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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방지 동북공정타파 통일의 길

[제1편] 한국전쟁.1950 민족상잔 막을 수 있었다

강석현 칼럼 | 기사입력 2010/10/13 [10:22]

전쟁방지 동북공정타파 통일의 길

[제1편] 한국전쟁.1950 민족상잔 막을 수 있었다

강석현 칼럼 | 입력 : 2010/10/13 [10:22]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입니다. 과거를 거울 삼아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점을 살리고, 잘못된 것은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필자 강석현 선생은 애국지사 후손으로써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단체인 '민족자주연맹(초대 김규식 선생)'을 재 창립하여 상임의 의장을 맡아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 가시는 분입니다. 앞으로 연재 되는 칼럼 기사를 애독자여러분의 비판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이복재 본지 발행인의 '정부에게 보내는 건의문'에 이어서 '겨레에게 보내는 선언문'을 낭독해 민족 자주성을 강조했습니다. 참고로 강석현 칼럼니스트의 선언문을 게재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 지난 10월 3일 원구단 개천대제에서 겨레에게 보내는 선언문을 낭독하는 강석현 민족자주연맹 의장 및 독립유공자유족회 부회장     © 편집국
겨레에게 보내는 선언문

남과 북, 해외의 동포여러분 ! 애국애족의 뜨거운 열망을 안고 원구단에서 개천절기념행사를 치른 오늘 민족의 공조와 대단결로 평화통일을 이룩하려는 염원에서 8천만 겨레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겨레는 민족의 시조인 단군성조가 해뜨는 아침의나라 한국(桓國)을 세운날부터 한피줄을 이으며 한강토에서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하나의 민족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번영을 일구고 평화를 지키고 통일을 이루기위하여 온민족이 하나되여 떨쳐 일어나야 한다

남에있건 북에있건 해외에있건 우리는 한민족 단군후손들이다 한강토에서 한겨레로 하나가되여 의좋고 정답게 손잡고 행복하게 사는것은 단군성조가 남긴 간절한 염원이다

첫째, 오늘 우리 겨레에게 민족의 평화보다 절박하고 간절한 과제는 없다 한강토에서 민족이 공존공영하며 화목하게 사는것은 우리 겨레 조상대대의 생활방식이고 민족고유의 미풍양속이며 천손민족의 천성이다 

둘째, 오늘 우리 겨레에게 민족의 화해와 협력보다 절박하고 간절한 과제는 없다 우리는 민족의 분열을 타파하여 모든 대립과 긴장을 완화해야 하며 민족의 합의로 일구어낸 6.15공동선언과 10.4남북선언의 실천에앞장서 남과 북의 화해화 협력을 더욱강화 해야한다 

셋째, 오늘 우리 겨레에게 민족의 통일보다 절박하고 간절한 과제는 없다 이 땅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협력도 통일의 길우에온다 온누리에 빛을 뿌리는 단군민족의 슬기와 용맹으로 사는곳 다르고 걸어온 길 달라도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 뛰어넘어 서서 민족평화통일 이루자

개천 5908년 (2010년)년 10월 3일  
민족자주연맹 상임의장 강석현

1. 한국전쟁. 1950 막을수 있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으나 역사에서 저질은 실책의 추적과 비판은 가능하다. 이 글은 연역적 방법으로 먼저 요지를 설명하고 그 뒤에 자료를 따로 설명 해나간다.

한국전쟁.1950의 선제공격을 기획하고 지도하고 수행한 소련 측 관련 극비문서 및 방어한 미국 쪽의 방어계획 관련 극비문서로서 지정된 비밀보호기간 30년 50년이 경과한 것 중 새니테이션 비밀해제 가부 검토를 통과한 대량의 문서가 비밀해제 공개돼 전쟁의 기원이 상당부분 명확해졌다해서 전쟁의 기원 (The Origin of Korean War) 연구자가 할 일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연구자의 다음단계 몫은 새니테이션에서 통과되지 못해 아직 비밀에 묶여있을 만한 비밀이 무엇인가를 추적 규명 공개해 비밀로 묶어둘 필요가 없도록 몰고 가는 일이다.

이 글은 그 다음 단계 역사연구자의 몫인 전쟁 기획원리 상 선제공격을 개시할 수 있게 한 요인, 선제공격을 개시할 수 없는 결정적 제약이 제거돼 전쟁개시로 치 다를 수 있게 한 요인의 형성과정 분석에 치중하는 글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은 20세기 중반 세계역사의 돌출사항이며 한국전쟁.1950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한국전쟁.1950에 관한 이 글의 앞부분에서는 만주와 중국대륙의 공산화에 이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이르는 역사의 심연(深淵)을 다루게될 것이다. 인적 미답(未踏)의 심해 엠덴 해구(海溝)나 바이칼 호수 바닥에서 퍼 올린 것 같은 심층(深層)수는 표층(表層)수에만 접하던 대중에게는 매우 심각한 이질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의 결론부터 공개하면 소련의 전쟁개시 필수 3대 역량은「우리 쪽의 공격역량」,「적대진영 내 반란역량」,「국제적 혁명역량」이다. 1943년12월 테헤란회담(Teheran Conference) 때 소련이 대일(對日)참전 대가 검토과정에서 잉태된 코리아반도전쟁1950 준비계획에는 국제적 혁명역량 즉 코리아반도 외부로부터의 대규모 병력지원 획득방도가 없었다. 선제공격을 일으킬 수가 없는 전쟁준비계획이었다. 선제공격을 일으킬 수 있게 만든 대이변(大異變)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과 대규모 파병능력은 막을 수 있었다.

