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등불-(3)]'사상계' 장준하 사장과 문정제책사 수난
사상계 장준하와 나의 이름과 문정제책사가 국제뉴스 전파 타
박종호 고문 | 입력 : 2015/06/04 [21:21]
▲ 반독재 정론지 ‘사상계’ 이끈 언론인…자유당·군사정권과 맞대결한 장준하 선생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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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박종호] 8).『사상계』잡지와 장준하사장의 수난.
사상계는 창간호 초판 3.000부에서 시작하여 차차 발행부수가 1~2만부로 늘고 4.19당시에는 5~6만부까지 발행 되었다. 이는 월간종합잡지로서는 특이한 일이었다. 당시 문정제책사의 제본작업은 수공업으로 많은 인원이 필요했다. 사상계잡지 제본 때에는 각처에서 여자기술공을 동원 밤샘 작업을 하기가 일쑤였다. 그러한데도 그들은 신들이 나서 피로한지도 모르고, 모든 직원들은 제작을 통해 민주화 성취에 (펜 대신) 산업의 역군으로서 역할을 다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다.
한일조약반대 6.3데모가 한창이던 시기에, 월간 사상계사는 1964년 4월호에 ‘한일회담반대 선전유인물’을 삽입, 제본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를 탐지한 경찰 정보계통에서는 이를 저지시키려는 의도아래, 잡지 출고 전 날에 시경 및 각 경찰서 에서 차출한 시경정보계 형사를 포함 총9명이 동원되었다. 한일회담반대 선언에 대한 격문 인쇄 광고물을 잡지에 삽입, 출간하는 유인물을 압수해서 출고 금지시킨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날 작업을 지시하고 잠시 집에 들른 나는, 다음날 이른 아침에 집에서 이를 닦는데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이 압수사건의 뉴스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내용은 “문정제책사에서 작업 중인 사상계사 잡지에 삽입해 넣어 놓은 '유인물'을 압수해갔다“ 라는 내용의 뉴스였다. 나의 이름과 동시에 문정제책사 이름이 국제뉴스의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나는 황급히 공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공장 작업장내의 ‘유인물’ 전량은 압수되어간 후였다.
▲ 1999年 7月 7日 장준하 구국장정육천리에서 박종호 고문 ©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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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부터는 주요 정보기관의 사상계잡지 제작과 판매에 관련된 업체 곧 인쇄소, 제본소, 도소매서점, 등 관련업계에 대한 방해와 압력이 더 가열해져서 제작을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관련업계에서는 불가피하게 제작을 기피하게 되니, 잡지를 발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당시 장준하사장과의 동지적인 의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사상계와 문정제책사는 공동의 운명체로 작심하였었다.
이 즈음에 장준하사장의 말에 따르면,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사상계잡지 발행에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알고 장사장과의 단독면담에서 사상계잡지를 인쇄 제작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윤전기를 설치해주겠다는 지원약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 어느 날 장 사장은 나와의 단독대담에서 그 사실을 말하고 그 윤전기를 도입하게 되면 책임지고 끝까지 운영해 줄 사람은 문정제책이니 동지적인 약속으로 부탁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후 밀담이 진행되던 중 정보기관에 그 사실이 노출 되어 아쉽게도 그 계획도 포기하게 되었다.
그 후 세무서에서 문정제책사를 세무사찰 한답시고 장부를 압수해 가는 등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한편 사상계는 계속해서 지성인들의 지지와 민주화여론의 중심이 되어 발행을 지속시키고 있으므로 정보부는 그를 방치할 수 없었으리라. 그 후 군사정권의 정보부는 고도의 사상계잡지의 고사(枯死)작전을 고안하여 그 보이지 않는 수법으로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정보당국은 사상계를 언론정책상 정면으로 탄압하지 않고 잡지발행의 근본을 끊는 작전으로 발행과 유통업무관계에 개입해서 경영에 쐬기를 박고 사상계잡지를 고사시키는 데에 성공하고 말았다.
▲ 장준하 구국장정육천리 대원들과 함께한 박종호 선생. 이때 선생은 한중공동 진혼제, 축문, 홍익인간 선언을 했다. ©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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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잡지제작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심혈을 기울인 그 사상계 월간잡지를 정보기관은 은밀한 작전으로 서점에서 팔지 못하게 하고 그 잡지를 월말에 다시 출판사로 되 보내는 반품작전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반품 받은 잡지는 제작 출고했던 문정제책으로 되돌아와 재단기에 다시 토막 내어 파지로 버리게 되었다. 매월 거듭되는 피해는 눈덩이 같이 불어나고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는 현금과 같은 잡지책을 잘라 쓰레기로 버리는 것으로 그 피해는 형언할 수 없이 막대한 손실로, 당장 원고료와 제작비에 문제생기고, 자금 융통이 안 되어서 회사는 금방 도산하게 되며, 이런 경우에는 지업사를 비롯하여 저작 및 관련업계에도 크게 피해를 보게 된다. 그 후 계속된 반품고사작전으로 인한 회사어음의 부도는 막을 수 없게 되었고, 빚은 늘어만 간다. 계속해 잡지를 낼 수 없게 될 형편이 되고 말았다.
