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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장성은 황하를 넘지 않았다!!

하북성 창려의 갈석산은 원래 산서성과 하북성의 경계에 존재했다

성훈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8/09/09 [12:58]

진시황의 장성은 황하를 넘지 않았다!!

하북성 창려의 갈석산은 원래 산서성과 하북성의 경계에 존재했다

성훈 칼럼니스트 | 입력 : 2008/09/0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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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갈석산은 산서성과 하북성 경계에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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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석산이 있는 곳에서 한나라의 '낙랑군'을 찾아야 한다. 사서의 기록과는 다르게 일제의 조작에 의해 한반도로 옮겨진 낙랑과 갈석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아래 내용은 갈석산과 낙랑군을 절대 한반도로 가져올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이다. 

(고대의 갈석산(碣石山)을 찾아서) (1)
민족사학자 오재성 선생의 이론에 따르면, 중국 내 갈석산(碣石山)이라는 의미는 경계지역에 있는 경계석, 즉 경계산을 갈석이라 지칭하는 것으로 갈석이 여러군데 있었다 한다. 이 갈석산의 위치는 한사군의 낙랑군의 위치와 연관이 있어 우리 고대사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하겠다. 이일봉선생의 저서 '실증 한단고기' 내용을 참고하여 재구성 해보았다.

① 현재의 갈석산
하북성 난하 서쪽에 있는 국사청문회시 고 임승국 교수가 주장한 갈석산을 말한다.

② 고대의 갈석산 (1)
산서성 북평(北平 지금의 부평) 인근 항산(恒山)근처 즉 지금의 백석산으로 추정

③ 고대의 갈석산 (2)
또 하나의 갈석은 산동성 황하 하류에 있었다고 한다

이 "갈석산"을 찾으면 단군조선의 강역이 습수와 함께 찾아질 수 있다. 민족반역자 이병도의 이론은 한반도의 황해도 수안이 낙랑군의 '수성현'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황해도 수안은 절대 수성현이 될 수 없다. 즉 낙랑군을 한반도로 절대 가지고 올수가 없음은 사서가 증명해준다 하겠다. 

황해도 수안이 수성현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서의 근거도 없으며, 또한 사서를 보지도 않고 스승인 이병도의 혓바닥 만을 따르는 자들로 매국적인 식민사학이라 하겠다.

② 고대의 갈석산 (1)
산서성 북평(北平 지금의 부평)인근인 "항산(恒山)"근처 즉 지금의 "백석산"으로 추정한다. (115도/39도) 중국의 정사인  "사기" 색은(索隱)에 의하면 갈석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저 갈석산은 두곳이다.  갈석산을 오른쪽에 끼고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 것은 당시 북평의 갈석을 말하는 것이다"

"지리지에는 갈석산이 북평 여성현 서남에 있다고 말한다. 태강지리지에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된 곳이라 말한다". 먼저 현재 중국지형도 상에서 지도를 살펴보면,

(중국 지형도)
▲   고대의 갈석산은 하북성 창려의 갈석산이 아니라 산서성 태행산맥의 백석산으로 가야 한다.

(1번) 진시황의 장성 종료 부분 (정정될 부분 : 황하에서 끝난다)
진시황이 쌓은 장성의 종료 부분이고,  그 오른쪽이 고대의 요동이었다. 물론 윗부분의 장성은 명나라까지 후대에 구축한 부분이다.

(2) 고 "습수" = 현재 상간하(상건하)
고조선의 "습수"가 시작되는 강 어귀이다. 진장성이 종료되는 시점에서부터 발원하여 북경인근 영정하를 거쳐 발해만으로 들어간다. 고대의 조선의 "열수"이다

(3) 항산, 오대산
"항산"과 "태행산"의 이름을 따 태항산맥이 되었고, 후에 "태행산맥"이 된다. 이 항산이 바로 고대의 상산이다. 아래 고지도가 설명해 준다. 상산 구문현의 갈석산이 백석산 인지 태백산 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여기는 성을 쌓을수 없을 정도로 고산지대이다. 오대산이 해발 3,058m이고 항산은 2,015m 이다. 이 오대산에서 나오는 물이 "보수"이다. 보살 살 "살수",  살수는  이 근처에서 찾아야 한다

(4) 고 "북평(北平)" = 현재 부평(阜平)
고구려 모본왕이 평정한 북평, 태원, 어양, 상곡에 나오는 그 북평이다. <삼국사기 고구려국본기>에 따르면, "모본왕 2년(서기 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맥을 따라 있는 국경지역을 한나라가 침범하니 고구려 모본왕이 이를 응징해 태원까지 쳐들어 간 것이다. 이를 두고 매국식민학자들은 삼국사기에 기록이 명확히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거기까지 갔을 리가 없다"고 한다. 사서의 기록도 부정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거짓말을 계속 하려는가?

