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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태왕의 아리수 = 한강은 일제의 조작

水名으로 본 「아리수」는 한강이 아니다

정윤훈 칼럼리스트 | 기사입력 2008/08/13 [15:23]

호태왕의 아리수 = 한강은 일제의 조작

水名으로 본 「아리수」는 한강이 아니다

정윤훈 칼럼리스트 | 입력 : 2008/08/13 [15:23]
식민사학계에게 엉터리 역사를 배운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리수 = 한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최초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사람은 맥아더가 아니고 광개토대왕이라고 한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리수 = 한강 이라는 것은 바로 일제가 조작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만큼 이 나라 사학계가 일제의 역사이론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水名으로 본 「아리수」는 분명 한강이 아니다

가. 현대 언어에 사용되는 「아리」의 용례  

아리(阿利)를 음차(音借)로 볼 때 阿里로도 쓸 수 있다.  송화강 원명(原名)의 음차(音借)가 송아리오랍(松阿里烏拉)이고 해석한 말이 천하(天河=은하수)이니 글자의 소리가 같으면 어느 것을 써도 크게 문제될 바가 없다.

※ 음차(音借)는 音假借(음가차)의 줄임말이고 다른 나라 또는 지방의 사용언어를 현재의 문자를 빌려서 적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현 중국대륙에서 Coca-Cola를 可口可樂이라 쓰고 코카콜라로 읽는 것 등을 말한다.

1) 우리의 상용어에 남아 있는 「아리」의 용례
가) 열매나 꽃 등이 잘게 한데 모여 달린 덩어리 ---- 송아리
나)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부른 그릇의 하나  ----  항아리
다) 다리 아랫마디의 뒤쪽----- 종아리
라) 짐을 일 때 머리에 받치는 고리 모양의 물건, 즉 똬리나 둥글게 빙빙 틀어 놓은 것이나 그런 모양 ----- 또아리
마) 골짜기나 산에서 소리를 지르면 잠시 후에 되울려 나는 소리 ----- 네아리
바) 古語에는 「다리」를 말하는데 「後行小아리八足大아리二足」(靑丘)에서 보듯 다)의 종아리에서 그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2) 「아리」의 적용 범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리는 둥글고 휜 것을 말하거나 사물의 형태를 형용하는 뜻과 기능이나 형편을 나타내는 용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리」를 水名으로 사용한다면 渡, 津, 泊 등의 나루터와 같은 용법의 기능적이고 지형적인 용어로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大川의 전체 水名으로 사용할 수 없는 용어이며 또 大川水名으로 사용한 예가 없다. 단지 호태왕 비문에 있다고 하나 그것은 1905년 이후 악의적인 變造犯(변조범)들이 捏造(날조)한 것을 생각 없이 誤用(오용)한 우리의 무지함이 있을 뿐이다.

나. 「아리」의 일반적 용례와 사서적(史書的) 용례
 

1) 「아리」의 일반적 용례
가) 형용사로서의 「아리」      
우리말에 알알하여 찌르듯이 아프거나 쏘는 듯한 표현을 「아리다」라고 쓰며, 정신이 분명치 못하거나 판단이 어려울 때도 사용하니 아리까리하다, 아리송하다 라고 표현한다.

나) 명사로서의 용례      
경상도 방언에서 아래, 접때, 그제 등을 「아리」라고 하고, 일시적인 눈속임의 뜻으로「아리수」라고 한다.

다) 접미사로서의 「-아리」  
어근에 붙어서 「-아리」로 쓰는데 이파리(잎+아리),주둥아리, 아가리(악-아리)등으로
작고 낮춤에 쓰이고, 옛말「아ᅀㅣ」가 변한 것으로 아지(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아기와 같이 조그만 것을 나타낸다.

2) 「아리」의 사서적 용례
가) 국어 어원 사전에서의 「아리」      
만주 東三省境에 있는 阿里門下, 阿里河 등의 예를 들어 <아리>가 水의 뜻이라는 암시를 주고 好太王비문에 나오는 엄리대수(奄利大水)를 「아리」와 비교하며, 한강을 “아리수”로 확정 표현하면서 比定(比定=비교하여 정하다의 日本式 어법)하고 있다.
그렇다면 阿利, 阿哩, 阿里, 奄利 등을 같은 말의 다른 표현으로 보았으니 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1) 만주어에 있는 水名에 송아리오랍(松阿里烏拉)이 있는데 松阿里를 天河라고 번역했다. 烏拉은 현 중국음으로  (ula)이고 만주(여진)음으로 ula또는 ura로서 江,河의 개념어이다. 따라서 송아리는 하늘 개념이 크다.
        
◎ 만주원류고 권14. p1.
松阿哩烏拉之松阿哩者卽國語天河也按速末卽混同江亦作粟末
(송아리오랍의 송아리는 즉 국어의 천하(하늘시내)이고
속말이라 하며 혼동강이라고 하고 또한 속말이라 한다.)
  
(2)「아리」는 어근  「알」의 이음절화로 시내, 하천의 개념이 분명치 않다. 오히려 만주어의 접두어로 아리는 직책이나 서신, 관계, 산 등의 관계가 크다.
      
