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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역사 -10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59

조선(朝鮮) 제5대 구을(丘乙)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5/03/28 [19:43]

[홍익인간 7만년 역사 -10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59

조선(朝鮮) 제5대 구을(丘乙)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5/03/28 [19:43]
 
 
▲ 단군릉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5대 단군 구을천황(丘乙)(16년간 재위). 자료사진  © 편집부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서기전2084년 여름 7월에 천왕께서 남쪽으로 순행하여 풍류강(風流江)을 지나 송양(松壤)에 이르러 병을 얻어 곧 붕하시니, 번한(番韓) 호갑(虎甲)이 사람을 보내어 문상(問喪)하고 병사를 보내어 경계토록 하였으며, 구을 천왕을 대박산(大博山)에 장사지냈다. 이에 우가(牛加) 달문(達門)이 무리로부터 선출되어 대통(大統)을 승계하였다.

[대박산(大博山)의 구을(丘乙) 천왕릉(天王陵)]

구을 천왕이 남쪽으로 순행하였다 하므로 풍류강은 송화강 아사달의 남쪽에 있는 강이 되고 송양(松壤)이라는 땅도 남쪽에 있는 것이 된다.

송양(松壤)은 글자 그대로 보면 소나무가 많은 땅이 된다. 지금의 송화강(松花江) 유역이 소나무와 관련이 있으니 풍류강은 아마도 송화강의 지류가 되고 송양은 송화강 유역에 있던 땅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한편, 번한(番韓)의 제6대 왕인 호갑(虎甲)이 사자를 보내어 문상(問喪)을 하고 군사를 보내어 경계토록 하였다는 사실에서, 구을 천왕이 붕하신 곳은 번한(番韓) 땅에 가까운 곳이 되는 바, 번한은 서쪽으로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와 동쪽으로는 지금의 대릉하에 걸치며 남쪽은 발해만이고 북쪽은 구려(句麗)와 접하고 있었던 것이 되므로, 소나무와 관련된 땅이 되는 송양(松壤)은 곧 구려의 남쪽 지역이자 번한의 북쪽 지역에 위치한 것이 될 것이다. 실제로 소나무와 관련된 지명을 가진 곳이 여기에 있기도 하다.

대박산(大博山)은 구을(丘乙) 천왕릉(天王陵)이 있는 곳이 되는데, 구을 천왕을 송화강 아사달 지역으로 다시 모셨다면 천왕릉은 지금의 만주 지역에 있는 것이 될 것이나, 대박산이 송양 부근이나 대릉하 부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한편, 대박산(大博山)을 지금의 한반도 평양 부근에 있는 대박산이라고도 하나,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볼 때 당시 마한 땅이던 한반도 평양 부근이라고 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 된다. 평양의 대박산은 후대에 지명을 본딴 것일 수도 있으며, 같은 지명(地名)이나 산명(山名)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대박산이라는 글자 자체로 보면 태백산(太白山)과 뜻이 같은 한밝산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글자가 될 것이다.

구을 천왕이 돌아가시자 우가(牛加) 달문(達門)이 화백회의(和白會議)로 선출되어 천왕이 되었다 하는 바, 태자(太子)가 있었다면 양보하였거나 태자자리가 비어 있었던 것이 되고, 농사담당이던 우가(牛加)의 직을 수행하던 구을 천왕의 아들이나 왕족으로서 달문(達門)이 대통을 이은 것이 된다.

태자가 있으면 태자가 대를 잇는 것이 원칙이지만, 태자가 불초(不肖)하거나 태자 자리가 비어 있다면 다른 천왕자(天王子) 중에서 대를 이은 것이 되는데, 이때 화백회의(和白會議)로 선출하였던 것이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 태자가 아니면서 천왕에 오른 예가 좀 있다.

제5대 구을(丘乙) 천왕과 제7대 한율(翰栗) 천왕이 태자가 아닌 양가(羊加) 출신이었다. 양가 출신으로 명기된 경우가 두분이다.