고대 북평은 현재 북경이 아니다. 현재 북평은 나중에(명나라 이후) 붙여진 이름이다.

(5) 백석산 = 고대 "갈석산"으로 추정된다

(6) "수성현"의 그 "수성"으로 보인다

(7) 고대 "석문" = 현재 "석가장"
"석문" 접 "대방"으로 석문과 대방과 낙랑은 인근에 접하여 있었다

(8)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에 있는 "갈석산"
이 갈석산이 어떻게 한반도로 올수 있으며, 여기에 있던 낙랑이 어떻게 한반도로 올수 있는가?


▲  현 한국의 사학계가 주장하는 한사군의 위치는 사서의 가록보다 훨씬 동쪽으로 되어있다. 이것이 일제가 만든 반도사관의 이론이다. 해방 63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이론이 안 바뀌고 있으니 아직도 사학계는 일제치하이다.

(중국 고지도 상 "북평")
현재 "북경 = 북평"이 된 것은 명나라 이후의 일로 고대의 북평은 현재의 "부평"으로 지명이 변경된 것이다

(우적도 상의 북평, 태원)



("송본지리지장도"상의 "북평", "태원")



(북경대 출판 중국 고대사 교학참고지도집상의 "진장성") - 역시 황하에서 끝난다.




북경대 교재에 표시되어있는  "진장성"이다.
자기들도 진장성이 태행산맥을 넘지 못하였다고 표시하고 있고, 정사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중국 구역수령도(九域守令圖)상의 수성)



(고대의 갈석산(碣石山)을 찾아서(2))
"사기"와 "진서"에 의하면 상산(常山) 구문현(九門縣)에 갈석산이 있다고 했다.
- 상산(常山) = 항산 = 인근 "갈석산"

(고대의 갈석산 관련 고지도)
고지도에서 상산(常山)을 확인해 보자
고대의 갈석산은 상산(=항산) 인근 구문현에 존재하였다



- 지도상에 "상산"이 보인다




위로부터
(1) 태행산(太行山) : 산이름
(2) 상산(常山) : 산이름 우측에 "갈석산"이 있다
(3) 정(定) : 지명이다
(4) 대륙(大陸) : 지명이다
(5) 구하(九河) : 아래 지도를 보면 아홉줄기가 모여 "구하"가 되어 발해만으로 들어간다

위 지도에서 보았다시피, "사기"와 "진서"에 의한 상산(常山) 구문현(九門縣)에 있는 갈석산이 어디에 있었겠는지?
상산, 수안, 북평이 있는 곳에 갈석산이 있었다. 그곳은 "태백산"과 "백석산"중 "백석산"일 가능성이 높다. 황해도 수안이 낙랑군 수성현이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전혀 없다.

대륙고려 김용무선생이 소개한 중국 "고금지명대사전" 상의 길석산을 소개한다.

▒ 중국지명사전 1110쪽에 나타난 갈석산 기록
(1) 갑 ; 지금의 직예성 창려현 동남
(2) 을 : (한서지리지) 우북평 여성현 - 지금의 직예성 낙정현
(3) 병 : 지금의 직예성 고성현
(4) 정 : 지금의 경조(京兆=북경) 대흥현 서남

(5) 무 : 사기 색은
- 태강지지. 낙랑 수성현유갈석. 장성소기 (太康地誌 樂浪 遂城縣有碣石.長城所起)
  (뜻) 태강지지에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고 써 있다.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
- 차재금조선경 (此在今朝鮮境)
  (뜻) 이곳은 지금의 조선 지경이다.

(김용무선생의 주)
이 대목의 이율배반적인 내용을 해석해 보면, "낙랑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 =조선지경"이란 등식이 성립된다. 일본이 역사를 날조하니까 짝짜궁한 1920년대에 만들어진 중국 지명 사전 편찬자들, 날조를 하다 보니 제 발등을 찍은 소리가 들린다.