󰃚 上申書 : alibum, 尙書 : alihaamban,
太學士 : alihəbithei,
저울판 : aliku,  받들어모시다 : alimbi, 산 : alin,
산골짜기 도랑 : alin i horo, 후회하다 : aliyambi

나) 「조선사 연구초」에 있는 단재(丹齋)선생의 「아리」이해  
삼국사기에 있는 水名을 인용하여 「...욱리하(郁利河)가 한강의 고명(古名)「아 리」임을 證하며」로 표현하여 욱리하(郁利河)를 「아리수」로 확정했다. 따라서 그 이후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한강을 아리수라고 확정했을 뿐 아니라 낙동강, 한강, 압록강 등의 모든 大川水名으로 확대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아리나례하(阿利那禮河)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다) 일본서기 권제9 신공황후(神功皇后) 신라정벌편 (정음사 간 成殷九 譯註)  
「차제 아리나례하(且除 阿利那禮河) 반이지역류(返以之逆流)...」 에 있는 註에 “아리나례하의 “那禮”는 신라의 河名, 경주의 알천(閼川), 광개토왕 비문에 나오는 백제도성하에 나오는 아리수 등을 들고 있으나 “후세에 압록강의 압록도, 또 아리와 동의어라 하고 있어서, 반드시 고유명사는 아닌 것 같다.”로 말하여 아리가 고유명사로서의 아리수가 아닌 내용이 있다. (아리수를 고유명사가 아닌 것으로 유추한 드문 註이다.)

라)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 언덕부부(阜部) 5획 “阿”에   
아리나례하(阿利那禮河) 中 “那禮は 川の 고한어(古韓語)の, 今日の압록강(鴨綠江)に 비정(比定)さる(일본서기9)”로 표시되어 있다. 단재선생(丹齋先生)은 이 일본서기를 그대로 인용하여 후학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오류를 범하도록 방조했다.

만약 아리나례하(阿利那禮河)가 옛 우리 강역 내에 있었다고 하면 이는 4음절 이상의 수명(水名)이 많은 만주, 내몽고, 감숙성 등지에 있는 토어(土語)의 음차수명(音借水名)일 것이다. 현재 우리 강역이나 현 중국대륙의 중심 水名에 4음절 이상의 水名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 만주원류고에 나타난 만주(여진)어에서 물과 관계된 말과 하천(河川)을 뜻하는 말
(1)  물        : mukə           水
(2)  샘        : shəri
(3)  계곡      : alin i horo
(4)  개울,시내 : birgan          물근원, 원류
(5)  천(川)    :  bira           강보다 작은 하천, 즉 지류(支流)
(6)  江, 河    : ula 또는 ura    bira보다 큰 강, 즉 본류(本流)
               ※ 오랍(烏拉)은    ula 우라로  만주어 음차어이다.
(7)  호수, 못  : omo
(8)  늪, 호수  : tengin
(9)  토문강    : tumən ula
(10) 水源      : sekiyen
(11) 우물      : hŭchin
(12) 냇가, 강가 : dalin
이상에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만주어에서는 아리를 수명의 어원으로 단정할 수가 없다. 土語의 음차명을 간과했다 할 것이다.

3) 아리(阿利,阿里,阿哩)와 水와의 관계
가) 아리도 수명이라는 주장  
국어어원사전에 “아리는 물의 뜻이다. 아리수의 水는 강이름에 붙는 말이다”라 하여
아리가 水의 뜻이라고 하여 아리의 본 뜻이 물이라고 단정했다.

나) 일본서기에서 나례(那禮)가 신라의 하명(河名)이라 한 것을 아리(阿利)라고 보았다.

다)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에서 나례(那禮)는 川의 고한어(古韓語)라고 주 (註)한 것을
阿利로 비정(比定)했다.

라)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에 아부(阿部)에 아리(阿里)가 나오는데, 그 아리(阿里)는 지명(地名, 인명(人名), 직명(職名) 등에 쓰였으며 水 개념이 없다.

마) 아리는 「알」의 2음절화 용어이다.
다시 말하면 아리에서 알로 변한 축소형이 아니고 알에서 아리로 2음절화된 것이다. 아리의 어근 알은 閼 또는 遏로 표기할 수 있고 우리 사서에 閼川, 閼英 등으로 그 흔적이 보인다.

바) 아리(阿利)도 물이고 나례(那禮)도 물이라면 아리나례하(阿利那禮河)는 水+水+水의 이상한 水名이 되니 수명작법(水名作法)에 맞지 않는다.

4) 「아리, 수리, 고마」에서 살펴 본 「아리」에 대하여 
“아리는 아리랑의 아리, 산울림이라는 메아리의 아리 압록강, 송화강, 한강과 같이 긴 강의 본 이름인 阿利水의 아리 등에서 유래한다”고 했는데, 이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리는 물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쓰임새가 있음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그 다양한 표현이 아리수에서 유래했다고 단정적 주장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고개의 아리랑도 되울림의 메아리도 물에서 파생된 파생어로 단정하고 있으니 말의 비약이 심한 듯하다. 이는 물의 뜻 아리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어근에서 고개, 되울림, 水 등으로 引伸되는 것이다. 아리○, ○아리는 언어의 생성원리대로라면 단음절어인 「알」에서 접두어, 접미어가 붙은 다음절어로 분화하여 다양한 뜻을 갖게 되었다 할 것이다.
  
고대 언어일수록 음절이 짧고 현대어로 올수록 다음절어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단순한 말, 단순한 思考에서 복잡한 말, 복잡한 사고(思考)로의 전이(轉移)를 나타내는 것이다. 어느 언어에서나 어근이 있으며 접두어, 접미어가 한 편이나 양편에 붙어서 보다 복잡한 개념을 나타내며 계속해서 그 개념의 범위를 넓히는 법이다.