자금회전이 안 되니 정기간행물인 월간 사상계 잡지는 정기(월간)적으로 발행치 못하게 되고, 사정을 모르는 정기독자(그 당시 2만 정기독자)들로 부터는 비난과 욕설을 듣게 되었다. 이리하여 정기간행물 등록이 취소될 처지에서 불가피하게, 잡지책은 발행하지 못하여도 급한 대로 우선 50페이지짜리 납본용을 몇 부만 인쇄 제작하여 납품함으로 잡지(판권)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당시 정기간행물은 연 3회를 발행(제출)하지 못하면 공보부(당시) 출판규정에 의하여 잡지는 폐간이 되고 만다. 연이은 부도로 책은 발행치 못하고, 게다가 관련업계에 대한 당국의 압력은 가중되고 있었다.
장준하 사장은 월간 사상계를 발행치 못하고 결간 이 계속되면서, 심각한 심적 충격을 받는다. 영구독자들의 항의와 욕설, 독자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처지에 지도자로 자긍하는 자신의 무능, 그리고 치욕과 자괴감, 등으로 그는 괴로움을 못 이기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다리로 가서 죽음과 마주섰던 장준하, 그는 다리에서 마지막 순간에 자살 할 용기가 있으면 무엇이든 못하랴! 다시 마음을 돌리고 자기를 믿고 사랑하는 독자들에 대한 배신보다는 그들에 대한 보답과 사명감과 명의회복을 위해 다시 재기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상에 언급한 장준하사장의 일화는 그가 내게 직접 말한 사실에 입각한 증언이다. ( 1999. 10. 10. 일손 박종호)
9). 일손의 약력과 빛나는 공적
1922년 8월 24일생
호와 명: 일손(一巽) 박종호 (朴宗鎬)
한국대학 전문부 문과 2년 수료 (야간대학 주경야독. 고학)
한국대학 (구 국제대학: 현 서경대학교)법정학부 정경학과 졸업
경력
제책업 전문: 문정제책사(文政製冊社) 창업 회장.
월간 사상계(思想界) 잡지 전속 제본사로서 4.19 민주화혁명에 이르는 과정과 5.16 군사혁명 후 유신독제에 항거하는 장준하 사상계사장을 도와, 기업의 운명을 걸고 사상계 발간에 협력하였다.
출판·잡지대학 강사 (84~85년)역임 : 제책업계를 대표하는 강사로서 잡지대학 제책과정 교제를 편수하였다.
사회적 경력
민족비전(民族秘傳) 삼금법(三禁法) 조식호흡수련법(調息呼吸 修鍊法) 전수.
단기4323. 6. 25 백두산 천제(天祭) 참례단 참가. (대한민국 수립 후 최초행사)
한국단학회연정원 고문
통일건국민족회 고문
통일신문 고문
행촌(杏村)이암(李嵒)학술문화진흥원 고문
한국통일문화진흥회 고문
4339년 개천대제전 공동대표 대회장
민족중건총본부 총재
한얼역사정신선양연합 총재
개천민족회(開天民族會)명예총재
플러스코리아타임즈 상임고문
한겨레대연합 고문
일손의 사회적 공헌
1. 기독교 일부 광신도들에 의해 국조 단군동상이 파괴·훼손 되고 위협당하는 사건을 저지케 하고 이들이 처벌받도록 한 사회적 공로가 있다. 단군동상은 현재 300여기가 학교 공공장소에 남아있다.
2. 초. 중. 고등학교의 교과과목(敎科科目)에서 역사과목(歷史科目)이 없어지고 (단지 사회과목에 포함되어 있음을) 개탄하고, 이를 민족 정기회복과 역사 바로 찾기 교육 차원에서 청와대 인터넷신문고를 통해서 그 실정을 알리고, 그것의 시정을 촉구하였으며, 그 결과로 초. 중. 고등학교의 교과과목이 역사과목으로 개편 신설되었다.
나아가 제8차년도 부터 검인정도서목록 2종 교과 과목(檢認定圖書目錄 2種 敎科 科目)으로 확정 되었다. 또한 현재 역사과목에 국조단군에 관한 사실이 정식으로 교육과목에 편입되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3. 공무원 및 사관하교와 학생들 각종 전형시험에 역사과목이 필수과목으로도 확정되었다.
[일손의 사회적 공헌의 주요사항의 요약]
<1> 단군상 파괴와 그 수난사건
국조 단군상의 조형물은 민족혼과 정신의 심벌이다.
