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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종교가 하나로 가는 길

배타주의적이고 우월주의적인 일부 기독교 집단의 오만

윤복현 칼럼 | 기사입력 2007/08/13 [13:21]

"홍익인간" 종교가 하나로 가는 길

배타주의적이고 우월주의적인 일부 기독교 집단의 오만

윤복현 칼럼 | 입력 : 2007/08/13 [13:21]
민들레 밥집 운영하는`두타스님의 굴욕`. 지하보도에서 탁발을 하며 ‘민들레밥집’이란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두타스님의 사진 한장이 네티즌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사진의 내용은 탁발승인 두타스님이 부산 서면 지하상가 보도에서 탁발을 하고 있는데 한 기독교 전도사로 보이는 이가 두타스님의 삭발 머리에 손을 얹고 `회개`를 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일방적으로 타 종교인에게 개종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며 "타 종교를 인정안하는 기독교의 횡포"라며 비난하고 있다.한편 두타스님은 부산 금정시장에서 도심 속 독거노인들을 위한 무료 밥집인 <민들레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2006년 2월 칠산동에 <민들레밥집 2호점>도 개설했다. [플러스코리아 기사 중]
 
▲ 사진= DC인사이드 갤러리에 게시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플러스코리아


 
 - 종교가 하나로 가는 길 -

1.들어가는 말
 
사전적으로 종교(religius)란 "신이나 초인간적 존재를 인도자로 섬기고 일정한 의식에 따라 예배하며, 그 믿음을 통해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일. 또는, 그러한 믿음의 체계나 가르침"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가 종교를 "인간의 궁극적 관심, 실재"라고 말하지 않아도 종교란 인간이 영적으로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그리고, 그 지향하는 방법은 각지각색이다. 지향하는 방밥에 따라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도교, 유교, 유대교 등의 종교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 고, 그 많은 종교들은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며, 자신들의 지향점을 추구하고 있다.
 
2.종교들의 문제 - 교리
 
각 종교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일이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 그 옳다.는 신념의 기준이 바로 자신들이 만든 '교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교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지향점이 바로 진리요, 생명의 길임을 내세운다. 기독교는 교리적으로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만이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다. 그러나, 그 주장은 예수이후 전도차원으로 기록된 복음서에 삽입된 교리임을 성서형서사를 연구해 보면 바로 알 일이다. 실제 역사적 예수가 말한 메세지에 주시해야 함에도 집단화되면서 형성된 교리서(케리그마)을 주시하고 있다는데, 기독교의 문제가 있다.
 
교리화된 기독교는 우주적 공동체를 지향한 예수의 메세지와는 반대로 자기우월적이고 기만적인 자세로 상대종교를 비하시키고, 대화와 협력의 상대가 아니라, 전도되어야 할 상대로 규정되어졌다. 유대교 또한 사랑보다는 모세시대부터 전해오는 율법을 중시한 형식화된 종교로 이스라엘 민족제일주의와 선민의식으로 타종교나 타민족을 자신들 에 의해 구원되어져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으로 굳어있다.
 
유교 또한 "교언영색하지 마라."는 공자의 메세지와는 정반대로 형식과 체면을 중시하는 종교로 굳어버렸다. 그러나, 최근 도올 김용옥의 '논어강의'는 본래 공자의 메세지를 살려 주려는 의도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도교나 불교도 자연스러운 삶을 지향하고, 삶속에서 해탈을 추구해야 함을 목적으로 하는 노자와 석가모니의 메세지임에도 불구하고, 삶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집을 짓고 대부분 삶을 포기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버리는 역사로 지속되어 왔다. 또한 수많은 불경들은 석가모니의 메세지와는 거리가 먼 교리적인 내용들로 형성되어 수많은 종파을 만들어 왔다.
 
결국 모든 종교들은 자신들이 종교라고 내세우지만은, 예수,석가모니,공자,노자,마호메트 등이 진실로 말하고자 했던 메세지-소리-와 거리가 먼 집단 이기주의적인 단체들의 교리나 주장들을 내세운다면 그건 이미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단체요, 종교를 빙자한 사이비 집단에 불가하다. 지금의 모든 종교단체들의 문제는 역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집단의 유지를 위하여 만들어낸'교리'에 있다. 그리고, 그 교리들은 수많은 종파들을 형성하게 하여 종파간 종교간 대립으로 전쟁을 유발시켜 수많은 생명들을 죽게했고, 하나가 아니, 끊임없는 분열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폐쇄성과 배타성으로 개방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각 종교집단들의 죽음의 교리들은 지금도 살아서 끊임없는 분열과 대립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3.종교가 하나로 가는 길
 
종교가 하나로 가기 위해서는 첫째, 교리주의를 지양하고, 생명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지금 지구는 전체적으로 반생명적 상태에 빠져 있다. 오존층의 파괴는 인간의 생명과 전 지구적 삼림상태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주의는 인간을 한없는 경쟁구조로 내몰아 숨조차 쉴틈을 주지 않고 있다. 그 경쟁구조 속에서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고아와 과부, 어린이 가장은 늘어나 가고 있다. 종교들은 이 현실을 봐야 한다. 더 이상 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로 보면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다. 이 현실을 통하여 종교간에 손을 잡게 하셨으니 말이다.
 
