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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정통사(41) 대한제국 고종시대사의 제조명을 위하여

대한국헌장 선포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6/05/05 [09:54]

대한정통사(41) 대한제국 고종시대사의 제조명을 위하여

대한국헌장 선포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6/05/05 [09:54]

 

[플러스코리아타임즈 =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대한국헌장 - 자주와 정통성의 명문화

  황실 주도의 자주적 광무개혁이 정열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국의 역사적정통성과 자주독립의지를 밝히는 헌장도 반포되었으니, 이 때 제정된 대한국의 헌장은 다음과 같다.

    

  제1조 : 대한국은 세계만국이 공인하는 자주독립제국이다.

  제2조 : 대한국의 정치는 유전(由前) 오백년을 전후하고 전래 만세에 선(宣)하여 불변한 전제정치다.

  제3조 : 대한국 대황제는 무한의 군법공법(君法公法)을 향유한다.

  제4조 : 대한국민이 대황제가 향유한 군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을 때는 그 기행·미행(旣行未行)을 불문하고 신민의 도리를 실(失)한 자로 인증한다.

  제5조 : 대한국 대황제는 국내 육해군을 통수하고 그 편제를 정하며 계엄 혹은 해엄(解嚴)을 명한다.

  제6조 : 대한국 대황제는 법률을 제정하고 그 영포(領布)와 집행을 명하며 만국의 공공(公共)한 법률을 모방해서 국내 법률을 개정하고 대사(大赦)·특사·가형·복권 등을 명한다.

  제7조 : 대한국 대황제는 행정각부의 관제와 문무관의 봉급을 제정하여 혹은 개정하고 행정상 필요한 각 항의 칙령을 내린다.

  제8조 : 대한국 대황제는 문무관의 출보임면(黜步任免)을 행하고 작위·훈장과 영전(榮典)을 수여 혹은 탈(奪)한다.

  제9조 : 대한국 대황제는 각 조약국에 사신을 파견주둔케 하고 선전강화(宣戰 講和)와 제반조약을 체결한다.

    

  이와 같이 당당한 헌장을 마련함으로써 대한국인들은 더욱 더 자신들의 역사적 중요성을 절감하고, 백척간두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자 황제를 위시하여 모두가 합심해서 크게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주자립과 상업진흥을 위한 광무황제의 강력한 시책에 놀란 명치일본을 비롯한 열강은 갖가지 시비를 걸며 방해공작을 벌였다.    왜족은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근거로 상업수세(收稅)가 불법이며, 대한국 상인들의 각종 조직도 불법이라고 우겨댔고, 또한 개항장내지연강(沿江)연해(沿海) 모든 곳에서의 수세와 도고(都賈)상업에 대해서 시비를 그치지 않았다. 즉, 왜족은 파렴치하게도 해관세를 제외한 대한국내에서의 저들의 모든 상행위에 대한 세금의 철폐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광무황제는 ‘황제권’을 내세워서 이를 거부했다.

  이처럼 광무황제는 열강의 강폭한 경제적 침탈에 대하여 강력히 대응하며 한시바삐 자주독립제국의 건설을 서둘렀으나, 서기 20세기로 접어 들면서 동아시아를 둘러 싼 열강간의 협잡과 함께 대한국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서둘러간 왜족들의 방해공작은 점점 가열차게 진행되었다. 대한국에서 국내경제 교란을 일으키고 있던 암적 존재인 일본화폐의 유통확대를 막고 열악한 재정상태를 극복하려고 화권(貨權)을 확립하려 했으나, 친일적인 총세무사 브라운에 의하여 모든 경제 정보가 새어 나가는 등 공식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가 힘들었다.

  광무황제는 화권의 자주화를 국권 및 황제권과 결합시켜서 우선 대한국의 중앙은행 설립을 추진했으나 왜족의 방해공작으로 좌절되었고, 러시아의 협조를 기대하며 노한은행(露韓銀行)의 설립도 추진했으나 그것도 왜족의 방해로 좌절되고 말았다. 황제의 화권자주화 노력이 좌절되고 말자 민간차원에서는 일본제일은행권 통용거부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도 했으며, 이 사건으로 민중의 배일의식과 외세의 상권침탈에 대한 거부감은 고조되어 갔다. 그에 따라 왜상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왜상이 민중으로부터의 공격대상이 되자, 명치정부는 왜상을 대상(隊商)조직으로 묶어서 소위 계림장업단(鷄林獎業團)이라는 관제조직을 결성하여 각종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국 민중의 강한 반발에 부딪친 왜상들의 활동은 전반적으로 위축을 면치 못했다.

  대한국에서 전개되는 사태에 의해 머지않아 자신들의 경제적 우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명치정부는 더이상 대한국이 부국강병 달성을 향하여 발전해 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입만 벙긋하면 한국의 독립을 내세웠지만 이미 한반도 점령을 목적으로 모든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던 왜족으로서는 결코 대한국의 자주독립을 좌시할 수 없었고, 따라서 대한국을 강점할 기회를 만들고자 공개 및 비공개적으로 온갖 국제적 협잡을 진행해 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무황제와 대한국인들의 피눈물나는 부국강병 달성노력은 계속 이루어졌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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