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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알기]우리민족이 '동이(東夷)'로 불리운 이유

'천지(天地)가 흐르는 모습, "궁(弓) 또는 을(乙)"의 형상 이었다!'

한빛-임록단 | 기사입력 2009/01/28 [15:06]

[바로알기]우리민족이 '동이(東夷)'로 불리운 이유

'천지(天地)가 흐르는 모습, "궁(弓) 또는 을(乙)"의 형상 이었다!'

한빛-임록단 | 입력 : 2009/01/28 [15:06]

▲ 자연(自然)의 힘, 궁(弓 ) 을(乙)    
도(道)를 닦았다는 사람도 많고 역사(歷史)를 깊이 공부 했다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그 옛날 우리 민족이 어째서 동이(東夷)라고 불리웠는지, 그 속에 숨어있는 참된 의미(意味)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아직 못 본 것 같다.  
 
한문(漢文) 글자의 뜻을 깊이 생각하여 다른 의미를 찾아낸 것이, 근자까지 흔히 알고 있고 쓰이고 있는 동이(東夷)에 대한 저급한 수준의 해석, 즉 야만적(野蠻적)이고, 미개(未開)한 변두리 족속(오랑캐?)이라는 근본도 없는 이상한 해석은 분명 아닐 것이라는 새로운 판단을 하고, 동(東)의 뜻을 살펴, 옛 동이(東夷) 민족(民族)은 대륙(大陸)의 동쪽편에 거주하였고, 타 민족에 비해 "활 솜씨가 매우 뛰어나고(名弓), 큰 활(大弓)을 사용하였다" 등의 이해이다.
 
쇠철(鐵)자의 옛 글자에 이(夷)가 있는 점을 들어 "철(鐵)을 매우 잘 다루었던 민족" ...등으로 새롭게 이해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도가 그나마 의식(意識)있는 사람들의 견해인데, 이제껏 극히 비하(卑下)된 부정적(不正的) 측면으로만 주로 알려지고 쓰여져 온 것을 생각한다면, 제법 긍정적인 해석으로 바람직스런 이해(理解)의 변화(變化)인 것도 사실이나, 그 정도의 이해만으로 동이(東夷)의 깊고 큰 의미를 다 알았다고 하기에는 적지않은 아쉬움이 따른다.  

동이(東夷)라고 하는 호칭(呼稱)이 갖는 근본적(根本的)이고 참된 의미(意味)는 무엇인지, 간략히 살펴 보도록 한다. 
 
세상만물(世上萬物),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은 거의가 다 각각의 고유한 이름(名)을 갖는데 그런 이름들은 그냥 우연하게 만들어 지지 않았다. 반드시 그 "개체(個體)의 본성(本性)을 나타낼 수 있는 특징(特徵)을 담아" 지어 졌다. 그러한 이해의 기준을 바탕에 전제(前提)하고 동이(東夷)가 상징하고 있는 깊고 올바른 의미(意味)를 알아 보기로 하자.
 
끝없는 듯한 윤회(輪廻)를 반복하던 어느 한 시공간(時空間)의 지구(地球), 현생의 인류(人類)는 초기(初期)의 신계적(神界的) 통치기(統治期)가 끝나고, 인세(人世)는 제법 육화(肉化) 되어가고 있었다 -환인시대(桓因時代).   그때까지의 사람들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르게 물질적(物質的), 영적(靈的) 능력(能力)들이 매우 탁월하였다. (영적(靈的)인 능력(靈能力)이 조금은 더 우세...)
 
그들중의 일부는, 아직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사람들도 제법 존재하고 있엇던 때였다.  그 뛰어난 존재들은  세상에 발현된 유형무형(有形無形)의 모든 것을 깊숙한 정도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상당한 능력들을 갖고 있었으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근본적(根本的)이고 가장 특징적(特徵的)인 것들을 어렵지 않게 파악(把握)하고 그들을 호칭(呼稱)을 함에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것들의 고유(固有)한 특징을 따라 지은 이름(名)으로 부르게 되었다.
 
비록 점차 줄어가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 시절(時節)에 도(道)라고 하는 밝고 맑은 삶의 행위들이, 거의 일상적(日常的) 생활의 한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당시의 수 많은 인류(人類)의 무리들 가운데서도 어떤 특정의 무리는 커다란 자연(自然)의 생명력(生命力)이 여타의 무리들이 갖고 있고 드러내 보이는 생명력(生命力) 보다 뚜렷이 구분이 될 정도로, 항상(恒常) 강하고 분명하게 발현(發現) 되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자연(自然)의 이러한 큰힘(大力)을 확실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그 때의 인류(人類)는, 그렇게 특이하고 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지칭(指稱)할 때에 그러한 기운(氣運)의 모습과 특징을 담은 어떤 특정의 말로서 부르게 되었다.  그런 특이(特異)한 모습은 우주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운행(運行)되고 있는 천지(天地)가 흐르는 모습, "궁(弓) 또는 을(乙)"의 형상 이었다. "오행기(五行氣)의 조화(調和)된 사람()들에게, 천지(天地)의 운행력(運行力=)이 함께하는 합일(合一) 상태"를 표현한 말이 바로 "이()" 였던 것이다.
 