두번째로 종교가 하나로 나가기 위해서는 교리주의를 지양하고, 본래 역사적 예수, 석가모니, 공자, 노자, 마호메트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의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던지, 그 처음으로 가기위한 신학적 작업들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 작업에도 종교간 서로 손을 잡아야 해결이 된다. 왜냐하면 모두 다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데, 성서와 불경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유사한지 모른다. 그것은 예수와 석가모니가 지향한 목적이 같다는 뜻이며, 예수와 석가모니의 영이 같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종교가 하나로 나기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의 평신도들에게 신앙교육이 필요하다.자신들의 경전형성사, 자신들의 종교사, 타종교 이해 등의 교육이 필요하다. 아니, 그전에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그 필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양을 먹이는 성직자들은 집단우월적이고, 이기적인 교리주의를 완전히 탈피하고, 타종교와 대화하고 협력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 자세를 갖추지 못한 성직자라면 아마도 창조주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마귀의 종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탄은 "가르고 분열시키는"의미를 가진 영이기 때문이다. 네번째로, 종교가 하나로 나기기 위해서는 과학을 통한 하나의 창조주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현대 물리학은 모든 우주의 구조는 동일(물질-분자-원자-원소-소립자-쿼크(파동.입자)-하나의 근원=창조주 하나님?)하며, 그 근원은 하나임을 밝혀가고 있다. 과학시대를 맞아 더 이상 허구적인 교리들은 쓸모가 없다. 다행히 2,000년에 UN본부에서 세계종교 대표자들이 모여 세계영성대회를 가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종교가 교리주의를 초월하여 대화와 협력을 통하여 하나로 나가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때가 때인만큼 하나로 나가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종교인들은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여 창조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이라는 분별조차 필요없는 영성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에필로그
 
일제하 민족 지도자들이였던 백범 김구(천도교인), 몽양 여운형(기독교인)도 나중에는 종교를 하나로 생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유주의자들이 되었으며,그러한 자유주의적 인 종교관은 본질적으로 <종교다원주의>적인 신앙관이요,우리 민족의 <하나님 사상>이였습니다. 참고로, 일제하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들은 서로 대화하고 융합하는 열린 사고였으며, 그러한 사고가 조국광복을 위한 종교들의 한마음이 되게 하였습니다.오늘날에 비하면 일제시대의 종교들의 상당히 열려있었고 진보적이였지요? 당시 식민지상황과 민족의 독립이라는 공통의 시대적 과제가 그렇게 마음을 하나로 묶게 하였나 봅니다. - <종교화해와 일치,그리고 개혁>에 헌신한 고) 강원용 목사 - 
 



 한국 종교는 망한다?

 '내 눈에 교회와 절, 성당은 장사하는 장소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이 땅의 종교인은 자신의 밥줄을 옭아매는 위기가 바로 코 앞에 다가 와 있는데 계속 호황을 누릴 줄 알고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가 최근 서강종교연구회에서 발행한〈종교의 이해〉에 실린 ‘한국의 한심한 종교들’을 통해 토로한 내용이다.기독교와 불교·천주교·유교 등 한국의 대표적 종교 행태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나선 그는 한국 종교가 권위주의에 빠져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비전을 제시하기는 커녕 표류만 거듭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우선 개신교 에 포문을 열었다.
 
 “교회는 돈 혹은 인명 경시 풍조 등과 전면 전쟁을 선포해도 시원치 않은데 오히려 물신숭배에 누구보다도 앞장서고 있다. 신앙이 갈라진 우리를 합치게 해도 시원치 않은데 오히려 개신교 신앙은 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든다.”개신교가 이교도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주된 배경은 배타성과 정체성 상실. 노량진 장승백이나 각 대학 교정에 세어졌던 장승이 극렬한 개신교 신자에 의해 대부분 잘려 나가고 불에 타도 주범자들은 승리자인 양 떳떳해 하고 다른 사람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게다가 개신교도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를 만큼 조상이 몇 천 년 동안 계속해 오던 신앙을 하루 아침에 제대로 검토도 안된 외래신앙에 내던져 버릴 정도로 자신의 전통에 긍지와 자신감이 없다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독교리를 가짐으로써 더 용서할 수 있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포용력 있는 크리스찬은 눈에 띄지 않는다”며 “저들은 자기가 기독교도라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신앙의 경직성이나 권위주의 에 있어선 조선조의 유교도를 꼭 빼닮았고 기복적이고 현실적 이득에만 광분하는 모습은 무교(巫敎)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개탄했다.
 
