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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 중명전을 대한제국 역사박물관으로

"경운궁 석조전은 대한제국 황실박물관이다"

김민수 국장 | 기사입력 2008/08/20 [20:51]

석조전 중명전을 대한제국 역사박물관으로

"경운궁 석조전은 대한제국 황실박물관이다"

김민수 국장 | 입력 : 2008/08/20 [20:51]
대한제국(大韓帝國)은 광무 원년 10월 12일부터 고종황제가 한반도와 간도 독도를 비롯한 인접 도서와 해양을 통치하였던 제국으로서 대한제국의 공식적인 약칭은 대한(大韓), 한국(韓國)이다.

대한제국은 자주성과 독립성을 한층 강하게 표방하기 위해 사용된 국호이며 대한제국의 나라 이름은 대한(大韓)인데, 단군조선 건국 이래 한민족 고유의 영토를 하나로 아우르는 국호이므로 대한이라 하였다.

제국주의 국가에 나라의 자주성이 크게 위협받게 되자 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자주 독립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표명하기 위하여 10월 12일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황제로 즉위하였다.

일제는 1904년 2월 대한제국 영토의 군용지 강제수용을 주 내용으로 하는 한일의정서를 강제하고 1900년 고종황제 칙령 41호에 의거한 대한제국령 독도를 1905년 2월 불법 강점하였다.

미국과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밀약, 영국과 8월 영일동맹, 러시아와 9월 포츠머스조약을 맺고 대한제국 지배에 관한 제국주의 열강의 승인을 얻은 일제는 11월 을사오적을 매수하여 을사늑약을 강제하였다.

1909년 만주 침략을 위한 기지 마련과 남만주 이권 장악을 위해 무효인 을사늑약에 의거 강탈한 외교권을 불법 행사하여 간도관리사가 관리한 대한제국령 간도를 청에 불법 양도하였다.

 
▲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의 현재 모습.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1일 경운궁에서 붕어하였는데, 그날 아침 커피를 마신 뒤 이에 들어 있던 독에 의한 고종황제의 붕어가 전국적인 규모의 3·1 독립만세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1919년 대한제국 고종황제 붕어, 3·1독립만세운동 직후 상해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하여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 상해 정부는 정체는 민주공화제로, 주권재민의 근대국민국가를 지향하면서도 국체는 대한제국 계승을 표방하고 있다.

일제 통감부,총독부는 왕궁,종묘,환구단,사직단,선농단,선잠단,왕릉,태실,별궁,행궁,관아,성문을 훼손하였으며 대한황실 궁내부가 관리한 전적,고문서는 조선총독부,경성제국대학으로 불법 이관되고 국외로 불법 반출되어 연구기관,문화기관과 일본,프랑스,북한에서 소장중이다.

미술공예품은 창경궁 제실박물관을 설립하여 일반에 공개되었고 경운궁 황실박물관으로 이관하였다가 총독부가 수집한 고적조사 수집품,도굴 매장문화재,구입 장물,사찰 기탁품과 함께 총독부박물관으로 불법 이관되었다.

대한제국 황실 궁내부,창경궁 제실박물관,경운궁 황실박물관,구황실사무청,구황실재산사무총국,문화재관리국을 계승한 문화재청은 국보급 전적 고문서 미술품을 중점보호하고 경운궁 석조전 중명전 선원전 흥덕전 흥복전 의효전 인화문 환구단을 원형복원하여야 한다.

문화재청은 제국주의 국가로 불법 반출 후 환수 또는 대학부속기관·정부기록기관·연구문화기관이 소장중인 실록·의궤·일기·등록·지도·옥새 등 왕실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국보급 왕실문화재를 왕실역사박물관을 표방하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귀속하여야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역사성·안전성·접근성이 탁월하므로 왕실문화재 관리청으로서 이관·귀속한 국보급 왕실문화재를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문화재 전문가 및 국내외 문화향유층 일반에 공개하여 왕실문화의 보급·선양에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김민수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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