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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 없어져야할 서울의 '동묘' 관우상

동묘 자리에 만고의 진정한 군신인 우리의 치우천왕을 모셔야 한다

성훈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8/09/03 [13:24]

불타 없어져야할 서울의 '동묘' 관우상

동묘 자리에 만고의 진정한 군신인 우리의 치우천왕을 모셔야 한다

성훈 칼럼니스트 | 입력 : 2008/09/03 [13:24]
본 글은 아래 3부작의 마지막 (3부)입니다.
(1부) 적벽대전, 역사적 사실인가 허구인가?
(2부) 삼국지연의는 역사서인가 소설책인가?
(3부) 불태워 없애버려야 할 동묘의 관우상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전철역인 ‘동묘(東廟)’ 역에는 이상한 건축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보물 제142호인 동묘라는 건물인데, 동묘 전철역을 오가는 행인들에게 “동묘가 어떤 곳인지 아느냐?”하고 물으면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인근에서 장사를 오래한 사람들만이 동묘가 누구의 사당인지 알고 있을 뿐이다. 

사당 묘(廟)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분명 동묘는 누군가를 모신 사당임에는 틀림없다. 동묘는 과연 누구의 사당일까? 동묘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인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혹자는 왜 중국 장수인 관우의 사당이 서울에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아래 글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듯이, 동묘는 약소국가인 속국(屬國)의 비애가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   약소국가인 속국의 비애가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 동묘의 위치도

아래 글은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민족사문화콘텐츠과 한재규 교수의 저서 “귀신이여 이제 대로를 활보하라”중에서 인용한 글이다. 참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아픈 우리역사의 한 단면을 제대로 지적한 글이다.

없어져야 할 서울의 동묘(東廟)

서울의 동대문과 신설동 사이에 단기 3953년(1620년)에 창건한 동묘(東廟)가 있다. 이 동묘는 동관왕묘(東關王廟)를 줄인 말로 곧 관우의 무묘(武廟)이다. 관우란 나관중이 쓴 <삼국연의>라는 소설의 여러 등장인물 가운데 촉(蜀)나라 장수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삼국연의>란 책은 <삼국지>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역사소설이다.

지나인들의 특이한 재능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재능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침소봉대(針小棒大)이다. 곧 바늘만한 것을 몽둥이만한 것으로 과장 표현하는 것이다. 엄연한 정사(正史)에서의 인물도 그들 특유의 춘추필법으로 왜곡.날조하는데, 소설에서 그 인물을 과장하는 것  쯤이야 아마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웠을 것이다.

명나라 황제 신종이 조선에 관우의 사당을 짓기 위해 내탕금 4,000냥과 '현령 소덕왕 관공지묘(顯靈昭德王關公之廟)'라고 쓴 친필 액자를 보내왔다. 그때 만세덕이라는 자가 와서 관왕묘를 지은 것이 바로 지금의 동묘이다. 그 무렵 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인데다가 임진왜란 때 명나라로부터 크게 도움을 받은 터라 반대할 입장이 못 되었다.

그 뒤부터 무과 급제자와 출정하는 무관들에게까지 의무적으로 관왕묘를 참배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관왕신앙이 번져 북관묘와 남관묘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은 곧 그 무렵 소중화를 자처했던 유교 사대주의자들이 명나라 황제 신종에게 관왕 모시기를 주청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유교를 신봉했던 그 무렵 사대부들이 도교의 관왕에게 참배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철저한 존화 사대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지배계층이었던 그들은 영원한 지나의 주구가 되기 위해 유교.도교의 합작 종교도 마다하지 않고 그 종교인이 될 것을 자처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 한복판의 도심지에 동묘가 버젓이 남아 있는 것도 결국 지난날 지나를 종주국으로 떠받들었던 사대주의 사상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지나족이 오히려 우리를 종주국으로 떠받들면서 우리의 조상신 모시기를 극진히 했다.

▲   동묘에 군신으로 모셔져 있는 촉나라의 장수 관우의 상. 관우는 진짜 군신일까?

<사기 봉선서>에 의하면 한(漢)나라의 시조 유방은 전쟁에 나아가기에 앞서 항상 ‘치우천왕’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하며, 그 뒤 한나라를 세우고는 치우천왕의 사당까지 세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유방이 치우천왕의 사당을 장안에 세우게 했다는 것은 곧 그 무렵의 지나인들이 치우천왕을 군신(軍神)으로 추앙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유방과 함께 진(秦)나라를 멸망시켰던 항우(項羽)와 동묘의 주인공 관우(關羽)가 치우(蚩尤)의 뒷자와 동음이자(同音異字)라는 것을 볼 때, 항우와 나관중 역시 치우를 존경하여 그 이름을 본 뜬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치우천왕은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나와 있듯이 병주(兵主)와 만고의 무신(武神)으로 또 용강(勇强)의 조상으로 추앙되었다. 그러나 현재 서울에는 치우천왕을 모신 사당이 없다. 그리고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사당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한낱 소설 속에서 무공이 과장된 인물에 불과한 관우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사당 안에 버젓이 좌정하고 있다. 관우는 치우천왕에 비교하면 그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촉나라의 일개 장수에 지나지 않는데, 그런 일천한 신분으로 치우천왕의 직계 후손인 우리 앞에 감히 무신을 자처하며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지나의 역대 사서를 통틀어도 치우천왕에 비견할 만한 장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정작 모셔야 할 우리의 군신은 배척하고 지나 소설 속에서 과장된 인물을 군신으로 모시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다. 이것은 곧 우리의 의식 수준이 아직도 조선시대의 그 굴종적이었던 지나의 종교 종속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묘는 옛 조선총독부 건물과 같이 진작에 해체되었어야 할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백해무익한 구시대의 유물이다. (인용 끝)

이렇듯 동묘는 명나라에 의해 강압적으로 세워져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건물이다. 관우는 역사상 인물임에는 틀림없으나 군신(軍神)으로 추앙될 만큼의 무공은 정사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지 소설 <삼국지연의>에 의해 그의 무공이 과대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명나라는 소설 속의 엉터리 무공을 근거로 조선에 치우대신 관우를 군신으로 섬기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  평범한 장수를 소설 속의 군신으로 승격시켜 그 상을 모시고 있는 동묘의 전경

관우는 군신의 자격이 없다  

참고로 소설 <삼국지연의>에 씌어 있는 관우의 무공은 대충 다음과 같다.
*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벤다.
* 관도대전에서 안량 문추의 목을 단 칼에 벤다.
* 주군 유비를 찾아가기 위해 오관(五關)의 장수의 목을 차례로 벤다.
* 적벽대전에서 군율을 어기면서도 과거에 신세를 진 조조의 목숨을 살려준다.
* 뼈에 박힌 독화살을 빼내는 수술에도 표정 하나 안 변했다.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삼국연의>의 내용과는 달리 <삼국지>에는 관우의 무공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연의>에는 관우를 그토록 의리가 있고 은혜를 알며 엄청난 무공을 세운 장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하튼 관우는 군신으로 추앙될 정도의 장수가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관우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여몽이란 장수에게 사로잡혀 목이 잘려 그 목이 조조에게 보내진 패장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패해 그것도 사로잡혀 목이 잘린 장수를 군신으로 모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우는 철저히 명나라에 의해 <삼국연의>로 과장된 장수일 뿐이다. 명나라는 <삼국연의>라는 엉터리 역사소설을 지어 놓고 군신 같지도 않은 관우를 군신으로 모시도록 강요한 것이다.

관우를 사로잡은 오나라의 사령관인 여몽과 부사령관인 손호가 얼마 후에 갑작스럽게 죽고, 관우의 목을 본 조조까지 이듬해 66세의 나이로 죽자, 사람들은 관우의 원혼이 저주했기 때문으로 생각하여 관제묘(關帝廟)를 세워 관우의 영혼을 달랬다. 황제도 왕도 아니었던 관우를 제(帝)로 받들어 제사를 받드는 것은 백성들의 동정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 관우의 머리 무덤이 있는 낙양의 관림(關林)에 관제(關帝)로 모셔져 있는 관우


관우의 죽음에 대해 정사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관우는 강직한 성격과 강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로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관우는 자존심이 상당히 강한 인물이었다. 손권이 자신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결혼시키자고 제의했을 때 관우는 크게 노하여 손권의 사자를 꾸짖고 창피를 주어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한다.

원래 강직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남을 무시하는 단점이 있다. 강릉에 있었던 촉한의 태수인 미방과 부사인 등은 관우에게 무시를 당해 항시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군수물자의 조달에 비협조적이었다. 이에 대해 관우는 “개선해 치죄하겠노라”하고 일단 전선으로 떠나간다. 결국 그들은 오나라가 강릉을 공략하자 촉한을 배반하게 된다.

