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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사건의 진실 “黃 정계 이용“

'도원 결의'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재집권에 황우석 이용?

리복재 기자 | 기사입력 2006/08/20 [14:55]

줄기세포 사건의 진실 “黃 정계 이용“

'도원 결의'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재집권에 황우석 이용?

리복재 기자 | 입력 : 2006/08/20 [14:55]

 2001년 문신용, 노성일, 황우석 박사 등은 “도원 결의”를 맺습니다. 전경련 주최 BT관련 강의를 마치고 전경련 회관 지하다방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전경련 회관    

이 자리에서 난치병 환자 치료를 위한 치료복제(Therapeutic Cloning)를 시도하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

2004년 10월 11일, '인간배아 복제연구 드림팀'이라는 칼럼을 세계일보에 기고한 내용은 이렀습니다.
 
"2001년 전경련 2001년 어느 날 전경련회관 지하다방에서 서울대의대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과 나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상호간의 역할이 정해졌다. 이미 불임 관련 실험으로 일가의 경지를 이룬 문 교수님팀은 총괄조정과 복제배아의 배양 등 기초부분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노성일 원장께서는 윤현수 박사와 같은 백전노장의 베테랑으로 줄기세포 수립과 그 이후 배양을 책임지기로 했다.

우리 팀은 10여년간 소와 돼지 등 동물복제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으며, 각 팀의 역할 치고는 꽤나 잘 짜여진 그림이었다.

우리 연구팀은 연전에 이미 류영준·이유진씨의 의사, 간호사 부부가 합류하여 줄기세포 분야에서 무언가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열의가 불타고 있었다"


이 때 맡은 각자의 역할은 
문신용 :시험관 아기 시술분양의 대부, 세 사람중 맏형  ,  총괄조정과 복제배아의 배양 등 기초부분을 담당.
노성일 : 불임분야의 대가, 난자 공급및  줄기 세포 배양  담당.
황우석 :배반포  생성 등 이었습니다.

이 날의 결의를 네티즌들은 “찻집 결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결의 맺은지 불과 4 년도 채 안 되어 한 사람은 황 교수를 가리켜 “남의 이익을 가로 채는 희대의 사기꾼”이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수의사 주제에  본분도  모르는 허풍쟁이”라며 서로가 갈라 섭니다.

이들은 각자 어떤 생각으로 ‘찻집 결의’를 맺었을까 ?

문신용 교수로서는 당장 닥쳐온 수의계와 의료계의 입장 차 조율이 문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이지만 그 역시 생소한  생명 공학 분야의 선구자격인 황교수의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앞으로 나서고 있는 황교수의 진도를 다소 제어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노성일 원장으로서는 무엇 보다도 궁금한 것이 황교수의 배반포 복제기술입니다. 불임 부부를 위한  수정란 아기분만이  자신들의  전문 사업 영역이니 만큼,인간 배아 체세포 줄기 세포 배양 역시 자신들의 노하우로  충분히 해결 가능 하다고 보았고, 줄기 세포 치료가 현실화 된다면 부친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미즈메디를 세계 굴지의 불임 센터 및 줄기 세포 치료 병원으로 발전 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로서는 동물복제에서 쌓은 노하우로 환자 맞춤형 줄기 세포 치료 기술을 발전시켜 인류의 난치병  치료에 선구적 역할을 담당한 위대한 과학자로 역사에 남음과 함께 이를 통하여 자신의 연구 의욕을 성취하려는 소망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 의대 문신용 교수     ©플러스코리아
문신용은 1948년 4월1일 생으로 서정선 교수 (1952년 6월11일 생)보다 네 살 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선 교수를 형님 대우하듯 하는 이유는 서정선 교수의 권위와 위상이 의료계에서는 감히 대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신용과 노성일, 윤현수에 대한 미국 정부로부터의  연구 지원금 지원에 하바드대학 김광수 교수와 함께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될 뿐만 아니라, 문신용의 캘리포니아 대학 진출에  최대의 지원군이 되며 국내 의료계에서도 세포 응용단 단장 임명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합니다.