천주교에 대해선 비교적 호의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유럽의 사고 중심으로 짜인 교단의 폐쇄성과 신부의 보수성에 일갈한다. “천주교는 무엇보다도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조직이 빈틈 없어 많은 한국인이 종교적인 위안을 천주교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천주교 성직자를 만날 때마다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장벽을 느낀다.”
 
최 교수에 따르면 신부는 겉으론 부드러운 것 같지만 안으론 철옹성 같은 벽을 지니고 있으며 이 나라 국민이기 보다는 이탈리아 로마 교황의 신민처럼 행동하고 다른 종교의 전통을 은근히 내려다 보는 경향이 없잖다. 워낙 자신들의 조직이 크다 보니 다른 종교나 사회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반대 입장에서 신학을 하려는 극소수 신부는 교구청 눈 밖에 나서 교계에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친다.불교에 대해선 의식의 낙후성과 지역성을 질타하고 있다.

“큰 가르침인 불교는 중생에 너무도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이 대단하지만 도무지 창조와 영성의 시대인 21세기를 지향하는 종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그래도 많은 승려가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지만 아직도 불교계 수준은 한반도 내에서만 찧고빻는 동네불교를 못벗어났다.” 불교가 낙후한 원인은 승려의 질 때문이라는 게 최 교수의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승려 대부분은 아직도 19세기 말씀에 살고 있어 불교교학을 세우지 못했고 세계 불교학계에 나가 영어로 자기 논문을 발표할 만한 이도 드물다. 더구나 세계 불교의 종주국은 이제 일본이 되었는데 일본 불교를 보고 교학은 발달했는지 몰라도 신심이 없다고 깔보는 건 한국 불교밖에 없다. 승려들은 전근대적인 의식을 가졌으면서도 엘리트 의식까지 있어 참된 하심(下心)을 갖고 중생 알기를 부처 모시 듯하는 스님을 찾 기란 너무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이해 못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승려가 자신을 스님이라 부르는 일이다. 전화를 받고 자기 자신을 밝힐 때도 **스님이라 하고 신문에 이름을 쓸 때도 **스님이라 한다. 이것은 세상에 무식한 일이다. 누가 자신을 말할 때 ‘님’자를 붙이는가. 이는 승려들이 저질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다.”불교도의 경직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보인다.
 
“우리 불교도는 탄력성 있고 수준 높은 불교를 종교로 갖고 있으면서도 개신교도의 집요한 공격 때문인지 보수화로 치달리면서 더욱 경직화하고 피해의식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 승려도 비슷한 경향의 의식을 갖고 있어 그들과 대화가 잘 안되는 때가 많다.” 시대 흐름에 전혀 보조를 맞추지 못한 유교엔 환골탈태를 요구하고 있다.최 교수는 “불교보다 더 나쁘면 나쁘지 좋을 게 없으며 한국의 유교도는 자신들이 도대체 몇 세기에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고 모든 문제를 ‘효의 부재’로 돌린다”며 “이는 유교가 아직도 기득권 세력의 이득만을 반영하고 있는 방증이며 남성 중심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그의 글에 따르면 효의 강조를 통해 가부장제를 확립하고 그것을 사회를 통치한 게 조선왕조다. 따라서 효에는 다분히 ‘봉건제’요소가 들어 있다. 지금도 효에 대한 비판을 금기처럼 여기는 건 조선조 통치이념으로서 국민에게 강하게 박혀 있음을 반영한다. 이제 우리가 정말로 힘써야 할 게 있다면 효의 강조가 아니라 부모, 특히 젊은 부모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으로 감쌀 수 있도록 재교육하는 일이다. 어떤 유림은 윤리를 지키자며 경찰에 찾아가 여성이 배꼽티를 입는 것을 단속해 달라고 주문했는데 과연 그 유림은 윤락가나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에 가서 남성들에게 반성하라고 한번이라도 외쳤는지 모르겠다는 게 최 교수의 반문이다.
 
