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사랑도둑년] 당당한 그녀 2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8/24 [13:53]

연재소설 [사랑도둑년] 당당한 그녀 2

임서인 | 입력 : 2015/08/24 [13:53]

1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이혼 서류를 가지고 찾아왔다. 남편의 옆에는 그녀의 미용실에서 일했던 스물일곱 살 나영이 아기를 안고 있었다.

싹싹하고 상냥한 나영은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남편이 집을 나가 별거를 한 2년 후, 나영이 그만 두자 손님이 급격히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가끔 손님들 중에는 나영이 다른 곳에 미용실을 차렸다는 말을 전해주기도 하며, 그곳에서 남편을 보았다는 말을 해주었지만 그녀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영이 아기를 안고 남편의 곁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녀는 남편이 나영의 일을 유달리 잘 도와주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그동안 그를 저주하며 직원 없이 혼자 일하던 그녀는 두 사람을 보고서도 돌부처가 되었다. 마음속에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이글거리면서도 무기력해진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눈으로 나영의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고, 남편의 가운데 다리를 잘뚝 잘라버렸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하염없이 울었다. 나영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른다. 자신은 그런 모습을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은 질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영과 남편의 모습은 잘 어울렸다. 아기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어떤 돌멩이도 던질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그만 부끄러움과 초라함으로 꺼이꺼이 울어대었다.

행복해 하는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잊어보려고 “못생긴 년이 아기도 낳아주지 않는다.”라는 말만 되풀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밤을 꼬박 샜다.

이튿날, 모처럼 찾아온 손님의 머리를 자르다 뾰족한 가위 끝에 귀를 자르고 말았다. 다행히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사과하지 않았다. 손님은 잘린 귀를 부여잡고 그녀와 대판 싸웠다.

결국 머리를 잘해주기로 소문난 그녀의 미용실은 문을 닫고 말았다. 그 뒤,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영은 휘향의 두 손을 마주잡고 거실 바닥에 앉았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휘향에게서 떼지 못했다.

키 큰 들꽃 하나가 유전자변이를 하여 크고 화려한 화분에 심겨진 백합화 같았다. 요즘 여자들이 외모에 대해 탐미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휘향의 변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는데, 변해도 무척 변했다.

문명은 태어날 때 발전인자와 파괴인자를 같이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으니, 휘향이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한 것은 문명의 혜택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직, 문명의 발전인자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선영에게는 휘향의 변한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놀라웠다.

“어떻게 된 거야?”

“남편은 회사 갔니? 이 꼴이 뭐야? 아름답던 모습 온 데 간 데 없구나. 마음고생이 심하구나.”

휘향이 대답대신 선영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휘향의 손에서 따뜻함이 전해지자 선영은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목울대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꺼억꺼억 깊은 속울음 소리를 냈다.

휘향은 미용실을 처분하며 손에 쥔 쥐꼬리만한 돈을 바라보며 지금 선영처럼 울었던 그때를 기억하며 자신도 목울대가 아파오도록 울었다. 지난 8년 동안 한번도 울지 않은 그녀의 눈물샘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 눈물은 그녀의 슬펐던 처지를 생각하며 우는 눈물이 아니라, 그토록 보고 싶었던 선영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하자 그녀의 가엾음을 위한 눈물이었다. 아직도 그녀의 눈물샘은 자신을 위해 울 수가 없다.

선영이 눈물이 그칠 기미가 없다. 휘향은 그녀가 원 없이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녀가 마지막 인생을 정리하기 위하여 소주와 약을 들고 서해로 치달리는 차령산맥이 잠시 쉬어가는 수덕사엘 갔다. 어머니 품속 같은 산속에 파묻힌 수덕사의 종소리가 불현듯 듣고 싶어 발길을 수덕사로 돌렸다.

늦은 시간에 출발한 수덕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녀는 수덕사 안쪽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일주문에 앉아서 안을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몇 년 전에 남편과 함께 들렀던 일주문 왼쪽에 있는 수덕여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관 안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 쓰레기가 어지러이 널려있고 먼지 쌓인 쪽마루와 뜯겨진 문이 폐허였다. 주인도 객도 떠나가 버린 여관방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났다.

김일엽, 나혜석, 박귀옥의 세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던 수덕여관은 이제 세 여자 이야기는커녕, 사라져 간 그 여자들처럼 사라져 가기 위해 하나하나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굴뚝을 감은 담쟁이 넝쿨만이 무성하고, 여주인의 방에 갈대꽃이 핀 강가에 홀로 서있는 오리가 고개를 내밀고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 외로워보였다.

흡사 지금의 자신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하자 쓸쓸함이 온몸을 휘감고 도는 것이 죽고만 싶었다.

세상에 할머니도 없고, 재혼을 한 아버지 집으로 갈 수도 없고, 오직 빈 몸뚱아리만 남아있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꽃다운 사랑도 하룻밤 먼지처럼 가버렸다.

