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차렷”이 일제잔재라니

중국시민 | 기사입력 2016/08/13 [13:45]

“차렷”이 일제잔재라니

중국시민 | 입력 : 2016/08/13 [13:45]
▲ 1949년 10월말 병기공장에서 자체기술로 생산한 첫 기관단총을, 당시 김일성 장군이 김책, 최용건, 강건, 김일 등 항일혁명투사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항일투쟁 때 기척과 같은 일본말을 독립군들이 그대로 쓰고 있었는데 이를 차렷이라는 우리말로 고쳐썼고 해방 후에 그런 구령들을 더 많이 고쳤다고 한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중국시민]     ©

 

8·15가 다가올 때마다 한국에서 “일제잔재” 없애는 바람이 분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금년처럼 희한한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경기도교육청이 일제잔재를 없앤다면서 제일고· 중앙중·oo북초 등 학교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해 올해부터 추진하는데 순 우리말 학교이름이 5%에 불과한 게 원인이라나. 10일 발표된데 의하면 “2019년 3ㆍ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일제식 학교명, 직급명, 관행 등을 청산할 계획”이란다. 어느 네티즌은 그러면 중앙대를 가운대로 바꿔야 되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던데, 필자의 생각에는 중앙중이라면 복판중도 선택사항에 꼽힐 자격이 있다.

 

관련기사에서 필자가 잠깐 놀랐던 건 “애국조회, 차렷ㆍ경례 관행”도 바꾼다는 부분이었다. “관행”을 주목하지 못하고 “차렷”에 신경이 쓰여서였다. “차렷”도 일제잔재인가? 왜 놀랐느냐 하면 전에 “통일문화 만들어가며”의 첫 편을 겨레말대사전으로 시작했을 만큼 언어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차렷”을 순수한 우리말로 알고 차렷이 똑바로 서는 의미로 쓰인 게 광복 후 반도 북반부에서였다고 알기 때문이었다.

 

1966년 5월 14일에 김일성 수상이 언어학자들을 만난 진행한 대화는 《조선어의 민족적특성을 옳게 살려나갈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정리되었는데, 조선(북한)의 언어정책변화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실질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으므로 언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거개 아는 터이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군사용어는 고칠 수 있습니다. 해방된 다음에 우리가 몇 가지 군사용어들은 고쳤습니다. 《차렷》도 우리가 지어준 말입니다. 그전에 쓰던 《기척》은 일본말인데 독립군도 동북에서 이 말을 썼습니다. 홍범도도 그랬고 리범석이도 군관학교에서 이 말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척》을 《차렷》으로 고쳤습니다. 원래 구령은 마지막소리가 힘이 있어야 합니다. 해방 후 우리는 구한국때와 일제때 쓰던 구령들을 모두 고치자고 하였으나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지금 군대에서 쓰는 말에는 한자말이 적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차렷, 쉬엿”이나 그와 맞먹는 중국어단어들인 “리쩡(立正) 싸오씨(稍息)”에 습관되었던 필자는 10여 년 전 이 대목을 감명 깊게 보았다. 내력이 이렇구나 감탄하면서. 이번에 조선의 사전을 찾아보니 “기척”은 “차렷”의 옛 구령으로 나왔는데, 중국에서 만든 조선어사전에는 “기척”이 없고, 한국에서 만든 국어사전에도 “기척”이 없었다. 이미 사장된 단어라고 해야겠다. 헌데 진짜로 놀란 건 한국 민중서림에서 만든 “엣센스 국어사전”에 “차렷”이 없는 점이었다. 우습게도 민중서림의 “엣센스 중국어사전”에는 “리쩡(立正)”의 한글 뜻풀이에 “차렷”이라고 적었다.

 

기사를 자세히 일어보니 “도교육청은 또 애국조회, 훈치사, 전체 차렷ㆍ경례 등 식민교육을 위해 일제가 도입한 관행도 함께 없애나가기로 했다.”니까 중국에서 나서 자란 필자는 잘 모르는 한국 학교의 “전체 차렷”이라는 관행을 없애기로 한 모양이었다. 일제시대에는 물론 일본말명사를 썼을 텐데 언제 어떻게 “전체”라는 한자어 뒤에 “차렷”이라는 고유어가 붙어서 한국학교들에서 쓰였는지 언어학적 견지에서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기간에 다양하던 도시 소학교들의 이름을 번호에 따라 “제1소학교”, “제55소학교” 식으로 배열하였다가 문화대혁명이 끝난 다음 옛이름을 다시 쓰는 바람이 불어서 구역이름이나 “중앙”따위가 붙은 학교이름들이 몇 십 년째 쓰이면서 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굳이 일제잔재라고 이름을 바꾸려는 움직임은 없다.

 

우리말에는 지금도 일본을 통해 들어온 명사 특히 일본에서 생겨난 한자어들이 아주 많은데 다 바꾸자고 한다면 군대의 “내무반”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어느 일본 좌익이 쓴 책에서 구일본군은 군인들이 한 집안과 같다는 의미로 “내무반”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실은 그 내무반 속에서 기합이 성행하여 군인들이 서로 미워하는 사이가 돼버렸다 한다.

 

한국의 일제잔재청산은 형식주의에 그친 게 참 많다.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이 주장했던 “날틀”이 퍼지지 않고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한자어 “비행기”가 굳어졌고, 조선의 항일부터 안길이 참 좋은 말이라면서 찬양한 함경도유행단어 “불술기(술기는 수레의 함경도방언)”를 김일성 장군을 비롯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토록 민족성을 강조하는 조선이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한자어 “기차”를 지금까지 쓰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미국식 영어에서 파생된 외래어를 남용하는 한편 일제잔재를 없앤다고 떠들고 어떤 건 일제잔재가 아닌데도 일제잔재라는 딱지를 붙이는 거야말로 더운 밥 먹고 식은 짓 하는 꼴이다. “학교”를 아예 “배움터”라고 고쳐야 순수한 우리말이 퍼지나?


원본 기사 보기:자주시보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일제잔재 관련기사목록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완도 약산 해안 치유의 숲, 지난해 대비 방문객 3배 늘어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