손권이 사돈이 되자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손권을 격노케 한 것은 외교의 실수이고, 자기 부하에게 불만이나 공포심을 가지게 한 것은 내정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관우는 자신의 죽음을 자기 자신이 부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제갈공명이 관우를 형주에 남겨 놓고 성도로 돌아올 때 관우에게 앞으로 취할 기본 전략을 지시하였다. “동쪽으로 손권과 화친하고, 북쪽으로 조조를 막아야 한다.”이런 제갈량의 지시를 지켰다면 관우는 오나라 여몽에게 잡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관우의 성격적인 결함과 상사의 지시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렇듯 성격적인 결함에다 상사의 지시도 무시하면서 전투에서 패해 사로잡혀 목이 잘린 장수인 관우를 군신(軍神)으로 떠받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삼국지연의>는 이러한 관우의 치부를 감추고 그를 마치 천하무적인 전쟁의 영웅인 것처럼 묘사해 버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관우를 아주 대단하고 위대한 인물로 알고 있다.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관우가 실제로는 미인을 무척 탐했다고 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 보면, 조조는 관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인 10명을 관우에게 보낸다. 그러나 관우는 이 미인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오직 인질로 잡힌 유비의 두 부인을 섬기는데 전념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 촉서와 위서>의 기록에 따르면, 조조와 유비가 여포를 토벌하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하비성으로 갈 때, 관우는 상대 장수의 부인인 두(杜)씨가 천하절색이란 소문을 듣고는 “자신이 성을 함락시키면 그 여자를 달라”고 조조에게 간청했다고 적혀 있다.

조조는 흔쾌히 관우의 청을 응낙했으나, 성의 함락 후 실제로 경국지색인 두씨를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관우와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첩으로 삼아 버린다. 여기에 앙심을 품은 관우는 이후 조조를 죽이려고 하는 등 조조와 심한 갈등을 겪는다. 관우가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송대와 원대의 구비문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관우를 군신으로 모신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훼괴한 일이다. 여하튼 명나라는 <삼국연의>라는 소설 속에서 관우의 무공을 부풀려 놓고는 관우를 군신으로 떠받든다. 관우의 사당을 조선의 한양에도 세우게 하고는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국왕을 비롯한 대신들과 백성들에게도 참배를 강요한다.

참으로 일관성 있고 집요하게 명나라는 역사왜곡을 한다. 여하튼 이런 관우가 후대에 성인(聖人)으로까지 추앙받게 된 것은 명나라의 정치적 필요와 민간의 심리적 기대감으로 인한 '영웅 만들기' 때문일 뿐이다. 중국인들이 동이의 대륙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과대포장한 허구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가 한국인의 교양필독서로 읽히고 있는 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하겠다.  


▲   관우의 무덤이 있는 낙양 관림(關林)

명나라는 조선에게 관우를 군신으로 섬기게 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31년(1598) 5월 13일자의 기록을 보면, “오늘은 관왕(關王)의 생신이다. 소상(塑像)과 제구를 갖추어 치제하였는데, 상도 행행하여 치제하도록 요청했다. 이 관왕묘는 중국에는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그 의식이 사전(祀典)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경리(명나라 관리)가 강요하므로 상이 할 수 없이 가서 분향(焚香)하려고 대가(大駕)를 차비하였는데 갑자기 큰비가 내려 행행을 중지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속국인 조선을 왜적으로부터 구해주었으니 마땅히 관왕묘에 치제하도록 명나라의 관리가 압력을 넣어 역사상 전무한 일을 어쩔 수 없이 강행하려 한 것인데 하늘도 통곡을 하였는지 비가 내려 행사를 못하였다는 기사이다. 선조는 그 다음날 마지못해 관왕묘에 치제를 하였다.

선조가 재위 초기인 선조2년(1569년)에 당대의 석학인 기대승으로부터 <삼국지연의>는 무뢰한 자들이 잡된 말을 지어 만든 것으로 적벽(赤壁)싸움에서 이긴 것 등은 괴상하고 황탄한 일과 근거 없는 말로 부연하여 만든 것이며 마땅히 군주는 이러한 서적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30년이 채 되지 않아 명나라의 강요에 의하여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패장인 관우를 군신(軍神)으로 떠받들고 치제를 하였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으며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동묘의 관리 현황  

현재 동묘는 문화재청의 위탁을 받아 종로구청이 관리하고 있다. 동묘에는 작년까지 직원 한 명이 낮에만 상주했으나, 년초에 발생한 숭례문 화재 이후 지금은 7명이 2인 3조 3교대로 24시간 경비하고 있다고 한다. 소요 비용은 7인의 인건비로 년 1억원 가량이 시에서 예산으로 지원된다고 한다. 이거 예산 낭비 아닌가?

동묘는 작년에 이미 보수계획이 승인되어, 금년 봄부터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가 10월 완공을 목표로 지금은 공사가 막바지에 있다. 예산은 10억으로 국비와 시비로 지원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백해무익한 건물을 보수하는데 10억이나 되는 예산을 낭비한 문화재청은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 

민족정신을 갈아먹고 있는 동묘를 부셔버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뭐하러 10억이나 되는 큰 돈을 들여 보수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아직도 문화재청과 사학계는 동묘의 관우를 군신(軍神)으로 숭상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현 문화재청장이 우리 역사를 도륙낸 민족반역자 이병도의 친손자인 이건무이니 오죽하겠는가!!!   


▲   문화재청에 의해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인 동묘.  우리의 정신을 좀먹는 이런 건물을 보수하는 것은 예산낭비다.  

진정한 군신은 우리의 치우천왕 

▲   만고의 진정한 군신은 우리의 치우천왕 뿐이다.
명나라에 의해 어거지로 관우가 군신으로 부각되기 전에는 중국에서도 군신하면 당연히 치우천자이셨다. 위 한재규교수의 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오죽하면 한고조 유방이 사당을 세워 치우천왕을 군신으로 모시고 전쟁에 나가기 전에 제사를 올렸겠는가!

이건 동묘처럼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섬긴 것이다.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치우천왕에게 제를 올리는 풍속이 생긴 것은 치우천왕이 전쟁에서 연전연승하여 패배를 몰랐고, 황제헌원과의 73회의 전쟁에서도 전부 승리하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기에 치우천자가 잡혀 죽은 것으로 기록된 것은 치우천왕의 부하 중 치우기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공을 세우려 서두르다가 황제헌원에게 잡혀 죽은 것이 와전된 것이다. 만일 사기의 기록대로 치우천왕이 황제헌원과의 전쟁에서 패해 사로잡혀 죽었다면 어찌 그런 인물을 중국인(한족)인 한고조 유방이 군신으로 추앙할 수 있었겠는가!

<한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적혀 있기를 “천주로서 삼신에 제사하고 병주(兵主)로서 치우를 제사하니, 삼신은 천지만물의 조상이고 치우는 만고의 무신(武神)으로서 용맹하고 강함의 조상(勇强之祖)이라 할지니, (중략), 이로서 태시(太始)의 세계에서부터 항상 천하 전쟁의 주가 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대대로 치우천왕을 군신 또는 무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치우는 옛 천자(天子)의 이름으로, 치우천왕(蚩尤天王)은 배달국 14대 한웅인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이며 청구국(靑丘國)으로 도읍을 옮겨 재위 109년에 151세까지 사신 분이다. 치우천왕의 무덤은 현재 중국 산동성 동평(東平)에 있다.

치우천왕은 동두철액(銅頭鐵額) 즉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큰 안개를 일으키듯 온 누리를 다스릴 수 있었고,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그를 크게 두려워했다.

삼황(三皇)의 하나인 황제헌원(黃帝軒轅)과 10년 동안 73회를 싸워 번번이 이겼다. 탁록(하북성)의 전투에서 황제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조공을 받았다. 서쪽으로 제곡고신을 쳐 공을 세우게 하였다. 서토(중국)의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 도망쳐 숨지 않는 자가 없었다 한다. 

현재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방의 군신이며, 중국의 소수민족의 하나인 묘족(苗族)의 시조(始祖)이며, 지금의 티벳으로 판명된 장당경(藏唐京)에서 그의 후손들이 800년간 왕 노릇을 했다는 서경보 스님의 설도 있다. 

▲     - 동평 : 치우천자의 무덤이 있는 곳
- 거야 : 치우천자 부인 "견비"의 무덤이 있는 곳 (어깨/팔의 무덤 ?)
- 수구 : 제후국 소전의 아들 "헌원"이 태어난 곳
- 탁록 : 치우천자에 반기를 들어 쫒겨다니다 "탁록"에서 최종적으로 황제가 패함
- 황릉 : 고원지대 척박한 땅 장안 인근으로 달아나 끝끝내 "헌원"이 태어난 옥토 산동성 고향으로 돌아 오지 못하고 "황릉"에 묻힌다.
 
