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지의 시]어깨너머의 삶
장이지 | 입력 : 2017/06/18 [08:28]
어깨 너머의 삶
장이지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소매 끝이 닳은 양복이 한 벌 있을 따름이다. 그 양복을 입고 딸아이의 혼인식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평생 개미처럼 일했으며 비좁은 임대 아파트로 남은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굽은 등 투박한 손을 들키는 사람이다. 그는 그 거대한 손으로만 말을 할 줄 알았다. 언젠가 그가 소중하게 내민 손 안에는 산새 둥지에서 막 꺼내온 헐벗은 새끼 새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새근대고 있었다. 푸른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어두움의 음습한 숲에서 홀로 빛나던 새는 지금 어느 하늘을 꿰뚫고 있을까. 그의 손에 이끌리어 가 보았던 하늘 구름 바람 태양 투명한 새. 그는 그런 것밖에 보여줄 줄 모르던 사람이다. 그의 내민 손 안의 시간. 그의 손에서 우리는 더 무엇을 읽으려는가. 그는 손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진짜 그를 한 번도 보지는 못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내민 손에 있지 않았다. 어깨 너머에 있었다. 닳아빠진 양복을 입고 선술집에 앉아 그는 술잔을 앞에 둔 채 어깨 너머에서 묵묵했다. 그 초라한 어깨 너머를 보고 싶은데 차마 볼 수 없는, 엄두가 나지 않는 그는 어깨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다.
장이지 시인은 1976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했으며, 지난 200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성균관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제주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시집 <안국동울음상점> <연꽃의 입술>, 연구서 <한국 초현실주의
시의 계보>등을 냈으며 <연꽃의 입술>로 제2회 김구용 시문학상을
받고, <라플란드 우체국>이 7회 오장환 문학상 수상하기도 했다.
시 <어깨 너머의 삶>은 지난 2008년 작가와사회 봄호에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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