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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게 속고 또 속는 바보나라 대한민국'

"한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리복재 역사칼럼 | 기사입력 2008/12/21 [20:03]

'무디게 속고 또 속는 바보나라 대한민국'

"한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리복재 역사칼럼 | 입력 : 2008/12/21 [20:03]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음으로써 많은 새싹을 냄과 같이, 내가 암살되어 나와 같은 애국자들을 많이 낼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겠다." (30여 년간의 목숨을 건 독립운동의 여정을 끝내고 환국한 백범이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를 제보 받을 때마다 남겼던 유언이다.)

“엄밀히 말하면 8·15는 민족이 해방된 날이 아니라 친일파가 해방된 날이다. 일제를 주인으로 떠받들던 친일파 주구들이 제 주인을 벗어나 이 땅의 주인으로 우뚝 선 날이다.”(
독립투사 조문기 선생이 쓴 <슬픈조국의 노래> 중에서)


미국과 영국을 등에 업고 일본에 의한 대한국의 강제합병 36년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는 한마디로 갈갈이 찢겨지고 역사는 난도질을 넘어 왜곡되고 말았다.

이러한 이유로 남을 배려하고 인간을 널리 보호 하라는 민족적 이념인 홍익인간 사상은 없어지고 말았다. ‘민족과 조국이 밥 먹여 주냐? 무궁화 쳐다보지마, 눈 병 걸린데! 나만 잘 살고 보자!’는 경제적 가치로 변질, 음모와 배신을 밥 먹 듯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이 패망하여 물러갔지만 일본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부일반민족행위자들(이하일제강점기때 일제에 충성하고 야합해 민족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친일파’로 명명함)은 '구친일신숭미사대주의자(舊親日新崇米事大主義者)'로 변신,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격으로 김구 선생 등 민족주의자들을 국수주의자 또는 용공으로 몰아 멸시와 함께 제거하고 말았다.

이제 21세기에서 이미 일본은 우리 가까이에 성큼 다가와 있다. 그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우익을 앞세워 세(勢)를 불리며 우리에게 침탈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던지고 있다. 그들 일본인의 치밀함은 세계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가장 먼 나라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이상한 일이지만, 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세계화를 주창하며 자칭 진보라 일컫는 사대주의자들이 개혁을 주창하며 나오고 있고, 자칭 보수라 일컫는 구친일신숭미(舊親日新崇米) 정상배들이 탈을 쓰고 3.1절과 8.15절과 국경일에 성조기(미국국기)와 일장기(일본국기)를 흔들어 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치밀함,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무디게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친일 흉내를 낸, 가수 조영남이나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였던 김완섭이나 나아가 신친일파라고 명명된 이들에게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삼웅(단재신채호평전 저자) 선생이 “ 일본 지식인의 멘탈리티는 여전히 한반도를 노리고 있다. 힘이 있을 때는 통째로 가지려고 하고 있고, 힘이 약할 때는 분열 시켜서 유지하려고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겠는가.

일본의 치밀함을 들자면 수도 없이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오늘이라도 TV나 잡지에 나오는 광고를 유심히 살펴보시라. 우리나라가 국제화에 발맞춰 일본을 가까운 나라로 지내기 위해 잘 해보자고 김대중 정권시 일본에 대한 문화개방과 경제개방을 했다.

광고 속에 나오는 모델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일본 사람이 너무 많다. 나아가 아이들이 보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상물을 봐도 일본의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짱구’을 들 수 있는데 아이들은 아무 거부감 없이 웃고 그 만화물 속에 들어있는 일본문화 또한 당연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성인들은 어떠한가. 꽃미남, 꽃미녀 CF모델이 찍은 광고를 그저 황홀한 듯 바라보지만, 그 모델들이 누구인지 어느나라 사람인지 모르고 있으며,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을 듣고 전혀 거부반응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일본에서 역사왜곡을 위해 흘러들어온 비공식 자금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명박 정부는 과연 공식적으로 일본자금이라고 들어오는 자금만 일본자금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수 없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의 가방 속에는 만화책과 잡지, MP3속 음악을 들으며 일본이 원하는 대로 그들 문화에 익숙해져 결국은 경제라는 전략적 무기 앞에 그들이 원하는 침략적 근성에는 하나에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할까.
 