그는 한국 종교 지도자에 대해서도 회의감과 불신을 감추지 않는다. “6년 전쯤 우리 종교를 대표한다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등 6개 종단이 협력사업을 할 때 실무자로 뛴 적이 있는데 기념식을 준비하는 3개월 동안 6개 종단의 지도자가 보인 모습은 어린 아이와 같았다. 조금 성이 안 차면 틀어지고 돈 내겠다고 해놓고 약속 안 지키고 유리한 것은 서로 차지하려 하고 정치권에는 지나치게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 종교의 총체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최 교수는“생활이 더 나아지면 사람들은 종교를 서서히 떠나게 될 것”이라며“현재의 위기 의식을 깊게 감지하고 영성과 창조를 갈구하는 21세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앞서가는 종교가 된다면 한국의 차세대 종교는 바로 그 종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근주 기자| 인터뷰/이화여대 최준식교수
"한국 종교가 살 길은 자폭 뿐이다"
 
"교계는 합법적인 사기꾼 집단이나 다름없다. 지도자로 일컬어지는 이 가운데 서너 명만 제외하면 모두가 소인배이고 모리배다. 과대 포장된 그들은 겉으로 좋은 말만 읊어대고 안으로 음험하기 그지없다. 그 점에선 정치인과 똑같지만 수준은 더 아래다. 정치인은 타협이라도 하지만 그들은 독선과 아집에 빠져 대화와 협상을 모른다.” 최준식 교수는 한국 종교에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 이론과 실무를 통해 교계의 속내를 훤히 읽어낸 그는 한국 종교가 살 길은 자폭뿐이라고 역설한다.이화여대 한국학과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최 교수는 그동안〈한국인의 생사관〉<조상 숭배가 전통사회에서 갖는 두세 가지 의미에 대해〉 등 종교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글을 발표한 이유는?

“1년 전쯤 한 종교전문지로부터 청탁을 받아 쓰게 됐는데 내용이 적나라해서 인지 실리지 않았다. 그러다 〈종교의 이해〉가 원고를 원해 넘겨줬다. 종교에 대해선 누구나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열린 종교’의 초석이 그래야 다져진다.”새로운 움직임 형성의 긍정적 파장을 미치리라 보나.“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이기심으로 그득 찬 성직자 대부분은 상대방 공격에 인정사정이 없어 오히려 해코지나 하려 달려들지 않을까 모르겠다."

교계가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절대신을 모시기에 불안 심리를 가진 신도만 만족시키면 만사형통이다. 더구나 교계 판도가 크다 보니 아직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성직자가 주범이라면 신도는 공범쯤된다.”
교계 개혁 방안은....
“젊고 창조적인 소수가 개혁운동을 주도하게 마련인데 우리 사회엔 별로 없다. 설령 문제의식을 가진 이가 있을지라도 상대방이 너무 크다 보니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만다.”
 
바람직한 종교 형태는 무엇이라 보나?

“대형 사찰이나 교회가 분산화해 신도 중심으로 꾸려질 종교 공동체가 형성돼야 한다.”
 
종교란 무엇이라 보나?

“존재의 근본인 죽음과 삶에 대한 의미를 찾고 궁금증을 풀어 주는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이가 직면할 내면적 숙제이어서 종교는 영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종교가 인류 역사상 제 기능을 한 적이 드물다. 단지 소수 성직자만이 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17.이 빛 기둥이 나타나자 마자 나는 나를 결박했던 힘으로부터 풀려났음을 깨달았으며 그 빛이 내위에 머물렀을때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함과 영광을 지닌 두분이 내 위 공중에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분이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다른 한분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하셨습니다.  18.내가 주님께 묻고저 한 것은 내가 어디에 가입할 것인가를 알기 위하여 모든 교파중에 어느것이 옳은가를 알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신이 들자 곧 빛 가운데 계신 분들께 어느 교파가 옳으며 어느 교회에 나가야 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19.그런데 나는 아무 교파에도 속하지 말라는 대답을 받았으며 나에게 말씀하신 그 분은 모든 교파가 다 그르며 그들의 신조는 하나님 앞에 가증하며 그들의 교사는 부패하였고, 그들이 입술로는 나를 가까이 하나 마음은 심히 멀도다. 그들은 사람의 계명을 교리로 가르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척 하나 그 능력은 부인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그 분은 다시 아무 교회에도 속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 - - "지금보다 더 계시가 필요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영감에 대한 교리가 상실되었습니다. 기적, 예언, 그리고 성스러운 삶은 <단지> 고대의 역사로만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한듯 계시에 대해 다소 오래 전에 주어지고 행해졌던것으로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셨다가 아니라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가 아니라 말씀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 참다운 교사의 직분입니다." - 
 
랄프 왈도 에머슨이 하버드 대학교 신학 대학에서 한 말
"우리에 대해 그렇게 염려하시면서도, 결코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분으로 부터> 아무런 말씀도 들을 수 없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에게는 모순되게 보입니다."

[윤복현 가칭 '진실협' 준비위원]

 



덜핀꽃 07/08/13 [16:43] 수정 삭제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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