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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실험과 南 확성기, 그 속내에 담긴 정치

총선 100일 전 전쟁분위기 고조하려고? ‘북풍으로 선거개입’

임두만 칼럼 | 기사입력 2016/01/11 [07:40]

北 핵실험과 南 확성기, 그 속내에 담긴 정치

총선 100일 전 전쟁분위기 고조하려고? ‘북풍으로 선거개입’

임두만 칼럼 | 입력 : 2016/01/11 [07:40]

 

▲ 이미지뷰어     © 편집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이 성공했다고 자평했으나 국제사회나 국내 전문가들에게 제대로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북에서 일어난 리히터 지진계 5 정도의 인공지진파는 핵실험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수소폭탄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떻든 북한은 새해 벽두 국제사회 모두가 깜짝 놀랄 일을 해버렸고, 이에 미•일•중•러 그리고 우리 한국까지 6자회담 당사국 모두에게 적대감을 고취시켰다. 특히 김일성 김정일 2대에 걸쳐 가장 강력한 우방이던 중국까지 강력한 톤의 비판이 나올 정도로 김정은의 도발은 적극적이다.

 

그런데 이 같은 김정은의 도발에 대한 한국 측의 대응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북에서 핵폭탄을 실험했는데 그에 대한 대응이 북이 가장 싫어한다는 ‘최고존엄’을 비판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시한다는 결정이기에 그렇다. 정말 우리는 이런 대응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이 방안이 최선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가장 나쁜 선택이다. 이 결정에는 ‘아주 특별한 정치’가 깊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7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 개최했다. 이미지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지난 해 8월20일 북한은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에 설치된 확성기를 타킷으로 고사포 포격을 실시했다. 이에 우리 군도 즉각적인 대응사격을 실시, 휴전선은 전쟁발발 상태까지 갔다. 왜 그랬을까?

 

그해 8월4일 비무장 지대에서 지뢰 폭발로 우리 장병 2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군은 즉각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라며 이를 북측의 도발로 규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10일부터 연천과 파주 등 2곳에서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고 이른바 ‘최고존엄’ 김정은의 약점과 체제비판성 내용을 담은 심리전 방송을 시작했다. 이 확성기 방송은 이후 순차적으로 전방 지역 11개 사단에서 1곳씩 설치, 시행했다.

 

이에 북한은 이 확성기를 티킷으로 고사포 사격을 했으며, 남북의 군사적 긴장관계는 전쟁 아니면 제어되지 않을 것 같은 극한 상황으로 치달렸다. 그러나 쌍방포격 5일 후인 8월25일. 남북 양측은 무박4일의 끝장 협상을 통해 이 긴장상태를 종결시켰다. 즉 북측은 “남쪽의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폭발하여 남측 군인이 다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으며 이에 따라 남측은 대북방송을 중단한 것이다.

 

이에 당시 정부와 보수단체들은 ‘북한이 지뢰매설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압박이 승리한 협상’으로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북이 지뢰를 매설했으며 그 지뢰에 의해 남측 군인이 부상하여 미안하다’는 내용이 합의문에 없음을 지적, 남북양측의 ‘정치놀음’ 정도로 해석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에 일어난 북측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한다며 지난해 8ㆍ25 남북고위급 접촉 합의 이후 중단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8일 낮 12시부터 전면 재개키로 결정했다. 청와대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은 7일 “북한은 우리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4차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이에 따라 정부는 1월8일 정오를 기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재개하기로 결정했다”며 “우리 군은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만일 북한이 도발할 경우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해 8·25 남북고위급 회담 당시 나온 남북 공동발표문의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 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했다”는 점에 기인한 것이다. 즉 북의 핵실험은 ‘북측에 의해 비정상적인 상태가 발생한 것’으로 우리 정부가 판단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작년 8월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북한 인민군이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는 우리에게 선전을 포고하는 직접적인 전쟁 도발 행위”라며 “중단하지 않으면 무차별 타격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점에 비추면 이번에도 극도의 긴장관계가 형성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즉 방송 내용이 작년과 마찬가지로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인 김씨 일가 3대 세습과 비리, 독재 권력 내부의 부도덕성을 고발하는 내용일 것이며 이를 북은 ‘참을 수 없는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실상 북의 핵실험에 직접적으로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대외적으로야 6자회담 당사국의 외교적 압박, 유엔 안보리를 통한 압박 등을 할 수 있으며, 국제사회가 봉쇄를 통해 북을 옥죌 수는 있지만 북한은 이 같은 국제사회의 압박을 수십 년 견디면서도 핵무장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핵무장 체제를 강화하면서 급기야 4차 핵실험을 강행, 국제사회를 경악케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게 이 같은 수법의 외교적 압박은 그리 효과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렇다고 북의 핵실험을 우리가 용납할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그러면 우리도 핵무장을 강화해야 할 것인가? 오늘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이 같은 발언을 했으나 당장, ‘그것은 개인의견’으로 쓸어담을 만큼 ‘대한민국의 핵무장’은 미국에게는 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북을 평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햇볕정책'뿐이다. 북이 체제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경제개발을 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여론을 조성하는 길 외엔 없다. 그러나 이 정부는 이 같은 햇볕정책은 할 수 없으며, 결국 강대강 대치를 통한 제압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면 길은 전쟁 하나만 남는다. 그리고 지금 정부의 대응은 전쟁도 불사한다는 뜻이다. 과연 우리 국민은 전쟁을 바라는가? 그래서 정부는 그런 결정을 한 것인가?