▲ 국가간 예의 벗어났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명박대통령이 일본왕에게 인사하는 장면

 

▲ 지난 4월 대한민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공동기가회견시 연탁에 붙은 일제식민시대 '조선총독부마크'를 보시라    



 
이명박 대통령, 식민시대 '조선총독부 마크’가 새겨진 연탁에 올라 기자회견했다

▲ 조선총독부 마크을 자세히 살피면 임진왜란때 풍신수길이 사용했던 침략상징을 내포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큼직한 오동잎이 아래로 세 갈래, 그 위에 오동꽃 세 송이가 나란히 솟아 있는 형상인데. 세 송이 꽃 중 가운데 꽃은 꽃잎을 모두 7장, 양옆의 꽃들은 각각 5장씩 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일본왕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 원수로서 예의에 벗어난 행위를 한 것으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지난 4월21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 앞에 각기 놓인 연탁 앞면에 붙은 일본 총리실 마크. 그것은 일제 식민지 시절 자주 봤던 ‘고시치노 기리’(五七桐, 총독부 마크)였다고 밝힌 조형균(79·계성종이역사박물관 관장)씨의 주장이다.

조 관장은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가 잘못 본 것인지는 몰라도 예전 한국 대통령 방일 때의 기자회견장 연단에 그 마크가 등장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건 조선총독부 마크입니다. 본래 이 마크는 또 누구의 것인지 아십니까? 마크의 유래가 더 중요합니다. 이 마크는 바로 400여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켜 온 조선을 초토화하고 수많은 인명 살상과 문화재 약탈을 하고 심지어는 코까지 베어다가 소금에 절여 가져갔던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입니다.”

“1910년 8월29일(국치일) 밤 조선 병탄의 주인공들이 벌인 자축연에서 당시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총독이 축배를 들며 즉흥시를 읊었어요. ‘가토와 고니시가 세상에 살아 있다면/ 오늘 밤 떠오르는 저 달을 어떻게 보았을꼬.’ 이에 곁에 있던 이토 히로부미의 심복이 받아 읊었습니다. ‘도요토미를 땅속에서 깨워 보이리라/ 고려산 높이 오르는 일본 국기를.’”

가토와 고니시는 임진왜란 때의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다. 마침내 도요토미의 꿈을 300년 만에 자신들이 이뤘다는 감개를 읊은 시다. 참으로 일본의 치밀하고 용이주도함에서는 무서우리만큼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일제군가가 일부종교에 의해 찬송가로 불리워져

일제시대 저지른 민족압살정책에 동조했던 일부 지식층과 종교 목회자들의 반민족행위는 어떠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앞으로 필자가 ‘민족적인 구심점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세세히 밝힐 예정이다.

한겨레신문은, 전국의 교회에서 아직도 일제군가나 창가의 곡을 그대로 따온 찬송가와 복음성가들을 널리 부르고 있다고 보도해 커더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신문은, 그중에는 일제가 경복궁을 무력으로 장악하고 고종을 연금한 뒤 청(중국)의 북양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조선 식민지배의 토대를 굳힌 청일전쟁 찬양 군가도 포함돼 있다. 1929년에 태어나 신의주와 서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조형균(78·사진) 계성종이 역사박물관 관장은 “해방 전엔 그렇다 치고 해방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러하니 도대체 우리가 해방된 민족인지 통탄스러울 때가 있다”고 탄식했다고 전했다.
 

▲ 오른쪽은 조선 식민지배의 길을 연 청일전쟁 승리 뒤 일제 해군이 지어 부른 군가 〈용감한 수병〉이고 왼쪽이 그 노래의 곡조를 그대로 옮겨 가사만 바꿔단 복음성가 〈부럽지 않네〉. 각 음절 박자가 달라졌지만 곡(멜로디)은 거의 그대로다.    



조 관장은 “일제 때 경찰을 했던 사람이 해방(광복)되자 속죄하는 심정으로 교회의 부흥강사가 됐다면서 퍼뜨린 노래 중에 〈부럽지 않네〉라는 성가가 있다”며 “거기에 붙인 곡조는 청일전쟁 때의 일본 해군 노래”라고 말했다.

79년 11월30일에 초판이 나온 뒤 81년까지 확인된 것만으로 20판을 찍어낸 부흥회용 〈복음성가〉(영산출판사) 제5장, 그리고 97년 3월20일 발행된 〈새로운 복음성가〉(새로운 출판사) 제40장에 실린 이 노래는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로 시작하는데 모두 4절까지 있고 마지막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라는 후렴구가 붙어 있다.

