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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의 항일투쟁 암살 보고서 "약산과 의열단"

김원봉이 구술하고 박태원이 쓴 의열단 투쟁사

보도부 | 기사입력 2015/11/12 [18:42]

김원봉의 항일투쟁 암살 보고서 "약산과 의열단"

김원봉이 구술하고 박태원이 쓴 의열단 투쟁사

보도부 | 입력 : 2015/11/12 [18:42]

 

영화 <암살>을 관람한 사람은 무려 1270만명, 70년간 망각을 ‘강요’당한 ‘의열단’이 부활했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을 보고 의열단의 실체를 제대로 알게됐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약산과 의열단』은 의열단을 창설한 김원봉이 1947년 해방공간에서 구술한 내용을 기초로 한다. 해방 당시 최고의 작가로 꼽히던 박태원이 김원봉을 인터뷰하고 각종 자료를 붙여 완성했다.

 

책의 부제는 ‘김원봉의 항일투쟁 암살보고서’이다.

 

1919년 11월 10일 의열단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1926년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회사 투탄 의거까지 해방투사들의 거친 숨결이 들리고 피와땀 냄새가 전해진다. 계획대로 성공한 투쟁의 순간에는 박수가 나고, 폭탄 불발, 밀정 고변, 실패의 순간에는 눈물이 난다.

 

김원봉, 나석주, 김익상... 의열단 전사들은 과연 승리를 확신하고 싸웠을까?

 

상해 황포탄 의거에서 아내를 의열단의 총탄에 잃었지만 체포된 의열단원을 면회해 위로하며 응원하는 영국 청년, 폭탄제조전문가로 의열단과 함께 활동한 헝가리 청년, 그리고 수많은 중국인 의열단 지지자들의 음양에 걸친 지원, 의열단 투쟁에 함께 한 외국인들의 이야기들도 감동적이다.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은 최고의 작가 박태원의 작품이라는 것. 문학적 표현력뿐만 아니라 해방운동에 대한 통찰력을 갖춘 박태원은 의열단 투쟁의 의의뿐만 아니라 한계도 드러낸다.

 

그는 김원봉이 1926년 이후 의열단 활동을 접고 조선의용군이라는 ‘조직적’ 무력투쟁으로 나아간 것이 독립운동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전략적 전환이었는가를 이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통해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의열단원 박기홍은 친일관료의 아내였지만 민족의식이 투철한 식민지 조선의 최초 여류화가인 나혜석에게 권총을 맡긴다. 그런데 박기홍은 중도에 체포되어 오랜 감옥생활을 한다. 출감한 박기홍이 우연히 나혜석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 나혜석이 박기홍에게 권총을 돌려준다. 비밀을 지키려 남편 모르게 베갯 속에 간직해온 것이다.

 

김원봉의 의열단은 식민지 초기 좌절과 실의에 빠진 우리민족의 투쟁심을 북돋운 선도적 투쟁집단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상황이 점점 더 고착되는 상황에서 선도투쟁만으로는 해방을 주체적으로 이뤄낼 수 없었다.

 

김원봉의 의열단은 나혜석과 같은 ‘인민의 바다’를 믿고 인민이 참여하는 조직운동 ‘조선의용군’의 길로 전환한다. 조선의용군은 ‘한국광복군’과 1942년 통합했고, 김원봉은 한국광복군의 부사령으로 해방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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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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