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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 백정기의사 순국 79주기 추도사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비해서 白貞基 의사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아'

박종호 상임고문 | 기사입력 2013/06/06 [14:33]

구파 백정기의사 순국 79주기 추도사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비해서 白貞基 의사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아'

박종호 상임고문 | 입력 : 2013/06/06 [14:33]
[민족 역사 통일=플러스코리아] 鷗波 白貞基의사의 순국 79주기 추모제의 즈음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獨立 愛國鬪士하면 安重根 愛國志士 以外의  白貞基· 尹奉吉 李奉昌· 등 ‘三義士‘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비해서 白貞基 義士는 國民들에게 그리 잘 알려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民族·歷史· 統一新聞인 民族正論誌 플러스코리아에서 구파 백정기의사 殉國 第79週期 追慕祭行事를 大大的으로 報道하여 國民들에게 널리 알려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날 숙박했던 송참봉 조선동네에서 백정기의사 순국 추모식에 참석하기 전 기념촬영. 왼쪽 뒷줄 두번째가 박종호 상임고문.     © 플러스코리아

또한 이번 殉國 追慕祭에 白貞基義士의 崇高한 뜻을 이어받고자 鷗波 白貞基義士의 나라와 民族을 爲하여 온몸을 받친 赫赫한 忠情의 一部를 紹介하고자합니다. 
 
鷗波 白貞基義士는 1919년 己未 萬歲 때의 서울에 올라와 파고다 공원에서 일어난 3·1運動의 參加하고, 故鄕에 돌아가 同志들을  糾合하여 日帝와의 武裝鬪爭을 전개하였습니다.
 
 같은 해 8월 仁川에 있는 日本軍 施設을 파괴하려다가 事前에 暴露되어, 滿洲 奉天으로 亡命하였습니다. 그 後에 獨立運動의  軍資金을 調達하기 爲하여 여러 차례 國內의 潛入하여 活動하다가 1920년 서울 中部警察서에 拘束되기도 하였습니다.
 
1933년 駐中 日本大使인 아리요시가 上海 虹口에있는 日本料亭六三亭에서 日本政客 參謀部員들을 위시한 親日中國政客과 軍人 百여명을 招待하여 宴會를연다는 소식을 듣고 李康勳· 元心昌과 함께 襲擊하려다 逮捕되여, 日本 法廷에서 無期刑을 宣告받고  服役 中 持病으로 殉國하셨습니다.
 
이상으로 白貞基義士의 過去를 일부 살펴보고 冥福을 빕니다.
 
2013. 6.5  일손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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