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옛날옛적에(2) "야만의 세기에서 문명의 세기로 흘러 온 역정(歷程)"

수질 오염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05/05 [09:11]

옛날옛적에(2) "야만의 세기에서 문명의 세기로 흘러 온 역정(歷程)"

수질 오염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0/05/05 [09:11]

 

 

2.

이 이야기들은 주로 할머니에게서 들은 것인데, 할머니는 특히 물에 대해서 언제나 지대한 관심을 보이시곤 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마음껏 물장구치며 놀던 맑기만 했던 시골 냇가의 추억과, 그녀가 직장생활을 할 무렵부터 이미 썩어가기 시작하던 시궁창들의 기억이, 지금의 다시 맑아진 개울가에 앉아 있노라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어린 시절 - 이미 80여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지만 - 은 온통 즐겁고 낭만이 넘치던 여름날의 시냇가 은모래 위에서 또래들과 벌거벗고 뛰어 놀던 추억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녀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하여 시골고향을 떠나던 4305(1972)만 해도 아직 맑은 물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시냇물이 여전히 은빛 모래사장을 적시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경제발전이라는 장미빛 구호 하에 그 무엇보다도 공업화가 국가적 급선무인 것처럼 요란을 떠는 시대가 그 시골구석까지 닥쳐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 맑던 어린 시절의 공기와 시냇물은 곧 급격하게 흐려져 가고 더럽혀지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동생 둘을 돌보아 주느라고 자취일을 혼자 도맡아서 하다시피 했던 할머니는 점점 거칠어져 가는 당신의 손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곤 했다고 한다. 손을 거칠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수돗물이었는데, 그러나 환경오염의 개념조차 별로 없던 때였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히 주부습진이라는 다소 애매한 병명으로 불리워지곤 했다고 한다. 사람의 몸에서 비교적 강인하다고 볼 수 있는 피부조차 그처럼 거칠게 만들어 버리는 수돗물이 연한 점막으로 덮인 식도나 위장이나 창자들을 훑고 내려가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으시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단지 으시시한 일일뿐이지만 할머니 때는 모든 음식물과 음료수들이 바로 그러한 수돗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류 전체가 독성물질에 얼마나 견디어낼 수 있는가 하는 집단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인류는 인류사상 최고의 문명생활을 하고 있다는 집단적인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얼빠진 광신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이 맑고도 시원한 물은 대부분의 동네마다 몇개씩 있는 우물에서 길어 온 것이다. 물론 몹시 추운 겨울날 물을 길러 가는 일은 귀찮은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갖가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맑은 물을 추구해 온 지구수호위원회는 최종적으로,

과학제일주의라는 현대인류의 망상을 깨지 않는 한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맑은 물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었고, 그에 따라서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단시일 내에 바뀌어갔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급박한 인류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원점은 대규모 인간집단에 필요한 물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상수도체계가 고안된 데서 비롯된다. 불과 수백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물을 마시는데 특별히 신경을 쓴 적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산업혁명(광란) 이후로 인류가 소비하는 데 필요한 물품의 수량이상으로 남아 넘치는 쓰레기들을 찍어내기 시작한 공장들이 밀집한 지역에 취업인구가 급증해 가자 본격적인 상수도개설작업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상수도의 취수장은 주로 부근의 강줄기였는데, 강물에는 온갖 오염물질들이 흘러 들어가고 또한 쌓여가고 있었다. 처음에 위생관념도 없던 그 당시에 그런 물을 그냥 먹었을 때는 전염성이 강한 소위 수인성(水因性)전염병이 창궐해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그 더러운 물을 소독해서 마셔보겠다고 물에 풀기 시작한 소독약들은 그것 자체가 강한 독소인데다가 일련의 화학작용에 의해서 발암물질들로 변하기도 했다고 한다. 매일같이 그처럼 괴상한 물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지금의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모두가 그 잘 난 최첨단 과학문명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민중은 그러한 수돗물의 해독을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몸으로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산업혁명광란이후 인류질병사에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급속한 암발병율을 보인 것이 이같은 독성이 강한 수돗물을 비롯한 인간생활의 쓰레기들로부터 연유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강변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 시대의 모든 부()를 독점하고 있다시피 하던 대규모공장의 경영주(자본가)들 편에 서서 그들로부터 풍족한 연구비를 보장받고 있던 어용학자들이, 당시에는 전문지식인의 권위를 휘두르면서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일삼고 있었다고 하니 참 어지간히도 어지러운 세상이었던가 보다. 물론 당대의 유능한 과학자들 중에는 공해추방에 앞장섰던 정말 양심적인 사람들도 간혹 있었고, 바로 그런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저 위대한 지구수호위원회가 창설되기도 했던 것이다.

 

인간의 신체 중 70%이상이 물로 되어있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도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당시의 사람들은 최소한도 먹는 물만큼이라도 제대로 된 것을 찾아서 온통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도 지금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지하수가 샘솟는 곳 치고 이렇게 한가하게 가끔씩 마을 사람들이 물 길러 오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고 하는데,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있는 지하수채취장마다 보통 한두시간은 기다려야만 단지 몇 되 정도의 마실 물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중에 가서는 대부분의 지하수들마저 식수로 부적합 할만큼 오염되어 있다는 검사결과가 수시로 발표되곤 했으나, 그래도 어차피 마실 물이라곤 확실하게 오염(중금속 등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수돗물식수로 부적합한 지하수기름값보다 비싼 생수이외에는 달리 없었으니, 수돗물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비싼 생수를 매일 먹을 방법도 없던 대부분의 서민들은 지하수 앞에 줄을 설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시간낭비이며 인생낭비였던가?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단지 마시기에 보다 적합한 물을 얻기 위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의 많은 시간들을 무료하게 줄서서 기다리는 데다가 엄청나게 소비해 버렸던 것이다. 넓직하게 만든 공동 취수장에서 누구든지 언제라도 원하는 만큼의 좋은 물을 구할 수 있는 지금의 우리는 결코 다시는 첨단과학의 이름 하에 그따위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첨단과학의 참다운 명분이 서려면 맑은 물과 공기만이라도 보장해 주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바로 집 옆에서도 맑은 물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할아버지들과 아버지들은 당시의 겉만 뻔지르르한 첨단과학때문에 얼마나 큰 고생을 해야만 했었던가?

 

물에 대한 지구수호위원회의 결정은 단호했다. , 인간생활의 모든 양식을 맑은 물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고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인류가 최첨단문명이라고 자랑삼고 있던 거의 모든 생활조건을 대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또한 고층건물이나 거대한 건물, 도시화나 공업화 따위를 대부분 폐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한 일차적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퍼져나갔을 때 사람들(특히 대도시인들)이 보였던 반응은 정말 굉장한 것이었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포토]지리산 노고단에 핀 진달래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