「아리」의 생성 추정 지역과 아리의 원형인 「알 ․ 閼」의 추정 본 뜻은 (라)항 古代 “알”, 즉 “아리”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더 세밀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다. 그렇다면 「아리」는 어떤 말일까?  

앞에서 「아리」(阿利, 阿哩, 阿里)는 물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순수한 물 개념이 아님을 살펴보았다. 물론 川水, 川河, 江水, 水河 등의 복수형 수명(水名)이 있으나 그것은 모두 분명한 물 개념을 갖고 있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리>는 동언고략(東言攷略)과 20세기 초에 나온 조선어사전에도 「아리」의 「물」개념은 물론 아예 독립된 단어조차 없다.
  
「아리」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蛇行川(사행천)에서 둥글게 휘어진 곳을 「아리」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背山臨水形(배산임수형)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 예외가 없고 물길이 휘어드는 곳에서는 수렵이 용이하여 일찍이 마을이 형성되었다. 만약 「아리」를 水名으로 사용한다면 모든 大川, 支流 등에 어디든지 있는 기능적이고 지형적인 공통수명(共通水名)일 것이다.

大川이나 支流의 전체 명칭이 아닌 사행천 곳곳에 있는 ○○아리(수) 등으로 부분적인 명칭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강과 같은 본류(本流)의 大川水名으로 阿利水를 쓸 수 없고 또 한강의 古名일 수가 없다. 「아리」를 적용할 수 있는 예를 들자면 광장동의 廣津, 송파의 三田渡, 국립현충원의 銅雀津, 양천구의 楊花渡, 옥수동의 東湖 등과 같이 지극히 기능적이고 제한적일 것이다.

서울상수도본부에서 굳이 아리수를 음용수 로고로 사용한다고 하면 「阿里水」로 하되 그 음용수 취수장 명칭을 아리진(阿里津)으로 名命하여 지도에 표시하고 「阿里取水場」으로 등록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리취수장에서 취수하여 정제된 물은 당연히 「阿里水」가 될 것이다.

라. 古代 「아리」로 추정되는 지역

<도표 3>  수산준천도 「아리」의 추정 지역 



▲    고지도인 수산준천도 상의 아리수는 어디일까?

 모든 사물이나 사건, 용어들은 그 발생 연원(淵源)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아리」의 시원(始原)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에 대한 명문(明文)도 없고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나 기록이 없다 보니 증거를 찾을 수도 없고, 밝힐 만한 어떤 자료도 마땅치 않다. 그러나 소전(小篆)이 규정된 지가 2,200여년이 되었고 서글(書㓞, 귀갑문(龜甲文))의 발생시기가 6,000년이나 되었으니 그 흔적이 없을 수 없다.

또한 우리 조선(祖先)이 섬겨온 최고신(最高神) 「한」이 여러 모양의 말로 활용된 것처럼 「알」,「아리」또한 여러 모양의 활용어로 우리 말, 글에 녹아 있어 그 흔적을 찾아
「알」의 2음절어인 「아리」의 고향을 추론하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일뿐더러 「아리수」논쟁의 해결책으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먼저 발생하고 그 후에 지사문(指事文), 상형문(象形文), 회의문(會意文)과 형성문(形聲文) 순으로 발전하였으며 말(言語)과 글(㓞)이 상호 작용하여 지금의 우리말이 정립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소리)이 글자로 남아 있는 가 하면 글자가 말(소리)로 굳어진 것도 있어서 진실을 찾아 명명백백하게 증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요하므로 다만 추론(推論)하여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지금까지 여러 사전이나 사서, 어원 등에서 거론된 “아리(阿利), 아리(阿里), 알지(閼智), 알천(閼川), 알영(閼英), ○아리, 아리○”는 먼저 「알」또는 「아리」가 어떤 지형 또는 어떤 사회성과 관계가 있다할 수 있겠으며, 그 후에 다른 품사(品詞)로 확대 활용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알」 또는 「아리」에 대해 두가지 측면에서 추론하여 본의에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그 하나는 지형과 관계가 있을 것이니 지형 용어로서이고, 두 번째는 물과 관계가 있다 하여 생긴 논쟁이니 물과 연관된 용어로서 상고할 필요가 있겠다.
  
인류(人類)는 끊임없이 이동(移動)해 왔다. 그 이동 장소에 흔적을 남기고 또 이동하여 흔적을 남기는데, 그 흔적 중에 지명, 수명, 말, 풍속, 습관, 용구 등이 있으며, 역사가 증명하고 유물과 고고학이 증명하고 있다.
  
먼저 우리는 문명(文明) 이동통로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양문명은 황하(黃河 = 황하 중하류)가 그 발생지라 하나 시원(始原)은 우리의 조선(祖先)이 황하에 정착하기 이전에 빙하기(氷河期)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산(天山 = 현 중국대륙 신강성 소재)에서 감숙성을 통로로 하여 황하 상류인 서하(西河) 부근에 정착했을 것이다.

그곳은 옹수(雍水)와 한수(漢水)가 강,하(江,河) 지류로서 흘러드는 곳으로 일찍이 치수(治水)가 시작된 곳이다. 그곳은 옹알(雍閼) 지역으로 서경(書經)에 「흑수서하유옹주(黑水西河惟雍州)」로서 「진경(섬서성봉상현)(秦京(陝西省鳳翔縣))」이 있는 곳이라 했으니 옹(雍) 땅은 고대 우왕(禹王) 때 구주(九州)의 하나로 섬서성, 감숙성, 청해성 일대의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도표3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황하가 휘어드는 곳이다.