(a) 낙랑은 평안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에 있고,
(b)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은 조선의 땅이라는 말이 되니,

제 발등 찍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과연 진실을 말하였나 ? ! ---> 보충설명을 하자면,
만리장성은 하북성 산해관에서 끝나며 동북쪽으로 고구려 천리장성이 이어진다. 그러니 당연히 조선 땅이다.

(6) 기 : 지금의 열하 능원현
(7) 경 : 지금의 북평 노령현
(8) 신 : 지금의 산동성 무예현

(원문)



그런데도 민족반역자 이병도는 황해도 수안이 수성현이고 여기에 갈석산이 있다고 했다. 그이유가 낙랑군 수성현과 황해도 수안의 첫 글자 즉 "수"자가 같으므로 "여기가 거기인가봐?"라는 이병도의  말 한마디에 황해도 수안에 갈석산이 표시 되었다 한다. (위 내용은 국회 청문회 속기록에 기록되어 있다)

아래는 민족반역자 이병도와 그 제자들이 그린 한사군의 위치도이다. 이 그림은 일제가 우리의 민족정신(혼)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 역사를 한반도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은 반도사관에 의해 그려진 지도이다. 이 지도를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진실로 알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매국식민사학의 폐해가 이토록 깊다고 할 것이다. 
 
▲ 민족반역자 이병도가 만들어 놓은 반도사관에 의거한 지도. 가장 중요한 낙랑군과 수성현은 산서성과 하북성의 경계로 가야 하며, 고구려를 비롯한 한사군과 삼한이 모두 대륙 동부로 이동해야 한다.

 
광나루 08/09/23 [00:29] 수정 삭제  
  이런!

6국 통합전 진 장성과,
6국 통합 후 진 만리장성을 구분하지 못하다니...

= = = = = =

=(중국 고지도 상 "북평")
=현재 "북경 = 북평"이 된 것은 명나라 이후의 일로 고대의 북평은 현재의 "부평"으로 지명이 변경된 것이다.

이런!

한나라 때 우북평군이 진나라 때 북평군으로 이름이 바뀌었거늘 명나라 때 이름이 바뀌었다니... 지발 공부좀 하소.

그리고 모본왕 때 북평은 우북평을 말함인데, 전한 때는 북평군이 옥전에서 대릉하하류까지 16현이 있었으나, 후한 때는 옥전, 준화 등지에 4현만 있었어요. 모본왕 때 점령한 북평은 이곳을 말함이오.

= =- = =

太康地誌 樂浪 遂城縣有碣石.長城所起) (뜻) 태강지지에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고 써 있다.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
- 차재금조선경 (此在今朝鮮境) (뜻) 이곳은 지금의 조선 지경이다.

이런! 이런!

사기 색은에 (此在今朝鮮境) 문구 나옵니까? 다른 곳 문구를 사기 색은 문구라고 주장하면 안됩니다.

지발 공부 좀 하세요

천문박사 08/09/24 [00:15] 수정 삭제  
  그럼 광나루씨는 평양에서 만리장성이 시작된다는 겁니까?
뭔 헛소리를 하는거요?
광나루만큼 사서 안 읽은 자 있나? 당신도 매국 친일사학이구먼....
광나루 08/09/24 [01:51] 수정 삭제  
  위 내 글에 평양에서 만리장성이 시작된다고 적혀 있나요? 벌써 헛것이 보이는 것을 보니 참 걱정이오. 얼런 병원에 가보세요.

6국 병합전 진장성과 6국 병합후 만리장성을 왜 구별 못하나 했더니 헛것이 보여서 그런 모양이군요.

그리고 아무대서나 매국이니 친일사학이니 운운 하는 말투를 보니 그 말이 아주 몸에 배어 있는 모양이군요. 꼭 저 윗동네 말투같소. 그 쪽에서 잘 쓰는 반동이라는 말을 왜 빼버렸소? 혹시 그쪽과 아주 깊은 관계라도 있나요? 아무대서나 매국이니 친일사학이니 내밷는 것으로 보아 저 윗동네 아주 숭배하는 모양인데, 그쪽이 좋거던 얼런 가세요. 누가 안 말립니다.
김 철 08/10/27 [00:29] 수정 삭제  
  이해가 안갑니다. 수나라,당나라 모두가 북경과 남경 등 중국대륙에 있는데 굳이 고구려라는 우김은 작은 나라 컴플렉이 아닌지요? 답변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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