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길 역사 연재소설]옥전여왕(玉田女王) 전륜성왕 2회

안문길 | 기사입력 2018/03/18 [23:39]

[안문길 역사 연재소설]옥전여왕(玉田女王) 전륜성왕 2회

안문길 | 입력 : 2018/03/18 [23:39]

 [안문길 연재소설]옥전여왕(玉田女王) 전륜성왕 2회

 

                    전륜성왕

 

성왕은 재위 32년 동안 백제 중흥을 위해 고군분투 노력하였다. 백제는 서로 바다를 통해 양나라와 마주 보고 있고, 북으로 고구려, 동으로 신라, 남으로 가야, 그리고 남쪽바다 멀지 않은 곳에 왜가 있어 사방팔방에 국경이 맞닿고 있는 복잡한 입지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나라들과 별다른 다툼이 없이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화평히 지내기를 바라지만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서는 영토 분쟁 때문에 크고 작은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고구려의 남하정책은 백제의 큰 골칫거리였다. 북으로 세력을 뻗치던 광개토대왕은 말머리를 남으로 돌려 백제, 신라, 가야까지를 손에 넣으려 하였다. 고구려군은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던 막강한 말발굽으로 백제, 신라, 가야를 휩쓸고 다녔다. 고구려 군대에 의해 많은 땅을 잃은 백제, 신라는 나제연합군을 조직하여 고구려와 맞섰다.

 

그 결과 고구려를 한강 이북으로 몰아 낼 수 있었다. 성왕은 신라뿐만 아니라 가야국과도 손잡고, 경제, 문화, 군사 등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왜국에도 문물을 교환하고, 새로운 지식과 학문을 전수해 돈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국인 양나라에 조공을 보내 우방으로서의 예를 표함으로써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동반자로서의 우의를 다지려 애를 썼다.

 

양나라에서도 이러한 뜻을 헤아려 성왕2년 성왕에게 지절도독백제군사수동장군백제왕에 책봉한다는 교지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등거리 외교와 친화 정책으로 주변국들과는 원만한 관계를 이루며 지내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내치에도 힘써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지방토족들과 귀족들의 세력 다툼으로 어수선한 내정을 하나로 결속시키는데 앞장을 서기도 하였으며 불도로 국력을 보호 받기 위해 도승 겸익을 앞 세워 불교 중흥을 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성왕이란 왕호도 정법을 가지고 온 세계를 다스린다는 불교의 신화적 이상 왕인 전륜성왕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한편, 수도 웅진은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동북으로 진출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성왕은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계획에 머물렀던 수도 이전을 단행하여 웅진에서 사비성으로 천도하고 국호도 남부여라 칭하여 새롭고 강력한 백제를 만들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성왕이 백제 중흥을 위해 고심하고 있을 무렵 주변국의 정세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북위가 멸망하자 고구려의 북쪽에 은거해 있던 유목민족인 돌궐이 유목국가를 세우고 세력을 확장해 수나라와 고구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수나라와의 전쟁에 국운을 걸고 있던 고구려로서는 돌궐의 서북변방 침입까지 막아야하는 난관에 부딪치고야 말았다. 더구나 나제동맹을 맺은 백제와 신라가 이런 틈을 타서 빼앗겼던 한강유역의 땅을 수복해 나가기 시작해 북으로, 북으로 쳐 올라와서 함경도 근방까지 접근해 오고 있었다.

 

 고구려서는 더 이상 남하정책을 지속할 힘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발등의 불을 꺼야하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드디어 고구려는 남하정책을 중단하고, 그동안 빼앗았던 백제와 신라의 성들도 포기하고 본국으로 철수해 버렸다.

 

처음 나제 동맹을 맺을 때 신라는 한강 이북을, 백제는 한강 이남을 수복해 경영하기로 약속하고, 고구려와 맞서 싸워 나가기로 하였다. 그 결과 두 나라의 동맹은 성공하여 고구려에 잃었던 옛 땅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고구려 군이 물러가자 어느 때부터인가 신라군이 백제군에게 창과 칼을 들이 대고 백제가 수복한 땅을 빼앗기 시작하였다. 성왕은 신라의 이러한 태도 변화에 매우 불쾌히 생각 하면서도 될 수 있으면 충돌을 피하려 여러 방법으로 신라와의 평화정책을 펴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진흥왕은 오히려 백제에게 빼앗은 땅에 신주를 설치하고 사비성 코앞에 까지 세력을 넓혀오고 있었다. 신라가 이렇게 돌변한 것은 고구려와의 밀약 때문이었다. 고구려의 양원왕은 돌궐이 서북방면으로 침입해와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신라의 진흥왕에게 백제에게는 알 수 없도록 숨기고 은밀히 절충안을 내어 놓았다. 그것은 신라가 북으로의 진출을 멈춘다면 백제가 수복한 땅을 신라가 차지하도록 도와주겠다는 비밀리의 협약이었다.

 

멀리 섬나라 우산국과 탐라국을 정벌하고, 오백년 사직의 금관가야까지 무너뜨리고 북으로 치달으며 세력을 넓히던 진흥왕으로서는 이번 고구려와의 밀약이 영토를 확장하는데 다시없는 호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고구려가 화친을 내세우고 있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남침을 시도 할 수 있었다. 그만큼 고구려는 두려운 존재였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늘의 뜻인데 하늘이 고구려를 멸망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구태여 고구려가 망하는 것을 좋아할 리 있겠습니까?”

 

진흥왕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구려와의 밀약을 성사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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