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화인 또는 중국인들은 아래 글을 보면 “정신없는 인간이 또 세계 최고/최초는 한국인의 조상이란 말이냐?“라고 욕지거리 할지도 모르겠지만 진실을 거짓으로 혹은 외부 눈치 보아가며 올릴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학문적 소신을 앞세워야 할 학자가 여러 눈치를 보게 되면 침묵의 거래를 하게 되고, 폴리페서가 됩니다. 소위 학자(學者)라고 할 수 없고 학자(謔者)라고 해야겠지요. 아래 글들을 보면 지나나 한국의 익명의 독자들은 육두문자를 써가며 저질스러운 접근 방법을 취할지 모르나 소위 역사를 아는 지나의 관제에 물들지 않은 학자들은 다 수긍 할 것으로 믿습니다. 문방사우(文房四友)라 일컫는 종이,먹,벼루 등을 보아도 그 기원은 이미 2000여년 이전에 그 기원이 황하 이북지역이었으니 연대나 지역적으로 볼 때 동이의 문화적 산물임에는 확실하다 추론되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인이 100% 동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동이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오고 현재 지구상에 동이인 고조선, 후대 고구려, 고려의 국호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한국인 밖에 없기에 그 대표성을 부여 받고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는 본인의 논리입니다. 얼마 전 올려주신 <동이갑골문>을 중국학자 스스로 한국인이 동이의 대표성을 피하려 산동지방 사람들을 동이족으로 지칭 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교묘하게 피해갑니다. 한족이란 부류도 기실 동이사람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그렇게 호칭하는 것은 역사적 논점 피해가기의 한 방법인 것 입니다. 아울러 지나에서 소위 한족들이 한의술(漢醫術)의 백미라 일컫고 자랑하는 의학 집합서 <황제내경>또한 고려에서 송으로 전해 준 것 이라면 또 어떠한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일까? 아래 역사적 내용을 보기 전에 우선 <황제내경>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중국 최고의 의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이란?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일명 내경<內經〉이라고도 한다. 황제에 빗대어 작은 우주인 인간의 육체를 논한 자연철학적 이론 의서의 총칭이다. 중국고대의 인물인 황제(황제=헌원)와 名醫(명의) 岐伯(기백)의 의술에 관한 토론을 기록한 것으로 중국의 고전의학서 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책으로 內徑(내경)이라고도 하며 醫學五經(의학오경)의 하나로서 동양의학의 원류로 간주 된다. 전국시대에 활약하던 음양가(陰陽家)의 논리에 맞춰 예전부터 전승되던 것을 모아 엮은 책으로 보인다. 책이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춘추전국시대 중 제왕기(BC 770~221)로 추정되며 후대인들에 의해서 계속 증보되었다. 내용은 의학서이면서 동시에 천문 역법 지리 음률 등 각 분야의 지식을 두루 섭렵한 것으로 그 이론과 정신은 모두 易經(역경)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내경은 소우주의 인간의 육체를 논한 자연철학적 이론 醫書(의서)로서 원래 18권 16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 9권은 素問(소문)이며 후반 9권은 靈樞(영추)로 구분 된다.
素問(소문)은 天人合一說(천인합일설) 陰陽五行說(음양오행설) 등에 입각한 병리학설을 주로 하여 臟腑(장부) 經絡(경락) 病機(병기) 診法(진법) 治則(치칙) 針灸(침구) 方藥(방약) 등의 각 분야 및 인체생리 병리 진단 치료에 대해 계통적으로 논술하여 중국의학 이론의 기초를 공고히 하게 되었고 오랜 기간 동안 중의학의 발전에 지도적인 역할을 해 온 까닭에 특히 중의학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경전이다. 靈樞(영추)는 사람의 몸속에서 양에 속하는 정기인 神(신)과 음에 속하는 정기인 靈(영)의 관건이 되는 주요한 문제를 개괄적이고도 정밀하게 논술하고 있으며 경락 침구 분야에서 쓰이는 물리요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영추는 경락·침구 분야에서 쓰이는 물리요법을 상세히 서술하여 침경(針經)이라고도 부른다.