◎ 옹수(雍水) : 源出陝西鳳翔縣西北雍山下東南流經岐山縣西爲湋水... 
현 중국대륙 섬서성 봉상현 서북쪽 옹산에서 근원하여 동남 방향으로 흐르다가 기산현 서쪽을 경유하여 위수가 되고....(위수는 황하로 흘러든다)

◎ 한수(漢水) : 源出陝西寧羌縣北之嶓冢山亦曰東漢水初名漾水東流爲漢東南經沔縣爲沔水始爲漢水 ....  
섬서성 녕강현 북 파총산에서 근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한수라고 하는데, 처음 이름은 양수였다. 동남쪽을 경유하여 면현으로 흐르는 물을 면수라고 하는데 여기부터 비로소 한수라 한다....  (한수는 양자강으로 흘러든다.)

이제 글자(㓞字)를 살펴보면 옹수(雍水)가 있는 이 옹주(雍洲)의 옹자(雍字)는 「정자통(正字通)」에 옹(邕), 옹(雍), 옹(雝), 옹(壅), 고구통용(古俱通用)이라 하여 같이 쓰는 글자이므로 고자(古字)인 옹자(邕字)를 찾아 옹(雍)의 뜻을 새겨 본즉 “하수불류(河水不流=하수가 흐르지 않음)”라 설명했다. 또 수경주(水經註)에는 사방유수왈옹(四方有水曰雍)이라 하여 옹(雍)은 4면이 물로 둘려싸여 있는 지형이 분명하다 하겠다.

그리고 주례추관사구옹씨주(周禮秋官司寇雍氏註)에 위제방지수자야(謂隄防止水者也)라 하였으니 제방을 쌓아서 물이 흐르지 못하게 한 곳이며, 설문(說文)에 옹(雍)은 거(渠 = 도랑, 즉 해자(垓字))라 하였으니 외적의 침입을 경계하여 파 놓은 성 밖(성외(城外)) 사방의 해자(垓字)를 말함이다.

여기에서 인신(引申, 활용되어)하여 범사면유수개왈옹(凡四面有水皆曰邕)이라 하고
그 지소다유인공소위(池沼多由人工所爲)라고 하여 자연적인 소택지(沼澤地) 외에 인공적(人工的)인 소택지(沼澤地)를 두루 말하게 되었다.
  
옹자(雍字)를 살폈으니 이제 옹알(雍閼)의 알자(閼字)는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자.
알(閼)은 설문(설문)에 차옹야(遮 雝也 = 가려서 막음의 뜻)라 설명하고 차(遮)는 알(遏)이고 옹( 雝)은 포(袌) 라하여 「막아서 안고 있다」는 뜻이니 물이 휘어드는 곳을 막아서 감싸안고 있는 듯한 지형을 말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알(閼)과 옹(雍)은 서로 다른 말이긴 하지만 「호환(互換)되는 뜻이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옹(雍)과 알(閼)은 거주성곽(居住城郭)의 지형과 수세(水勢)를 아울러 표현한 고대어(古代語)의 화석같은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옹알(雍閼)을 살폈으니 「알」의 2음절어인 아리(阿里)는 어떤 뜻일까? 전장(前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만주어에서 아리(阿里)는 물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접두어로서 산속의 도랑을 alin i horo 라 하여 물과 관계된 희미한 어휘가 있을 뿐이다.

앞서 옹알(雍閼)의 예에서와 같이 아리(阿里)도 알(閼)과 같은 뜻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아리(阿里)를 훈(訓) 하여보면 아(阿)는 큰 언덕, 산비탈, 산기슭, 냇가, 물가의 뜻을 가지고 있고 리(里)는 마을, 촌읍(村邑), 속, 안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를 조합하여 억지로 아리(阿里)를 말한다면(도표2참조) 촌읍(村邑)의 지형(地形)들을 말한다 하겠다.

그리고 형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아리랑을 말할 때 금방 고개를 떠올리게 되고, 아리다 할 때에는 심신이 불편함을 말하게 되는 것은 「아리」, 즉 터전을 상실했을 때의 흔적이 그 말에 작용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생각할 수 있다.  서글(書㓞)은 조자원리(造字原理)로 보아 그 소리와 字形에 뜻을 담고 있으며 수천년이 지나도 본의(本意)를 지니고 있는 문자(文字)이다.
다만 인신(引伸)되어 수 많은 파생어를 가질 수는 있으나 그 본의(本意)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니 고대(古代)의 본음의를 살피면 본음(本音), 본의(本意)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阿里)는 거주(居住)나 지형(地形), 촌읍(村邑), 수(水)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이 추론(推論)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水)와 관계가 있다하여 대천수명(大川水名)이 될 수는 없다.
  
옹(雍), 알(閼), 아리(阿里)에서  추론(推論)한 바에 의하면 「아리」는 감숙성 옹(雍) 땅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推定)되며, 우리 조선(祖先)이 신천지(新天地)를 전전(轉轉)하며 뿌려놓은 「아리」의 흔적이 여러 모양으로 우리 주변에 맴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아리(阿里)가 접두어(接頭語)로 남아 있는 옹(雍) 지역에 있는 지명을 예로 들어 옹(雍), 알(閼), 아리(阿里)가 실재(實在)했고 만주까지 이동되었음을 보이고자 한다.
  
