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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200]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3

구족(九族), 구한(九桓), 구려(九黎), 구이(九夷) 1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3/16 [11:44]

[홍익인간 7만년 -200]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3

구족(九族), 구한(九桓), 구려(九黎), 구이(九夷) 1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3/16 [11:44]

1. 의미와 연혁

 

1) 구족(九族)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구족(九族)은 한국(桓國)의 구족에서 출발한다. 한국(桓國)은 서기전7197년 갑자년에 천산(天山)을 수도로 하여 시작된 나라로서 3,301년의 역사를 가진다. 여기의 구족은 한국시대를 각 1,100년씩 3개의 시대로 나누어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눌 때 중기에 해당하는 유인씨(有因氏)의 한국시대에 이미 형성되었던 것이 되는 바, 최소한 서기전5000년경 이전에 이미 구족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 된다.

 

한국(桓國)시대 이전을 전한국(前桓國) 시대라 할 수 있는데, 전한국시대는 곧 지금의 파미르고원에 있었던 성곽(城郭)의 나라인 마고성(麻姑城) 시대가 된다. 서기전70378년경부터 서기전7197년경 사이에 파미르고원에 소재하였던 마고성(麻姑城)은  단순한 성곽의 나라가 아니라, 당시 수도(首都)로서 12개의 성문(城門)을 통하여 내외부(內外部)를 오고가면서 동서남북의 주변 땅을 다스렸던 것으로 된다.

 

파미르고원의 마고성 시대에 이미 12족이 형성되어 있었다. 즉 황궁씨족(黃穹氏族)이 3파(派), 청궁씨족(靑穹氏族)이 3파(派), 백소씨족(白巢氏族)이 3파(派), 흑소씨족(黑巢氏族)이 3파(派)로, 모두 12파족(派族)이 된다.

 

서기전7197년경의 사방분거(四方分居)의 때에 황궁씨족의 3파족(派族)과 청궁씨족의 3파족과 백소씨족의 일파인 지소씨족(支巢氏族)과 흑소씨족의 일파로 추정되면서 후대에 구족(九族) 중 하나라 되는 현족(玄族) 등 8파족(派族)이 파미르고원의 동북쪽과 동쪽으로 분거하였다.

 

이후 약1,000년에 걸쳐 정착하는 과정에서 천산산맥을 따라 동북으로 분거한 황궁씨족의 3파족이 황족(黃族)이 되었고, 이 황족에서 다시 분파되어 양족(陽族), 우족(于族), 방족(方族), 견족(畎族)이 생겨나 모두 5족(族)이 되었다.

 

또, 청궁씨족의 3파족은 동쪽으로 향하여 갔으며 황하(黃河) 이남, 양자강 유역을 따라 분거하였고, 양자강의 북쪽에는 남족(藍族), 양자강의 남쪽에는 적족(赤族)을 이루어 모두 2족(族)이 되었다.

 

그리고, 백소씨의 일파인 지소씨족은 서기전7197년 이전에 이미 먼저 동쪽으로 나가서 정착을 하였는데, 주로 서쪽 사막지대에 살아 백족(白族)이 되었다.

 

또, 동북으로 멀리 흑수(黑水:흑룡강)지역으로 가서 정착한 족속이 현족(玄族)이 되었다.

 

이리하여 사방분거 후 약1,000년에 걸쳐 정착하였고, 정착 이후로 황족(黃族), 양족(陽族), 우족(于族), 방족(方族), 견족(畎族), 남족(藍族), 적족(赤族), 백족(白族), 현족(玄族)이 되어 모두 구족(九族)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때가 유인씨(有因氏) 한국(桓國) 시대가 되며 연대기적으로 서기전6100년경이 된다. 이때의 구족(九族)은 씨족을 넘어서서 아홉 부족 즉 9 부족(部族)을 가리키게 된다.