이(夷)의 또 다른 뜻은 "평평하다"이다. 

근본 에너지들이 잘 조화되어 안정을 이루니 평평하게 된 것이며, 가장 좋은 상태이고 다른 각도로 모습으로 말하면 참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심(心)에 이(夷)를 붙이면 마음이 안정되고 평정을 이뤄 가장 좋은 상태니, - 기뻐할 이(恞). 눈(目)이 이(夷)와 함께 하여 평함을 이뤄 좋은 상태가 되면 사물을 제대로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니, -쳐다볼 이(眱)

충북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부락 마을 입구에 서있는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
고려건흥 4년 5월중(高麗建興 四年 五月中) 고려대왕조왕(高麗大王祖王) 령환신라매금야(令還新羅寐錦也) 세위원여형여제(世爲願如兄如弟) 상하상지수천(上下相知守天) 동이지매금기태자공(東夷之寐錦忌太子共)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 
비문의 내용은 광개토호태왕비의 나와 있는 하 평양에 대한 기록, ‘백잔위서 여왜화통 왕순하평양(白殘緯誓 與倭和通 王巡下平壤)’을 뒷받침 한다.


이(夷)와 가죽(革)이 함께 하게 되면 가죽이 다듬어져 평평하고 좋게 된 것을 말하니, 잘 다듬어진 가죽이 되는 것이고(다룬가죽이), 나무(木)가 이(夷)를 붙이면 힘차게 뻗어나가기 위하여 기운이 잘 조화되어 평함을 이루는 기운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좋은 나무가 되니, 여물은 나무이름 이"고 나무에서도 그런 힘이 가장 많이 조화된 곳은 가지의 목부분이므로  "가지목 이(桋)가 되는 것이다. 
 
병질엄으로 이(夷)를 덮어 버리면 안정되고 좋은 조화(調和)의 상태가 병들음 속에 갇히게 되는 것이니, 다칠 이, 상처 이(痍)가 되며, 사람들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면 여럿이 되어 무리를 짓게 되니 무리 이(侇), 여자가 함께 평하게 조화를 이뤄 존재됨은 피(血=肉)를 나눈 계집(女)의 형제자매를 뜻하니 여자매 이(姨), 이모 이(姨)가 되며,  입(口)이 조화(調和)되어 좋은 상태에 있다 함은 웃는 것이 으뜸이니 웃을 이(咦),..등등
 
<사족 : 각종의 예언서(豫言書)에서, 흔히 등장하는 궁궁을을 (弓弓乙乙)이란 말은 이러한 자연(自然)의 힘을 영육간(靈肉間)을 통해 온전히 통(通)함을 이루어 그 힘(弓=乙)을 제대로 운용하는 어떤 모습, 어떤 상태의 현상적인 표현인데, 자칭 바른 수행인(修行人)과 식자(識者)?라고 하는 사람들은, 엉뚱하게 찾고들 있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구불구불한 모습(弓=乙)" ,이 바로 우주자연(宇宙自然) 기운(氣運)이 생동하여 움직이는 실재의 참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가 있으나, 많은 현상들에 대하여 그 근본을 알고자 하는 조금의 노력도, 의혹(疑惑)도 없이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 현대(現代) 문명인(文明人)?들의 두터운 무지(無智) 탓에 제대로 인식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발(足)로서는 전혀 다닐 수가 없는 뱀(蛇)과 같은 무족(無族)의 생물(生物)들도, 또  발(足)이 있는 파충류들도 이 구불구불한 형태의 무형(無形)으로 움직이는 자연(自然)의 큰 기운(氣運)을 이용해서 자유로이 움직이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뱀(蛇)은 비늘도 함께 사용하며, 그 힘(弓=乙)을 매우 적절히 잘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 생물(生物)로서 상당히 빠른 속력으로도 질주가 가능하기도 하다. 현상(現象)으로 보이지도 않으면서 실제로 존재하여 살아 움직이고 있는 많은 에너지, 주파수, 날씨, 경기나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등도 모두가 이러한 모양(乙=弓)인 것이고...
 
