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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역사 -99]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52

조선(朝鮮) 제3대 가륵(嘉勒) 천왕(天王)의 역사 "소시모리와 천황참칭 왜왕 신무의 정체"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4/12/13 [11:37]

[홍익인간 7만년 역사 -99]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52

조선(朝鮮) 제3대 가륵(嘉勒) 천왕(天王)의 역사 "소시모리와 천황참칭 왜왕 신무의 정체"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4/12/13 [11:37]
 
 
▲ 10월 3일 개천절을 맞아 강북구(구청장 박겸수)가 우이동 솔밭근린공원에서 개최한 ‘삼각산축제’에서 제관들이 한인, 한웅, 단군 3성을 모신 제단에 제례를 올리고 있다.     © 편집부
 
[민족/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소위 고대중국의 왕을 천자(天子)라고 하는 바, 이때의 천자는 천제자(天帝子)가 아니라 천국(天國)의 천제(天帝)나 천왕(天王)이 봉한 제후(諸侯)인 자작(子爵)을 가리키는 말로서, 태호복희는 배달나라 천왕의 아들로서 천군(天君)이며, 염제신농과 황제헌원, 소호금천 이하 요순(堯舜), 하은주(夏殷周)의 왕(王)들이 모두 천자(天子)에 해당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천자(天子)를 천왕(天王)이라 부르면 역천(逆天)의 죄(罪)를 범하는 것이 된다.


소시모리(素尸毛犁)는 “소 ㅅ 머리” 즉 우수(牛首) 또는 우두(牛頭)를 나타낸 이두식 표기인데, 반란자 소시모리의 집안이 후대에 우수국(牛首國)이라 불리게 된 것이며, 후대에 소시모리의 후손이 협야(陜野)라는 제후(諸侯)로 봉해졌는데, 협야(陜野)의 집안에서 반역자가 다시 나와 남쪽바다에 있는 3도를 점거하여 천왕(天王)을 참칭하였던 것으로, 이 협야 출신의 참칭 천왕을 협야노(陜野奴)라 적은 것이다.

소시모리의 후손에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일본의 국조신(國祖神)이 되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이 있으며, 그 후손에 장군(將軍) 언파불합(彦波弗哈)이 있고, 협야후(陜野侯) 배반명(裵槃命)이 있다.

천조대신은 본명이 대일령(大日靈)으로서 일본말로는 오하류 또는 요하유이며, 소시모리의 후손으로서 서기전900년경에 두지주 예읍의 추장을 세습한 자이다. 그래서 천조대신의 신궁(神宮)이 되는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있는 원시한글로 된 축문에는, 단군조선 땅인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한 우두머리(추장)로서, “두디도리 요하유”라고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언파불합은 단군조선의 장군(將軍)으로서 서기전723년에 지금의 일본 땅 구주(九州, 큐슈)의 웅습(熊襲, 구마모또)의 반란을 진압한 사람이다.

협야후 배반명은 서기전667년에 지금의 일본 땅인 삼도(三島)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파견된 사람으로서, 당시에 협야후로 봉해진 상태였는지 아니면 공을 세운 후 제후로 봉해진 것인지는 불명하다. 다만, 배반명의 선대가 되는 언파불합이 장군으로서 공을 세워 협야후로 봉해졌을 가능성이 많아 서기전667년 당시에 배반명이 이미 협야후라는 제후였다고 보인다.

실제로 일본 땅 구주(九州, 큐슈)의 남부에 협야(陜野)라는 지역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는데, 서기전723년에 언파불합 장군이 구주의 웅습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협야에 제후로 봉해진 것이 거의 분명해진다.

협야후 배반명이 서기전667년에 삼도(三島)의 난을 진압할 때, 마한(馬韓)의 명을 받아 전선 500척을 이끌고 갔다라고 기록되는데, 삼도는 당시에 마한의 관할에 속했던 땅이 된다. 배반명이 마한 본국(本國)의 명을 받아 한반도 어느 땅에서 전선 500척을 준비하여 출정한 것이 된다. 이로써 협야후 배반명은 서기전667년 12월에 삼도의 난을 진압하였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서기전667년부터 협야(陜野) 출신의 신무(神武)가 동정(東征) 7년을 거쳐 나라를 세워 천황을 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때 협야는 곧 신무가 협야의 무리였다는 것이 되며, 언파불합의 넷째 아들로 기록되는 바, 장남이 되는 도반명(稻槃命)이 곧 배반명이 되고 언파불합의 제후직을 배반명이 세습한 것이 되는 것이다. 도반명의 도(稻)는 “벼 도”라는 글자로서 “벼반명“이 되어 ”배반명“과 같은 소리를 나타낸 글자가 된다.

또, 일본서기에는 신무가 동정 7년 사이에 다른 형제들이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이는 서기전667년 12월에 협야후 배반명이 삼도의 난을 모두 진압한 후, 네째인 신무(神武)가 권력욕에 사로잡혀 다른 형제들을 차례로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것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이로써 신무(神武)는 단군조선의 반역자(叛逆者)가 된다. 그리하여 천왕을 참칭한 협야(陜野) 제후국 출신인 신무(神武)를 반역자로서 낮추어 협야노(陜野奴)라 적은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은 단적으로 단군조선(檀君朝鮮)을 반역(叛逆)한 역사에서 시작되고 있다.

고대중국의 역사에서 실제적인 왕조(王朝)를 시작한 서기전2224년에 세워진 하(夏)나라의 시조는 우(禹)인데, 우(禹)는 단군조선의 천자국(天子國)인 우(虞) 나라 순임금의 신하로서 단군조선 태자부루로부터 치수법(治水法)의 가르침을 전수받아 요순시대의 9년홍수를 다스렸던 것이다.

그후 순임금 말기에 순임금이 단군조선을 반역하자 단군조선의 명을 받아 유상(有象)과 협공(挾攻)으로 순임금을 토벌하였다가, 우(禹)의 군사가 창오(蒼梧)라는 땅에서 순임금을 죽이는 바 되었고, 이에 우(禹)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변심하여 결국 단군조선을 반역하고 하왕(夏王)이라 참칭(僭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하나라 왕 중의 일부는 단군조선을 따르기도 하여 진정 천자(天子)로 묵인되기도 하였던 것이 된다.

고대일본의 역사에서 실제적인 왕조를 시작한 때는 서기전660년이 되는데, 천왕이라 참칭한 신무왕(神武王)은 서기전2173년 두지주(豆只珠)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으로서 반역한 소시모리(素尸毛犁)의 먼 후손이 된다. 그러나, 이후 고대 일본은 가야에 의하여 통제를 받기도 하였고 나중에는 백제(百濟) 세력에 의하여 다스려지게 되었던 것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문화사업총단 대표/천산역사연구원장/천부역(天符易)과학원장/마고족보연구원 대표/세계무궁화축제문화사업회 이사/독도 대마도 동해 만주 수호회복단 이사/천웅도 문무원 이사/광개토황비문연구원 이사/천부어문연구원 이사/산삼문화사업단 이사/한국삼협회 고문/홍익정치연구원 이사/한문화컨텐츠개발원 이사/한문화유물문화재연구원 이사/한문화사업단 이사/행운천지인 역리풍수 대표/(주)한문화개발 고문/플러스코리아타임즈 이사/춘천고조선유적지보전협의회 총괄기획위원장/천부풍수연구원 이사/풍수지리신문 편집국장/현 법무사/저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생활사주> <생활기문> <천부풍수> <천웅도와 홍익인간><우리말글과 세계언문역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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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단기고사(檀奇古史), 규원사화(揆園史話)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3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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