동묘를 없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자

비록 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이라 동묘에도 제사를 올리면서, 조상이며 진정한 군신(軍神)인 치우천왕에게도 제사를 올렸다. 그 제사의 이름은 둑제(纛祭)로 둑소제(纛所祭)의 준말로 일년에 두 차례 정기적으로 지내고 그리고 무장(武將)들이 임지로 떠가기 전 반드시 둑신(纛神)에게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고려시대에도 둑제를 지냈다는 기록을 <고려사>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을 식민지배한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  “조선인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알지 못하게 하라”는 일왕의 특명으로 단군을 신화하하고, 우리 삼국의 역사를 반도내로 몰아넣었고, 민족의 혼을 자르기 위해 많은 만행을 저지른다. 이 때 뚝섬에 있던 치우천자의 사당인 둑신묘(纛神廟 또는 纛神祠)도 수난을 당하게 된다.

치우천왕의 사당을 부셔버리고 그 자리에는 말을 키우는 장소로 사용하다 나중에 뚝섬 경마장이 들어서게 된다. 일제의 이런 짓은 원구단 자리에 철도호텔을 짓고, 창경궁에 동물원을 집어넣고, 남산 국사당자리에 식물원을 만들고, 경희궁을 학교로 사용하는 것과 다 일맥상통하는 행위이다. 다 민족정기를 끊자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동묘는 없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동묘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는 부적과 같기 때문에 일제가 굳이 없앨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대로 놔두는 것이 우리의 민족정신을 없애는 길이기 때문이다.  
 
▲   중국에서 만든 삼조당(三祖堂) 좌측부터 치우천왕, 황제헌원, 염제신농이다. 즉 3명의 중국의 조상을 모신 곳인데, 중국은 치우천왕을 이미 자신들의 조상으로 빼앗아 갔다. 우리 정부는 조상을 잃고도 아무 소리를 안하고 있다.


치우천왕은 동화 속의 도깨비가 아니고, 실존 인물로 배달국 14대 자오지 한웅이며 동방의 군신으로 불패(不敗)의 전신(戰神)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이렇듯 자랑스러운 조상을 자기 조상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실을 국민들에게 홍보나 교육을 하지 않고 있는 잘못된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의 역사관련 공무원들은 다 조상님들 앞에 무릎을 꿇고 손들고 반성해야 한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때 중국과 일본에게 빼앗긴 우리 역사를 이제는 되찾아 복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제가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만든 엉터리 국사 이론이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으며, 그걸 그대로 청소년들에게 교육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의 일개 지방정부인가 아니면 중국의 성급(省級)정부인가?

년 초에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숭례문에 불을 지른 한 노인이 있었다. 만약 그 때 채노인이 역사적 지식이 있었더라면 숭례문 대신 동묘에 불을 질러야 했다. 그랬더라면 채노인은 자신의 목적도 달성하고 또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 시대의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을 전혀 몰랐기에 희대의 방화범이란 오명을 남긴 것이다. 

▲   불타고 있는 숭례문. 정작 불타 없어져야할 것은 동묘이다. 왜 채노인은 동묘를 방화의 대상으로 안 삼았을까? 그건 중국 정부의 속국(?)인 이 나라 정부가 국민들에게 역사 교육을 제대로 안 시켰기 때문이다.
미췬성훈 08/09/03 [15:52] 수정 삭제  
  이봐요! 성훈씨... 당신은 [정사-삼국지]는 안 보고 [소설-삼국지연의]만 봅니까!!!!!
이거 원 참... 낯뜨거워서 보기가 민망하네... 김용이가 울고가겠소이다!!!!

그리고,황당괴기에 내용을 신주단지 모시듯하니...

ex) 티벳으로 판명된 장당경(藏唐京)

황당괴기랑 함께 치워버려라......

그리고 숭례문이 아닌 동묘에 불지렀어야한다??? 아주 걍~~ 마스터베이션 제대로 하는군!

참, 글 읽어보려니 가관이로세구려....
mimesis 08/09/03 [16:27] 수정 삭제  
  댓글을 '지랄맞게'다는 '미친 놈'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지랄'로 달 바에는 가만히 읽기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미췬성훈 08/09/03 [16:49] 수정 삭제  
  너 한번 말혀봐라!.ㅋㅋㅋ 아주 걍! 코미디를 해라.. 너는 삼국지연의같고 역사를 논하는게 정상적으로 보이냐??? 한번 주딩이 나불거려봐! 그리고. 지랄맞게 헛소리하며 마스터베이션하지말고 황당괴기의 망상을 떨더라도.. 저 숭례문사건과 동묘에 대해서 주접떨어봐라!!! 요것들 아주 뚜엣으로 지랄맞았군
지나가가 08/09/03 [18:30] 수정 삭제  
  그만하세요...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민족정신함양 08/09/03 [20:13] 수정 삭제  
  님이야 말로 혹 그런것 아닌가요?치우천황의 이야기가 황당괴기?당신 모르면 모르는 대로 가만히나 있으시오.치우천황은 분명 우리의 위대한 조상이요.어설픈 학교교육이라는 것이 우리의 역사를 짓밟고있다는 것 모르시오?내 나이 50이 넘은 사람이오만 내 어린시절만 해도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우리의 위대한 치우천황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소.그렇다고 그 선대들이 학교공부를 한 분이 한 분도 없었소.그러나 그 분들은 조정에서 사대를 하던 하지않던 수천년간 내려온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의식이 뿌리깊게 박혀있었습니다.즉 내 어린시질의 역사는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와 동네에서 전해내려오는 조상들의 역사는 완전히 달랐소.즉 사대주의에 찌들어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려는 사대관료들과는 완전히 달랐단 말이오.그걸 무식한 촌로들의 역사의식이라고 여기시오?아니오!그분들에게는 우리 조상들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유전적으로 내려왔었던 것이오.어설픈 역사지식으로 비아냥 대는 듯한 댓글 달지마십시요.그리고 최소한 댓글을 다시려면 님이 아는 지식을 통해서 비판하는 글을 올리시는 것이 예의라 여기오.

그리고 내 삼국지를 읽어봤지만 읽어보는 그 때에도 솔직히 황당무계하고 별로 신뢰를 할만한 것이 되지못한다는 걸 깨달았었습니다.권모술수와 속임수만이 난무하는 걸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떠받들어 모시는 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않았다오.하지만 우리의 상고역사에 대한 기록들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진다는 내 일생을 관통하는 삶을 통해서도 이해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즉 우리의 상고역사를 보면서 왜 우리의 삶-관습,사고,사회적 규율,신앙(광신적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들도 아직까지는 예외가 아니오),문화(총체적 문화)..등등-이 그랬는지 이해를 하게되었습니다.즉 우리 삶을 관통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상고역사와 무관한 것이 없다는 걸 알았소.어줍짢게 강단사학에서 말 하는 역사를 가지고는 도저히 우리들의 삶(위에서 말한 총체적인 삶)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그건 이미 초,중,고,대학시절 역사를 배우면서 끈임없이 회의를 했었던 문제였고요.마지막으로 역사참역사를 밝히려는 애국,애족학자들이나 지식인들에게 비아냥대지 않는 것이 예의라 여깁니다.
중립사학 08/09/03 [20:32] 수정 삭제  
  삼국지연의는 문학서이다.
쉽게 말하면, 소설이란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왜 필독서냐...
그 속에는 권모술수로 남을 이길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권모술수가 나쁘냐? 절대그렇지 않다.
이런 권모술수는 다른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권모술수를 모르고 오직 정통밖에 모르는 우리나라... 외교관계에서 항상 문제가 많다.

솔직히 말하면 권모술수에 능하지 못한 순진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당하고 뒷북친다.
동북공정도 당하고 뒷북치고 강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독도도 당하고 나서야 뒷북치고 그 뒤로 대책이 없다.
위안부문제... 제대로 해답도 못찾는다.
다 전략과 전술이 부족해서이다.
내가 아는 한 인도친구에게 한국사람을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했다.
대답은 "simple"이었다.
즉, 한국사람은 꾀가 없단 말이다. 순진하고 단순하단 말이다.
그래서 항상 당하고산다. 그래서 동이족은 다스리기 쉽다고 하였을지도 모른다.