문신용 교수에 관해서는 천천히 정확하게 알아 보겠습니다.

노 이사장은 문신용 서울대 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소개로 황 교수를 알게 됐고, 황 교수에게 먼저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 연구를 제의한 인물이며, 경기고, 연세대 의대 출신으로 삼성과 함께 삼성제일병원을 공동 창업한 故 노경병 전 대한병원협회 회장의 장남입니다.

노 이사장의 선친인 고 노경병 회장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형 이동희 박사와 산부인과 전문병원 '제일병원'을 공동 창업했고, 이 제일병원이 현재 삼성제일병원으로 발전했으며, 노성일 이사장은 제일병원(삼성제일병원 전신)에서 산부인과 과장을 했습니다.

그러한 노 이사장은 삼성그룹 측에 제일병원을 기증하려던 고 이동희 동업자의 유지에 반발해 독립한 후, 1991년 미즈메디 병원을 설립 오늘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는 산부인과 전문의로 국내 불임치료 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기자회견 당시 노성일 원장     © 플러스코리아
노성일은 1952년 4월 1일생인데 생일이 문신용과 꼭 같은 4월 1일 만우절이어서 네티즌들로 부터 ‘만우절 조작 품종’이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그의 생년월일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포탈사이트에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1952년도로 기재하다가 국적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1951년도로 바뀌었습니다.
 
출생년도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노성일에 대하여 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가 원장으로 있는  미즈메디 병원 인물 소개에 따르면 그의 출생지는  서울이고 학력은  경기 고등학교라고 적혀 있습니다.

네티즌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의 부친 노병경 씨는 함흥 고보 출신으로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전쟁 발발 해인  1950년도 초 부터  1951년도 초 까지  약  일년간은  제주도에서 잠시 산부인과를  경영한 사실이 있었으며(친구 이삼열 씨의 기록 ), 1954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 피츠버그 대학( 새튼과 같은 대학 )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고 합니다. 

전문의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 1년간의 인턴 과정이 있어야 하므로 아무리 늦어도 1953년도 본 학기 시작 이전 까지는 미국에 체류 했어야 했는데,한국이 전쟁 상태임을 감안하면 한번 출국한 사람이 특별한 사정이 없이 재입국할 이유는 없을 것이며,  더우기 한 개인의 시간표대로 미국 대학 입학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님으로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1952년도  이전 까지는 미국 현지 입국이 선행되어야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모친의 뱃속에서 잉태된 상태로 비행기를 탓거나 아니면  현지 미국에서 태어 난 기록이 맞게 되는데 보통의 경우 전쟁의 와중에 있는 전화지에서 보다는  시설 좋은 미국 병원에서 아이를 태어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 후 노병경 씨의 이력에 보면 1958년 9월부터 1963년 11월까지 연세 대학교 산부인과 조교수로 재직한 것으로 나오는데 미국 학제는 우리와 달리 9월을 기준으로 하고 5월말 종강을 끝으로 사실상 졸업하게 됩니다.

따라서 노성일이 그의 나이에 맞게 경기고등학교에 갔다면 66회가 되겠지만 이것은 1970년도가 됩니다. 그런데 그의 연세대 학번은 71년도학번이니 분명 1년의 차이가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제대로 제 나이에 학교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나이보다 일년씩 처져서 입학 졸업했다는 증거입니다. 
노성일은 부친의 귀국 싯점인 1958년 9월까지 한국 나이 일곱 살까지 미국에서 살다 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노성일의 이중 국적이 문제 되었을까?

답변은 간단합니다. 노성일의 돌발적 선언과 행동을 매국, 친미행위로 인식한 네티즌들이 집요하게 그의 과거 행적 파악에 힘을 기울였는데, 그의 출생년도와 학교 입학년도에 의문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각종의 소스를 동원  정체 파악에 나섰던 것입니다. 