동남아를 강타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약800여명의 사명자가 났다는 사람들의 말에도 그녀는 무기력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스가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평탄하지 못한 인생살이를 끝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가끔 들르는 수덕여관에 몸을 뉘일 때 편안했다. 그녀가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각박하고 외로운 이승에 내던져진 영혼의 안식처가 이 수덕여관의 하룻밤이 어머니 품속이었다.

이곳에서 여성을 옥죄는 사회제도가 원망스런 이혼녀가 자유연애를 부르짖고, 이혼고백장발표를 하고, 최린을 상대로 한 정조유린 위자료 청구소송을 했던 여인의 숨결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감사했던 그 날이 이제는 원망과 서러움의 날이 될 줄은 몰랐다.

한국최초의 신시 여류시인이 글도 망상의 근원이라고 하며 붓을 꺾어버리고, 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 소년이 현해탄을 건너왔지만 어머니라 하지 말고 스님이라 부르게 한 무정한 여인, 남편이 21세의 연하의 연인과 함께 파리로 떠나버려 평생 소박떼기 청상과부가 되어 산 여인의 한이 지금 허물어진 여관 어딘가에서 그녀를 조롱하는 듯하여 멈칫멈칫 뒤로 물러서지만, 짙게 내린 어둠이 그녀를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주로 머물렀던 방에 들어갔다. 무서움이 엄습하였지만 이곳을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무서움으로 어머니 품속 같지는 않았지만, 갈 곳이 없다.

속세의 바람에 방해받지 않고 어둠에 자신을 젖어갔다. 간혹 인근에 있는 상가와 음식점에서 소리가 들렸으나, 그녀의 숨소리만이 살아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자식을 낳고 스님이 되어 어머니의 사랑에 굶주리게 한 그녀보다, 세상의 불합리한 사회제도에 정면도전을 한 여인의 기백은 없어도 세 아이를 버리고 이혼한 그녀보다, 한 남자에게 버림을 받았어도 평생 잊지 않고 그리움을 벗 삼아 그림자처럼 산 그녀보다 분명, 그녀는 행복할 수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행복으로의 길을 차단해 버린 것일까?

그녀는 소주와 종이컵을 꺼냈다. 어둠속에서 한 잔 두 잔의 술이 연거푸 어둠속 그녀의 몸으로 자꾸 들어갔다. 넉 잔의 술이 그녀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 못생긴 년이 애기도 못 낳는다”는 남편의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비웃었다. 나영이 보름달처럼 환한 사내아이를 안고 서있는 그 미소가 어둠속에서 그녀를 조롱하듯 획 지나갔다. 그녀는 종이컵을 나영의 얼굴에 던졌다. 하지만 나영은 아기를 안은 체 어둠속에서 한동안 서서 그녀를 괴롭혔다.

나영의 얼굴이 사라지자 그녀는 목 놓아 울었다. 아무도 찾을 일 없는 이 폐허 속에서 또 한 여인이 잊히고 있었다. 세 여인처럼 영원히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그녀는 가져온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또 한 차례 오열했다.

그녀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고 어둠도 무섭지 않았다.

휘향은 선영의 울음이 잦아들자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가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며 휘향이 빙그레 웃었다. 네가 우는 것을 이해한다는 듯. 선영은 한숨을 쉬고는 그녀처럼 따라 웃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선영이 웃자 휘향이 동요를 불렀다. 그녀의 경쾌한 노래에 그녀의 얼굴이 펴졌다.

“야야,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 알아?”

휘향이 물었다.

“코끼리를 죽여서 잘게 자른 다음 봉투에 담아 넣으면 되지.”

수없이 고민을 하다가 휘향의 새로운 발상으로, 거꾸로 생각해 보라는 말에 선영이 대답을 했다.

“야갸, 순진무구한 여인의 입에서 나올 말이냐?”

휘향이 짓궂은 웃음을 띠었다.

“레지던트가 대답한 것은 인턴에게 시킨다이고, 교수는 조교에게 시키고, 검찰은 냉장고로 감옥을 만든 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되는 거야.”

“내가 답한 거나, 네가 답한 거나.”

“그래. 그거야. 우리 인생의 답도 한 가지가 아냐. 분명 지금 너의 문제에도 답이 있을 거야. 너와 나의 옹달샘에 물만 먹고 가는 얄미운 토끼들 때문에 우리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휘향은 인생의 답이 하나만 있는 줄 알았다. 하나뿐인 답을 몰라서 사는 것이 싫었다.

그녀가 그의 등 뒤에 업혀 병원 하얀 시트위에 누워 있는 동안, 그녀의 인생이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아직 수덕여관의 여인들처럼 어둠속으로 사라지기에는 젊고 아까운 나이였다. 이제 마흔을 갓 넘은 여인의 향기가 막 피어나려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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