소련은 1948년까지는 조선족 소련군의 공격력 강화와 일본공산당 강화노력에 주력했다. 국제적 혁명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만주(滿洲,중국의 동북지역)에서 대병력을 징모(徵募)한 반공 한국광복군이 무장하는 것을 막는 결과 산출 공작이 필요했다.

반공 한국광복군이 무장하면 북조선 주둔 소련군과 북조선에서 육성중인 조선족 소련군에 위협이 될 뿐 아니라 만주에서 활동 중인 200 여 명의 소련군 88특별여단 동북당조직특별지국위원회(東北党組織特別支局委員會)와는 직접 적대관계에 서기 때문이다.
소련공산당은 의도된 결과를 간접적으로 산출시키는 다양한 기술을 구사한다. 특수공작원을 한국, 중국, 일본에서 치밀하게 운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포섭됐다는 의식을 갖지 않게 하면서 동조자를 조종하는 방법 중 이이제이(以夷制夷)전술에 빠져들기 잘하는 부류는 권력기생 선호성향인 자들이다.

한반도에서는 권력기생 선호성향인 조선총독부 경찰출신들을 포섭 또는 부추겨 반공성향을 역이용했다. 조선총독부 경찰의 적대세력이던 반공성향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활동을 적극 방해하도록 경찰 출신들에게 사명감을 불어넣기만 하면 기대하는 결과가 산출됐다.

김구 주석이 중화민국의 반공 국민당정부를 상대로 만주에 징모(徵募)돼 있는 반공(反共) 한국 광복군의 무장과 한중(韓中)연합군 구성에 대한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의 동의(同意)를 획득하려는 외교활동을 적극 방해해 동의가 지연(遲延)되던 끝에 좌절됐다.

그 결과 만주가 공산화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과 한국전쟁시 대규모 파병능력이 생겼다.

조선족 소련군에 의한 한국전쟁.1950 선제공격, 일으킬 수가 없었던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만든 20세기 중반 1948년 동아시아 역사 대이변(大異變)의 핵심동력이 된 세력은 만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선총독부 경찰출신 들에게서 나왔다.

무비판적으로 받아드린 의식에 동조한 행동 결과가 자신의 평소 의식이나 희망과 다른 내용을 산출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예컨대 북한이 정면(正面)공작에서는 통일을 주장하고 이면공작에서는 뒤통수치기로 통일반대의식을 유포하는 것은 기본 수법에 속한다. 이 수법에 놀아나는 대중은 국론분열의 온상이다. 통일반대는 김정일 정권 영원무궁 하라는 주장인 것을 알아차리는 대중은 소수이다. 반공의식으로 행동했지만 북한에 이로운 이북(利北)결과를 산출할 수도 있다.

소련공산당이 뒤통수치기 공작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정(否定)과 반대 의식을 유포하는 것은 필수 공작의 하나였다. 반공 한국광복군의 무장 봉쇄결과 산출을 위해서 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소련군의 조선 북부 점령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미수복(未收復) 영토를 불법침략 한 것이 아니라 일본 영토를 합법적으로 전시점령 해 조선인민을 해방시킨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조선인민공화국 창건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에 유리한 의식을 유포해 부식하는 의식화공작은 한반도 주민에게 광범하게 침투됐다. 1945년 11월 23일 신의주 학생시위에 전투기로 기관총소사(掃射)를 한 소련제국주의 군대를 해방군이라고 부르거나, 소련점령군 포고를 해방선언으로 인식하거나 흉폭한 소련제국주의 군대에 국토를 침략 당한 것을 8․15광복이라고 또는 8․15해방이라고 부르고도 잘못된 줄 모를 정도로 한반도 주민의 의식을 광범위하게 오염시켰다.

한반도에서 조선족 소련군이 일으킬 수가 없었던 선제공격을 일으킬 수 있게 만든 대이변(大異變)은 1948년10월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의 국민당정부 휘하 반공(反共) 중앙군(中央軍)인 동북보안군(東北保安軍)의 수개 사단 대병력이 빨찌산 수준의 소수 공산군에 패전한 일이다.

공산군은 만주를 공산화한데 이어 중국대륙을 석권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중국공산군이 이웃 지역에 파병할 능력을 갖출 수 있게된 것이 코리아반도전쟁1950을 개전 할 수 있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조선족 소련군에 의한 한국전쟁1950 선제공격, 일으킬 수가 없었던 것을 일으킬 수 있게 만든 20세기 중반 1948년 동아시아 역사 대이변(大異變)의 핵심동력이 된 세력은 만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선총독부 경찰출신 들에게서 나왔다.

▲ 1950. 11. 1. 서울 중앙청 앞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주민들이 폐허더미에서 땔감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2004 NARA


결론만을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아래 자료를 읽으면 납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대시하면서 김구 전 주석의 활동방해를 사명으로 삼던 조선총독부경찰 출신들은 김구 전 주석이 반공정권인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중국국민정부 총통을 상대로 줄기차게 추진하는 외교활동도 극력 방해했다. 그 결과 만주에 징모(徵募)돼 있던 반공(反共) 한국 광복군의 무장과 한중(韓中)연합군 구성에 대한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의 동의(同意)획득이 지연(遲延)됐다.

1948년 봄 현재 압록강 북쪽에는 광복군으로 징모(徵募)된 15만 명의 일본군 출신 장정들이『한국광복군의 무장』과 한중(韓中)연합군 구성요청에 대한 중화민국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의 동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련군이 일본 관동군을 무장해제해서 뺏은 65만 명분의 무기는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의 국민당정부 중앙군(中央軍)인 동북보안군(東北保安軍) 이 보관하고 있었다.