삼국지연의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속에 담긴 권모술수를 배워 그 전술을 가지고 지나와 왜놈과 양키를 이겨야한다.
더군다나, 우리날 문학가들은 맨날 삼국지연의를 번역하여 책 제목에다가 버젓이 "삼국지"라고 달아놓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구분못하는 띨빡같은 독자들은 하루빨리 똥인지 된장인지 깨달아야 한다.
08/09/04 [10:43] 수정 삭제  
  진짜 위험하네...
이거 신고해야 되는거 아닌지 몰라...
한탄할지고 08/09/04 [15:20] 수정 삭제  
  배우려는 노력이나좀해라 이머져리같은 인간들아.개독들은 유태인들의 역사서인 성경을 줄줄외우면서 우리의 참역사는 전혀 모르고 세상을 사는지..........성훈님의 칼럼은 백번 옳은 글이요..제발 부탁인데 모르는것 가르쳐 주시면 주딩이 닥치고 공부해라 이 민족반역의 매국노 벅수야(미틴 씹?야)
미췬성훈 08/09/04 [17:02] 수정 삭제  
  이 멍충이들아... [정사-삼국지]를 베이스로하여 창작한게 [삼국지연의]란다. 그런데 정사를 논하는게 아니라, 삼국지연의를 논하면서 개솔이를 늘어놓냐??? 위 들쥐들 대답좀 혀봐라.. 이런 황당괴기스러운 놈들아..... 왜? 김용의 소설보고도 한번 더 개솔이들 해보지그려... 그리고, 위에 [한탄할지고]라는 꼴통아.. 칼럼이 칼럼스러워야 칼럼이지... 나관중의 소설을 갖고 헛소리 찍찍해놓은 글을 보면서 [정사-삼국지]가 잘못되었다고 개솔이 하는게 니 대갈빡에는 감이 잡히지 않냐? 요런 꼴통시키들아...
성훈 칼럼리스트 08/09/04 [20:32] 수정 삭제  
  이곳은 개인 카페나 블러그가 아니고 만인이 보고 있는 신문입니다.
상스러운 말이나 육두문자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의 인격 문제입니다.
그리고 가급적 실명으로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k2 08/09/04 [22:13] 수정 삭제  
  짜장면집에서 자신들의 색골영웅 관우를 보호하려 원정왔네요.
해커전사가 50만이라더니.. 헐 지나 짝퉁들
짱깨퇴치 08/09/04 [22:16] 수정 삭제  
  지나인들이 변질된 몇몇 조선족동포를 꾀어서 장난질 하나.
짱깨퇴치 08/09/04 [22:18] 수정 삭제  
  옹졸하고 편협하여 부하들도 등돌린 졸장부 관우가 군신이면 원균도 성웅이다.
미췬성훈 08/09/04 [22:41] 수정 삭제  
  식민사학이니 강단사학이니 짱개니 조선족이니..... 막 옷입이네..ㅋㅋㅋ 밀가루 튀김옷 입히냐? ㅎㅎㅎ 이 무식한 놈들아... 삼국지연의 소설같고 이것을 마치, 정사인 마냥 눈에 불을 키고 떠들어대는 니들의 꼬락서니를 봐라.. 이 한심한 구라질 놈들아... 사서 내용하나 제대로 읽지를 못하면 잠자고 가만히나 있어라.. 이 멍충한 놈들아.. 이것들은 죄다 대륙병에 걸린 쥐섹휘들처럼 마스터베이션하네...
짱개퇴치 08/09/04 [23:13] 수정 삭제  
  그럼, 삼국연의가 소설이지 역사책이냐? 돌대가리도 상돌대가리로세..
무식한 넘. 빨리 정신병원이나 가봐라..
확실히 미췬넘이 맞긴 맞구만..
k2 08/09/04 [23:23] 수정 삭제  
  정답은 이미 나왔습니다.
소설은 무신이라 뻥튀긴 것이고 역사책은 호색한에 옹졸한 무장이라 적고 있으니까요.
미췬성훈 08/09/05 [00:40] 수정 삭제  
  * 관도대전에서 안량 문추의 목을 단 칼에 벤다.

紹遣大將(軍)顔良攻東郡太守劉延於白馬, 曹公使張遼及羽爲先鋒擊之. 羽望見良麾蓋, 策馬刺良於萬衆之中, 斬其首還, 紹諸將莫能當者, 遂解白馬圍. 曹公卽表封羽爲漢壽亭侯

원소[紹]가 대장[군] 안량을 보내 동군태수 유연(劉延)을 백마에서 공격하자, 조조는 장요와 관우를 선봉으로 삼아 이를 공격했다. 관우는 안량의 휘개를 멀리서 보고, 말을 채찔해서 달려 많은 병사들 사이에서 수급을 베고 돌아왔다. 원소의 제장들 중 이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마침내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조조는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漢壽亭侯]에 봉했다.

※ 정사- 삼국지에서도 관우가 베었다고 하구마...ㅎㅎㅎ 문추는 좀더 찾아보자!
미췬성훈 08/09/05 [01:03] 수정 삭제  
  뼈에 박힌 독화살을 빼내는 수술에도 표정 하나 안 변했다. 등이다.

羽嘗爲流矢所中, 貫其左臂, 後創雖愈, 每至陰雨, 骨常疼痛, 醫曰 : 「矢鏃有毒, 毒入於骨, 當破臂作創, 刮骨去毒, 然後此患乃除耳.」

羽便伸臂令醫劈之. 時羽適請諸將飮食相對, 臂血流離, 盈於盤器, 而羽割炙引酒, 言笑自若.

관우가 왼팔에 화살[矢]을 맞아서 관통당한적이 있었는데, 그 뒤 비록[愈:비록] 고쳤으나[愈:고치다], [每:매양] [陰雨:오랬동안 내리는비] 비가 오랬동안 내리는 날이면 매번 늘 뼈가 아팠다. 의원 말하길, 화살촉에 독[毒:독]이 있어서 이 독이 뼈까지 스며들어가서 그런것이여 (그런께) 응당 [當:마땅히] 팔[臂:팔)을 가르고 상처[創:상하다]를 내어서 뼈를 갈아내고 독을 제거해야 그 통증이[患:근심] 자연히 사라질것이다.

관우는 팔을 펴고[伸:펴다] 의원에서 자신의 팔을 가르게[劈:쪼개다] 했다.
이때 관우는 제장들을 청하여 음식을 먹으며 함께 있었는데, 팔에서 피가 흘러 떨어져[離: 떨어지다] 반기에 가득찼다[盈:가득하다,차다] 관우는 고기구이[炙:고기구이]를 자르고 술잔을 들며(引:당기며?)담소를 나누며[言笑]自若. 태연했다


※ 뭐.. 대담했구마... 성훈이가 태클걸일 아니구마...
미췬성훈 08/09/05 [01:16] 수정 삭제  
  손권이 사돈이 되자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손권을 격노케 한 것은 외교의 실수이고, 자기 부하에게 불만이나 공포심을 가지게 한 것은 내정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관우는 자신의 죽음을 자기 자신이 부른 것이라 할 수 있다

權遣使爲子索羽女, 羽罵辱其使, 不許婚, 權大怒
손권이가 사자를 보내서 관우의 딸이랑 손권의 자식이랑 역을려고 했는데,관우가 사자를 욕하며 [罵:꾸짖다.욕하다] 혼인을 허락치 않으니 손권이가 열받았다.

※ 이 부분은 정사를 인용했네...ㅋㅋㅋ 참 태클걸일 많다. 그럼, 손권이가 딸래미 달라는데 흔케이 주냐????
미췬성훈 08/09/05 [01:34] 수정 삭제  
  조조는 흔쾌히 관우의 청을 응낙했으나, 성의 함락 후 실제로 경국지색인 두씨를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관우와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첩으로 삼아 버린다. 여기에 앙심을 품은 관우는 이후 조조를 죽이려고 하는 등 조조와 심한 갈등을 겪는다. 관우가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송대와 원대의 구비문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蜀記曰 : 曹公與劉備圍呂布於下邳, 關羽啓公, 布使秦宜祿行求救, 乞娶其妻, 公許之. 臨破, 又屢啓於公. 公疑其有異色, 先遣迎看, 因自留之, 羽心不自安. 此與魏氏春秋所說無異也. 촉기에서 말하길. 조조가 유비[劉備]와 함께 하비에서 여포를 포위했어,관우가 조조에게 여쭈는거야[啓:여쭙다] 여포가 사자 진의록[秦宜祿]을 보내서 구조[求救]를 청했다. 내가 이거 꼬발렸으니까, 진의록의 마누라를 내게주라^^ 한거지.. 이에 조조를 허락했다. 막 (여포를) 파[破]하려고할때, 여러번[屢] 또 (관우가) 여쭈운거야[啓:여쭙다] (다시말해서 상기시켜준거지. 전리품중에서 저 여자 나한테 준거 잊지말라고..)
公疑其有異色- 조조가 그 별난 미색에 의(구)심들어,
先遣迎看 - 먼저 사람을 보내 데려왔서 확인했다.
因自留之- 그로 말미암아 조조 옆에 머무르게 했다.
羽心不自安- 관우의 마음이 편치 못했다.
此與魏氏春秋所說無異也- 이는 위씨춘추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관우가 미색을 밝힌건 맞는데, 조조를 죽이려고 했다는건 어디서 나온거냐???
위씨춘추도 살펴볼까!
미췬성훈 08/09/05 [01:46] 수정 삭제  
  그렇다면 뭐시냐! 삼전도비 없애고, 저기 소정방평제탑도 없애고, 또 눈에띄는 짱개들 사당들 다 없애고, 쪽발이 건물들 다 때려부시고(전국적으로 엄청나지) 또!!!!!!!! ~~~ 다 없애야 겠네..