홍익문화운동련합에서 세운 국조 단군상(國祖 檀君像) 366여기의 동상 중, 일부가 기독교광신도들에 의해 학교시설물인 단군동상이 불법적인 수단으로 파괴, 훼손되고 위협하는 사건이 있었다. 민족정신의 심벌이요 교육적 목적과 교육이념으로 초등학교 교정과 공공장소에 설치된 것은 합당한 일이다. 이를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 그 시정을 요구 하였던 바, 교육부장관과 문화관광부장관에게서 고무적인 답신을 받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할 것을 확답 받아 해결 하였다. 현재는 300여기가 보존되어있다 한다. (문서번호 종이 86210-932:시행 일자 2000. 08 24)
□ 단군상 보존과 홍익인간 이념의 역사적 의의
우리겨레의 조상이요 남북통일과 우리민족 정신세계의 상징인 단군상(檀君像)은 당초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홍익인간이념을 구헌법(舊憲法) 전문에 교육이념이고 교육부의 교육지침이기도하다.
그 이념의 구현을 위하여 교육적 차원에서 초등학교 교정에 설치하여 그 보존과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서 발전·선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난을 당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 단군동상을 보존 할 것을 청와대의 인터넷신문고를 통해서 민원으로 이를 제기하여 여러 차례 주장하였던 바, 주무당국에서 이를 검토하고 적의(適宜) 조치토록 하겠다는 민원회신을 받아내었다. 이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검인정교과서의 교육제도를 통한 역사의 정사(正史)를 세우는 것과 함께 단군동상을 보존케 함으로서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는 거사로 역사에 기리 남을 일이다. 이는 한 개인이 한 것이나, 그 결과는 국가적으로 귀중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고 찬양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2> 역사교육 검인정교과제도 확립
그동안 중, 고등학교 교육과목에서 역사교육이 없어지는 것을 개탄, 민족정기확립과 역사의식회복 차원에서 역사바로잡기의 장기적인 교육대책으로, 역사교육도 역사과목독립과 검인정교과제도(檢認定敎科制度)를 통한 교과과정의 혁신을 주장하면서, 청와대에 9차래에 걸쳐 (실은 청와대와 각부 장관실과 국무총리실 및 고충처리위원회 등의 보낸 인터넷 글만도 총 29회의 이른다) 민원을 제기해서, 제8차년도 교육과정 부터 검인정교과제도를 점차 시행할 것이란 확답을 교육인적자원부장관으로부터의 공문을 접수하였다. 이는 역사교육차원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역사의 방향을 잃고, 민족의 얼과 민족정기가 소멸 되어가는 이때 교육계와 역사학계에 큰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본다. (2005. 2. 1일 : A0502_0168)
<3> 각종 고과과목 고시의 역사과목 채점문제
각종 학과시험에 역사과목도 병용, 채점을 취하도록 수차에 걸쳐 강력히 권유함으로서 당국에 의해 역사과목도 학과시험에 취합하는 성과를 걷다. 각종 고과고시 시험 (대학입학검정시험. 공무원전형시험. 육해공군사관학교 전형시험), 채점등과 기타 공공기관의 역사과목 시험문제 등에서도 시행할 것을 확정하였으며, 더구나 역사교과서의 국조 단군고조선 건국과정을 기술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게 되었다는 것은 보람이 있는 일이다. 또한 필요한 특단의 조치(공공기관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인증제, 고시제도 도입)등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 이상 성과의 대한 역사적 의의
이상의 단군동상 보존과 역사교육의 방향을 얻어낸 것은 일손(一巽)회장이 단독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교육제도를 통한 역사의 정사(正史)를 세울 수 있게 한 것은 주변의 성원과 관심아래 이루어 낸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거사로 역사에 기리 남을 일이다. 이는 국사(國事)를 바로잡는 일들이며 한 개인이 이룩한 거사(擧事)로서 얼마나 훌륭한 쾌거(快擧)가 아닐 것인가! 이를 기리 기려야 한할 것이다.
10). 자 료 편 / 인물탐방 / 鶴의 나래 별처럼 빛나리라
(1). 人物探訪: 一巽 朴宗鎬
社團法人 忠孝禮實踐國民運動本部
일손 박종호 선생 프로필
-일손 문집 둘러보기. 티스토리(http://pjh24.tistory.com/)
∆ 홍익통일역사 신문 플러스코리아 상임고문
∆ (社)杏村(李嵒)學術文化振興院 顧問
∆ 한 얼 역사정신선양연합 총재
∆ (社)統一建國民族會 顧問 ∆ 韓國統一文化振興會 顧問
∆ 민족비전 삼금법, 조식호흡법 소유자
∆ 민족정기 확립과 장기적 교육대책으로 역사교과서 검인정제도 개선에 공헌
∆ 한겨레대연합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