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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5.18광주대학살만행의 진상은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다(1)'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5/20 [07:00]

북 '5.18광주대학살만행의 진상은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다(1)'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5/20 [07:00]

 북 통일의 메아리는 '광주대학살만행의 진상은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다(1)'라는 제목으로 조국통일연구원 고광남실장과의 인터뷰를 19일부터 3회걸쳐 보도한다.

 

▲ 전두환일당의 명령을 받은 계엄군의 학살장면. 자료사진     © 이형주 기자

 

다음은 보도 전문.

 

광주대학살만행의 진상은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다(1)

남조선에서 광주인민봉기가 일어난지 40년이 되였지만 오늘도 우리 겨레는 남조선인민들의 정의로운 투쟁력사의 한페지를 기록한 광주항쟁용사들의 영웅적투쟁과 빛나는 위훈을 되새겨보고있으며 온 광주시를 항쟁자들과 무고한 인민들의 피와 시체로 뒤덮게 한 미국과 전두환군부파쑈깡패들에 대한 사무치는 분노로 가슴을 끓이고있습니다.

그럼 이 시간부터 조국통일연구원 고광남실장과 본 방송국기자가 나눈 문답 《광주대학살만행의 진상은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다》를 3회분에 걸쳐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분입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실장: 안녕하십니까.

기자: 남조선에서 광주인민봉기가 일어난 때로부터 어느덧 40년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남조선인민들은 식민지군사파쑈독재를 반대하고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조국통일을 요구하여 결사항전을 벌린 봉기자들을 잊지 못해하면서 사상 류례없는 대학살로 광주를 피바다에 잠근 전두환살인악당의 천인공노할 만행에 격분을 금치 못하고있지 않습니까. 그럼 이에 대해 실장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실장: 예, 광주인민봉기는 미국과 전두환군사파쑈도당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습니다.

광주인민봉기가 일어날 당시 남조선에서는 《유신》독재《정권》이 꺼꾸러지고 전지역에 민주화의 기쁨과 자주통일기운이 전례없이 높아갈 때였습니다. 하지만 《12. 12숙군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군부깡패들은 1980년 봄 미국의 지령에 따라 날로 높아가는 인민들의 민주화요구에 군사파쑈폭거로 대답해나섰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폭압도 인민대중의 자주적지향과 의지를 막지 못하였으며 그것은 5월 18일 광주인민봉기의 드세찬 불길로 타올랐습니다.

당시 광주항쟁용사들의 결사항전의지에 질겁한 미국과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은 땅크와 장갑차, 대포, 미싸일을 비롯한 무장장비들을 동원하여 봉기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진압에 광분하였으며 사상 류례없는 대학살로 광주를 피바다에 잠그는 천인공노할 만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기자: 그때 전두환역도는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 놈들은 폭도이다. 모조리 죽여라.》, 《광주시는 특전대원들의것이다. 녀자도 재물도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무슨 일이든지 선택하라.》는 《특별명령》까지 내리지 않았습니까.

실장: 그렇습니다. 전두환역도의 이러한 살인명령에 따라 광주에 긴급투입된 중무장한 수만명의 《계엄군》과 기갑사단무력은 전쟁시기도 무색케 할 군사작전으로 봉기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륙하였습니다.

도서 《지배와 항거》에는 진압작전에 동원된 《공수특전대원들을 몇끼씩 굶긴 다음 술에 환각제를 타서 먹게 하고 굶주린 이리떼마냥 광기가 극도에 달했을 때 즉시 살륙작전에 투입하였다.》고 밝혀져있습니다.

한편 도서 《살인마 전두환의 광주학살의 현장》에서는 광주시민들이 환각제를 먹은 《공수특전대》가 휘두르는 대검에 찔리우고 곤봉에 맞아 머리가 터졌으며 길가던 소년도, 70나이의 로인도, 만삭이 된 임신부도, 녀학생들도 살륙의 대상으로 되여 총탄과 화염방사기앞에서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다고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전하고있습니다.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은 마지막날인 5월 27일 새벽 1만여명의 《계엄군》과 수백대의 땅크, 장갑차, 수백문의 중포와 미싸일, 무장직승기까지 동원하여 시위군중이 모인 곳에 기관총을 쏘아대고 총포탄을 퍼부으면서 거리와 마을을 모조리 짓이기고 불태우며 초토화하였습니다. 인간백정들의 도살만행에 의하여 광주시에서는 불과 며칠만에 무려 수천여명이 학살되고 1만여명이 부상당하였습니다.

당시 학살만행을 목격한 광주의 한 종교인은 일본잡지 《세까이》에 낸 글에서 《시체우로 장갑차와 땅크가 지나가 무한궤도의 련결짬에는 갈기갈기 찢어진 옷자락과 살점들이 끼여돌아가 차마 눈을 뜨고 볼수 없는 참상이였다.》고 폭로하였습니다.

그 악행이 얼마나 몸서리쳤으면 세계의 많은 나라 TV방송원들이 광주사태를 보도하기에 앞서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화면앞에 마주 앉지 말라.》는 경고까지 하였겠습니까.  

기자: 정말이지 전시도 아닌 평화적시기에 한개 도시를 사상류례없는 《피의 목욕탕》, 《인간도살장》, 《망령만이 배회하는 죽음의 도시》로 만든 전두환일당의 인간대살륙만행은 전대미문의 대죄악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럼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 계속했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실장: 예, 그렇게 합시다.

기자: 수고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실장: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연구원 고광남실장과 본 방송국기자가 나눈 문답 《광주대학살만행의 진상은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첫번째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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