한편, 제6대 달문(達門) 천왕, 제10대 노을(魯乙) 천왕, 제12대 아한(阿漢) 천왕, 제13대 흘달(屹達) 천왕(대음달(代音達)이라고도 불리움), 제14대 고불(古弗) 천왕, 제16대 위나(尉那) 천왕, 제20대 고홀(固忽) 천왕이 태자가 아닌 우가(牛加) 출신이었다. 즉 태자가 아닌 우가 출신으로 명기된 분이 모두 일곱분이다.

그 외 태자라고 명기되지 아니한 분으로는 제8대 우서한(于西翰) 천왕, 제15대 대음(代音) 천왕, 제28대 해모(奚牟) 천왕, 제29대 마휴(摩休) 천왕이 있는데, 태자나 삼사오가(三師五加) 등의 관직(官職)에 있지 아니하던 차자(次子)나 삼자(三子) 등 다른 아들이 될 것이다.

한편, 태자도 아니고 천왕의 아들이 아니면서 천왕이 된 경우로는, 서기전1286년에 우현왕(右賢王)으로서 군사력을 기반으로 제21대 소태(蘇台) 천왕부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아 서기전1285년에 즉위한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 서기전426년 우화충(于和冲)의 반란으로 피난하다 붕하신 제43대 물리(勿理) 천왕의 명(命)을 받아 난을 진압한 공로로 추대받아 서기전425년에 천왕이 된 제44대 구물(丘勿) 천왕, 서기전296년 한개(韓介)의 반란을 의병을 일으켜 진압한 공로로 추대받아 후사가 없던 제46대 보을(普乙) 천왕의 대를 이어 서기전295년에 즉위한 제47대 고열가(古列加) 천왕이 있다.

제22대 색불루 천왕은 우현왕(右賢王) 고등(高登)의 손자로서 세습하여 우현왕이 되었으며, 서기전1286년에 소위 군사혁명으로서 제21대 소태 천왕으로부터 선양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색불루 천왕은 고씨(高氏) 단군천왕(檀君天王)의 시조가 되는 셈이다.

제44대 구물 천왕은 백민성(白民城) 욕살(褥薩)로서 제43대 물리 천왕의 명을 받아 우화충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추대되어 천왕으로 즉위하였는 바, 욕살은 지방장관으로서 성주(城主)가 되며, 일반 제후에 버금가는 직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물리 천왕의 가까운 친족(親族)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47대 고열가 천왕은 제44대 물리 천왕의 현손(玄孫)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제22대 색불루 천왕은 부여(扶餘) 땅이 되는 상춘(常春)의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서 후기 단군조선을 시작하였는데, 역대 단군천왕들이 색불루 천왕을 제외하면 모두 천왕족(天王族)으로 대통(大統)이 계승된 것이 된다. 이로써 보면, 단군조선 시대의 황통(皇統) 계승은 확고한 제도(制度)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은 정치제도(政治制度)가 확고(確固)히 정립(定立)된 제국(帝國)이었던 것이다.


한문화사업총단 대표/천산역사연구원장/천부역(天符易)과학원장/마고족보연구원 대표/세계무궁화축제문화사업회 이사/독도 대마도 동해 만주 수호회복단 이사/천웅도 문무원 이사/광개토황비문연구원 이사/천부어문연구원 이사/산삼문화사업단 이사/한국삼협회 고문/홍익정치연구원 이사/한문화컨텐츠개발원 이사/한문화유물문화재연구원 이사/한문화사업단 이사/행운천지인 역리풍수 대표/(주)한문화개발 고문/플러스코리아타임즈 이사/춘천고조선유적지보전협의회 총괄기획위원장/천부풍수연구원 이사/풍수지리신문 편집국장/현 법무사/저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생활사주> <생활기문> <천부풍수> <천웅도와 홍익인간><우리말글과 세계언문역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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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단기고사(檀奇古史), 규원사화(揆園史話)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3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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