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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180]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3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2/14 [06:17]

[홍익인간 7만년 -180]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3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2/14 [06:17]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서기전2333년 10월 3일 단군왕검은 구한(九桓, 구족, 九族, 구이, 九夷)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으로 즉위하여 천군(天君)의 윗자리인 천왕(天王)이 되었으며,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1-

 

단군왕검 천왕(檀君王儉 天王. 본명: 인검- 9남매 중 막내아들)은 배달나라 18대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과 단웅국(檀熊國) 5대 (염제신농국 13대)의 홍제(洪帝)의 딸 사이에 탄생하신 분이다.

 

단웅국(檀熊國)이라 한 것은 단국(檀國) 즉 배달나라와 웅씨국(熊氏國)의 혼합된 명칭이 되는데, 이는 그냥 웅씨국인 유웅국(有熊國)과 구분되는 명칭이 되며, 서기전2697년 갑자년에 배달나라 제14대 치우천왕이 염제신농국을 평정하여 염제(炎帝) 유망(楡罔)의 아들인 괴(魁)를 천자(天子, 왕)로 다시 봉한 나라를 가리킨다.

 

유웅국은 웅씨국의 하나로서 서기전3252년에 소전씨(少典氏)가 배달나라 종실(宗室)로서 천자(天子)로 봉해져 시작한 나라이며, 소전씨의 별고인 공손씨(公孫氏)가 잇고, 공손씨의 아들 또는 후손인 황제헌원(黃帝軒轅)이었는데, 황제헌원의 나라를 웅국(熊國)이라고도 한다.

 

요(堯)임금은 서기전2357년에 배달나라 천자국(天子國)인 유웅국(有熊國)의 천자(天子)이던 제지(帝摯)를 쳐서 멸하고서 함부로 참칭 제왕(帝王)이라 하였던 반면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은 배달나라의 전체 부족(部族)인 구이(九夷)의 추대를 받아 배달나라의 정통을 이었던 것이다.

 

구족(九族)을 구한(九桓)이라 하는데 고대중국은 이를 구이(九夷)라 불렀다. 구이는 황이(黃夷), 백이(白夷), 남이(藍夷), 현이(玄夷), 적이(赤夷), 양이(陽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견이(畎夷)이다.

 

▲ 구족(구한, 구이)의 분포 지도     © 천산태백

 

구이(九夷)의 분포를 보면 아래와 같다.

 

황이(黃夷)는 파미르고원의 동쪽으로 천산(天山), 몽골, 만주, 시베리아, 연해주, 한반도, 산동지역에 걸쳐 사는 황인종(黃人種)이며, 황궁씨(黃穹氏) 후손이 된다.

 

백이(白夷)는 파미르고원에서 사방분거 이전에 먼저 동쪽으로 나가 사막지대에 걸쳐 선착한 백소씨(白巢氏)의 일파인 지소씨(支巢氏)의 후손으로서, 주로 황하상류 부근의 사막지역에 사는 아시아 백인종(白人種)이다.

 

남이(藍夷)는 청궁씨(靑穹氏)의 후손으로서 청(靑)인종에 속하며, 황하하류와 양자강하류 사이의 땅에 걸쳐 살며, 특히 치우천왕의 후손을 남이(藍夷)라고도 한다. 남이를 곧 태호복희의 후손이 되는 풍이(風夷)라고도 하는데, 이는 태호복희의 나라인 진(震)나라가 산동지역의 진(陳)을 중심으로 하던 나라이며, 치우천왕이 수도로 정한 곳이 산동지역의 청구로서 태호복희의 땅이 치우천왕이 직할로 다스리던 지역에 속하였기 때문이 된다.

 

현이(玄夷)는 흑룡강 유역에 걸쳐 사는 아시아 흑인종(黑人種)으로서 서기전7197년경 인도지역으로 이주한 흑소씨(黑巢氏)의 일파로 추정된다.

 

적이(赤夷)는 양자강 이남으로 해안가에 걸쳐 사는 홍인종(紅人種)으로서 남이(藍夷)와 같이 청궁씨(靑穹氏)의 후손이 된다.

 

양이(陽夷)는 백두산 남쪽의 한반도에 걸쳐 사는 황이의 분파로서, 바다를 건너 산동지역에 옮겨 살기도 한 것이 된다. 산동지역에 사는 양이가 중국 내륙(內陸) 8이의 하나가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마한(馬韓) 땅이 되고 마한의 북동지역이 되는  지금의 개마고원 지역에 제후국인 개마국(蓋馬國)이 봉해진 것이 된다.

 

우이(于夷)는 백두산의 동쪽에 걸쳐 사는 황이(黃夷)의 분파로서 동해(東海)에 걸쳐 산 족속이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제후국인 예국(濊國)이 봉해진 지역이 된다.

 

방이(方夷)는 송화강 북쪽에 걸쳐 사는 황이(黃夷)의 분파이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제후국인 숙신국(肅愼國)이 봉해진 곳이 된다.

 

견이(畎夷)는 서쪽의 삼위산(三危山)과 서안(西安)에 걸쳐 사는 황이(黃夷)의 분파이다. 견이는 서기전3897년경 반고(盤固)가 가한(可汗) 즉 배달나라의 천자(天子)가 된 이후 배달조선의 자치제후국으로 이어져 온 것이 된다. 후대에 나타나는 돌궐이 견이의 후예가 된다.