 

역사적으로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한국(桓國)의 임금은 유인씨(有因氏)로서 통상 인류의 조상이라는 나반(那般)으로 불려지는데, 유인씨가 곧 사방분거할 때 지상에 나타난 최초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즉, 서기전7197년경 파미르고원에서 사방으로 분거 할 때에 이미 유인씨가 황궁씨의 한 파족으로서 존재하였으며, 모두 12파족이 파미르고원을 떠나 사방에 정착하였던 것이므로, 황궁씨의 장자족이 되는 유인씨가 곧 대표적인 인류 조상으로서 우리가 나반이라 부르는 것이 된다.

 

나반(那般)은 불가(佛家)에서는 나반존자(那般尊者)로서 독성자(獨聖者)라 불리는데, 나반이리는 말은 우리말로 아버지이며 가부장제(家父長制)에서 곧 장(長:어른)으로서 왕(王) 즉 임금이 되는 것이다. 나반이 되는 유인씨는 서기전6100년경부터 서기전5000년경까지 한국시대의 임금이었으며, 천지인 삼신(三神)의 삼권(三權)을 상징하는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장자가 아닌 한인씨(桓因氏)에게 전수하였다.   

2) 구한(九桓)

 

구한(九桓)은 한국(桓國)의 구족(九族)을 가리키는 명칭이며, 앞에서 보았듯이 이미 서기전61000년경이 되는 유인씨 시대에 9족이 형성되었던 것이며, 서기전5000년경에 시작된 한인씨(桓因氏)의 한국(桓國) 시대에 한인(桓因)의 9형제가 나누어 다스렸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桓國)의 구한(九桓)은 9족이면서 세습자치국(世襲自治國)이 된다. 여기에 다시 3한(桓)이 더하여 모두 12한국(桓國)이라 불려지는 것이 된다.

 

실제로 12한국(桓國)은 구족(九族)의 분포 즉 구한(九桓)과는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아닐 것이며, 이는 한인씨(桓因氏)가 중앙과 팔방에 각 나라를 봉한 구한(桓)에 다시 삼사(三師)의 직에 있었던 인물을 나라에 봉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미 한국시대에 삼사오가(三師五加)의 제도가 있었던 것이 되는데, 이는 서기전3897년에 한웅(桓雄)이 삼사와 오가와 무리 3,000을 이끌고 한국(桓國:하늘나라)에서 박달(檀)의 태백산(太白山)으로 가서 개천(開天)한 역사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桓國) 시대에 본 임금인 한인천제(桓因天帝)는 중앙조정의 임금이 되고, 12 지방(地方)에 연방국을 둔 것이 된다. 이는 윷놀이판의 모습과도 같으며, 사방 12성문(城門)의 마고성 제도를 본 받은 것이 된다.

 

즉, 한국(桓國)은 영역이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가 되고, 나누면 12한국이 되는데,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卑國:豕韋國,通古斯國), 수밀이국(須密爾國)이다.

 

여기서 위치상으로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선비국 등은 통틀어 황족(黃族)의 나라가 되고, 비리국은 현족(玄族)의 나라가 되며, 수밀이국은 방족(方族)의 나라가 된다.

 

위 12한국 중에서 일군국은 북유럽, 우루국은 서방의 수메르지역, 사납아국은 남방의 인도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하여 우루국은 백소씨족의 나라, 사납아국은 흑소씨족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3) 구려(九黎)

 

구려(九黎)는 아홉 여족(黎族)을 의미하는데, 주로 배달나라 시대 치우천왕(蚩尤天王)의 백성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서기전2706년에 즉위한 치우천왕은 수도를 지금의 산동지역이 되는 청구(靑邱)에 정하였는데, 사실상 청구가 수도일 뿐이지 배달나라 전체 영역이 아닌 것이며, 배달나라의 영역은 곧 한국(桓國) 시대의 구족(九族)의 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치우천왕의 백성을 구려(九黎)라 할 때의 구려는 곧 배달나라 전체의 구족(九族), 구한(九桓)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한편 단군조선의 군후국(君侯國)의 하나인 구려(句麗:구리,가우리)는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보아 거의 중간에 위치한 나라가 되어 가운데 땅 즉 중국(中國)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4) 구이(九夷)

 

구이(九夷)라는 용어는 아홉 이족(夷族)이라는 말이며, 우리 스스로 부른 명칭이 아니라 고대중국에서 그들의 조상이자, 스승이자, 임금의 나라인 단군조선 더 나아가 배달나라를 부른 명칭이 된다.