소련군은 만주에서의 이권확보를 위해 국민당정부와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군 출신인 한국광복군은 대부분 일본의 北支派遣軍(북지파견군)출신으로서 북부 중국(支那)에서 八路軍(팔로군, 공산군)의 빨찌산 투쟁 진압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은 공산군 소탕 전문부대 출신들이었다. 쥐구멍을 들락거리는 쥐새끼 잡는 고양이 훈련을 받은 군대출신이다.

이에 반해 만주에서 반공(反共) 중앙군(中央軍)인 동북보안군(東北保安軍)은 일본군과의 정규전에 숙달돼 있을 뿐 빨찌산 대책에는 속수 무책이었다. 사자처럼 큰 덩치 맹수끼리의 싸움에는 능하나 쥐구멍을 드나들며 사자의 콧구멍 귓구멍도 파먹으려는 쥐새끼에 는 속수 무책이었다. 결국 수개 사단 대병력이 대도시 방어에 주력하다가 빨찌산 수준의 소수 공산군에 패전하게 된다.

한국전쟁1950 발발 가부의 결정적 요인이 된 반공(反共) 중앙군(中央軍)인 만주지역 동북보안군의 결정적 패인(敗因)에는 반공 한국광복군 15만의 무장에 동의(同意)해주는 정책결정이 지연(遲延)된 실책이 결정타가됐다.

국민당정부 중앙군의 패인에 관해 극심한 부패 등 잡다하게 거론되는 것들은 미국 내 공산세력이 퍼트린 낭설이거나 주변요인들일 뿐이다.

1945년8월12일 중국 서부지역 옌안(延安,연안)에서 만주를 향해 출발한 紅軍(홍군, 국민정부 제8로군)의 린퍄오(林彪, 임표)가 이끄는 간부(幹部)연대 1천명은 만주 현지 빨찌산 1천여 명, 만주에서 활동 중인 소련군 88특별여단 동북당조직특별지국위원회(東北党組織特別支局委員會) 200여명 등 2천 여명을 기간요원으로 하여 모병(募兵)관 빨찌산 투쟁을 하다 수 개 사단 동북보안군의 허점을 찔러 동북보안군을 패전시키고 동북보안군이 보관하고있던 일본군 무장해제 무기 65만 명분과 만주제국 정안군(靖安軍)과 전투경찰대 무기 등을 입수해 만주에서 일백만 대군으로 성장해 중국 본토로 쳐들어갔다.

1994년6월2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김영삼․옐친 대통령의 한국․러시아 정상회담 때 옐친(El‘tyn, B. N.) 러시아대통령이 김영삼 한국 대통령에게 러시아연방대통령문서보관소와 외무부외교정책문서보관소에 있는 1949년1월 ~ 1953년9월 사이에 작성된 한국전쟁 관련 기밀문서의 기본문서 100건 부속문서 116건 합계 2백16건,5백48쪽에 이르는 방대한 문서의 복사본을 제공해줬다.

문서의 비밀유지기간(예고문) 만료로 일반인에게 열람이 개방된 문서를 구태여 격식을 갖추어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김영삼 한국대통령에게 정상회담에서 제공해준 것은 러시아가 스탈린의 전쟁 주도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사과하는 뜻이 담겨있다.

제공된 문서는 특수보안기술을 사용해 작성한 문서 원본의 복사본이며 마치 전투기 조종사들의 작전 중 교신언어에 유사한 특수언어로 작성된 문서다. 특수언어집단 구성원이 아닌 민간인 제3자를 위해 완전평문으로 풀어놓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련공산당국제부 문서나 외무위원회 문서 해독능력 없이 그냥 소련 말 평문으로 이해하고 무식하게 양산한 전쟁소설의 오류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6.25관련 러시아 외무부 자료」는 6.25남침전쟁 연구의 대단원이 아니다.그것은 오히려 6.25남침전쟁 연구의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고 있다.

1.-1) 소련공산당국제부의 선제공격개시 원칙

소련공산당국제부는 세계 공산화를 위한 비밀혁명공작 및 선제공격을 기획하고 지도하며 직접 수행하기도 하는 평화파괴 총본부이다. 소련공산당국제부는 혁명공작이던 선제공격이던 간에 행동개시 전에 필수적으로 성공가능성 담보 3대 역량 준비상황 평가 검토를 행한다.
선제공격개시 원칙상 코리아반도전쟁1950 개전(開戰)의 필수조건은,

① 우리편 강화대책 즉 공산진영 자체역량의 절대적 우위 확보노력 (민주기지의 혁명역량 = 전쟁 발진기지 북조선에서의 공격능력),

② 상대편 약화대책 즉 서방진영의 취약점 반란역량 확대노력(공격대상지역 내 혁명역량,) (일본 서부지역에 공산정권 수립역량),

③ 제3자 이용 또는 배제대책 즉 국제정세 유리화(有利化) 동조역량(지원해줄 국제적 혁명역량) (북조선에 대규모 병력을 지원해 줄 수 있을 만주 또는 중국에 공산정권 수립) 의

3대 역량 확대노력에 힘을 쏟고 승산이 있거나 노소득다(勞少得多)한 상대편 허점공격, 성동격서(聲東擊西)에 유사하게 상대편 능력을 한군데 묶어두는 것이 유익할 때 공격을 시작한다.

조선족 소련군의 군사력 강화만으로는 전쟁을 개시할 수 없다는 것이 공산군의 전쟁원리다.

1.-2) 코리아반도전쟁1950 개전의 결정적 요인은 만주의 공산화

선제공격을 위한 3대 역량 준비상황 평가 검토원칙을 분석해보면 전쟁개시 근인과 원인(遠因) 규명이 용이해진다.