특히 그가 만일 미국 시민권자라면 사건 해결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다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와 혹시 미국 시민권자 임을 내 세워 처벌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2001년 2월 13일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인간유전정보법 개정에 관한 의견 청원" 국회 제출 
▲ 미국 보건성(nih) 건물. 자료사진    ©플러스코리아

2001년 3월 미즈메디 수정란줄기세포(MIz-1)를  미국 NIH에 등록(검찰 보고서:120Page에  의하면   국외-20건,국내-80건 총 100여건 Miz-1번 분양  했다고 함 ) 

 이 일은 이 사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 관계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한 어떠한 조사도 시행한 적도, 시도하려 한 적 조차도 없습니다.  이 때 등록  된 것이 과연 수정란 줄기 세포인지  여부에 관한  명확한 자료를    NIH는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2001년 4월, 김대중은 방북 시 황우석이 복제한 젖소와 한우 20마리를 북한에 보내라고 지시합니다. 김대중의 ‘햇볕 정책’이 황우석을 죽이는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과학이 정치가의 손에서 놀아나게 되는 단초가 이 때부터 제공 된 것

황우석 자신은  부인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김대중과의 만남은 결과적으로 황우석에게는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이 나라 최고의 어른이 친근한 동네 형님같이 매사에  황교수를 돌보아 주던 김대중의 은덕을  황교수가 잊을 수 없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황 교수도 개인적으로 김대중을 존경하고 새해에는 반드시 세배를 다녀오는 등 두 사람과의 관계가 아름답게  지속된  것입니다 .

당시 IMF로 국민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을 때 황우석의 영롱이 탄생과 더불어 연 이어진 토종 한우 ‘진이’의 탄생은 그나마 김대중 정권의 대 국민적 희망의 메세지가 되어 주었고, 복제소 한우와  광우병 내성소의 연구 결과 발표는 국민들에게 과학을 통한 새로운  미래를 내다보게 한 획기적 선전 효과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김대중 다음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김대중의‘햇볕 정책’을 이어 받은 노무현  역시 직접 연구실을 방문하는 등 김대중과 같은 성심성의로  황교수를 대해 주었고 연구 시설과 연구용 동물 도입 등 많은 도움을  줍니다. 

김대중의 정치를 벤치마킹하며, 황우석의 연구결과가 미치는 정치, 경제, 사회적 효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정동영이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 당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남북 협상 문제 해결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합니다.  
 
▲ 남북 장관급 회담 사진   
황우석의 줄기 세포 연구를 북한과 공동으로 추진

남북공동 사업 추진 내용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황우석 박사가 그렇게 얻기 힘들어 하는 ‘연구용  난자’를 북한 측에서 제공받고 난자 비용을 북한 지원금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북 간 줄기 세포의 공동 연구를  위해서는 이북의 BT 연구 분야가 한국의 황 박사 연구 팀과 어느 정도 수준이 같거나 최소한의 연구 시설이라도 마련되어야 하지만, 북한의 생명 공학 연구 환경과 실정이란 뻔한것으로서 결국 북한 여성의 난자 제공 업무가 북측의 남북 공동 연구 과제임이 드러납니다. 