역사를 편향적으로 보려는 국수주의 근시안적인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인해서, 민족적 사관을 역행하는 행위를 자행하는것이 응당 당연하듯 말하는 성훈씨.. 당신 말대로라면, 삼국사기부터 조선왕조실록 성호사설 동사강목 해동역사.... 등등 기존의 존재하는 사설들까지 다 불태워 없애야 할껄... 이점 어떻게 생각하는지.......

교회니 사찰이니 등등도 마찮가지고 다~~~~ 없애야지.. 무당들도 무슨장군 무슨장군하면서 헛소리하니 죄다 감방에 집어 쳐 넣고 말이지... 이런게 과거와 현재는 보는 시각이냐?
미친니엠;에게 08/09/05 [11:08] 수정 삭제  
  정사와소설도 구별못한다니,,,똥하구된장하구 구별이나 할줄아니...하기사 짱둘이족속이 구별하면이상하지.아이고 이런인간들이 아직도 벌어먹고살것다고 강단에서 빌붙어 목구녕에 똥을 처였고 자빠졋으니 미친성푼아이디 앞으로 니엄마 머시기여로 바꾸어서 댓글달도록
중립사학 08/09/05 [14:03] 수정 삭제  
  소설은 재미있게 읽으면 되는데... 그걸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할 필요가 있나...

소위 "대륙사관"....

단어부터 열등의식이 표출되어 있다.

중국이 대륙이냐?
중국을 대륙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섬나라냐? 흐미~~

대륙은 유라시아 대륙,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대륙 이럴때 쓰는거다...
반도도 대륙인 것이다.
알겠냐?
미췬성훈 08/09/05 [14:22] 수정 삭제  
  이놈아... 위에서 니가한번 정사-삼국지와 소설-삼국지연의를 구분할줄 안다면. 위에 내가 정사-삼국지 내용 올린거에 대해서, 글을쓴 [성훈]의 내용이랑 어떻게 다른지 구별해봐라.. 이 무식한 돌팍아...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못하는게 니가 아니냐????
어디, 한번 뭐가 정사이고 뭐가 소설내용인지 한번 더 쥐발 까딱거려봐.......

멍청한 돌팍아.. 내가 위에 정사 - 삼국지 올린거 안 보이냐? 무식아...
三國志卷三十六蜀書六 關張馬黃趙傳 第六 - 關羽傳 부분에서 발췌한거니 한번 반박혀봐라

저 무식한 것들은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못하면서, 개솔이나 찍찍한다니깐..ㅎㅎㅎ
미췬성훈 08/09/05 [14:25] 수정 삭제  
  關羽字雲長,本字長生,河東解人也。亡命奔涿郡。先主於鄉里
合徒眾,而羽與張飛為之禦侮。先主為平原相,以羽﹑飛為別部
司馬,分統部曲。先主與二人寢則同床,恩若兄弟。而稠人廣坐
,侍立終日,隨先主周旋,不避艱險。[一]先主之襲殺徐州刺史車
冑,使羽守下邳城,行太守事,[二]而身還小沛。

注[一]蜀記曰:曹公與劉備圍呂布於下邳,關羽啟公,布使秦宜祿
行求救,乞娶其妻,公許之。臨破,又屢啟於公。公疑其有異色
,先遣迎看,因自留之,羽心不自安。此與魏氏春秋所說無異也


注[二]魏書云:以羽領徐州。

建安五年,曹公東征,先主奔袁紹。曹公禽羽以歸,拜為偏將軍
,禮之甚厚。紹遣大將(軍)顏良攻東郡太守劉延於白馬,曹公使
張遼及羽為先鋒擊之。羽望見良麾蓋,策馬刺良於萬眾之中,斬
其首還,紹諸將莫能當者,遂解白馬圍。曹公即表封羽為漢壽亭
侯。初,曹公壯羽為人,而察其心神無久留之意,謂張遼曰:「
卿試以情問之。」既而遼以問羽,羽歎曰:「吾極知曹公待我厚
,然吾受劉將軍厚恩,誓以共死,不可背之。吾終不留,吾要當
立效以報曹公乃去。」遼以羽言報曹公,曹公義之。[一]及羽殺顏
良,曹公知其必去,重加賞賜。羽盡封其所賜,拜書告辭,而奔
先主於袁軍。左右欲追之,曹公曰:「彼各為其主,勿追也。」
[二]

注[一]傅子曰:遼欲白太祖,恐太祖殺羽,不白,非事君之道,乃
歎曰:「公,君父也;羽,兄弟耳。」遂白之。太祖曰:「事君
不忘其本,天下義士也。度何時能去?」遼曰:「羽受公恩,必
立效報公而後去也。」

注[二]臣松之以為曹公知羽不留而心嘉其志,去不遣追以成其義,
自非有王霸之度,孰能至於此乎?斯實曹公之休美。

從先主就劉表。表卒,曹公定荊州,先主自樊將南渡江,別遣羽
乘船數百艘會江陵。曹公追至當陽長阪,先主斜趣漢津,適與羽
船相值,共至夏口。[一]孫權遣兵佐先主拒曹公,曹公引軍退歸。
先主收江南諸郡,乃封拜元勳,以羽為襄陽太守﹑盪寇將軍,駐
江北。先主西定益州,拜羽董督荊州事。羽聞馬超來降,舊非故
人,羽書與諸葛亮,問超人才可誰比類。亮知羽護前,乃答之曰
:「孟起兼資文武,雄烈過人,一世之傑,黥﹑彭之徒,當與益
德並驅爭先,猶未及髯之絕倫逸群也。」羽美鬚髯,故亮謂之髯
。羽省書大悅,以示賓客。

注[一]蜀記曰:初,劉備在許,與曹公共獵。獵中,眾散,羽勸備
殺公,備不從。及在夏口,飄颻江渚,羽怒曰:「往日獵中,若
從羽言,可無今日之困。」備曰:「是時亦為國家惜之耳;若天
道輔正,安知此不為福邪!」
臣松之以為備後與董承等結謀,但事泄不克諧耳,若為國家惜曹
公,其如此言何!羽若果有此勸而備不肯從者,將以曹公腹心親
戚,實繁有徒,事不宿構,非造次所行;曹雖可殺,身必不免,
故以計而止,何惜之有乎!既往之事,故託為雅言耳。

羽嘗為流矢所中,貫其左臂,後創雖愈,每至陰雨,骨常疼痛,
醫曰:「矢鏃有毒,毒入于骨,當破臂作創,刮骨去毒,然後此
患乃除耳。」羽便伸臂令醫劈之。時羽適請諸將飲食相對,臂血
流離,盈於盤器,而羽割炙引酒,言笑自若。

二十四年,先主為漢中王,拜羽為前將軍,假節鉞。是歲,羽率
眾攻曹仁於樊。曹公遣于禁助仁。秋,大霖雨,漢水汎溢,禁所
督七軍皆沒。禁降羽,羽又斬將軍龐德。梁郟﹑陸渾群盜或遙受
羽印號,為之支黨,羽威震華夏。曹公議徙許都以避其銳,司馬
宣王﹑蔣濟以為關羽得志,孫權必不願也。可遣人勸權躡其後,
許割江南以封權,則樊圍自解。曹公從之。先是,權遣使為子索
羽女,羽罵辱其使,不許婚,權大怒。[一]又南郡太守麋芳在江陵
,將軍(傅)士仁屯公安,素皆嫌羽(自)輕己。[自]羽之出軍,芳﹑
仁供給軍資,不悉相救。羽言「還當治之」,芳、仁咸懷懼不安
。於是權陰誘芳、仁,芳、仁使人迎權。而曹公遣徐晃救曹仁,
[二]羽不能克,引軍退還。權已據江陵,盡虜羽士眾妻子,羽軍遂
散。權遣將逆擊羽,斬羽及子平于臨沮。[三]

注[一]典略曰:羽圍樊,權遣使求助之,敕使莫速進,又遣主簿先
致命於羽。羽忿其淹遲,又自已得于禁等,乃罵曰:「玀子敢爾
,如使樊城拔,吾不能滅汝邪!」權聞之,知其輕己,偽手書以
謝羽,許以自往。
臣松之以為荊﹑吳雖外睦,而內相猜防,故權之襲羽,潛師密發
。按呂蒙傳云:「伏精兵於舟船之中,使白衣搖櫓,作商賈服。
」以此言之,羽不求助於權,權必不語羽當往也。若許相援助,
何故匿其形跡乎?