한국전쟁1950을 개전(開戰)할 수 있게 한 결정적 요인은 스탈린에 의해 육성된 조선족 소련군이 아니다. 조선족 소련군의 군사력 강화만으로는 전쟁을 개시할 수 없다는 것이 공산군의 전쟁원리다. 조선족소련군을 아무리 강화해도, 국제적 혁명역량 즉 중국공산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으면 코리아반도전쟁1950은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

한국전쟁1950의 결정적 요인은 스탈린에 의해 육성된 조선족 소련군이 아니라 만주와 중국대륙에서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의 국민당정부 중앙군(中央軍)이 공산군에 패퇴해 만주와 중국대륙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고 중국공산군이 이웃 지역에 파병할 능력을 갖출 수 있게된 것이 전쟁을 개시할 수 있게 한 결정적 요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지 않았으면 공산세력의 전쟁 개시 원칙상 국제적 혁명역량 미비로 코리아반도전쟁1950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중국 공산군의 지원을 확보하고 승산을 갖고 추진 됐으나 3대 역량 중 공격대상지역 내 혁명역량 확보실패 즉 미군지역 내 일본공산당의 반란을 이끌어내지 못해 좌절됐다. 얻은 것이 있다면 미군의 대병력을 태평양 연안에 장기간 묶어두어 유럽에서의 미군사력 압력을 완화시켰다는 선에 만족해야하는 노다득소(勞多得少) 실패작이었다.

1943년12월 테헤란 회담 때 잉태한 코리아반도전쟁1950은 1949년9월24일 소련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도 개전시기 결론을 내지 못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으로부터 중공군 파병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가 유동적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1월30일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이 스탈린에게 중국공산군의 조선파병을 동의를 해줬다. 스탈린은 이 날짜로 전쟁개시를 결정하고 평양에 전문을 쳐서 김일성을 호출한다.

1948년 봄 현재 압록강 북쪽에는 광복군으로 징모(徵募)된 15만 명의 일본군 출신 장정들이『한국광복군의 무장』과 한중(韓中)연합군 구성요청에 대한 중화민국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의 동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련군이 일본 관동군을 무장해제해서 뺏은 65만 명분의 무기는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의 국민당정부 중앙군(中央軍)인 동북보안군(東北保安軍) 이 보관하고 있었다. 소련군은 만주에서의 이권확보를 위해 국민당정부와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가능케 한 것은 만주에서 1948년10월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의 국민당정부 휘하 반공(反共) 중앙군(中央軍)인 동북보안군(東北保安軍)의 수개 사단 대병력이 빨찌산 수준의 소수 공산군에 패전한데 있다.

1945년8월12일 중국 서부지역 옌안(延安,연안)에서 만주를 향해 출발한 紅軍(홍군, 국민정부 제8로군)의 린퍄오(林彪, 임표)가 이끄는 간부(幹部)연대 1천명은 만주 현지 빨찌산 천여 명과 손잡고 빨찌산 투쟁을 하다 동북보안군의 허점을 찔러 동북보안군을 패전시키고 만주에서 일백만 대군으로 성장해 중국 본토로 쳐들어갔다.
 
▲ 인천상륙작전을 지휘중인 미군장교 맥아더



공산군은 만주를 공산화한데 이어 중국대륙을 석권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일본 패전으로 일본의 지나(支那, China)파견군에서 현지 해제돼 귀국 도중 만주에서 또다시 군인으로 징모(徵募)된 장정이 반공 한국광복군에는 15만 명, 빨찌산 공산군에는 1 만여 명이 됐다.

이들은 대부분 북부 중국(支那)에서 빨찌산 투쟁을 해온 八路軍(팔로군, 공산군)과 대적하던 北支派遣軍(북지파견군)출신으로서 공산군과 대적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은 일본군이었다.

빨찌산 공산군은 일본군 출신자를 징모하는 즉시 무장시켜 군소 도시와 농촌 지배, 농촌으로부터 대도시 포위, 대도시만 장악한 중앙군의 보급로 차단 등 전투임무에 동참시켰다.

이에 반해 중앙군의 동북보안군은 한국광복군의 무장 가부는 국민당정부 군사위원회 소관이라면서 창고에 보관돼 있는 무장해제 일본군 무기를 내주지 않고 공산군 소탕에 동참시키지도 않았다.

장가이셱 총통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줄기찬 요청 - 만주에 징모(徵募)돼 있는 반공(反共) 한국광복군의 무장과 한중(韓中)연합군 구성에 대한 동의 요청 - 에 대해 동의가 지연된 실책이 그 자신의 직접 판단에 의한 실책인지 혹은 부하들의 실책에 의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15만 명의 반공 한국광복군 무장에 중화민국 장가이셱 총통이 동의를 얻으려는 김국 주석의 피나는 노력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대시해온 조선총독부 경찰 출신들의 방해가 집요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영향 때문인지 1947년에 中華民國 駐漢城總領事館 恢復館務,總領事(중화민국 주한성총령사관 회복관무,총영사)로 부임한 劉馭萬(유어만)이 1948년1월부터 공적으로 국제통신수단 사용이 자유스러운 유엔한국위원단 중국대표를 겸직하면서 서울에서 활동 중에 행한 사려 깊지 못한 독단적 일 처리 특히 김구 전 주석의 거듭된 요청을 받고도 친일파 의 공작과 독단 판단으로 묵살하고 중국정부에 보고하지 않아 주국정부에서 광복군 무장 문제의 중요성이 정책검토 우선순위에서 후 순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劉馭萬(유어만) 은 1948년3월9일 김구 선생을 만났을 때 이승만 박사로부터 부탁 받은 1948년5월10일 선거참여를 강력히 권고하고 한국 광복군 무장필요성을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에 강조해달라는 부탁을 무시했다.

