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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한 백제인들

백제인들이 개발한 나침반, 신라방.중국화교들은 백제 후예들이였다

문화부 | 기사입력 2008/07/21 [13:59]

고대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한 백제인들

백제인들이 개발한 나침반, 신라방.중국화교들은 백제 후예들이였다

문화부 | 입력 : 2008/07/21 [13:59]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한 사람들- 배의 노, 키,나침반을 발명한 백제인
 
이 글은 김성호 박사의 '중국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맑은소리, 1996년)'에서 발췌한 것이다.
 
김성호 박사는 1983년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을 통해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본기의 이설, 광개토태왕의 비문, 일본서기 등을 근거로 한 비류백제의 실재를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던 학자다.
 
'중국진출....'을 통해 김성호 박사는 중국 25사에 나타나는 주산군도의 해민들의 정체를 구명하고 이들이 백제 유민들로 명나라 때까지 동아시아 바다를 실제로 지배한 해양세력임을 밝히고 있다.

아래 내용은 김성호 박사의 '중국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1500년' 가운데 극히 일부를 발췌하여 덧붙인 것이다.
 
▲ 백가제해(해상제국 백제의 22담로)
1. 바다의 주인들
 
고대인에게 바다는 두려움과 미지의 세계였다. 18세기, 동력선이 개발될 때까지 바다는 대대로 전문지식을 이어온 특정 家門이나 집단의 전유물 이었으며, 인도로 가는 해상로를 개척할 때까지 유럽의 귀족들은 베네치아 상인들이 공급하는 향신료를 원산지 가격의 1,000배 이상을 주고 사다 먹었다.
 
유럽에서 대양을 항해하는 것은 왕실의 후원을 등에 업고 목숨을 거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남길 수 있는 벤처산업이었다. 향신료 가격은 금값에 필적할만 하였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한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왜구와 임진년의 침략으로 유명한 일본일까? 아니면 중국? 그도 아니면 먼 가야왕국까지 공주를 시집 보낸 인도였을까? 정답은 바로 백제왕국과 그 유민들이다.
 
 
2. 오랑캐의 배

 
고대 동아시아의 배는 바닥모양과 추진체에 따라 크게 선(船)과 박(舶)으로 나눈다. 船은 바닥이 평평하고 배 옆의 도(櫂)를 저어 전진하는 카누와 같은 형태로 강과 운하를 항해할 수 있는데, 舶은 흰 돛을 달아 바람을 이용하고 배 꼬리에 노(櫓)를 달아 전진하며 바닥이 뾰족해 파도를 해치고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배로 중국인들은 이것을 '오랑캐의 배'라고 불렀다.
 
AD1세기부터 AD15세기까지 무려 1,500년간 아시아의 동쪽 바다를 백제(유민)들은 이런 배를 타고 지배했고, 그들이 남긴 흔적은 지도에서 보듯이 동 아시아 곳곳에 남아있다. 이들은 명나라를 건국한 태조 주원장이 이전 왕조들과 달리 자신들을 명나라 지배안에 강제 편입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300년간 싸우다가 대부분 고려, 일본, 필리핀,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 등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화교로 알고 있는 이들이 사실은 중국인이 아니라 바로 명나라의 海禁政策에 대항하여 싸우다 피신해간 사람들이고 이들은 대부분 백제 유민들의 후손이었다.
 
3. 주산군도의 백제인
 
이들은 양자강 하구 항주만 입구에 있는 주산군도라는 섬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했고, 그 문화는 멀리 사라센까지 전파되었다. 9세기에 사라센 여행가인 이븐 후르다드베와 마우스디는 이 땅을 일러 "이 나라는 Syla(신라)라는 나라로 금이 많고 경관이 아름답고 땅이 기름져 모든 것이 충족된 아름다운 나라"라고 묘사했고, 10세기에 '알 이드리시'와 14세기에 '앗 다마시키'라는 사라센인은 "신라는 6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며 그 곳 주민들은 개의 사슬이나 원숭이 목걸이도 모두 금으로 만들었다"라는 기록을 남겨, 이들이 말한 신라가 통일신라가 아니라 주산군도의 백제유민들이 세운 해상왕국임을 나타내고 있다.
 
4. 나침반을 발명한 백제인
 
최근에 사라센에 나침반을 전한 것은 중국인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유인즉, 사라센어로 나침반은 Khann이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어로 나침반을 뜻하는 침(針)과는 관계가 없고 우리말 '가늘다'의 어근인 '가는'이란 말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또 명태조가 주산군도의 주민들로부터 빼앗은 항해관련 서적들을 정리하면서 '항해 관련 서적들이 모두 오랑캐 말로 되어 있어 본토인들이 뜻을 알 수 없으므로 이를 모두 새로 번역하였다'는 명사(明史)의 기록은 바다의 주인이 중국인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신라방에 신라인들이 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신라방 사람들이 '한가위'가 무엇을 하는 날인지 몰랐다는 唐書의 기록은, 그들이 바로 백제가 망하기 전부터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하던 백제의 유민들이었기에 신라인으로 불리면서도 신라인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를 몰랐던 것이라고 한다. 등소평의 해외 화교자본 유치정책이 실시된 후 화교들이 중국 땅에 들어와 최초로 한 일은 주산군도에 있던 백제인들의 절을 복원하고 여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은 화교의 정체가 무엇인지 시사하고 있다. [출처]
대칸 08/07/21 [18:08] 수정 삭제  
  어떤 책에는 "신라침반"이라고 한 것 같음 신라에서 만들었다는..
그래서 나침판이라고..
바른역사 08/07/22 [02:58] 수정 삭제  
  원래는 백제인들이 살던 곳인데,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이후 담로네트워크가 해체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백제인들이 살던 곳이 당나라에서는 신라방으로 부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백제인들의 제작한 나침반도 '신라침반'으로 불리워져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보아야 맞을 겁니다. 나침반은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도구였을 것이며, 당연히 해상무역을 했고 기술이 뛰어났던 백제인들이 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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