注[二]蜀記曰:羽與晃宿相愛,遙共語,但說平生,不及軍事。須
臾,晃下馬宣令:「得關雲長頭,賞金千斤。」羽驚怖,謂晃曰
:「大兄,是何言邪!」晃曰:「此國之事耳。」

注[三]蜀記曰:權遣將軍擊羽,獲羽及子平。權欲活羽以敵劉﹑曹
,左右曰:「狼子不可養,後必為害。曹公不即除之,自取大患
,乃議徙都。今豈可生!」乃斬之。
臣松之按吳書:孫權遣將潘璋逆斷羽走路,羽至即斬,且臨沮去
江陵二三百里,豈容不時殺羽,方議其生死乎?又云「權欲活羽
以敵劉﹑曹」,此之不然,可以絕智者之口。吳歷曰:權送羽首
於曹公,以諸侯禮葬其屍骸。

追諡羽曰壯繆侯。[一]子興嗣。興字安國,少有令問,丞相諸葛亮
深器異之。弱冠為侍中﹑中監軍,數歲卒。子統嗣,尚公主,官
至虎賁中郎將。卒,無子,以興庶子彝續封。[二]

注[一]蜀記曰:羽初出軍圍樊,夢豬嚙其足,語子平曰:「吾今年
衰矣,然不得還!」江表傳曰:羽好左氏傳,諷誦略皆上口。

注[二]蜀記曰:龐德子會,隨鍾﹑鄧伐蜀,蜀破,盡滅關氏家。


위에... 나한테 깝죽거린 구라질 놈들.. 한번 위 정사-삼국지 관우전 부분 해석해봐!
ㅋㅋㅋㅋ..
이병도 08/09/05 [14:39] 수정 삭제  
  유식해서 좋겠읍니다.그리 유식하면서 민족사관 공부를 열심히 하시지요.
이기백 08/09/05 [15:19] 수정 삭제  
  무식한 자들이 번역은 안하고 원문만 갖다붙이지..
그런 거 초등생도 한다. 복사-붙이기하면 되잖아.
원문 복사해오느라 수고했는데 네가 붙은 원문 다 번역해놔라이..
하여튼 요즘애들은 기본이 안되있어.. 실력이 없어 그러나..
중립사학 08/09/05 [15:51] 수정 삭제  
  이러다가 여기 역갤처럼 변한다.
중립사학 08/09/05 [16:03] 수정 삭제  
  http://blog.empas.com/kright21/read.html?a=23846518&c=1812779
미췬성훈 08/09/05 [16:35] 수정 삭제  
  내가 위에 해석해 놓은거 안 보이냐?? 이 동태눈탱이 구라질 놈들아..ㅋㅋㅋ

위에 [성훈]이가 잡설 해놓은 부분 중에서 그에 해당되는거 해석해 놓은거 니들 눈팅이에는 안 보이지? ㅎㅎ

무식하면 찍소리말고 가만히 쳐 눈팅이나 혀라... ㅎㅎㅎ
지바기 08/09/05 [16:58] 수정 삭제  
  가덩교육이 얼마나 개판이면 주둥이에 육을 달고살까? 조상이 이완용 아니면 무택둥이?아니면 아키이로 아니면 진나라 거머시기냐 환관 양자에 후손 알수가 없네 미췬 성?아이디 한자 잘해서 좋것다.열심히 공부혀
미췬성훈2 08/09/05 [17:50] 수정 삭제  
  이런꼴통새끼 결국엔 니가쓴글도 성훈이 글이랑 똑같네 이 볍진 꼴통새끼야 욕은지가 시작하고 결국엔 성훈이 글이랑 결론이 같자나 이거 병신아냐 ㅋㅋㅋ 니가 말하고자하는 요점은 머냐 그게 알고싶다 ㅋㅋㅋ 남욕하고 니 잘난체만하지말고 ㅋㅋㅋ
미췬성훈 08/09/05 [18:01] 수정 삭제  
  관우는 군신의 자격이 없다

참고로 소설 에 씌어 있는 관우의 무공은 대충 다음과 같다.
*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벤다.
* 관도대전에서 안량 문추의 목을 단 칼에 벤다.
* 주군 유비를 찾아가기 위해 오관(五關)의 장수의 목을 차례로 벤다.
* 적벽대전에서 군율을 어기면서도 과거에 신세를 진 조조의 목숨을 살려준다.
* 뼈에 박힌 독화살을 빼내는 수술에도 표정 하나 안 변했다. 등이다.

위에, 성훈칼럼리스트가 이렇게 적었지???? 그래서 내가 사서 중에서 관련된 귀절 찾아서 반박했지???? 아래 볼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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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도대전에서 안량 문추의 목을 단 칼에 벤다.

紹遣大將(軍)顔良攻東郡太守劉延於白馬, 曹公使張遼及羽爲先鋒擊之. 羽望見良麾蓋, 策馬刺良於萬衆之中, 斬其首還, 紹諸將莫能當者, 遂解白馬圍. 曹公卽表封羽爲漢壽亭侯

원소[紹]가 대장[군] 안량을 보내 동군태수 유연(劉延)을 백마에서 공격하자, 조조는 장요와 관우를 선봉으로 삼아 이를 공격했다. 관우는 안량의 휘개를 멀리서 보고, 말을 채찔해서 달려 많은 병사들 사이에서 수급을 베고 돌아왔다. 원소의 제장들 중 이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마침내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조조는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漢壽亭侯]에 봉했다.

※ 정사- 삼국지에서도 관우가 베었다고 하구마...ㅎㅎㅎ 문추는 좀더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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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 박힌 독화살을 빼내는 수술에도 표정 하나 안 변했다. 등이다.

羽嘗爲流矢所中, 貫其左臂, 後創雖愈, 每至陰雨, 骨常疼痛, 醫曰 : 「矢鏃有毒, 毒入於骨, 當破臂作創, 刮骨去毒, 然後此患乃除耳.」

羽便伸臂令醫劈之. 時羽適請諸將飮食相對, 臂血流離, 盈於盤器, 而羽割炙引酒, 言笑自若.

관우가 왼팔에 화살[矢]을 맞아서 관통당한적이 있었는데, 그 뒤 비록[愈:비록] 고쳤으나[愈:고치다], [每:매양] [陰雨:오랬동안 내리는비] 비가 오랬동안 내리는 날이면 매번 늘 뼈가 아팠다. 의원 말하길, 화살촉에 독[毒:독]이 있어서 이 독이 뼈까지 스며들어가서 그런것이여 (그런께) 응당 [當:마땅히] 팔[臂:팔)을 가르고 상처[創:상하다]를 내어서 뼈를 갈아내고 독을 제거해야 그 통증이[患:근심] 자연히 사라질것이다.

관우는 팔을 펴고[伸:펴다] 의원에서 자신의 팔을 가르게[劈:쪼개다] 했다.
이때 관우는 제장들을 청하여 음식을 먹으며 함께 있었는데, 팔에서 피가 흘러 떨어져[離: 떨어지다] 반기에 가득찼다[盈:가득하다,차다] 관우는 고기구이[炙:고기구이]를 자르고 술잔을 들며(引:당기며?)담소를 나누며[言笑]自若. 태연했다


※ 뭐.. 대담했구마... 성훈이가 태클걸일 아니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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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이 사돈이 되자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손권을 격노케 한 것은 외교의 실수이고, 자기 부하에게 불만이나 공포심을 가지게 한 것은 내정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관우는 자신의 죽음을 자기 자신이 부른 것이라 할 수 있다

權遣使爲子索羽女, 羽罵辱其使, 不許婚, 權大怒
손권이가 사자를 보내서 관우의 딸이랑 손권의 자식이랑 역을려고 했는데,관우가 사자를 욕하며 [罵:꾸짖다.욕하다] 혼인을 허락치 않으니 손권이가 열받았다.

