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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일본, 독도가면 처형시켰다!

숙종실록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밝혀

장병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8/12/10 [15:17]

19세기 일본, 독도가면 처형시켰다!

숙종실록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밝혀

장병영 칼럼니스트 | 입력 : 2008/12/10 [15:17]
숙종실록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밝힌 고문서 ‘어해서어제본장’
일본이 19세기 당시 울릉도와 독도에 들어간 자국 어민을 ‘해금령(海禁令)’ 위반 혐의로 사형에 처한 것을 기록한 고문서가 발견됐다.







▲ 이번에 발견된 '어해서어제본장‘    
부산외국어대학교 김문길 교수가 올해 초 시마네현  ‘하마다 역사 사료관’에서 발견한 이 자료는 일본이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공식 문서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는 귀중한 자료다.

조선일보는 12월 l일자 보도(권경훈 기자)에서, 이 문서는 ‘1837년 죽도(竹島ㆍ당시 울릉도의 일본식 명칭)와 송도(당시 독도)에 몰래 들어가 어업을 한 어선 선주 ’가이즈야 하치우에몬‘을 해금법 위반으로 처형했다’는 내용의 문서라고 밝혔다. 

이 문서의 명칭은 '어해서어제본장(御解書御諸本帳)'으로, 1690년대 안용복 장군 등이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땅이라고 항의한 뒤, 일본 바쿠후(막부·幕府)가 죽도와 송도(당시 독도의 일본식 명칭)에 일본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해금령’을 내렸지만 ‘한 일본인 어부가 이를 어겨 사형을 당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처형된 '가이즈야 하찌우에몬(會津屋八右衛門)'이라는 선주(船主)는 조사신문(訊問)   에서 "양 시마(島·울릉도와 독도)에 자원이 풍부해 벌목과 어업을 목적으로 들어갔다"라고 문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이에, 당시 시마네현 통치자인 '마쓰다이라가 하마다(浜田)'는 해금령 준수를 촉구하는 이 문서를 1838년 2월 각 어촌 촌장에게 보낸 것이다. 모두 4장으로 된 이 문서에는 당시 일본 어촌 촌장들의 서명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 선명한 일본 어촌 촌장들의 서명   
이후 일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넘보지 않다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러·일 전쟁 등을 거치면서 다시 독도에 대한 침탈을 시작, 지금까지 그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는 일본이 독도를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한 것으로 이 사실에 대해 일본 내 학자 중에서도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했다.

이번에 김 교수가 발견한 이 고문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뒤집는 중요한 근거로, 일본이 공식문서를 통하여 독도가 명확한 조선의 영토임을 밝히는 기록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이 문서는, 지도 수집가 모경국 씨가 입수하여 지난 7월 15일 조선일보에 공개한, 독도(獨島)가 조선의 고유 영토임을 밝힌 일본 고지도 '조선국도(朝鮮國圖·사진)'에 이은 발견으로 그 의미가 크다.

▲ 일본 고지도인 ‘조선국도’    
그 무엇보다 이 문서의 내용이 독도에 관한 ‘숙종실록’의 내용을 그대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숙종실록에는 독도를 ′자산도′라 불렀다며【1693년(숙종 19) 일본 어부가 독도와 울릉도 근해까지 출현하여 어로 활동을 하므로, 동래 어부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조선의 고유 영토임을 확인받고,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와 독도 근해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정에서는 매 3년마다 울릉도, 독도 지역을 샅샅이 조사하여 지도와 함께보고토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는 이미 일본의 간악한 속내를 알고 있다. 이러한 실증적 사료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단재선생의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역사에 대한 명쾌한 논리를 떠올린다면, 일본의 속성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해서 보다 성숙하고 냉정해야 한다. 그때그때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냄비 끓듯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일본의 전략에 말려드는 꼴이 되기도 하지만, 국민적 자존심 문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일본의 음험한 팽창주의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지며 반박할 수 있어야 된다.
"역사- 그깐거 몰라도 잘 먹고 잘 살아 왔다."라는 인간들을 보면 돌아서서 욕하지만 마음은 아프다. 결국은 추악한 범죄로 연결되기 쉬운 학연, 혈연, 지연을 떠나 순수하고 건강한 만남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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