 

단군왕검 천왕(天王)은 나라의 지역행정(地域行政) 제도를 서기전70378년부터 서기전7197년까지 존속한 파미르고원의 마고성(麻姑城) 시대의 것을 본받아 동서남북중(東西南北中)으로 나누어 중앙이 되는 태백산(太白山) 즉 지금의 백두산에는 삼신(三神)의 자리로서 천부단(天符壇) 즉 제천단(祭天壇)을 두었고, 북쪽에는 삼신(三神)의 대리이자 북보(北堡)로서 진한(眞韓)을 두었으며, 남쪽에는 남보(南堡)로서 마한(馬韓)을 두었고, 서쪽에는 서보(西堡)로서 번한(番韓)을 두었으며, 동쪽에는 중요성이 덜하여 일반제후국인 예국(濊國)으로써 동보(東堡)로 삼았다.

 

보(堡)는 파미르고원의 마고성 시대에 사방에 두었던 보루(堡壘)로서 마고성의 내외부를 관찰하고 지키던 축조물이 되며, 마고성의 중앙에는 제천단인 천부단(天符壇)을 두었던 것이 된다. 마고성 시대에 이미 사방(四方)에 각 3개씩의 보(堡)를 두어 12성문(城門)을 설치하였던 것이 되는데, 이러한 구조를 단군조선이 본딴 것이다.

 

단군조선은 사보(四堡)에 중앙에서 각 1,000리마다 물길을 두어 관문(關門)으로서 성(城)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되는데, 이는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의 3한(韓)과 구려, 진번, 부여, 청구, 남국, 숙신, 예국, 개마, 옥저의 9군후국(君侯國)을 두어 기본 12봉국(封國)을 두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외에도 윷놀이판의 모습처럼 고죽국(孤竹國), 몽고리(蒙古里), 흉노(匈奴), 남선비(南鮮卑), 낙랑홀(樂浪忽), 여국(黎國), 엄국(淹國), 서국(徐國), 회국(淮國), 개이(介夷), 래이(萊夷), 양이(陽夷), 우이(隅夷), 기후국(箕侯國), 기국(杞國), 응국(鷹國) 등 많은 제후국을 두어 28수(宿)처럼 최소한 28개의 봉국(封國)을 두었던 것이 된다.

 

구족(九族)은 원칙적으로 자치(自治)를 행하였으며, 단군조선 시대에 특별히 군후국(君侯國)으로 봉해진 나라로는, 양이(陽夷) 지역으로 지금의 백두산(白頭山) 남쪽에 봉해진 개마국(蓋馬國:해마리국), 우이(于夷) 지역이 되는 백두산의 동쪽에 봉해진 예국(濊國), 방이(方夷) 지역에 봉해진 숙신국(肅愼國), 남이(藍夷) 지역에 봉해진 남국(藍國), 엄국(淹國:奄瀆忽), 서국(徐國), 회국(淮國) 등, 그 외 황이(黃夷) 지역에 봉해진 구려국(句麗國), 진번국(眞番國), 부여국(夫餘國), 청구국(靑邱國), 옥저국(沃沮國), 졸본국(卒本國), 비류국(沸流國), 고죽국(孤竹國), 몽고리(蒙古里), 흉노(匈奴), 남선비(南鮮卑) 등, 백이(白夷)와 견이(畎夷)의 혼잡지역에 봉해진 여국(黎國) 등이 있다.

 

(1) 삼한(三韓) = 천국 비왕(天國 裨王)이자 관경(管境)

 

단군왕검 천왕(天王)은 태자부루(太子扶婁)를 진한(眞韓)으로 삼고, 치두남(蚩頭男)을 번한(番韓)으로 삼고, 웅백다(熊伯多)를 마한(馬韓)으로 봉하여 비왕(裨王)으로 삼았다. 진한, 번한, 마한은 천왕격(天王格)에 해당한다. 진한이 천왕격이므로 진한의 상제(上帝)인 단군왕검은 자연히 천제(天帝)가 되는 것이다. 태자부루가 스스로 천제자(天帝子)라 칭하였던 것은 단군왕검을 천제(天帝)로 모신 것이 된다.

 

삼한(三韓)은 비왕(裨王)인 삼한(三韓)을 가리키기도 하고 관경(管境=나라), 땅, 나라인 삼한관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단군조선 후기가 시작된 서기전1285년부터는 관경인 삼한을 삼조선(三朝鮮)이라 불렀던 것이고, 단군조선 말기가 시작된 서기전425년부터는 삼한관경을 삼조선(三朝鮮)으로 부르기도 하면서 마조선과 번조선의 임금인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이 비왕(裨王)에서 승격되어 군사권을 가지는 왕(王)으로 불러 마조선왕(馬朝鮮王), 번조선왕(番朝鮮王)이라 한 것이 된다.

 

마한과 번한이 칭왕을 한 시기를 주나라의 전국시대로 비견한다면, 서기전425녀부터 단군조선의 전국(戰國)시대라 할 수도 있게 되는데, 서기전403년부터 전국시대라 부르는 주나라는 단군조선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온 것이 된다. 이는 단군조선이 봉건국을 거느린 대제국(大帝國)으로서 말기에 이르러서는 제후국들이 왕을 칭하면서 난을 일으키게 됨으로써 그 역사적 흐름이 중앙조정의 천왕(天王)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 된다.

 

다만, 단군조선의 마조선과 번조선이 스스로 왕을 칭한 것인지 진조선 천왕의 윤허를 받아 왕을 칭한 것인지에 관하여 명확한 기록이 없으나, 서기전323년에 번조선의 읍차 기후(箕詡)가 번조선왕의 자리가 비어 있던 틈에 번조선왕이라 칭하고 천왕의 사후윤허를 구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서기전425년 삼조선왕 시대 시작시기에 마조선과 번조선의 마한과 번한에게 왕이라 칭하도록 윤허한 것이 되고, 또 기후(箕詡)가 사후에 윤허를 구한 사실 등을 고려하면, 주나라 제후국들이 스스로 왕(王, 天子)을 칭한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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