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후,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항상 보수라는 가면을 쓴 독재가 지배해 왔었다. 그 불편한 진실, 금기를 깨고 도전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재미있는 사실은 이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인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자신의 업보를 인정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넬슨 만델라와 비슷한 동점에서 본다는 것. 한국안에서는 이 사람을 비교할 인물이 없다는 게 외국의 시각이다. 이 남자는 인생에서 4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다.
어느 언론에서 했던 설문조사.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모든 사람들의 답변'인동초 김·대·중'
이 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꿈은 만족하지 못하는 데서부터 태어난다. 만족한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다. 작은 새는 큰 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위대한 사람의 뜻 같은 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뜻의 크기는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비웃거나 깔보지 마라.
김대중은 경상도 부산 선거 유세에서,
"부산의 파도야! 광주의 무등산아! 너희에게 넋이 있다면 나 김대중이를 버리지 말아다오!"
"하이고~마 전라도에서 인물이 나온 기라 김대중이가 인물이데이~"
구식인 박정희를 유일하게 이길 수 있었던 젊은 패기 김대중. 부산 유세 당시 302,452표 반 이상 획득. 박정희와 막상막하...하지만 경남과 부산은 그를 택했다.
그 후 실질적인 김대중의 승리인데도 박정희의 투표 조작 부정 선거로 패배...박정희는 경남의 심장부 부산 민심을 확인하고서 김대중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게 된다. 그 뒤 박정희는 언론과 합세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 조작...
호남이 김대중의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로 호남 차별을 만들고 고립 지역감정을 만들게 된다. 소위 먹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호남에서 계속 나올 것을 두려워해 호남의 산업화를 막고 자금이 끊기게 한 것이다. 분명히 이전까지는 지역감정이란 확실히 존재하지 않았다.호남에서는 그전까지 박정희를 지지했으니 말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 지역주의의 정신병 ' 이 본격적으로 등장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는 개밥에 도토리가 될 것이다.'
-국회의장 이효상-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 중앙정보부의 선동문구-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다.'
-경상도 공무원들에게 공화당 의원이-
'경상도 사람치고 박정희 안 찍는 사람은 미X놈.'
-1971년 4월 18일 조선일보-
'우리 신라 경상도가 똘똘 뭉쳐 계속 우리만의 시대를 이어 가자.'
-1971년 동아일보-
그 후 독재에 맞선, 이 젊은 정치인은 총칼 든 군사독재와 약자 편에 서주지 않았던 언론에 야만적인 '빨갱이'라는 낙인과 함께 늙은 노정객이 된 오늘날의 이 순간에도 서양의 인종차별보다 더한 비논리적인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1997년 김대중은 망령 같은 차별 앞에 극적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독재를 했던 사람들에게 일절 보복을 하지 않았으며 먼저 다가가 용서와 화해를 하고 손 내밀어 평화를 자청했다.
박정희 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 촛불 1세대 민주당과 김대중 총재.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국민이 내 편이기 때문에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
군사독재재판 마녀사냥으로 불리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김대중
▲ 납치되어 바다에 수장될뻔했던 당시를 회고하는 김대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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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게 죄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김대중을 두려워했던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려 했던 '김대중 납치사건'의 음모... 이 사건으로 김대중은 다리에 평생 장애를 갖게 된다. 그 후 유신헌법으로 박정희는 평생 국민선거 없이 자신이 대통령을 할 수 있는 박정희 왕국 건설...
그는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폭력과 야만 따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경남과 부산에서 박정희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항쟁인 '부마항쟁'. 박정희와 그의 충복 차지철은 경남과 부산에 학살 명령을 내린다. 야만적이고도 군사독재정권의 비열함 무식함이 드러나는 가벼운 그들의 말이었다. 다행히 박정희의 부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그것을 막은 격이 되었다.
