미움, 시기, 질투 다 흐르는 강물에 흘려보내고 사랑하며 살아요.
기쁨과 즐거움은 열림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마음의 문 활짝 열면 어둠의 그림자 감히 접근 하지 못할 것입니다.
 
프로필
시인, 작사가
한국 저작권협회 회원
현) 한국문인협회 청소년문학진흥위원회 위원장
현)플러스코리아타임즈 기자
일간경기 문화체육부장 역임
현)인천일보 연재
현)대산문학 대표
현)대산문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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