① 「아리(阿里)」在西藏西部 : 「아리(阿里)」 현 티벳 서부에 있다.

② 「아리극토사(阿里克土司)」在靑海東南境黃河左岸
   「아리극토사(阿里克土司)」현 중국대륙 청해 동남 지경 황하 왼쪽 연안에 있다.
      
※ 아리극토사는 토어(土語)의 음차(音借)로서 지명(행정구역명)이다.

이 「아리」에 대하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고 남의 장단에 놀아나는 어릿광대놀음이 아닌 스스로의 흥에 겨워 흥기하는 「우리」여야 할 것이다. 이 옹,알 지역은 아마 「알」,「아리」의 시원지(始原地)일 것이고 「아리랑」의 시원지(始原地)일지도 모른다.


결어(結語)
상수도 사업소에서 유일한 근거로 내세우는 호태왕비문 탁본은 40여개가 현존하는데 1905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은 阿利水 탁본이 없고 1905년 이후에 나타나는 阿利水 탁본은 날조되었다는 증거가 분명하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아리수」가 한강? 이라는 증거는 변조된 탁본 외에는 없으며 「아리」라는 용어가 대천수명(大川水名)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할진대 「아리수」사용은 불가하다.

작명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조선(祖先)은 「名」을 귀하고 중요하게 여겨 별칭으로 「字」와 「號」를 썼고, 세상을 떠난 후에는 시호(諡號)를 사용하여 「名」을 대신하였으니 그만큼 이름 짓는 것을 신중히 했음을 보여준다.오늘날 강상(綱常)의 법도가 무너져 신종 창씨개명(創氏改名)이 몰각하고 천박한 일부 식자층에서 시작되었다. 옛 법을 깨부수는 것이 진보인 양 법을 개악(改惡)하는 무리들이 권세를 탐하며 붓을 업으로 하는 언론(言論)도 직필연(直筆然)하나 조부(祖父)를 욕보인 김삿갓과 다를 바 없으니 오늘날 이 땅에 지성을 말할 자가 어디 있는가!
  
이름은 「얼」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그 쓰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삼천리금수강산(三千里錦繡江山)이라고 쓰는 한 우리는 일본 열도인들의 음모에 걸려들어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 우리 땅은 영원히 상실될 것이며, 삼천리(三千里)라는 국토사관에 억류되어 소국인(小國人=앉은뱅이)이 될 것이다. 대륙(大陸)을 바라보자! 좁은 땅덩이에 앉아 있어도 우리의 기상은 대륙에 거할 것이다.

일제가 조작한 광태토태왕 비문 ‘아피수(阿被水) → 아리수(阿利水)

탁본비교연구대조결과, 1884년부터 1905년까지 비문 2면 삼행 32~35자는 모두 도아피수(渡阿被水)로 해석이 되었는데, 1905년 일제가 비문에 석회를 발라 아리수(阿利水)로 변조하여 우리역사를 날조하는데 사용하였다.

한강은 아리수가 아니다.

(1) 1905년 이전에는 아피수(阿被水) 였다

▲  여러 학자들이 본 광개토비문 글자

(2) 일제가 석회를 발라 조작한 비문 아리수(阿利水) (비때문에 석회가 흘러내리고 있다)


중립사학 08/08/13 [16:32] 수정 삭제  
  alin holo는 계곡이라는 말이 아니라...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alin은 산山이란 뜻이고
holo가 계곡이라는 뜻이죠.
alin holo라고하면 산계곡이란 뜻입니다.

저것만 보면 alin이 "아리"라고 오해하기 쉽상입니다.
중립사학 08/08/13 [16:45] 수정 삭제  
  欽定元史語解卷十一
阿里, 回語大也
아리, 돌궐족말로 크다는 뜻이다.

돌궐족 사는 곳에 가면 아리수는 大水입니다.

국수주의사학자들은 백제가 하북에 있다고 하니...
고구려 내몽골부근에서 하북으로 내려가다보면 돌궐족이 있을수도 있지요.

백제가 한반도에 있다면 말이 안되지만,
백제가 저기 중국땅에 있다면 아리수는 大水가 됩니다.

공부좀 더하셔야겠군요.
역사21 08/08/13 [17:37] 수정 삭제  
  식민사학이 일제 식민사학이 있었고,
지금은 중국이 식민사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역사를 깔아뭉개고,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 난리지요.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신라사와 백제사를 중국사에 넘기고 싶은가요?
중국인들이 이제 한국의 사이트에까지 파고들어서
교묘히 민족사학이라 위장해 활동하는 것아닌가요?
성훈님,
당신이 진짜 한국인 맞습니까?
대한국인 08/08/14 [00:52] 수정 삭제  
  역사 21은 식민사학계가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만든 싸이트로서, 현재 국사 교과서에 나와있는 망국의 반도사관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그런 싸이트에서 활동하는 인간들이 들어와 헛된 말을 지껄이고 있습니다. 일제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사광복을 위한 독립운동하는 민족사학을 파괴하기 위해 별의별 나쁜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려.
중립사학 08/08/14 [01:29] 수정 삭제  
  논리적으로 말하면 식민이고
무식하게 우기면 민족이냐?

사실은 반대이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민족이고, 무식하게 우기면 식민이다.

