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홍익인간 7만년 역사 -104]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57

조선(朝鮮) 제5대 구을(丘乙)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5/02/12 [08:59]

[홍익인간 7만년 역사 -104]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57

조선(朝鮮) 제5대 구을(丘乙)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5/02/12 [08:59]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서기전2099년 임술년(壬戌年)에 천왕께서 명(命)을 내려 태백산(太白山)에 제천단(祭天壇)을 축조하게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제(祭)를 올리게 하였다.







[태백산(太白山) 제천단(祭天壇) 축조]





태백산은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을 가리킨다. 물론 배달나라 시대의 중심지로서 신시(神市)가 열렸던 태백산은 백두산이 아니라 중국내륙의 서안(西安) 부근 즉 황하 중상류의 남쪽에 위치한 태백산이 된다. 삼위산(三危山) 동남쪽에 위치한 서안의 태백산 부근에서 한국말기이자 배달나라 개천 시기인 서기전3897년 이전에 호족과 웅족의 전쟁이 있었으며, 이를 진압하면서 세운 나라가 배달나라인 것이다.





지금의 백두산이 단군조선의 태백산이 된 것은 서기전2333년에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조선을 개국하면서 나라의 중앙으로 삼았기 때문이며, 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남북에 각각 동보(東堡), 서보(西堡), 남보(南堡), 북보(北堡)인 예(濊), 번한(番韓), 마한(馬韓), 진한(眞韓)을 두었으며, 중앙인 백두산은 신(神)의 자리로서 삼신(三神) 제천단(祭天壇)인 천부단(天符壇)을 두었던 것이다.





서기전2099년에 태백산인 백두산에 제천단을 축조하였다는 것은 그동안 백두산을 나라의 중심으로서 삼신(三神)을 모신 자리로 삼아오다가 제천단을 정식으로 쌓았다는 것이 된다.





백두산은 진한, 마한의 사이에 위치하며 동쪽에는 예국(濊國)이 있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며, 서기전57년에 건국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축조한 천제단(天祭壇)은 지금의 강원도 태백산에 있는 바, 당시에 이 산을 남태백산(南太白山)이라 하여, 백두산을 본 태백산이라 한 것이 된다.






서기739년 대진국(大震國)의 제3대 문황제(文皇帝)가 남긴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 의하면, 태백산(太白山) 보본단(報本壇) 석실(石室)에 삼일신고를 보관하는 사유를 적고 있는데, 이때의 태백산이 곧 지금의 백두산인 것이다.





[황충의 폐해]





서기전2098년 계해년(癸亥年) 여름 5월에 황충(蝗蟲)의 떼가 크게 일어나 온 밭과 들에 가득하니, 천왕께서 친히 밭과 들을 순행하면서, 황충을 삼키시고 삼신께 없애달라고 하늘에 고하니, 며칠 내에 모두 사라졌다.





황충은 누리라고 하며 벼 등 곡식을 갉아 먹는 메뚜기의 일종이 된다. 엄청나게 많은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곡식을 싹쓸이하는 곤충이다. 식용이 되는 곤충이나 곡식을 아예 절단내는 존재이므로 농사짓는 농부들에게는 크나큰 재앙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에 단군 천왕이 백성들의 마음을 살펴서 황충을 잡아서 먹어 삼키면서 삼신께 기도를 드리니 그 덕으로 황충이 사라졌다라고 기록된 것이다.





단군조선 시대의 화폐인 소위 명도전(明刀錢)에 지금의 “메뚜기”가 되는 글자로서 세종대왕 시절인 서기15세기 발음으로 “멧독”이 되는 “멧도기” 정도로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로써 단군조선 시대에 메뚜기가 존재하였던 것이 틀림없게 되는 것이다.






[갑자(甲子)로 시작한 책력(冊曆)]





서기전2096년 을축년(乙丑年)에 갑자(甲子)를 시작으로 하여 책력(冊曆)을 만들었다.





갑자를 머리로 하는 책력을 만든 해가 을축년인데, 이는 갑자년인 서기전2097년을 기준으로 하여 책력을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 된다.





배달나라 전기까지는 계해(癸亥)가 머리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서기전3500년경에 태호복희가 갑자(甲子)를 머리로 하여 60갑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이다. 즉 처음에는 계해가 처음이 되어 60계해라 불리는 것이 되고, 태호복희 이후에는 갑자가 처음이 되어 60갑자로 불리는 것이 된다.





계(癸)라는 글자가 처음 또는 시작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상형문자이며, 계(啓)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또 해(亥)는 중심이 되는 핵(核)과 같은 뜻을 가진다. 그래서 계해가 원래는 60갑자의 머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현재 사용되는 12방위표에서는 해(亥)에 해당하는 시간은 밤9시부터 밤11시 사이를 가리키며, 자(子)는 밤11시에서 새벽1시 사이이고, 자(子)의 바로 뒤에 새벽1시부터 새벽3시가 되는 축(丑)과의 사이인 새벽1시의 위치에 계(癸)가 위치하고 있다.






배달나라 개천 시에도 계해(癸亥)가 처음으로서 해월(亥月)이 지금의 음력 10월로서 한해의 첫달로 삼은 것이며, 단군조선 시대에도 음력 10월인 해월(亥月)을 첫달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단군조선을 개국한 날짜도 음력 10월 3일이며,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여는 달로 음력 10월이었던 것이다.






서기전2096년에 갑자를 처음 시작으로 사용하여 책력을 만들었다는 것은, 갑자년인 서기전2097년을 시작점으로 하여 다시 순서대로 달력 즉 책력을 만들었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상달(上月)은 여전히 해월(亥月)인 음력 10월이 된다.


한문화사업총단 대표/천산역사연구원장/천부역(天符易)과학원장/마고족보연구원 대표/세계무궁화축제문화사업회 이사/독도 대마도 동해 만주 수호회복단 이사/천웅도 문무원 이사/광개토황비문연구원 이사/천부어문연구원 이사/산삼문화사업단 이사/한국삼협회 고문/홍익정치연구원 이사/한문화컨텐츠개발원 이사/한문화유물문화재연구원 이사/한문화사업단 이사/행운천지인 역리풍수 대표/(주)한문화개발 고문/플러스코리아타임즈 이사/춘천고조선유적지보전협의회 총괄기획위원장/천부풍수연구원 이사/풍수지리신문 편집국장/현 법무사/저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생활사주> <생활기문> <천부풍수> <천웅도와 홍익인간><우리말글과 세계언문역사>외
------------------------------------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단기고사(檀奇古史), 규원사화(揆園史話)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3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포토]지리산 노고단에 핀 진달래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