불교의 상징인 만()자도 사실은 이 모습을 적절히 그려낸 것으로서 그 기운 들이 엉켜진 상태, 즉 사방(四方)의 공간적 구성력의 근본된 모습을 나타낸 것이 "卍" 인 것이다.  은하계(銀河界)의 한 모습이 그러하고, 나치 독일의 강력한 힘(力)의 상징이 되었던 만()자와 유사한 표식(갈고리십자, 철십자등으로 불리기도 했던..)도 그러하다.나치의 상징이었던 "卍"자를 뒤집어 놓은 모습은 원리와 유래된 근원을 제대로 다 알고서 사용했다고는 보이지 않으나 ,구전(口傳) 또는 유야무야(有耶無耶)등으로 전해져 알고 있던, 현 세상에 존재하는 무형(無形)의 거대한 힘에 대한 옛 기억을 더듬어 상징으로써 선택하여 사용하였던 것이다.
 
흐르는 기운이 동서(東西)의 다른 위치로 인해,  "卍"자를 뒤집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나, 그러한 정도를 알 수 있다는 것도 일반인의 능력으로 매우 어려운 일인데 누구인지 몰라도 제법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의 영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지혜를 누가 어디서 받을 수 있었을까 궁금한 일이다. 어쨌거나 동이(東夷)의 후손에게서 나왔을 것이라 생각되는 바이기는 하나...
 
당시는, 이족(夷族)들이 인류문명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아시아 대륙(大陸)과 그외 지역의 곳곳에 퍼져나가 각기, 지구(地球)의 사방(四方) 중심추(中心樞)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지구(地球)의 뭍(大陸), 동서남북(東西南北)의 사방에 자리했던 이(夷)들을 따로 각각의 지역적 특징을 담아 "동쪽은 동이(東夷), 남쪽은 남이(南夷), 서쪽은 융이(戎夷), 북쪽은 적이(狄夷)"라 부르기도 하였다.
 
뛰어났던 하늘민족(天孫族)은 당시에 아홉의 무리(九夷)로서 존재하여 지구의 여러 곳에 각기 적당한 지역을 차지하고 어느정도 독자적인 권역을 이뤄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도 지구상에 처음으로 해(日)가 떠오르는 동(東)쪽과 그 약간 윗쪽인 동북(東北)쪽의 지역에는 그런 기운의 모습이 가장 뚜렷하고 강하여 이(夷)들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었던 무리가 있었으니, 현재 한민족(韓民族)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의 중심적 직계조상(直係祖上)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빛의 사람(大人=仙人) 들이었다. (물론, 옛날의 대륙형세는 지금과는 많이도 달랐었고... 지구(地球)는 둥글어서 앞뒤가 없는 듯도 하나, 시작(始)되는 곳과 마침(終)하는 곳이 있음을 옛날의 사람들은 뛰어났던 능력으로 인해 당연하게도 알고 있었다.)

우주(宇宙)의 살아 움직이는 기운(弓)이 오행기(五行氣)로 크게(大) 펼쳐져 발현되어 나타나 있는 사람들을 이(夷)라고 표현하였고, 특히나 해(日)의 기운이 가장 먼저 함께하던 무리들 즉, 동(東)쪽의 이(夷)사람들은 동이(東夷)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들은 모든 면에서 월등했으므로 활(弓)과 활용에도 뛰어났으며 철(鐵)도 최초로 사용법을 알아 가장 발달된 형태의 철기(鐵器) 사용을 시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夷)들이 중심이었던 시절, 그들의 모든 것들이 질서(秩序)가 있었고 조화(調和)를 이루었으며, 욕(慾)으로 인한 분쟁의 문제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동이(東夷)의 나라에서는 그런 것들이 더욱 맑고 뚜렸하였으며 사람들간의 예법(禮法)마저도, 극히 존귀(尊貴)함에 이르러 주변국(周邊國)들을 비롯하여 만(萬) 인간(人間命)들의 귀감(龜鑑)과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욕(慾)으로 숱한 전란(戰亂)과 무질서(無秩序)의 소용돌이 속에, 한 시대를 주유(周遊)하였던 유교의 시조-공자(孔子)도 구이(九夷)의 나라를 공경(恭敬)하고 동경(憧憬)하여 "구이(九夷)는 군자(君子)가 사는 나라"라고 하였고, 구이(九夷)에서 살고픈 희망을 간절하게 표현하였으며(慾居九夷), 특히나 동이(東夷)에 대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이라 표현하며, "참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참된 사람의 도리(道理)"가 있는 곳이라 하였던 것이다. 이 전통은 당(唐)나라 까지도 이어져 동이(東夷)의 나라는 "신선(神仙)이 사는 나라"라 하며, 공경의 마음을 표하였다.
 