조 관장은 이 노래에 붙은 곡은 1895년 사사키 노부쓰나라는 사람이 작사하고 오쿠 요시이사라는 사람이 작곡한 〈용감한 수병〉에서 따온 노래로, 청일전쟁 승리를 찬양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일본의 국민가요였다고 했다. 그 노래 8절에 나오는 “아직 그대롭니까 적함 정원(定遠)은?/ 그 말 한 마디는 짧을지라도/ 황국을 생각하는 온 국민의/ 마음에 길이길이 쓰여지리라”라는 가사는 중상을 당하고도 부함장을 찾아 적함이 격침됐는지를 묻고 바로 숨졌다는 어느 3등 수병을 영웅화한 내용이다.

노동은 중앙대 창작음악과 교수는 문제의 노래가 청일전쟁 뒤 ‘데이치쿠 주식회사’가 소방청음악대와 합창대의 노래로 녹음한 것이며, 1910년 대한제국 학부가 발행한 〈보통교육창가집〉에도 〈권학가〉란 제목으로 같은 악보가 실려 있다고 말했다.

▲  조형균(79·계성종이역사박물관 관장)

조 관장은 〈새로운 복음성가〉 제50장 〈허사가〉도 같은 곡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부흥회용 〈복음성가〉 제35장에 들어 있는 〈신구약 성경 목록가(창세기 출애굽기)〉는 어린이 신도나 교회에 처음 나가는 사람들이 성경내용을 암송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인데, 이는 일제가 도쿄 신바시에서 요코하마 쪽으로 철도를 놓아 개통했을 때 지어 부른 4행 66절 노래 〈철도창가-도카이도편〉에서 곡을 따왔다고 말했다. 이 〈철도창가〉의 곡은 〈새로운 복음성가〉 제88장의 〈요일가〉와 유행가처럼 불린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로 시작하는 〈학도가〉에도 붙었고, 민속음악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도 원래 곡 대신 붙여져 널리 불렸다.

또 하나, 80년 신군부의 언론기관 통폐합조처로 한국방송공사에 흡수된 〈동아방송〉이 한때 새벽에 방송을 시작할 때 흘려보낸 ‘콜사인 뮤직’ 역시 일제 군가 〈흥아(興亞) 행진곡〉의 각 소절 꼬리 부분만 슬쩍 바꿔 붙인 “명백한 표절”이었다.
 
〈흥아행진곡〉 1절 가사는 “이제는 세기의 새벽노을 풍영(豊榮) 솟아오르는/ 욱일의 …흥아의 사명 두 어깨에/ 짊어지고 섰도다/ 5억의 백성”으로 돼 있다. 노동은 교수는 58년에 박경원씨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김교성 작곡의 가요 〈만리포 사랑〉도 “(흥아행진곡의) 완벽한 표절이라 할 순 없지만 비슷하게 진행된다”면서, 조 관장의 얘기가 “모두 옳은 지적”이라고 했다.

직접 일본에 가서 악보를 채집해 오는 등 수년간 애쓴 끝에 이런 사실을 밝혀낸 조 관장은 “최근 한국방송의 노인프로그램에서 죽음준비학교를 소개하는 중에도 〈철도창가〉를 딴 노래가 나왔다”면서 “어디서 또 일제의 ‘망령’이 튀어나올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노 교수는 “그동안 항일독립운동가나 동요에 일제군가나 창가의 곡에 가사만 바꾸거나 표절을 한 노래들이 많다는 사실은 지적이 돼왔지만 찬송가는 그런 줄도 모른 채 지금도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며 “우리 음악계에서 해야 할 일을 한 개인이 밝혀내 놀랍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찬송가 〈주님 고대가〉도 일본 음계와 박자로 작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족적 구심점으로 나가야만 살 길
 

▲ 사민필지 , 1889년 간행된 천문지리서. 헐버트(H.B. Hulbert) 저술.초보 단계의 천문과 세계지리에 관한 교과서로 국립학교인 육영공원 초빙 교사로  온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저술한 것.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제국에서는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그리고 유일신 하나님은 크고 유일한 하나(Only One)를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Hananim)'이란 단어는 '하늘'과 '님의' 합성어로서 한자어 천주(天主)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순수한 종교적 개념은 외래적 의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다...중국에서는 천주(天主)라는 우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외적 형상을 만들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


(호러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헐버트(H.B. Hulbert)의 기록.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5년 선교활동을 위해 최초로 우리나라에 왔으며 그의 소속 교단은 미국 북장로회였다.

또한 1896년 당시 미국 선교사로 활약하던 헐버트(1863.1-1949.8.5)의 말이다. 그는 감리교회 소속이었다.)