1945년11월23일 서울로 귀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중국의 수도 난낑(南京,남경)의 장가이셱(蔣介石,장개석) 총통 사이의 통신수단이 여의치 못해 한(韓)․중(中) 외교에 난점이 컸었다.

서울- 난낑 사이의 전화 연락은 아주 어려웠고 당시 샹하이(上海,상해)에 체류 중이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駐華(주화, 주 중국)대표단장 민석린(閔石麟)과 서울로 귀국한 김구 주석과의 통신수단도 여의치 못했었다.

1.-3) 전쟁 방지 노력의 파탄

소련공산당국제부가 선제공격을 기획하고 지도하고 수행했으며 미국은 평양 - 모스크바 간에 교신되는 다수의 암호전문 해독에서 전쟁기운을 감지했다.

미국은 전쟁방지노력의 일환으로 1948년8월15일 연합군총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대한민국정부수립 국민축하식 축사를 통해 한국이 공격을 받으면(조선족 소련군의 공격을 암시) 유엔군을 동원하겠다는 대(對) 소련 경고를 발했으나 한국의 매스컴에 의해서는 묵살되고 미군 태평양사령부 기관지인 일간(日刊) 성조지(Stars and Stripes) 만이 홀로 보도했다.

또 1950년1월12일 애치슨 미국무장관은 전쟁방지를 위해 소련과 중공에 대해 경고를 발했다. 한국과 대만이 공경을 받으면 유엔군을 동원해 방어하겠다고 경고했으나 대부분의 매스컴은 유엔헌장의 제약 때문에 미군 단독 방어가능 지역을 언급한 기조발언 부분만 보도하고 질의응답 때 한국과 대만이 공격을 받으면 유엔의 결의로 유엔군을 파병하겠다는 경고는 극소수 매스컴에서만 보도됐다.

뒤이어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과 대만은 포기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이 방위선 바깥에 대한 공격에는 국제연합(UN) 헌장 하에서 전체 문명세계가 개입 할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Should such an attack occur . . . the initial reliance must be on the people attacked to resist it and then upon the commitments of the entire civilized world under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which so far has not proved a weak reed to lean on by any people who are determined to protect their independence against outside aggression.''

1949년12월17일 中共中央人民革命軍事委員會主席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이 소련을 방문해 소련공산당서기장 스탈린과 아시아지역 공산주의혁명 특히 일본의 공산화와 중국군대의 조선파병문제 등을 논의할 징후가 농후해진데 따르는 경고였다.

스탈린은 1950년1월12일의 애치슨 미국무장관의 경고를 무시했다. 유엔군이라 해야 미군이 주력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유엔군 동원을 논의하게될 1950년6월27일의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직전 소련대표가 본국정부 훈령을 문의하자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소련대표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결과 유엔군 파병이 결의되고 유엔군을 주도하는 미군은 장기간 태평양 지역에 묶여있게 됐다. 소련은 장기간 유럽지역에서의 미군사력의 압력을 회피할 수 있었다.

1.-4) 스탈린 전쟁문서 해독을 위한 필수 지식

전쟁 기획원리 상 선제공격을 개시할 수 있게 한 요인, 선제공격을 개시해서는 안될 결정적 제약이 제거돼 전쟁개시로 치 다를 수 있게 한 요인의 형성과정 분석에 앞서 전쟁 기획문서 해독에 필수적인 기초지식을 좀 살펴보기로 한다.

전쟁의 기획과 수행에 관한 지식이 태무(殆無)하거나 소련공산당국제부의 통신보안 문서내용보안 기술에 대한 지식이 태무(殆無)한 사람들은 김일성의 전쟁 건의를 스탈린이 승인했다는 무식한 공상소설을 양산했다. 김일성의 군사능력을 따져보려는 지적(知的)검토능력 결여 자들이 이 공상소설에 동조했다.

전쟁을 기획하고 지도한 스탈린 문서를 이해할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은 앞으로도 역사가 아닌 공상소설 글 쓰기에 매달릴 것이다. 한국 내 학자들은 전쟁기획문서가 공개되기 전 신문 잡지 쪼가리를 잘 다듬은 전쟁 소설을「한국전쟁의 기원」권위 학술서로 착각, 신주 모시듯 신봉하거나 이러한 저서의 논리를 인용해서 글을 쓰고 있으나 이 글들은 학술적으로는 무가치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1994년6월2일 옐친(El‘tyn, B. N.) 러시아대통령이 김영삼 한국대통령에게 제공해준 문서는 특수보안기술을 사용해 작성한 문서 원본의 복사본일 공산이 매우 높다. 업무관계자가 아닌 제3자를 위해 완전평문으로 풀어놓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넘겨받은 한국전쟁1950을 일으키고 주도한 스탈린 문서는 표피(表皮)암호인 통신암호를 걸기 전의 은어(隱語)문서이다. 평문처럼 보이나 상명(上命)하복(下服)만 있는 혁명전위당 비밀활동에서 상부선 보호를 위해 지령을 내리고도 건의를 받은 것처럼 표현돼 있다.

▲ 구석에서 배급 받은 국수를 먹는 소녀

국제학교 ★ 공세적(적극적) 정보공작과 정보보안 ★

생명을 건 혁명공작을 하는 혁명전위당의 핵심요원은 정교한 통신보안 문서내용보안 기술에 숙달돼 있고 평소 생활화 되어있어야 한다. 그들 사이의 언어는 외관상 러시아말처럼 보여도 러시아말이 아니라 완전한 외계인 언어이다.