내가 위에 돌궐족에서 "아리"는 大의 뜻이라고 썼으니 반론하기 바란다.
이제 "아리"가 大라는 뜻이라고 말해줬으니 광개토대왕비 "아리수"는 조작되었다는 말은 더이상 안나오겠구만..... 하하.
이제 백제가 돌궐족 남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올것이다.
역사21 08/08/14 [01:52] 수정 삭제  
  엉터리 논리로 중국동북공정에 적극협조하시는 성훈씨..
그리고 그 논리가 맞는 줄 알고 따라다니는 찌질이들..
정신 차리셈.
당신들이 바로 매국노로 직행할 분들.
그리고 역사공부 좀 제대로 하세요.
현장에서 비문 하나 제대로 볼 줄 모르니 삼국이 중국에 있는 겁니다.
10년전에 유행하던 또라이 논리를 자랑스럽게 언론에 싣다니...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당신들이 바로 식민사학입니다.
나라역사를 통채로 중국에 팔아넘기려는...
반도라면 08/08/14 [06:32] 수정 삭제  
  아리수니 아피수니 판독된거 보여주지 말고...

광개토왕비 부분 중에 아리수가 아피수로 나오는 탁본을 보여주쇼.
그래야지 뭘 알거 아니오.
중립사학 = 역사21 = 왜구 간첩 08/08/14 [10:44] 수정 삭제  
  중립사학 = 역사21 = 왜구 간첩
망나니들을 상대하지 마시길...
그리고 가능하면 망나니들의 댓글을 삭제해주세요. 정말 보기 역겹습니다.
중립사학 08/08/14 [13:56] 수정 삭제  
  반론은 안하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것은 무당사학이요.

저기 흠정원사어해를 인용해
"아리"가 大라고 이야기해줬거늘...
뭔쓰레기같은소리를 해대는지 모르겠구만.
반론을 하시요. 욕하는 자는 무당사학이오.
역사21 08/08/14 [16:46] 수정 삭제  
  너는 지금 민족사학하는줄 알고 잇지?
너가 지껄이는게 바로 식민사학이야.
뭘 모르면 다른 분들이 이야기하면 잘 듣고 배울 생각을 해야지.
뭣도 모르면서 식민사학이라 지껄이느냐?
식민사학이 바로 역사팔아먹는 짓인데
당신이나 당신이 좋아하는 성훈이나 그런 사람들이 중국에 지금 역사를 넘기려 광분하는 거 아니냐?
그것도 뭘 잘 몰라서..
에라이 식민사학놈들아..
플러스코리아 08/08/14 [18:30] 수정 삭제  
  무슨 신문사가 이렇습니까? 소설쓰고 자기주관만 주장 필역하는 신문사?
차라리 아고라나 포털 자유계시판으로 바꾸심이 어떨지..ㅎㅎㅎ
독립군 08/08/15 [11:02] 수정 삭제  
  일제의 악행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가면 왜 이렇게 흥분하는 분들이 많은지요?
참으로 우리나라에는 친일파가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은 다시 일제치하가 오기를 고대하나 봅니다.
쁑쌴 08/08/15 [12:08] 수정 삭제  
  아리수가 조작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도 않다.
아리수가 阿被水의 조작이라면...阿被水라고 보여지는 탁본을 보여봐라.
뭐든 왜놈이 조작했다면 진위를 묻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은체 무조건 왜놈이 조작했다고 몰아붙이는 비과학적이고 원시적인 행동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증명해보이자는데, 증명해보이자는 사람들을 친일파라고하는 것은 더 멍청한 짓이다.

생각해봐라.
과학적으로 증명하면 세계에도 알릴 수 있다. 왜놈들의 못된짓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것이다.
그런데 저리 탁본도 보이지 않고 비논리적인 방법으로 위작이라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 뻔하다.

阿被水라고 되어 있는 탁본을 보여봐라.
독립군 08/08/15 [13:35] 수정 삭제  
  미리 떠 놓은 탁본은 없다.
일제가 회칠해 글자를 조작한 후의 탁본은 있다.
이전 탁본이 없다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는 놈은 친일파가 아니고 완전 쪽바리이다.
비가 오자 비에서 횟물이 흘러 내리는 사진을 보지도 못했냐? 이 쪽바리야.
쁑쌴 08/08/15 [14:11] 수정 삭제  
  먼저 인간이 되거라.
그렇게 쪽바리로 밀어붙이면 네 주장이 정당화될것 같냐?
하하 오산이다.
쁑쌴 08/08/15 [14:15] 수정 삭제  
  사람말을 아주 이해 못하는구나...어쩌면 그렇게 될 수 있어?
나도 그렇게 한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내말 잘 듣고 이해하도록 노력해봐.
머리를 질끈 동여메고... 어여~~~


阿被水로 판독한 사람이 있다고 했지? 그렇지?
그러면 阿被水로 판독한 사람이 본 탁본을 보여달라는거야 알겠니?
너희가 보여준 저 횟물 질질 하르는 것은 분명 아리수로 되어 있어. 너도 보이지?
그러니 너희가 주장하는 阿被水라고 되어 있는 탁본을 보여달라는거야... 알겠니?