자신이 만든 유신헌법으로 선거가 다시는 필요 없음에도 경남 부산은 이제는 이용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말을 안 듣는단 이유로 학살을 자행하려 했다. 하지만, 예언이라도 된 것처럼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서울의 봄'은 그리 길지도 않았다. "군은 절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은 당연하다는 듯 국민을 깔보면서 비웃듯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 뒤를 잇는 신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켜 5공화국 공포정치의 상징처럼 전두환이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7년 임기로 대통령이 된다.
▲ 전두환, 노태우 등 쿠테타 주역들의 기념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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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죽어도 그 독재란 이름의 전통은 유지되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정권,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치적 누명과 보복은 내가 죽어서도 나 하나로 끝나야 할 것입니다."
전두환 독재군사정권에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김대중. 삶을 정리하는 인간의 마음은 어떠할까?
일본 압제자들의 손에서 풀려난 광복. 주인으로 떠받들던 반민족행위자인 친일파들이 진정으로 해방되고 미국을 숭상하며 지들이 주인으로 행세하던 독재정권. 그러나 먹고 살기에 바빳던 국민들은 친일친미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 때 많은 사람이 비판을 외면했다.
"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언뜻 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
-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김대중의 잠언집 中에서-
"저희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 알 것 없다. 우리 최강 공수부대는 각하의 명령으로 빨갱이 잡으러 간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다."
"그런데 말입니다. 서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광주 아닙니까?????"
"상부의 명령이다. 이놈들은 전부 빨갱이다. 때려잡아라."
"예?????"
"까라면 까라 새끼들아."
"이곳은 다른 지역과는 좀 다릅니다. 저항이 심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요!"
"......네 알겠습니다......"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 전부 쏴죽여버려!"
"...................."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항쟁'
대한민국을 지키는 공수부대가 대한민국 국민을 자국민을 학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위 사진의 아비 잃은 어린 소년 눈 안에 대한민국 모든 세상의 슬픔이 담겨 있다. 그 후 호남에서의 정치투표는 투표라기보단 차라리 피눈물 맺힌 한이 담긴 저항이라고 봐야 한다.
광주..... 광주..... 서러워 울지마라 광주야.......... "전라도 새끼들은 다 죽여야 된다. 빨갱이 새끼들 어디서 전두환 각하한테 대느노!" 독재정권과 언론에서 빨갱이소굴이라 떠들던 그곳.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던 역사의 현실과 진실...
유일하게 전두환에게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 지역의 이름."호남 그리고 빛고을 광주" 광주의 호남인들은 독재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정의롭게 항쟁하다 꽃잎처럼 그렇게 죽어갔다.
김대중은 옥중에서 이러한 사실을 신문언론을 접하고 신문을 다 적실 정도로 가슴 찢어지는 통한의 오열을 하게 된다. 힘없던 자신과 지켜주지 못했던 자책감은 평생의 짐이 된다. 광주 민주화 운동 후 외국 유명인사들의 적극적인 김대중 석방운동. 궁지에 몰린 전두환은 김대중을 석방. 감옥에서 해방되고 난 뒤 곧장 광주로 직행 망월동 광주 민주화 영령들과의 만남.
한 서린 서러움의 통곡... 지울 수 없는 상처...
콩을 콩이라 하고 팥을 팥이라 하는 그들이 대체 무엇이 죄일까? 호남과 광주... 대한민국 평생의 상처와 아픔이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딱 맞는 도시. 죽어도 죽은 게 아닌 그들은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후 광주만의 전쟁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전쟁이 되어 전두환은 항복한다.
<필자의 각주> 김대중 그는 나의 우상이요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 모두의 희망이 였다. 그러나 그는 큰 우를 범했다. 본문 마지막 말처럼 그는 과연 전두환을 항복시킨 것일까? 처참하게 죽어간 민주화 영령들의 넋과 유족들의 아픔을 아랑곳 하지 않고 살인마를 정중히 청와대에 불러들어 자기만의 용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닐진데, 그는 용서라는 위선으로 뭇 가슴에 대못질을 밖으며 배신을 했었다. 이는 살인마에게 항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항복을 한 것이다. 그것도 자기만의 항복이 아니라 복권이라는 격려의 선물까지 안겨주었으니 피토할 일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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