이 기록들은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 있는 대한제국의 운명에 대해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기로 밀약을 맺고 계략에 따라 미측은 일제에게 한국에서의 기독교(개신교)만은 탄압하지 말 것을 약속받았는가 하면, 일종의 사전 보고 성격으로  미국 선교사들이 한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을 그들의 잡신 여호와 대신 차용하면서 남긴 여러 연구 검토 기록들 중 일부이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 중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 거의 없고(특히 일부 기독종파주의자들은 철저히 숨기는 통에) 한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 이런 사실을 몰라도 좋다. 우리 민족은 이미 5천년 전에 6개 민족으로 단군 조선을 건국할 때 이미 '하나님'이란 존재를 알고 믿었던 사실만 알자.

8.15이후 대한민국은 미군정시기를 통하여 구친일신숭미(舊親日新崇米)하는 사대주의자 정상배들이 창궐하여, 일신일가(一身一家)의 금의옥식(錦衣玉食)을 거부하며 오로지 조국독립과 지구상(地球上) 강대국(强大國)을 건설하려는 독립운동가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이어가기 위해 반공(反共)만을 유일한 무기로 삼아 성공했다.

이는 북한에서도 쏘련의 위세를 이용 정통성 있는 국내 항일지도자들을 무시한 채 항일빨치산 출신의 공산주의혁명가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해 민족주의가 공산주의의 위세에 함몰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친일파세력을 처단하였던 점은 사회정기(社會正氣)가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개인숭배적인 독재체제’라는 낙후성은 현실적 여건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어떤식으로든 독재는 안 된다는 표상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지만...

민중생존조건을 질적으로 향상시켜보겠다던 사회주의자들도 물질생활의 물질풍요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들의 적이라는 자본주의자들이나 마찬가지로 물질적 풍요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결국 자본주의사회의 뒷꽁무니나 따라다니며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내주는 찌꺼기나 주워먹기에 여념이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신적 물질적 가치에 대해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민족적 구심점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진정한 이상과 행복을 위해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민족적인 구심점(求心点)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1편 일제잔재부터 청산해야]

편집부 08/12/21 [20:52]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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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머털이 08/12/21 [23:38] 수정 삭제  
  제발 좋은 세상이 왔음 좋겠네요. 친일파들이 대거 이빨을 드러낸 지금 그놈들 잘 기억해 놨다가 제대로 뿌리 뽑아야 겠습니다.
무료특강 08/12/22 [15:13] 수정 삭제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제국에서는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그리고 유일신 하나님은 크고 유일한 하나(Only One)를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Hananim)'이란 단어는 '하늘'과 '님의' 합성어로서 한자어 천주(天主)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순수한 종교적 개념은 외래적 의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다...중국에서는 천주(天主)라는 우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외적 형상을 만들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 22

한국민족의 신은 사람이 아니라, 우주의 빛인 광명이다. 천부경에서 "본심본태양앙명"이라고 했다. 사람의 본심은 태양처럼 빛이라는 의미다. 즉 광명은 양심이라는 의미며, 모든 우주만물속에서 가득찬 빛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사람이고 만물이 신이 깃든 생명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이며, 예수처럼 교리로 포장된 존재가 하나님으로 우상숭배될 수 없는 것이며, 기독교가 만민불평등한 종교인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민족신 여호와는 남성신이 아니라, 여성신으로 서방(슈메르)에 가서 이름을 빛냈다는 태호복희 여동생 여와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영어로 '조선피플'이다. 아브라함이 떠난 갈대아 우르국은 단군조선과도 교류했다. 이스라엘민족은 동이족 출신의 여와를 신으로 모셨던 것이다. 여호와는 7일만에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여 혼을 불어 넣었다(창세기)=고구려 을파소가 정리한 [참전계경]서문,"여와가 7일만에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여 혼을 불어 넣은 후 전쟁에 내 보냈다"..성서의 여호와(여와)가 전쟁신으로 묘사된 배경이라 추정된다. 성서를 100%사실적 내용으로 믿으면 안된다. 성서는 이스라엘역사부분만 제외하면 하나의 문학적 쟝르에 속하기 때문이다. 고대 신들은 여성신에서 남성신으로 바뀐다. 고대신화들을 보면 남성신이 여성신을 살해하는 장면들이 그러한 증거다. 성서의 여호와도 여성신에서 살해하는 남성신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할 것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반인(상반신)반뱀(하반신) 모양의 태호복희와 여와 그림에는 자와 컴파스를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의 비밀조직이라는 프리메이슨의 상징도 자와 컴파스다.