이 말은 이해되니?
안되나? 되나?
이해되면 "예~~"하고 대답해봐. 뛧찌.
공부하자 08/08/16 [09:30] 수정 삭제  
  언어.풍습은 이동에 따라 정착되고 변경되기도 한다.고대사의 주역은 동방족(한반도-만주인들=한국인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예컨대, 성서에 나오는 '시내'산도 우리 말 시내에서 온 것이다..1만년전의 언어라는 인도의 드라비다어도 한반도 사투리들이다..인도의 범어 산스크리트어도 고대 한국어다.즉, 한반도어는 세계어의 조상어다. 아리수는 2만년 전 중국과 한반도가 육지로 붙어 있을 때 중국의 황하강물과 백두산에서 흐르는 압록수가 만나서 제주도까지 지금의 서해(당시 평야)를 관통하던 거대한 강을 의미한다. 따라서 당시 서해평야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바다가 되면서 흩어지면서 정착한 곳의 강들을 아리수라 명칭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지금의 한강도 아리수맞다. 초기온조백제가 한반도 서남부지역에 위치한 마한지역에 속했으니 발해만에 있던 어하라(비류백제)를 비류에게 왕위를 넘기고 온조와 함께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지금의 인천(소래=미추홀=소서노가 들어오다.고추모가 주다)으로 들어와 경기도 일대를 장악하고 한강이남에 도성(풍납,몽촌토성)을 쌓으니 십제다. 이 한성이 광개토태왕의 수륙양면작전으로 포위되어 결국 항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강동 한강변에 거대한 전방후원분들이 바로 일본천황가의 고분의 기원이 되는 온조백제의 고분들인 것이다. 문헌과 고고학도 제대로 이해못하는 자들이 역사역구한다며 한반도의 위상을 실추시키며 중국 동북공정에 적극 동조하는 미친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알아도 의도적이라면 명백한 목적이 있는 세력이다.
독립군 08/08/16 [13:53] 수정 삭제  
  일제와 이병도의 이론을 답습하는 '공부하자'님은 식민사학의 추종자로 보입니다.
광개토태왕이 인천상륙작전을 했다고?
조수간만의 차가 그렇게 심한 곳에서 그 옛날 상륙작전이 가능했나? 관미성을 강화도로 보는 것도 식민사학이다. 호태왕은 한반도에 온 일이 없소이다.
호태왕의 염수는 감숙성이고, 토곡은 티벳이라고 하오.
개돌 08/08/16 [22:06] 수정 삭제  
  뭐가 식민입니까?
공부하자야말로 단군조선 중심사학이군요.
이런사학이 어떻게 식민사학이요?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자도 당신한테는 식민사학자로 보이오?
참 별나구려. 한반도에서 사는 것이 챙피한 것이 아니오?

조수간만이 심하면 상륙작전이 불가능하오?
광개토대왕때 조수간만의 차이도 읽지 못할만큼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오?
우리민족 고대역사가 미개한 역사라고 보는 이야말로 식민사학이오.




뭐가 정말 식민사학입니까? 맞춰보시죠.

1)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조수간만의 차이도 읽지 못할만큼 무식하였지만, 칼싸움은 잘하여 땅만 무자게 넓었다.
2)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땅도 넓었을 뿐만 아니라 조수간만의 차이를 잘 예측할 만큼 과학도 발전하였었다.

나는 1)이 식민사학이라고 보여지는구려.
1)은 오랑캐역사이고. 2)는 문명인의 역사라고 하오.




독립군은 우리 모든 역사를 중국땅에 심어놓고 급기에야 모든 역사를 넘기려하고 있소이다.
광개토대왕도 짱깨식으로 호태왕이라 부르는구려.

광개토대왕이 조수간만의 차이도 예측못할만큼 미개한 임금이라고 낮추고 있습니다.
독립군 08/08/17 [01:08] 수정 삭제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백제의 수군기지(관미성)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곳이며, 상륙작전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6.25 때 북한이 인천으로는 연합군이 상륙작전을 못한다고 판단하여 방비를 허술히 했다가 맥아더 장군에게 허를 찔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서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은 강력한 수군을 양성하여 수륙양공으로 20여일간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여 난공불락의 천연요새를 함락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인천 앞바다는 수군이 공격을 할 수 있는 지형이 아닙니다.

밀물 때 수군을 상륙시키고 썰물 때 배는 바다로 다시 나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시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인천 앞바다는 수심이 얕아 배를 육지에 접안 시킬 수가 없는데 어떻게 상륙이 되느냐? 당시에는 해군의 상륙정인 L.V.T도 없었는데...수나라가 고구려 침공할 때 요하를 건너기 위해 설치한 부교의 길이가 약간(약 5-10m) 모자라 강을 건너지 못해 고구려 군에게 참패를 당했는데....

하물며 강도 이럴진데 밀물 때도 접안이 힘든데 바다를 상륙한다? 그것도 인천 앞바다를?" 한 번 가능한지 실험을 해 볼까요!

그리고 설사 기발한 방법으로 상륙을 했다고 칩시다. 밀물 때 수군을 상륙시키고 썰물 때 배가 먼 바다로 나가면 상륙부대는 퇴로가 끊겨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친 격인데 전술에 능한 광개토대왕이 이런 무모한 전법을 썼다고 보시는지? 배수의 진이란 수비하는 쪽이 열세일 때 옥쇄를 각오하고 죽기로 싸우려고 할 때 쓰는 진법인데 전력상 우위에 있는 광개토대왕이 그 작전을 쓴다? 그건 말이 안되죠. 이런 간단한 이유로도 오추산성이나 강화도가 관미성이라는 것은 맞지않는다고 봅니다.