고려의 침구경 원본 9권을 송나라 철종 8년에 전함. 침술의 원전인 황제내경 영추경의 기원이 고려임을 입증, 침구의 종주국이 한국이라는 사실이 한 재야 침구 의학도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밝혀짐으로써 한의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침구의학도 한헌구(전 의료보험연합회 상임감사)씨의 <침의 종주국설>이 그것인데, 침구의 최고 경전인 황제내경 영추경은 고려가 송나라에 헌납한 침경으로서 침의 종주국이 한국이라는 사실이 문헌적으로 입증해 냈다. 한씨는 중국학자 용백견(龍伯堅 1900~1983)이 쓴 [황제내경 개론]에 기록된 [고려의 침경 헌납설]을 확인하기 위해 국내 관련 문헌을 모두 추적해 보았으나 실패, 그러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천진 남계대학 도서관에서 수일동안 체류하며 사서를 뒤진 끝에 영추에 관한 기록 원본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1900년대에 용백견이 쓴 <황제내경개론>에 영추경은 송나라 철종 원무 8년(1093년) 고려가 헌납한 침경으로서 당시 9권본이었으나 그것을 史崧(사숭)이 개편하여 24권으로 만들고 영추경(靈樞經)이라고 개제했다. 영추경 원본(침경)은 과거 고보충 등의 교정을 거친 것도 있었으나 그 교정의 원본은 분실되었으며 왕수가 개편한 24권 소문과 사숭이 개편한 24권본의 영추경이 현존하는 최고의 황제내경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씨는 이의 전기를 확인하기 위해 원본 기록을 추적한 결과, 송사(송조실록)17권중 철종본기에 [00 高麗所獻 黃帝鍼經于天下....]라는 기록을 확인 영추경의 기원이 고려임을 확증한 것이다. 한씨는 중국 침구계 권위자 王雪苔교수(중국 중의연구원 전문위 부주임)와 馬廷芳 교수(중국 침구학술부 주임)등 중국학자들에게 이같은 문헌자료를 입증시키는 등 한국이 침술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말했다.
아마 고려초엽인 5대10국과 송나라 때 고려에서 송으로 전파된 문물의 양도 단군조선과 삼국시대에 전해진 ?걋?양에 못지않게 다양하고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송사 本紀第十七 ○哲宗一八年春正月己卯朔,不受朝。甲申,蔡確卒。丁亥,御邇英閣,召宰臣讀《寶訓》。庚寅,詔復范純仁太中大夫。壬辰,幸太乙宮。庚子,詔頒高麗所獻《黃帝針經》於天下。 민족추진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검색한 결과를 보면 송나라에서 요구한 것은 황제침경9권이고 고려에서 전한 것도 황제침경 이다. 해동역사 중국 서목중 황제침경(黃帝鍼經)》 ○ 철종 원우(元祐) 7년(1092, 선종9)에 고려에서 황종각(黃宗慤)을 사신으로 파견하여 《황제침경》을 전했다. 8년 1월 경자에 조서를 내려 고려에서 바친 《황제침경》을 천하에 반포하게 하였다. 《송사>>를 살펴 보건대, 정초(鄭樵)의 《통지(通志)》 예문략(藝文略)을 보면, 《황제침경》은 9권이고, 또 황제잡주침경(黃帝雜注鍼經)》 1권이 있으며, 또 《황제침경(黃帝鍼經)》 1권이 있다. 그런데 《고려사》 세가(世家)에도 역시 《황제침경》 9권이라고 실려 있으니, 황종각이 바친 것은 마땅히 9권의 《황제침경》일 것이다. 해동역사 우리나라 서목 <부록>중...황제침경 <고려사 선종세가(宣宗世家)>를 보면, 신미년인 8년(1091)은 송나라 원우 6년인데, 5월 병오에 호부상서 이자의가 송나라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황제가 우리나라의 서적 가운데 좋은 본이 많다는 말을 듣고는 관반(館伴)에게 명하여 서목(書目)을 기록하여 주게 하면서 이르기를, ‘비록 권질(卷帙)이 빠진 것이더라도 모름지기 전사(轉寫)하여 보내라.’ 하였습니다.” 하였다. 그 서목은 《백편상서(百篇尙書)》이하 《계연자(計然子)》 15권까지 모두 129종이었는데, 그 가운데 《황제침경(黃帝鍼經)》이 있었다. 송나라 《송사》의 철종본기를 보면, 원우(元祐) 8년 1월 경자에 조서를 내려 고려에서 바친 《황제침경》을 천하에 반포하였으니 바로 그 일이다. 그러나 그 이외에 별도로 바친 책이 있다고는 듣지 못하였으니, 고려의 서적도 역시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황제내경의 내용 중 전체의 절반인 '침경'은 고려의 의서를 수입해 기존의 황제내경에 추가한 것이다. 황제내경에 삽입된 '영추경'은 고려의 침술서를 그대로 복사해 붙여놓은 것이다. 결국, 황제내경에서 '소문' 9권을 제외한 '침경' 9권은 한족이 아닌 고려의술서라는 점은 이제 확실해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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