이에 대하여 황우석은 소극적 자세로 임하다가 압력에 못 이겨 결국은 정동영의 주장대로  북과의 공동 연구를 적극 찬성 한다는 의사를 밝히게 됩니다. 정동영은 평양방문 시 이 문제를 정식 회담 의제로 상정하고 북측의 전폭적 찬성을  얻었던  것으로 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황우석의 북한 방문설이 나도는 등 시중에 루머가 퍼지면서 북한 대표자단의 한국 방문 시 정식으로 남북 공동 사업을 찬성한다는 의사 개진이 있게 되자, 일은 급박하게 돌아갔고 황우석도 더 이상 자신의 태도를 모호하게 끌고 나갈 수만은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가짜인지 또는 황교수를 음해하려던 세력들간의 장난질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터넷 상에 황교수가 그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하려 했던 증거 서류라며 입당 원서 사본이 돌아다닌 일이 있었지만(2004년 1월 경 황교수 지역인 강창희의원 만나 입당했다는 설), 한나라당은 은밀하게 황우석을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밀어 부칩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아 챈 이해찬과 정동영 역시 당시 황교수를 열린우리당 전국구 후보 국회의원으로 공천하고자 추진 중이던 차인태, 황 교수의 그러한 배신적 행위를 알게 된 정권 실세로서 엄청난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특히 황우석의 연구를 남북 관계 해결의 한 중요한 과제로 삼아 과학 분야를 통한 대북 관계의 자연스런 교류를 통해 김대중 정권의 햇볕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작정한 정동영의 입장으로서는 자신의 적과 손을 맞잡으려 했던 황우석을 곱게 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소위 황금 박쥐라는 말이 유행하였는데 이 말은 아시다 시피 황우석의 연구를  정치적으로 이용 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표현한 말입니다. 

▲박기영 청와대 보좌관과 황 교수 .자료사진   
황금박쥐란 학문(황우석)과 권력(박기영, 김병준)과 돈(진대제)이 어울어진  오케스트라인데 
2004월 2월 첫 만남을 가진 '황금박쥐' 사단은 황우석(황)을 지원하는 정부와 청와대측의 주요인사들인 '노대통령의 힘'을 상징하는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금),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박)과 '삼성과 정권'의 힘을 가진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쥐)의 성을 따서 지은 '황우석 지원 이너써클'입니다 

이들은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한국을 세계줄기세포허브로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고 또한 관련 정책을 추진했고, 그리고 막대한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실세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수천억대의 천문학적 정부지원금이 아무런  검증장치없이 황교수팀에게 지원될 수 있었던 데에는 '황금박쥐'라는 '힘'이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정통부 장관 진대제는 '황우석 우표'를 발행한 일도 있습니다.

그밖에 '곰팡이사건'을 몰랐다고 발뺌하던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도 정보통신부와 함께 과학기술부 정부예산 380억원을 황 박사팀에게 지원한 당사자입니다. 혹자는 황우석의 서울대 동기(72학번)인 이해찬 총리까지 이들 황금박쥐 네트워크의 후원자로 거론합니다 .

황금박쥐 가운데 권력과 자본을 함께 가졌던 진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같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소속 위원으로 황 교수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김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 BT와 IT의 융합인 BIT였으며 핵심은 인천에 21세기형 의료 콤플렉스를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진대제 장관.자료사진     
21 세기형 의료 콤플렉스란 10년 뒤에는 줄기세포와 황 박사팀의 또 하나의 역점 사업인 돼지 장기이식(무균 돼지의 환자의 장기에 이식하는 것)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 것이고, BIT는 필수적인 기술이 될 것이기에, 특유의 식습관 때문에 장기손상이 많은 중국인 등을 겨냥해 비행거리 4시간 내에 20억명의 아시아인이 살고 있는 송도에 이들을 수용할 의료 콤플렉스를 세운다는 내용입니다.

황우석은 BIT 지원을 강조하며 이 부분에 대한 정부 특별지원을 강조했고, 진대제는 과학발전 국채 10조원을 발행해 이 국채를 BIT 연구지원에 사용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바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는 말하기를 ‘케네디의 아폴로 프로젝트가 나왔을 때 정치적인 제스처란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전 세계 인류에 꿈을 준 것이다. 우리에게도 한국형 아폴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초기 위험부담을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정부가 황 교수를 통해 전 국민의 꿈과 희망을 한 곳에 모은 후 황우석을 정계에 입문시킴으로써 여당과 정권 재창출에 유리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었는데, 노무현 정권 인수위 시절 황우석 교수가  첫 과학기술부 장관에 거론되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는 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재집권 도구로 사용하려 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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