나 해병장교 출신이요. 상륙작전이 어떤 것인지 잘 압니다.

개돌 08/08/17 [11:11] 수정 삭제  
  독립군 당신의 생각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더라도..
맥아더 장군은 성공했고, 광개토대왕도 성공한 것이외다..
임금은 아무나 하고, 원수는 아무나 하는 줄 아는가?
일개 해병장교(중위?)자신의 생각에 안된다고 생각하여 광개토대왕의 군사작전 능력을 폄하하지 마시오.
딸딸이 08/08/17 [19:17] 수정 삭제  
  너들끼리 놀아라제발..
병슨 08/08/17 [21:47] 수정 삭제  
  특별한 내용도 없이 이런저런 궁상들을 긁어모아서 엄청난 주장을 하는 작자의 상판을 보고싶다 얼핏보면 아리수가 한강이 아니라 섬서성과 몽고까지 끌고가는 작자의 장난질로 그가 매우 민족사학의 진취적인 주창자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별다른 입증의 여지도 없이 한 건 터트리고 보려는 속물적 근성의 위인이다 병신들아 지도에서 적당히 뒤져 대충 엮어 역사가 완성된다면 역사란 학자의 영역이 아니라 몽상가의 영역이니라 역사를 논하기전에 논리부터 배워라 병슨아
만화 08/08/17 [21:56] 수정 삭제  
  아리수를 섬서성의 옹수나 몽고 쪽으로 끌고 가는건 조타 근데 이에 합당한 증거는 개뿔 있냐 역사가 도박이냐 병슨아
독자 08/08/18 [01:14] 수정 삭제  
  지도와 사서의 근거와 사진을 보여 주었으니
이번엔 그렇개 말하는 당신이 그렇지 않다는 근거를 내놔 보시기를....
별의별 광우병걸린 소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누만...
사산 08/08/18 [03:37] 수정 삭제  
  사산도 없는 것이 무슨 증거냐 소설이지.
사산이나 찾아봐라. 같지도 않은 증거는 무슨... ㅋㅋ
중립사학 08/08/18 [14:52] 수정 삭제  
  저위에 아리수는 돌궐말로 大水라고 했는데 뭔소리들을 하시나...
지나가다 08/08/20 [10:16] 수정 삭제  
  아리의 용례를 보니...
둥글다는 표현의 알이 생각나는군요...
아리수라면 순우리말 둥근(알)물 이런 느낌이 팍 옵니다..
알이라면 왕일수도 있고요 왕궁근처의 물(강) 이런거 아닐까요..?
왕궁을 휘감으면서 흐르는 강일수도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일본어 08/08/24 [03:24] 수정 삭제  
  어떤 일본인 학자는 일본어가 고구려어의 뿌리를 두고있다했습니다.
아리
개뿔 08/08/24 [23:29] 수정 삭제  
 
아리수가 한강이라고 주장하면 식민사학자이고, 중국 서쪽 대륙에 있다고 주장하면 주체사학자가 되나요?

백제, 고구려가 중국대륙에 있다면 백제사, 고구려사가 한국고대사가 될 수 있나요?
백제인, 고구려인, 광개토왕도 중화족이 되고,

아예 한국사를 중국에 갔다바쳐라!!
한국사 말살시키고 중국사에 포함시킨다고 중국에서 상이라도 줄 것 같소?

이것도 글이라고.. 쯧 쯧
개뿔 08/08/25 [22:04] 수정 삭제  
 
고구려가 중국 섬서성 방면이나 내몽고 방면에 있었다면 아래 비문 한 번 해석해 보시오.
광개토왕이 수군 수만명을 이끌고 백제 지역 공격한 곳이 어디인가요?

「百殘新羅舊是屬民民 由來朝貢而0 以辛卯年倭來渡 破百殘00新羅 以爲臣民以 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伊殘國 軍南進..中略..其國城0不0義敢出00 王威赫怒渡阿利水 遣刺迫城00000便國城 百殘王困逼 獻0男女生九一千人細布千匹 殘王自誓 從今以後永爲奴客 太王恩赦先迷之愆錄 其後順之誠 於是 取五十八城村七百 將殘王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廣開土王碑文 永樂六年條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옛날 어른말 하나 그런것 없어요.
쯔쯔 08/08/28 [23:17] 수정 삭제  
  당신은 수군이 무조건 바다라고만 생각하시나... 정말 심각하시군.. 중국은 역대나라들이
수군을 잔뜩 만들었다. 결국 수군은 바다가 아니라 강일꺼라는 생각을 왜못하는가.
게다가 옛중국의 나라들의 수군을 강에서 싸운다던데 ?? 고구려가 바다건너 백제를 공격했다는 증거가어딨는가? 당신이 퍼온 비문에도 王躬率水軍
개뿔 보셔 08/09/17 [15:15] 수정 삭제  
  식민적으로 우리 한민족 역사를 우롱하지마셔....수군은 강보다 바다를 많이 이용한 것이 백제나 고구려그 이전인데 무슨 잠꼬대셔.................우기지말고 강에서 싸운 일이 얼마나 있나 지금 발해만도 강인감 서해도 강인감 대륙도 보면 강인 강이 별로 없더만 그 좁아터진데서 수군 일만 백만을 집어처넣고 싸웠더 아주 역사 왜곡을 잘하는
꾼 이로군이셔........무슨 한자를 그리 많이 알기에 한문이 가짜 퉁국 글인줄아나

한민족 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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