소련의 국제학교에서 극비활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만든 비밀문서는 평문처럼 보이는 문면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면 착각에 빠지도록 되어있는 것이 많다. 10살 무렵에 특별선발 돼 외국어교육을 받다가 극비공작에 적성이 맞는 자로 선별 돼 극비활동교육을 받은 요원들은 해외에서 백구(白區)공작에 투입되거나 까게베(KGB) 또는 외무부의 극비공작활동 부서나 붉은군대의 고위 정치위원회 등에서 근무하게된다.

『리가학파(學派)』라고 불리는 소련문제 전문가집단은 1930년대부터 발트해 연안 소련 인접국가 라트비아(Latvia)의 수도 리가(Riga)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소련 공산당국제부의 실체를 심층 연구한 특수기술전문가 집단이다.

리가학파가 밝혀낸 것은 소련공산당국제부가 비밀혁명공작 및 전쟁을 기획하고 지도하며 직접 수행하기도하는 평화파괴 총 본부라는 점과 그 활동에서 구사되는 비밀보호 조직보호 활동규율엄수를 위한 음모 적 특수방법 등이다.

혁명전위당인 소련공산당의 국제부는 전 세계를 공산주의 사회로 만들고자 끊임없이 비밀혁명공작과 속임수 선전 및 전쟁 등을 기획하고 수행하며 지도하는 총본부이다.

사회주의정당이 정권을 장악하지 못한 나라(비공산국가)에서 사회주의정권수립(공산화)을 위한 비밀 혁명공작이나 첩보공작은 검거되면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생명을 건 비밀활동이다.

비밀보호 조직보호에서 통신비밀보안 문서내용보안은 최소한 이중보안을 기본으로 한다.

문서의 이중암호화 기술, 외피의 통신암호를 해독 당했을 때 언 듯 평문으로 보여도 문서의 참뜻이 숨겨져 있도록 핵심부분을 심층(深層)암호기술로 은어(隱語)화 하는 기술. 공작내용 속임수기술, 전쟁의도 비익(秘匿)과 책임전가 심리전 선전기술 등을 구사하며

공작 상부선 보호와 책임 하부전가를 위해 지령을 내리고도 건의를 받은 것처럼 표현하는 기술이 엄수된다. 김일성의 건의라는 것은 김일성에게 지령을 하달하고 현장에서 복명 복창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혁명전위당(革命前衛党)은 군사집단적조직원칙(軍事集團的組織原則)을 견지(堅持)해야하는 실천집단(實踐集團)이지 토론(討論)클럽이 아니다」

혁명전위당 규율을 엄수시킬 사업방식으로서 민주집중제[하의상달(下意上達)은 엄금한다. 하의상달 하려는 시건방진 행위는 단칼에 숙청대상이다. 건의 형식의 문서는 당의 지령에 대한 복명(復命)복창 문서이다. 상의하달(上意下達)에 대한 복명(復命)복창(復唱)확행 요령 등 수칙]를 엄수한다는 점이 소상하게 규명됐다.

소련공산당의 행동은 전통사회 자본주의사회의 의식과 사고방식으로는 실체파악이 불가능에 가깝지만 혁명전위당 특유의 행동원리로 분석하면 예측과 대처가 용이하다는 점을 밝혀내 대 소련정책에 활용됐다.

학술적인 전쟁 기원 역사서술에는「Top Secret(극비, I급 비밀)」로 된 전쟁기획문서해독(解讀)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몇 쪽 뒤에서「천학비재(淺學菲才)」를 탓한 글의 앞뒤에서 언급하겠다.

전쟁기획이론에 무지한 한국 내 학자들은 이러한「문서해독능력」과「1차 자료」에 의하지 않은 전쟁기원(起源) 서술이나 잘 다듬어진 전쟁 소설을「한국전쟁의 기원」관련 권위 학술서로 착각, 신주 모시듯 신봉하거나 이러한 저서의 논리를 인용해서 글을 쓰고 있으나 이런 글들은 학술적으로는 무가치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비밀문건 세부분류지침」을 숙독(熟讀)한 경험 부재로 전쟁 기획문서가「I급 비밀(Top Secret)」에 속한다는 인식이 생성되지도 않았고 또 전략 개념이나 전쟁기획 이론을 공부한 경험이 전연 없는 미국의 한 젊은이는 신문 잡지쪼가리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The Origin of the Korean War라는 저서는 미국 연방정부 산하「국가적 문서와 기록에 관한 중앙행정처」(NARA)에서 문서그룹 242로 보존되고있는「적군 노획문서」중 1950년 가을 북한에서 노획한 북한문서 수천 박스에서 신문 잡지 쪼가리를 탐독하고 정리해서 저술했다한다.

Cumings, Bruce,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 I (1981) and Vol. II (1990),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J

북한 노획문서 박스에 담겨있는 평문으로 공개된 전쟁선동잡지 쪼가리나 대외비 문서로 분류되지도 않았거나 저급비밀로 분류된 문서로는 전쟁기원에 대해 공상소설밖에 나올 수가 없다.

전쟁 개시 전의 신문 잡지 쪼가리로는 극비리에 다루어지는 대규모전쟁의 계획내용, 전쟁의 기원은 알 수 없다. 공개되는 표피적 사항이나 기고(寄稿) 글은 심리전 자료일 뿐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1.-5) 선제공격 제약 요인, 공격개시 가능 요인

민주기지(혁명전쟁 발진기지)의 혁명역량 육성 계획이 구체화된 것은 1943년 테헤란회담에서이다. 미국이 소련의 대일 참전을 요구할 경우 미국에 제시할 참전대가로 일본을 분할해 소련이 일본 쯔시마(對馬島,대마도)와 큐슈(九州,구주)를 취득하느냐 홋카이도오(北海道, 북해도)를 취득하느냐 에서 시발됐다.