 

단군조선은 구족(九族)의 나라 즉 구한(九桓)의 나라이며, 타칭으로 구이(九夷)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즉, 고대중국은 한배달조선의 구족(九族)인 황족(黃族), 양족(陽族), 우족(于族), 방족(方族), 견족(畎族), 남족(藍族), 적족(赤族), 백족(白族), 현족(玄族)의 족을 이(夷)라는 글자를 써서 각 황이, 양이, 우이, 방이, 견이, 남이, 적이, 백이, 현이라 부른 것이 된다. 여기서 남이(藍夷)를 풍이(風夷)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이(藍夷)는 후대에 산동지역의 청구를 수도로 삼은 치우천왕의 중심백성으로서 치우천왕의 후손이라 불리는 것이 되고, 풍이(風夷)는 태호복희의 후손으로서 또한 산동지역에 분포하였던 까닭으로 치우천왕의 중심백성이었던 것인 바, 남이와 풍이는 포괄적으로 같은 족속이 되는 것이다.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경우에 따라 북쪽의 황이(黃夷)를 북이(北夷), 북융(北戎), 북적(北狄)으로, 서북쪽의 견이(畎夷:犬夷)를 견융(犬戎)으로, 남쪽의 적이(赤夷)를 남만(南蠻)으로, 바꾸어 부르거나 비하한 명칭인 비칭(卑稱)을 사용하였던 것이 된다.

 

또, 서쪽의 백이(白夷)는 후대에 서이(西夷)의 중심이 되었는데, 견이와 더불어 포괄적으로 서융(西戎)이라 불리기도 하였던 것이 된다. 북쪽 멀리에 떨어진 현이(玄夷)를 포함하여 단군조선의 중앙조정이 있던 진조선(眞朝鮮)을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는 북쪽의 이(夷)라는 말로서 현이(玄夷)라고 부르고 있다.

 

고대중국에서 적고 있는 이(夷)라는 말은 족속(族屬)을 가리키기도 하고 나라(國)를 가리키기도 한다. 특히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시대에 중국내륙 동쪽의 산동지역과 회수(淮水) 지역에 걸쳐 있던 남이(藍夷), 엄이(淹夷), 서이(徐夷), 회이(淮夷), 래이(萊夷), 개이(介夷), 양이(陽夷), 우이(隅夷) 등의 이(夷)는 원래 단군조선의 제후국의 국(國)을 달리 부른 명칭이 된다.

 

주(周)나라 춘추전국시대 이후에는 주나라 사람들이 중화주의(中華主義)에 빠져 스스로 중화(中華), 중국(中國)이라 하고, 그들의 조상이자 스승이자 임금의 나라인 단군조선의 백성이던 9족을 사방으로 나누어, 동서남북의 동이, 서융, 남만, 북적으로 비하(卑下)하여 불렀다. 다만, 처음에는 동이(東夷)의 이(夷)가 오랑캐의 뜻이 아니며, 대궁(大弓)을 찬 대인(大人)으로서 그들의 뿌리조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夷)라는 글자는 인인궁궁(人人弓弓)으로서 원래 궁(穹)에서 나온 글자이며, 이 궁(穹)은 곧 구족의 종주이던 황궁씨(黃穹氏)와 중국내륙의 동쪽으로 분거정착한 청궁씨(靑穹氏)의 궁(穹)인 것이며, 글자모양은 바로 피라미드형 제단(祭壇)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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