※ 이 부분은 정사를 인용했네...ㅋㅋㅋ 참 태클걸일 많다. 그럼, 손권이가 딸래미 달라는데 흔케이 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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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흔쾌히 관우의 청을 응낙했으나, 성의 함락 후 실제로 경국지색인 두씨를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관우와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첩으로 삼아 버린다. 여기에 앙심을 품은 관우는 이후 조조를 죽이려고 하는 등 조조와 심한 갈등을 겪는다. 관우가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송대와 원대의 구비문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蜀記曰 : 曹公與劉備圍呂布於下邳, 關羽啓公, 布使秦宜祿行求救, 乞娶其妻, 公許之. 臨破, 又屢啓於公. 公疑其有異色, 先遣迎看, 因自留之, 羽心不自安. 此與魏氏春秋所說無異也. 촉기에서 말하길. 조조가 유비[劉備]와 함께 하비에서 여포를 포위했어,관우가 조조에게 여쭈는거야[啓:여쭙다] 여포가 사자 진의록[秦宜祿]을 보내서 구조[求救]를 청했다. 내가 이거 꼬발렸으니까, 진의록의 마누라를 내게주라^^ 한거지.. 이에 조조를 허락했다. 막 (여포를) 파[破]하려고할때, 여러번[屢] 또 (관우가) 여쭈운거야[啓:여쭙다] (다시말해서 상기시켜준거지. 전리품중에서 저 여자 나한테 준거 잊지말라고..)
公疑其有異色- 조조가 그 별난 미색에 의(구)심들어,
先遣迎看 - 먼저 사람을 보내 데려왔서 확인했다.
因自留之- 그로 말미암아 조조 옆에 머무르게 했다.
羽心不自安- 관우의 마음이 편치 못했다.
此與魏氏春秋所說無異也- 이는 위씨춘추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관우가 미색을 밝힌건 맞는데, 조조를 죽이려고 했다는건 어디서 나온거냐???
위씨춘추도 살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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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사-삼국지 내용에서 반박해 준거 안 보이냐? 이 동태눈팅이 자슥아!!!!

그러니 구라넷 꼴통시키들이라고 하는겨......ㅎㅎㅎㅎ



미췬성훈 08/09/05 [18:06] 수정 삭제  
  식민사학이니 강단사학이니 짱개니 조선족이니..... 막 옷입이네..ㅋㅋㅋ 밀가루 튀김옷 입히냐? ㅎㅎㅎ 이 무식한 놈들아... 삼국지연의 소설같고 이것을 마치, 정사인 마냥 눈에 불을 키고 떠들어대는 니들의 꼬락서니를 봐라.. 이 한심한 구라질 놈들아... 사서 내용하나 제대로 읽지를 못하면 잠자고 가만히나 있어라.. 이 멍충한 놈들아.. 이것들은 죄다 대륙병에 걸린 쥐섹휘들처럼 마스터베이션하네...


※ 내가 위에 써 놓은거 보이냐?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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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들은 똥과 된장도 구분못하고 [정사-삼국지]랑 나관중 소설[삼국지연의]도 구분못하면서, [삼국지연의]내용이 마치 정사인것처럼 나불나불거리네..ㅋㅋㅋ

이놈들아... 공부혀라.... 그리고 [정사]를 봐!!! 이 무식한 꼴통들아....
미췬성훈 = 중립사학 = 짱꼴라조선족 08/09/05 [18:55] 수정 삭제  
  미췬성훈 = 중립사학 = 짱꼴라조선족
이기백 08/09/05 [19:34] 수정 삭제  
  "公疑其有異色- 조조가 그 별난 미색에 의(구)심들어,
先遣迎看 - 먼저 사람을 보내 데려왔서 확인했다.
因自留之- 그로 말미암아 조조 옆에 머무르게 했다.
羽心不自安- 관우의 마음이 편치 못했다."

구구절절이 원문 갖다 붙인 결과가 겨우 칼럼니스트 말 인정이ㅑ?
워야 이또라이는? 바보아냐? 호색한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반박도 못하면서 댓글은 뭐하러 수둑룩하게 달았어..
말만 많고 결론은 깨깽이잖아 .. 역시 짱골라는 똘아이들이 많아..
도대체 뭘 반박한 거야? 빨리 치료나 받으러가세게나~ 너같이 무능한 제자가 이병도 후계라니 창피하다. 반박도 못하고 헛소리만 찍ㅈ찍하다 항복하고서도 이겼다고 떠들어대니.
선수바꿔라 어디서 아큐를 수입해왔니?
중립사학 08/09/05 [19:53] 수정 삭제  
  나는 미췬성훈아니거든.
이것들 다들 또라이 아냐.
여긴 어째 역갤보다 더 또라이가 더 많냐.
중립사학 08/09/05 [19:57] 수정 삭제  
  소설이야 재미나게 읽으면 되는걸 가지고...
잠자기 전에 삼국지연의 읽으면 잠 잘온다.

그리고 걸핏하면 짱깨니 조선족이니 하는 것들을 잘 살펴보면... 그놈들이 정작 짱깨다..
한국와서 짱개들 간첩노릇하는 것들이다.
저것들에게 속지마라.
크크 08/09/05 [20:17] 수정 삭제  
  기사 같지도 않은 기사를 써대니...
댓글 같지도 않은 댓글이 넘치는구나.... 쯧즛
미췬성훈 08/09/05 [20:24] 수정 삭제  
  성훈이 말...

그러나 정사 의 기록에 따르면, 조조와 유비가 여포를 토벌하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하비성으로 갈 때, 관우는 상대 장수의 부인인 두(杜)씨가 천하절색이란 소문을 듣고는 “자신이 성을 함락시키면 그 여자를 달라”고 조조에게 간청했다고 적혀 있다.

조조는 흔쾌히 관우의 청을 응낙했으나, 성의 함락 후 실제로 경국지색인 두씨를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관우와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첩으로 삼아 버린다. 여기에 앙심을 품은 관우는 이후 조조를 죽이려고 하는 등 조조와 심한 갈등을 겪는다. 관우가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송대와 원대의 구비문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내말은..
蜀記曰 : 曹公與劉備圍呂布於下邳, 關羽啓公, 布使秦宜祿行求救, 乞娶其妻, 公許之. 臨破, 又屢啓於公. 公疑其有異色, 先遣迎看, 因自留之, 羽心不自安. 此與魏氏春秋所說無異也. 촉기에서 말하길. 조조가 유비[劉備]와 함께 하비에서 여포를 포위했어,관우가 조조에게 여쭈는거야[啓:여쭙다] 여포가 사자 진의록[秦宜祿]을 보내서 구조[求救]를 청했다. 내가 이거 꼬발렸으니까, 진의록의 마누라를 내게주라^^ 한거지.. 이에 조조를 허락했다. 막 (여포를) 파[破]하려고할때, 여러번[屢] 또 (관우가) 여쭈운거야[啓:여쭙다] (다시말해서 상기시켜준거지. 전리품중에서 저 여자 나한테 준거 잊지말라고..)
公疑其有異色- 조조가 그 별난 미색에 의(구)심들어,
先遣迎看 - 먼저 사람을 보내 데려왔서 확인했다.
因自留之- 그로 말미암아 조조 옆에 머무르게 했다.
羽心不自安- 관우의 마음이 편치 못했다.
此與魏氏春秋所說無異也- 이는 위씨춘추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관우가 미색을 밝힌건 맞는데, 조조를 죽이려고 했다는건 어디서 나온거냐???
위씨춘추도 살펴볼까!

★★ 다시말해서
관우가 미색을 밝힌건 맞는데, 조조를 죽이려고 했다는건 어디서 나온거냐???

이 귀절을 말하는게 아니냐.. 이 꼴통시캬!!!!!!!!!!
지 꼴통이라고 광고하네..ㅋㅋㅋㅋㅋ
미췬성훈 08/09/05 [20:30] 수정 삭제  
  사서를 읽지못하면 가만히 잠잠코 있어라.. 이 무식한 시키들아...

이건 뭐.. 소설-삼국지연의가 마치 위촉오의 정사-삼국지 내용인것처럼 길길이 날뛰는 꼬락서니를 보면,.. 이자슥들은 한자는 나중문제이고, 한글도 제대로 못읽네....

에라이 무식한것들.. 가서 김용 의천도룡기나 한번 읽어라.... ㅋㅋㅋ

웅이 08/09/05 [21:39] 수정 삭제  
  公疑其有異色- 조조가 그 별난 미색에 의(구)심들어,
先遣迎看 - 먼저 사람을 보내 데려왔서 확인했다.
因自留之- 그로 말미암아 조조 옆에 머무르게 했다.
羽心不自安- 관우의 마음이 편치 못했다.
此與魏氏春秋所說無異也- 이는 위씨춘추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본 내용하고 다른게 뭔데. 맞잖아?
호색한에 소인배.
결국 하고싶은말이 뭐야? 관우가 영웅이라는거야 아니면 그냥 소인배라고 말하고 싶은거야?
성훈 칼럼리스트 08/09/05 [21:58] 수정 삭제  
  저처럼 이런 칼럼을 쓸 때는 삼국지와 삼국연의를 한번 다시 읽어보고 글을 씁니다.
단편적인 지식가지고 말도 안되는 댓글 달지 마시기 바랍니다.
* 안량은 관우에게 죽습니다만, 문추는 조조군에게 죽습니다. 여하튼 안량은 관웅에게 단칼에 날라갈 리가 없는 맹장입니다. 필시 뭔가 사연이 있습니다. 그걸 밝히는 글이 아니기에 간단하게 쓴 겁니다.
* 관우가 조조를 죽이려 했던 것은 위지에 나와 있습니다.
*관우는 수술 시 화살을 물고 바둑을 두었다고 삼국연의에 나와 있습니다. 간단한 일화를 자세히 써야 하나요? 관우가 수술받는 장면이 주제가 아닌 칼럼입니다.

