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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 독립운동 95주년 기념

전북 고창 새마을공원에서 추모비 제막식 개최

이한국 기자 | 기사입력 2014/03/29 [21:30]

파리장서 독립운동 95주년 기념

전북 고창 새마을공원에서 추모비 제막식 개최

이한국 기자 | 입력 : 2014/03/29 [21:30]
[플러스코리아 타임즈-이한국 기자] 1919년 3.1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뒤를 이어 1919년 3월 말 한국 유림 대표 137인이 프랑스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국제적으로 한국 독립의 여론을 환기시키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파리장서 독립운동’이 95주년을 맞았다.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추진위원회'는 지난 29일 고창 새마을공원에서 파리장서 기념비 고유제 및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번 기념비는 파리장서 운동에 참여한 고창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고석진, 고예진, 고순진, 고제만 지사(志士)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이날 행사는 전라북도 심덕섭 행정부지사, 이강수 고창군수, 박래환 군의회의장 및 군의원, 성균관, 광복회, 고창교육지원청 및 군민, 중고생 200여명 등 관계자 1,000여명이 참석하여 독립지사를 추모했다
 
파리장서 독립운동은 유림들이 1919년 1월부터 프랑스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결산하는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대한제국 독립의 대의와 정당성을 설파한 독립청원서를 만들어 파리평화회의 대표단과 중국에 상주하는 각국 외교사절, 국내 향교 등 다양한 기관에 대거 배포한 사건이다.
 
이 운동에는 곽종석, 김복한 등 전국 유림 대표 137인이 서명했다. 심산 김창숙이 1919년 3월 23일 파리장서를 비밀리에 휴대하고 국내를 출발해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착해 임정대표 김규식을 통해 파리평화회의에 보냈다.
 
파리장서 독립운동은 3.1 독립운동에서 표출된 각계각층 남녀노소의 독립의지를 알리고, 일제 무단 식민통치의 불법성과 부당함을 꾸짖고 민족독립의 대의와 정당성을 알려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일제가 폭력 무단통치를 자행하고 친일파들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불원서를 제출하는 암울한 상황에서 이 땅의 선비들은 목숨을 걸고 파리장서 독립운동에 나선 것이다. 당시 선비들은 일제의 검거선풍으로 옥고 등 갖은 고초를 치렀지만 고결한 기개를 잃지 않았다. 
 
서명인 137명 중 호남 출신 선비 10명이 파리장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는데 고석진, 고예진, 고순진, 고제만 선생 등 네 사람이 전북 고창 출신이다. 이들은 파리장서 독립운동에 앞서 1905년 말 일본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돼 사실상 민족 주권을 강탈당했을 때 목숨을 걸고 스승인 면암 최익현 선생을 모시고 의병투쟁을 주도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당시 충청도 청양에 살던 면암 선생이 태인 무성서원에서 거병해 정읍, 고창, 순창, 곡성, 남원으로 잇따라 진출해 독립의 대의를 널리 밝힐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헌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네 사람은 1910년 8월 경술국치 이후 1912년부터 1914년까지 유림의 전국 비밀결사조직인 독립의군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다시 옥고를 치렀다. 이 중 고예진 선생 등 유림은 기독교 목사들과 함께 12인이 1919년 3월 5일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장서’를 작성해 종로 4거리에서 크게 낭독하고 총독에게 전달했다가 역시 옥고를 치렀다.
 
선언장서는 제2의 독립선언서로 평가되며 당시 3.1운동의 불씨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선언장서 투쟁은 동아일보 1950년 3월 1일자에 크게 ‘33인 뒤이은 12지사 비화’라는 기사로 실리기도 했다.
 
네 사람은 파리장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후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했고, 고창의 방호정사(도동서원)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며 독립운동의 험한 길을 걸었다.
 
박유철 광복회장은 “파리장서는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독립의 대의를 밝힌 것으로 3.1독립운동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또한 광복이 되는 날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지난날 의병투쟁의 결의와 기개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갈수록 도를 넘고 국내에서도 친일독재를 미화하려는 일부 움직임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 같은 독립지사들의 기개와 혜안을 본받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는 게 중론이다.
 
유족대표인 고석상 전 성균관 부관장은 “독립지사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독립된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분들이 반쪽 나라를 원하신 것이 결코 아닌 만큼 통일 조국이라는 완벽한 독립국가를 이루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제보=plus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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