우주(宇宙)의 살아 움직이는 힘(力=弓)의 모습과 원리(原理)를 알고 있었던 우리네 조상(大)들은, 그 힘(乙=弓)을 여러가지의 도구(道具)로 만들어 생활에 활용하였는데 그중의 뛰어난 하나가 바로 "나무를 우주힘의 모습(弓)처럼 휘어 만든 활"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세상 모든 활들의 시초가 되었고, 그 성능은 현재의 상상을 훨씬 뛰어 넘는 매우 훌륭한 "상상 이상의 활"이었다.  이후, 이것을 심히 탐(貪)냈던 주변의 다른 민족이나 국가들은 자신들도 그런 뛰어난 활을 만들어 보고자 부단히 연구, 개발하며 많은 시도를 해 보았으나 동이(東夷)의 활에는 감히 견줄 수도 없는 것들로서 성능이 반(半)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오죽하면 당(唐)나라 때는 태종(太綜)이 직접 제작 비법(秘法)을 배워가려고 동이의 활 기술자(技術者=匠人)를 데려다가 온갖 회유와 협박을 다 했었겠는가.  그 기술자(技術者)는 끝내 활의 제작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땅(土)나라, 즉, 음(陰)나라인 당(唐)에 그 뛰어난 기술은 전수 될 수가 없었다.  당(唐)도 사실상 그 지배층엔 동이(東夷) 후손의 일부류가 중심에 있었으므로어찌보면 완전한 남의 나라 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 때의 장인(匠人)이 갖은 회유와 협박 그리고 죽음에까지 이르면서도 끝내 그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주(主) 이유는, 우리네 조상(祖上)들이 지나치게 국수적이거나 째째한 소인배라서 뛰어난 기술을 혼자만 알고 있으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가 올바로 서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수되는 뛰어난 기술은 여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때때로 상상키도 어려운 큰 화(禍)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뛰어났던 활의 제작비술(製作秘術)은 안타깝게도 "어둠의 시대"인 지금은 우리 한민족에게 조차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아직도 우리는 유달리 활()을 아주 잘 쏘는 뛰어난 활의 민족(民族)으로서 잘 알려져 있다. 비록, 옛날처럼 극히 뛰어난 활 제조의 비법은 다 잃어버렸다 해도 우리조상(祖上=東夷)들의 뛰어난 정신(精神)의 한줄기는 아직도 우리의 핏줄속에 살아서 남아있기 때문인 것이다.  활()은 무엇보다 정신(精神)이 앞서야 하는 것이니...
 
마지막으로 중요한 한마디 더... 옛날 당태종(唐太宗)의 경우에서와 같이 "사람답지 못한 자에게 뛰어난 기술을 가르쳐선 안 된다"는 대원칙(大原則)을 삶의 중요한 교훈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절대(絶對)의 원칙, 당태종(唐太宗)을 이겨낸 한사람, 초라한 이름조차도 전해지지 않았던 한 장인(匠人)의 깊은 뜻과 숭고한 정신, 그 속에 배어있는 우리 선조(先祖)들의 삶의 지혜(智慧)를 크게 눈뜨고 마음속에 깊이 새겨 기준(基準)도 원칙(原則)도 없이 돌아가는 현세에 으뜸된 지표로써 삼아야 할 것이다.  

세상(世上) 모든 것이 그렇지만 특히나, 그 중에서도 중심이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것" 즉, 지위(地位)나 위치(位置), 뛰어난 기술(技術), 비법(秘法),..등 등, 수 많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제대로 된 사람(참사람)들 만이 진정한 주인(主人=任者)이 되어야 한다"는 절대진리(絶對眞理)를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인류를 참된 밝음으로 선도(先導) 했던 동이(東夷)의 옛 정신(仙人精神)을 되찾아 무한(無限)한 우주(宇宙)의 지혜(智慧)를 열고, "사람을 제대로 바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밝은 눈"을 가진 참된 동이(東夷)의 후손이 되기를...












대인군자불사지국 09/01/29 [04:21] 수정 삭제  
  "사람의 됨됨이가 올바로 서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수되는 뛰어난 기술은 여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때때로 상상키도 어려운 큰 화(禍)를 부를 수 있다22 ...배우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를 않아 결국에는 정체성도 없어 뼈대없는 인체나 마찬가지여서 더 사람되기위한 수련을 해야 하는 자들에게 뛰어난 기술을 전수해줄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부질없는 탐욕이 오히려 큰 화를 부르까 염려되니 당연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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