관우의 일화는 이해를 돕기위해 간단히 든 한 예인데 그걸 가지고 시시비비 시비를 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본 글의 핵심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엉터리 같은 군신을 아직까지 군신으로 떠받드는 이 정부가 문제이지요. 중국에 대한 사대모화주의가 아직도 깔려 있는 거지요.
만정 08/09/05 [22:27] 수정 삭제  
  그것을오래한다면 차라리 조선민중을 수없이많이죽인 맥아도란놈의 상도 모셔야한다고 치니주구들이 할것이아닌가
개돌 08/09/06 [10:04] 수정 삭제  
  하하 이제와서 웬 얌전한척..
네가 예전에 달은 답글좀 보고 이야기나하시지...

강단의 개니.. 이병도 앞잡이니... 별 이상한 소리는 다해놓고선 이제와서는 딴소리하네

너부터 잘해라.
ㅇㄶㄴㅇㅎ 08/09/06 [13:08] 수정 삭제  
  그냥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실록이랑 광해군꺼, 조선말기책빼고 다 태워버리자 해라. ㅋㅋ
미췬성훈 08/09/06 [18:23] 수정 삭제  
  에휴~~~~~ 에휴~~~~~ 꼬라지 참 좋다... 쪽발이들이 짱개싸이트에 퍼날랐다네..ㅋㅋㅋ
중립사학 08/09/07 [07:08] 수정 삭제  
  이제 짱깨와 양키까지 와서 지랄을 떠는군요.
실명회원제로 바꿉시다.
미췬성훈 08/09/07 [14:33] 수정 삭제  
  http://pluskorea.net/sub_read.html?uid=11181§ion=section1§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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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삭제했구마....ㅋㅋㅋㅋㅋ

그리고 감동적인 댓글이 있구마..

어느 환빠 광신도의 말씀 (ㅎㅎㅎㅎㅎ)

회원 실명제 하면 위의 멍청한 색기 80%는 짱꺠로 밝혀진다.
한국인의 80%는 종이를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짱꺠 개색기들아.. 역사를 왜곡하려 한다면
정당하게 토론을 하려 결정짓자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한국인의 80%는 한국인이 종이를 발명햇다고 생각한다!!!!!!

80%.. 80%.. 80%.. 80%.. 80%.. ㅋㅋㅋ

역시 환빠 꼴통시키들 답구나....
의견 08/09/07 [21:12] 수정 삭제  
  http://isplus.joins.com/life/lifes/200809/01/200809012005464506080100000801010008010101.html
http://orumi.egloos.com
중립사학 08/09/08 [11:42] 수정 삭제  
  위서라고 증명해보거라...
별 시덥잖은 기사가지고 ㅋㅋ
협한증은 짱깨가 우리를 무서워해서 그렇지 ㅋㅋ.
공한증이 맞는 말이다.

이런걸 문제삼는 자야 말로 사상을 의심해봐야한다... 짱개야말로 동북공정이니뭐니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면서 쯧쯧. 이문영 이 자는 어느나라사람인지...
이기백 08/09/08 [19:22] 수정 삭제  
  논지도 없고 계속 헛소리만 하는 걸 보니 온전히 자존심이 찌그러져 많이 열받았나 봅니다.
관우를 숭배하는 짱개의 자존심이 한순간에 찌그러지니 .. 불쌍하기 불쌍하다.
조작된 역사가 무너지어 정신못차리는 지나 광신도의 말로를 보는것 같군요.
미췬성훈 08/09/08 [22:42] 수정 삭제  
  보자보자... 뭐라고 써놨나... 관우를 숭배하던 이토히로부미를 숭배하던.. 다까끼를 숭배하던 존니 멍청한 환빠 광신도님~~~ ..내가 뭘 한순간에 찌그러졌다고 개소리를 왈왈 하시남... 어디서 찌그러졌다는겨? ㅎㅎㅎㅎ 무식한 환빠 한마리가 무자게 애교부리네...


존니 개솔이 그만 쳐닫고...

★★★관우가 미색을 밝힌건 맞는데, 조조를 죽이려고 했다는건 어디서 나온거냐???

조조가 위 문제로 관우를 죽이려고 했다는거 찾아와봐!!! ㅋㅋㅋㅋㅋㅋㅋ

존니 꼴통 개솔이 집어치우고 위에꺼 꼭 찾아와라...

형아가 써비스로 하나 살포시 올려주마 관우(關羽) 시죽비(詩竹碑)

不谢东篁意,丹青独自名,莫嫌孤叶淡,终久不凋零

우리.. 조조행님 무자게 관대하셔라.... ㅋㅋㅋㅋㅋ
이병도 08/09/09 [01:23] 수정 삭제  
  먼저 인간이 되거라. 해괴망칙한 개소리 왈왈하지말고..
관우가 여색밝혔다는 것이 입증되었는데 아직도 여기서 헛소리만 해대니. 사이코냐?
미췬성훈 08/09/09 [02:26] 수정 삭제  
  꼴통아.... 내가 분명히 내가 정사-삼국지에서도 분명히 말했지.


부분 인용
※ 관우가 미색을 밝힌건 맞는데, 조조를 죽이려고 했다는건 어디서 나온거냐???
위씨춘추도 살펴볼까!

★★ 다시말해서
관우가 미색을 밝힌건 맞는데, 조조를 죽이려고 했다는건 어디서 나온거냐???

내가 위, 몇가지로도 충분히 저글을 구라친거라고 반박해줬을텐데..ㅋㅋㅋㅋ

그리고 또, 관우 미색밝힌거에 대해서, 그부분 중...

→조조를 죽이려고 했다는건 어디서 나온거냐???
이거 묻는거 안보이냐.. 이 꼴통시캬!!!

관우가 여색을 밝혔다는거 입중되었다고 개솔이 떨지말고.. 그거 빼고 나머지에 대해서 어여 쥐발 깔짝거려봐.. 이 환빠 신도님 사이코 야~~~~

한글도 못있는군... 우리 환빠님들은..... 도대체 내가 이 걸 몇번이라 써야 한다냐?ㅎㅎㅎㅎ

구려.. 한자도 못읽고 . 한글도 못읽고... 대단들 하셔..... 환빠님들 전용글씨로 올려봐! ㅎㅎ
이기백벅수 08/09/09 [11:21] 수정 삭제  
  관우자식을 숭배하자는 야그여,아니면 집워 치우자는 야그여.말의 본질을 교뵤하게 흐리네 며칠간 이 병신이. 애구 나라돌아가는 꼴이 이런 병신들이 설레발레 설치니......조조를 죽이던지 말던지...숭배하자는 애기여.이 후레??? 우리가 짱골라 자식을 숭배하는것이 잘 되었다는 야그여 시방.
이름 08/09/11 [02:47] 수정 삭제  
  의사가 화타라서 치료할때 별로 안아프지 않았을까요?
이름 08/09/11 [02:58] 수정 삭제  
  문제는 관우가 어쨋냐 저쨋냐 째째하게 따지는게 아니라 우리조상신도 아닌 남의 나라 장수가 왜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사당이 남아있냐는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성균관대학교는 아직도 공자인가? 중국사람 제사 지낸다던데.. 이것도 좀 아닌것 같네요
낙마 08/09/19 [20:55] 수정 삭제  
  치우천왕 모시면 되겠네요. 그런데 전국에 관운장묘가 있어서요, 어쩌지요...
가차서 08/10/04 [12:10] 수정 삭제  
  어찌하면 좋을꼬!
내가 너의 글을 쭉 봐왔는데...
너는 모자라는 놈이 틀림 없다.
니가 주장하는 글을 보면....
잘 못된 역사를 배운 그대로 나불거리는 것 외에 별 다른 내용이 없다.
한문해석도 마찬가지다.
성훈님 등은....
기존의 역사를 연구하다보면,
모순점에 직면하는데...
새롭게 탐구, 연구하면서...
종합적으로 역사를 이해하게되고 풀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췬성훈은 매번 기존의 역사인식으로 일관하고 있고...
조금 다르다 할 수도 있으나 매한가지다.
또한,
미췬성훈님의 주장하는 바대로 따라가다 보면,
앞뒤, 종합적인 설명이 되지도 않고, 그 모순을 여기저기 짜깁기 할 뿐이다.
즉,
미췬성훈에게 배우다 보면, 온통 역사를 헷갈리게 할 뿐이다.
제발 바보 멍충이야... 정신차려서...
니 말이 옳거든 니말 대로 역사를 배우면,
역사를 이해하게끔 해줘라...
오히려 더욱더 막힌다.
제발 지구에서 떠났음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만큼 니가 답답하게 나온다 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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