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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정통사(51)-밀사들의 여명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6/10/31 [15:27]

대한정통사(51)-밀사들의 여명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6/10/31 [15:27]

 

 

밀사들의 여명

 

 [플러스코리아타임즈= 안재세]  광무 6년(4235년,서1902), 이미 44세로 중년신사가 된 이 준은 영일동맹이 진행되고 노일전쟁이 임박하는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속에서 대한국의 독립을 확고히 지키려면 우선 국내적으로는 정부내의 매국분자들부터 몰아내고 대외적으로는 엄정중립을 선언해야 한다는 뜻을 굳히고, 민 영환·이 상재·이 상설·이 도재·이 용익·이 동휘·박 은식·이 갑·노 백린·남궁 억·양 기탁·장 지연 등 당대의 열렬한 애국지사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개혁당’을 조직하였다.

 

비록 민씨세도에 대하여 대다수 민중이 크게 반발해 오기는 했으나, 민 영환은 구미각국에 특명전권 공사로서 파견되었던 경험을 통하여 풍부한 국제 정치적 감각을 갖추고 있는데다가 그 순수한 애국열정을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었으므로 개혁당의 당수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개혁당의 실무를 맡을 중심인물로는 당시 내각의 총무국장을 맡고 있어서 동지간 정보교환과 연락업무를 가장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던 이 상재가 뽑혔다.

 

  월남 이 상재는 많은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광무황제와 관련된 두 가지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일찍이 아관파천 당시 의정부참찬이라는 고위직에 있던 월남이 어느날 황제폐하를 알현하러 갔는데 궁중나인(內人)들이 자주빛 보자기에 싼 첩지(帖紙=사령서‘辭令書’)를 황제앞에 갔다 놓았다. 이 상재가 보기에 그것은 매관매직하는 첩지가 분명했으므로 그는 천연덕스럽게,

 

“황제께서 계신 방이 어찌 이다지 추운가?”

 

하면서 그 보자기를 집어서 벽난로에 집어넣으니 첩지는 순식간에 타버리고 말았다. 그런 다음 이 상재는 곧 이마를 방바닥에 대고 죄줄 것을 황제께 청하니 광무황제 또한 이 상재의 충성심을 가상히 여기시어 불문에 붙이기로 하셨다. 밖으로 나온 이 상재는 내시들에게,

 

“이놈들아! 너희들은 외국공관에까지 와서 폐하를 욕되게 하느냐?”

하고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개혁당에 관여하고 있던 의정부 총무국장 시절에는 다음과 같이 광무황제께 진언한 이야기가 전한다. 즉, 동학혁명의 원인이 되는 등 여러가지 백성들에게 끼치는 부작용 때문에 일단 폐지되었던 전운사(轉運司)를 이권을 노린 정상배들과 간신들이 부활시키려고 공작하여 마침내 광무황제의 인가를 얻어내기에 이르자, 이 상재는 이를 목숨을 걸고 저지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하루는 대신들이 조회를 하는 중에 참정대신이 광무황제를 뵙고 나오더니,

 

“이국장, 어찌 그다지도 고집이 과하시오? 이국장이 전운사의 직제를 반포하지 않는다고 황제께서 지금 진노가 대단하시오.”

 

라고 하였는데 이윽고 황제께서 참찬 민병석을 들어오라고 하여 민병석이 들어가더니 오랫동안 나오지를 않으므로 모두 이 상재가 걱정되어,

 

“아깝도다. 이국장이 아마 오늘 죽나보다.”

 

고 쑤근거렸다. 그런데 얼마 후에 민병석이 희색이 만면해서 나오며,

 

“이국장, 살았소! 황제께서 크게 깨달으셔서 전운사는 없애기로 되었소. 황제께서 이국장의 충성을 도리어 칭찬하십디다.”

 

라고 하였다. 그 말이 떨어지자 이 상재는 주먹으로 마룻바닥을 치면서,

 

“이렇듯이 성명(性明)하신 군주를 보필을 잘못해서 나라꼴이 이 지경에 이르렀도다!”

 

하며 방성대곡하니 모두가 숙연해졌다고 한다. 이로써 보건대 광무황제와 이 상재 간에 어느 정도 애국충정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당에는 그 이후에도 이 범진·김 석항·홍 재기·민 병두·김 병시·전 덕기 등이 비밀리에 입당하였다. 그들은 갑신정변을 교훈삼아서 우선 탁지부대신 겸 내장원경(內藏院卿) 겸 육군참장으로서 광무황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명실공히 당대 최고의 실력자인 이 용익을 중심으로 군권을 장악한 후 간신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계획을 추진해 갔다.

 

  그러나 어찌 뜻하였겠는가! 거미줄처럼 사방팔방으로 풀어놓았던 친일파매국노들의 밀정들 중에는 민 영환의 저택에서 심부름을 하던 하인도 있었으니! 그 하인은 민 영환의 저택에 자주 드나드는 이 상재, 이 준등 개혁당 인사들 사이에 무심코 오고 간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고 친일파거두인 송병준에게 밀고했던 것이다.

 

송병준의 밀정은 특히 이 상재가 자주 출입하는 것을 알고 밀고하였으므로, 그렇지 않아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송병준은 전격적으로 이 상재와 그 아들을 경위원에 잡아가두고 갖은 고문을 가하며 개혁당의 비밀을 캐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상재 부자가 입을 굳게 다물자 이번에는 이 준을 체포하여 고문을 가하였으나 역시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달여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던 이 준은 부인이 백방으로 노력하여 간신히 풀려나올 수 있게 되었고, 이 상재도 얼마 후에 풀려나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민 영환의 애국심과 이 상재의 굳은 지조와 이 준의 충의심과 이 범진의 유능함을 알게 된 애국지사들은 더욱 힘을 합쳐 국운을 개척해 나아가기로 굳게 맹서하였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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