 

나는 여기서 정치적 노림수를 본다. 북의 핵실험도, 남의 대북확성기 방송도… 작금 이 시점의 극명한 대치는 정치적 노림수 외에는 더 보이지 않는다. 대북 긴장관계와 일촉즉발 전쟁분위기 고조는 남쪽에서 정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이 블랙홀은 정치도 여야도 국회도 선거도 다 빨아들인다. 이 블랙홀 앞에서 정부비판, 여당비판은 국론분열이며, 국론분열은 전쟁의 패배라는 결론으로 귀결시킨다. 당장 북의 핵실험 이후 안철수 신당이든 천정배 신당이든 신당 바람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래서 언론은 ‘안철수 직격탄, 시간 번 문재인’이란 기사까지 나올 정도이며, 이종걸의 ‘북풍총선 경계’ 발언이 나왔을 정도다.

 

1987년 11월 29일, 17년 만의 국민직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될 선거일인 12월 16일을 20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날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출발, 서울로 향하던  KAL 858기는 승객을 115명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2시1분 이 비행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되면서 사라졌다. 모두가 공중폭발로 추측했으며, 테러에 의한 폭발로 규정한 당국은 테러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 주재 우리 대사관은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린 요주의 인물 남성 1명, 여성 1명을 검거하였으나, 음독자살을 기도하였다고 발표했다. 12월 2일 청와대는 대북 안보 체제 강화와 선거방해 책동에 대한 엄단을 지시했으며. 테러관련 수사를 진행하던 당국은 12월 7일 바레인에서의 수사를 종결한 뒤 북한의 서울 올림픽 대회 개최 방해 공작으로 단정하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민정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신민주공화당 김종필이 진검승부에 나선 뒤 양김과 노태우의 팽팽하던 3파전은 급격하게 노태우 우세로 바뀌었다. 급기야 대선을 하루 앞둔 1987년 12월15일 오후 2시, 김포공항에서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흰색 마스크를 쓰고 호송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전국을 강타했다.

 

이 여성의 호송은 그녀가 바레인에서 체포된 지 2주일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대선을 불과 하루 앞둔 호송시점. 그리고 하루 뒤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노태우가 차점자 김영삼을 200만 표에 가까운 194만여 표 차이로 꺾는 시원한 승리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 작품은 청와대 작품이었음이 후일 밝혀졌다. 당시 김현희 송환 작전을 지휘한 박수길 당시 외무부 1차관보는 후일 "12월13일까지 김현희의 신병을 국내로 인도해오라는 청와대의 '특명'이 떨어졌다"고 술회했다. 박 차관보는 이 ‘특명’을 수행했으며 김현희가 김포공항에 내린 다음 날 자정 쯤 대통령 당선자는 민정당 노태우 후보로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또 이듬해인 1988년 총선까지 좌우했다. 1988년 1월 15일 이 미모의 여성이 TV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김현희이며, 김정일의 사주로 서울 올림픽 대회 개최 방해와 대통령 선거 혼란 야기, 대한민국 내 계급 투쟁 촉발을 위해 KAL 858기를 폭파하였다고 말했다. 일본명 ‘마유미’란 이름으로 청와대의 특명에 의해 송환된 지 딱 한 달 뒤였으며, 그해 총선일인 4월 26일을 101일 남긴 날이었다.

 

北의 핵실험, 南의 대북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 그 결과는 앞서 언급했지만 지난 해 8월 이미 나왔다. 따라서 확성기 방송이 실시되면 북은 또 어떤 도발을 할지 모른다. 작년과 같은 고사포를 통한 위협사격으로 끝낼 지 아니면 정말 그들의 단언대로 확성기를 티킷으로 조준사격을 할 것인지… 지금으로선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북이 어떤 식으로든 도발을 감행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이를 예측하고 있기에 정부도 “우리 군은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만일 북한이 도발할 경우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도 전쟁을 각오하고 있다로도 해석할 수 있다. 총선 100일 전 남북 양측의 전쟁분위기 고조, 이 명백한 북풍은 그래서 국민들이 종결시켜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북의 위협도, 그 위협을 통한 남의 정치행위도 다 통하지 않음을 국민들이 표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기도가 성공하지 못한다. 과연 이번의 대치는 어떤 결과를 나타낼 것인지, 이제 100일 남은 총선에서 결판이 날 것이다.

 

본문: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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