대영제국의 격렬한 반대로 소련은 코리아반도 북쪽과 만주를 점령하되 소련 국동해군의 태평양진출로는 봉쇄되는 형태가 불가피 했다. 소련은 일단 이 조건을 수락하면서 시기를 보아 군사적으로 쯔시마(對馬島,대마도)와 큐슈(九州,구주)를 점령하는 전쟁계획을 깔고 대일 참전조건을 수락했다.

소련은 대일 참전 2주전인 1945년7월 하순 하바로프스크에서 60㎞ 떨어진, 브야츠크(북야영)에 주둔하고있는 중국공산당원 주축 소련군 88특별여단 내 당적임무(党的任務)수행 조직인 동북당조직특별지국위원회(東北党組織特別支局委員會)를 나누어 조선사업단(중국어로는 조선공작단)을 창설했다. 코민테른의 一國一党(일국일당)원칙에 비추어 조선이라는 국가창설 계획이 구체화된 것이다. 코리아반도 북반부에 일본 침공 민주기지로 사용할 조선인민공화국을 건국하려는 명확한 행동이다.

( 東北党組織特別支局委員會 전체회의 관련 신문기사, 소련의 대일 참전은 8월8일 )
(1994.07.09. 조선일보 04쪽, 기획기사, 세계사 유례없는 49년 권좌/김일성 출생에서 사망까지)

소련의 대일참전 직전인 1945년 7월말 동북당위원회 전체회의가 개최되고

동북당조직특별지국위원회가 동북당위원회와 조선공작단으로 나뉘어졌다.전자의 책임자는 주보중, 후자의 책임자는 김일성이었다.

소련군은 대일참전에 즈음하여 그들을 만주와 조선에서의 활동공작에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후 일본 서부지역 점령을 위한 발진기지 민주기지의 건설은 소련군 점령지역인 한반도 북반부에서 순조롭게 진행돼 군대를 지휘할 조선공산당은 1945년10월10일 창건되고 조선인민군은 1948년2월16일 창건됐으며, 전쟁을 대외적으로 담당할 정부당국으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1948년9월9일 창건했다.

1949년9월24일 소련공산당정치국의 문제점도출문서가 몇 번째로 작성된 문서인지는 분명치 않다.

③ 1949년9월24일 소련공산당정치국에서는 가제목(假題目) 옹진작전계획 보강지시 등을 행하였다. 옹진작전계획이란 연천(漣川) - 의정부 - 서울 침공을 포함한 한반도 전면전쟁 계획이 누설될 경우 관심을 서부지역 옹진반도로 돌리기 위한 가제목이다.

1949년9월24일의 정치국 검토문서에서 스탈린은 그때까지의 전쟁준비추진 결과에서 나타난 미비점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일성은 지적된 문제점 해결을 위해 발진기지 조선인민군의 역량강화와 중국공산군 참전에 대비한 후방지원체제 정비, 상대지역(남조선)내의 호응능력 강화, 국제적 환경 즉 미군의 개입능력 억제 연구 등에 전력투구함으로써 끊임없이 충성심을 표시해야한다.
 
1. 한국전쟁.1 950 막을 수 있었다

1.-1) 소련공산당국제부의 전쟁 개시 원칙

1.-2) 코리아반도전쟁1950 개전의 결정적 요인은 만주의 공산화

1.-3) 전쟁 방지 노력의 파탄

1.-4) 스탈린 전쟁문서 해독을 위한 필수 지식

1.-5) 선제공격 제약 요인, 공격개시 가능 요인

2.-1) 만주에서 징모된 反共(반공) 한국광복군의 인원수

2.-2) 중국공산화 주력군의 핵심은 反共(반공)한국광복군 출신

2.-3) 만주에서 열세이던 세 갈래 공산군

3.-1) 한국광복군과 중국정부 사이의 연합군 활동 선례

4.-2) 만주에서의 한․중 연합군 봉쇄에 사활이 걸린 소련

5.-1) 한․중 연합군 구성 동의 지연의 후과

111 10/10/13 [22:03] 수정 삭제  
  조선반도 북쪽에 사는
조선백성들이 민중혁명을 한 이유가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를 만들고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세ㅤㅇㅝㅅ어요
1950.6.25 조선반도 조미 전쟁 으로

시계가 1950년에서 멈춰잇는것이다

멈춰잇는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
시계바늘이 째각째각 다시 움직이기 위해
2012년 강성대국 대문을 여는 해

미제를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던가 하는
조미 전쟁을 끝내는 특단을 조치를 할겁니다
본질인식부재 10/10/15 [10:34] 수정 삭제  
  민족합의이행을 안 하고 있는 세력이 누군지부터 바로 알고 글을 썼으면 한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반북사대분단 노선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공부하고 글을 쓰고. 북한이 왜 고난의 행군까지 하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지도 대해서도 공부 좀 하고. 한국전쟁은 미.소 외세의 냉전의 산물인 것이고.
한국인 10/10/15 [21:05] 수정 삭제  
  요번 칠레에서 68일간 매몰로 갇혔다 살아나온 광부들을 보고
한국과 외국의 차이로 한국선 실적위주 인명경시로 무조건 땅파고 광물채취하다 무너지면 거의죽는데


외국은 자국민보호와 인명우선으로 땅을파들어갈때
여러곳에 대피소와 식량과 물과 공기구멍까지 철저히 만들어
광부들이 갇힌지 오래돼도 전원 구출되는것으로


4대강예산위해 국방비예산깍아 물새는 천안함 교체해달래도 예산이 없다고 교체못해
물이새 피항중 얕은곳서 암초나 충돌로 침몰을 증거가 많고
미국도 처음 2함대사령부와 천안함교신 감청내용으로 선박자체결함 침몰로 발표했고
실종중사부인 증언도 물이여러번새 언제죽을줄모른다고 남편이 불안해했다했는데


오바마에게 무엇을 퍼주기로했는지 이명박이 전화로 부탁 미국이 말바꿔 북풍몰아
평화통일방해하는 일본위해 한반도를 전쟁위기만들고 남북평화교류 다깨트려
냉전핑계로 미국에 댓가성인지 엄청난 무기팔아준 14범 사기꾼정부와 틀리며
[과거 전두환 노태우가 고물무기 팔아주고 리베이트 뇌물챙겼는데 이명박도 수상함]


우리헌법에 평화통일 지향해야하고 전쟁위기만들거나 침략행위는 불법이라 명시했는데
독일처럼 평화교류로 북한도 시장경제로 이끌어 선진유럽처럼 국민직접투표 좌우합작 진정한 민주국가로 가야할텐데


일본에 충성위해 불법당선후 일본가 일왕에게 천왕등 극존칭후 한국에 침략배상과 사과할필요없다고 충성절하고
일본수상에겐 조금기다리다 독도를 일본땅올리라했듯이 그때가 천안함 북풍몰은때인지
일본이 교과서올린다 발표후 해저자원이 엄청난 독도해역을 한국이 조사하지마라고 협박해도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일본위해 항의도 않하고 모른척하는 매국정권이며


일본서 간첩처럼 공작금받은 뉴라이트시켜 교과서에 독립군 나쁘게몰고 일본침략 미화하고
독도를 일본에 바치려고 국방부지도에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에 일본미사일기지 표기하듯이
우릴침략한 일본군끌여들여 민족간 전쟁연습하니 동북공정등 중국과 북한이 가까워지게만들었고


정권 내각과 청와대와 한나라당에도 친일파 매국단체 뉴라이트를 많이 기용하거나 공천하여
일본이 원하는 평화통일로 강한 대한민국이 아닌 영구분단 향하게만들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행복추구권인 먹거리선택권과 집회와 표현과 언론의 자유 무시하고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고 모든 권력도 국민의뜻에 따라야하는데 국민무시하고
미국인 않먹고 일본대만등 다른나라도 수입않하는 20개월이상 광우위험소 강제수입후
먹겠다던 청와댄 않먹고 납품않한다던 학교 군대에 강제납품 젊은이들 위험케하고


헌법에 환경파괴와 식수파괴도 분명불법이라고 4대강죽이기 큰공사를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고
외국서도 댐과보나 운하로 강물오염 주변지하수와 수도물원료인 강물오염으로
신장병과 피부병 이따이이따이병등 유발해 도로 댐과보 허물고 원상복구하는데
더군다나 낙동강 하류가 공사후 오염이 클것을 알고 남강댐서 수도물끌어쓰려는 나쁜정권이


일본이 과거 백두대간 맥끊듯이 댐과보로 맥끊어 4대강죽이기 밀어부쳐 국고낭비와 국토파괴하듯이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담긴 남대문을 고집부려 개방후 관리소홀 불태우듯 나라망치려고 공사강행하는데


부패행정에 반대하는 애국국민에게 집회허가 무조건 불허 불법시위로몰아
편파판사시켜 민형사상 불이익을 주는 편파판결 유도하는 사기공갈14범이
증거많은 BBK도속이고 오사카태생이 포항이라 사기쳐 중대한 선거법위반으로
대통령 자격도없는 친일파 뉴라이트 매국단체회원으로


더러운 차떼기도둑당과 과거 전두환 노태우가 부정축재 나눠먹고 외국빚늘려 영삼이때 국가부도만들듯
평화통일로 향하던 남북교류 고의로 다깨트리고 전쟁위기만든뒤
미국이 재정위기때 미국위해 고의로 환율인상 엄청난 무기 외국빚까지지고 팔아주고
한국은 환율인상해 한국돈 가치하락시켜 엄청 더퍼주어 한국손해보고 미국경제살려주고


우리가 수입한만큼 대체수출해야함에도 일본위해 매년 350억불 적자무역만들어
외국빚을 2000조 가까이만들고 부자재벌감세로 차떼기당이 만든 IMF국가부도 또만들고있다


이에 국민들과 야당에서 항의하고 애국국민 학생이 데모로 항의하자 국민탄압 물대포도 모자라
고막찢는 음파확대기는 세계여론이 무서운지 보류됐지만
또다른 인명살상까지 가능한 수상한 최루탄등 시위진압장비까지 수입해 국민의 입막는 반민주 부패독재정치로


도로 독재국가를 만들며 차떼기도둑당의원들도 부패정권에 협조하는게 뒤로 뇌물나눠갖는것같고
경제나빠 다른당의원들 재산이 줄었는데 유독 한나라당의원과 지방정부 장들 재산 엄청불었다


그러나 새벽은 항상오고 임기도 2년남았듯이 절대로 경상도 지역감정 이용 독재부패정권에 철퇴내려
이명박 부패정권에 피해본 국민 학생 보상해야하고 오사카인과
원전적자계약과 인천공항 싸구려팔기와 대우해양조선에 이권챙기려 개입한 4대강주변 땅부자들인
이명박과 짜고 한국이 손해보고 외국서 이권챙길것같은 특사 이상득등 한나라당 부패한것들과


또 조현오같은 매국경찰들과 떡검사 편파판사와 부패내각과 어용매국단체들 조사후 국민의 심판을기다리고
페루망치다 페루국민이 처형하려하자 일본으로 도망친 후지모리처럼 오사카로 도망못가게해야할것이며
페루도 후지모리 쫏아내고 페루국민 애국자를 대통령만들어 후지모리가 망친경제 거의다 회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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