[태호복희.여와 그림][프리메이슨 마크]자와 컴파스

본래 이스라엘 민족은 황인종이다. 그러나, 많은 외침으로 백인들과 피가 섞여 혼혈족이 되고 말았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과 한국민족의 체형(검은 머리에 키가 작다=슈메르인들)과 풍습이 동일하다. 아브라함의 고향이 슈메르 갈대아 우르다. 결국 이스라엘민족은 동이족의 먼 후손들인 셈이다. 이러한 역사를 모르고서 유대인들을 극단적인 일본이나 독일의 국수주의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배격하지는 마라! 그건 자신들 스스로가 비난하는 전쟁신 여호와으로의 변신일 뿐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가지에 불과한 유대인들이 나라를 상실하고 떠돌아다니면서 물질적으로 부자가 된 민족이고, 뿌리에 해당하는 한국민족은 정신적으로 부자가 된 민족이다. 황우석죽이기도 유대인들의 물질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기술이 유대인들의 기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이 아무리 풍부해도 정신이 죽으면 결국 자체적으로 부패하고 망하기 마련이다. 정신이 살아있는 한국민족이 인류사를 주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인들도 대부분 서양의 물질문명으로 인해 양심이 부패한 상태다. 소수의 정신을 지킨 사람들이 주역이 될 수 밖에 없다.

성서와 이스라엘 민족사에서 사라진 단지파는 정말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한단고기]에 등장하는 곰족속의 단족의 실체는 무엇인가? 유라시아 초원길처럼 열린 마음으로 연구해 봐도 재미있겠다! 단지파가 뱀으로 상징화되어 있다면 뱀을 토템으로 숭배한 태호복희의 풍이족의 토템이기도 하다. 태호복희와 여와의 그림의 하반신은 뱀이다.이것은 태호복희와 여와가 풍이족임을 감안한다면, 여신상(여와 신상)을 가지고 팔레스틴을 떠난 단지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여호와=태호복희 여동생 여와=7일만에 흙으로 사람을 창조한다(창세기=참전계경 서문).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해 보자!

뱀 토템과 관련하여 우리가 풍물을 칠 때 굽이굽이 휘돌면서 논다. 또 장소를 이동하거나 신명나게 놀 적에도 그냥 일자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빙빙 돌거나 뱀이 꽈리를 틀듯이 뱀이 기어가는 형태로 풍물을 친다. 이런 행위는 이 풍물이 풍이족 문물이고 복희가 풍씨 집안의 사람이기 때문이지만, 뱀은 바로 우리 민족이 최대의 신으로 모시는 칠성의 화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릴적 비가 온 후 여름밤에 큰 구렁이가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구렁이는 복의 상징이라며 기뻐하셨는데, 이브에게 선악과를 건네준 뱀은 사탄이라는 기독교적 의식에 사로잡힌 형은 구렁이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막아서 구렁이를 죽이지는 못했다. 집단무의식으로 우리민족은 뱀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는 건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이러한 뱀토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 칠성신으로 상징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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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신으로 상징되는 뱀 이야기


우리는 뱀이라고 하면 무엇을 가장 먼저 떠 올릴까?

구약성서에는 뱀을 이 지구상에서 가장 교활한 동물로 이야기하였으나, 신약성서에는 “뱀처럼 신중하고 비들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였다.

구약성서 에도 뱀이 나와 모세와 야훼가 자신들을 비난하는 히브리인들에게 불뱀을 보내 다다수가 물려 죽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그 뱀을 쳐다보면 다 나을 수 있다고 한다. 모세도 청동 뱀을 만들어 그 뱀을 바라보는 자들은 다 소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그리스 신화나 이집트 유적 등에서 뱀의 등장을 많이 볼 수 있으며 모두 신격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렇게 기독교에서도 뱀을 신앙의 상징물로 보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영향이라 생각한다. 그리스에서는 뱀을 의약, 예술, 시와 많이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뱀과 가장 관련이 있는 민족은 바로 우리 동이족일 것이다.

그 예로 고구려 고분에 나오는 복희와 여와의 벽화에 인두사신을 한 벽화와 뱀을 신으로 숭배하는 사상이 널리 펴져 있다.

뱀을 칠성에 비유하여 모시며 굿을 하는 제주도의 이라는 일곱 뱀을 위하는 굿이 있는가 하면 전국 어디서나 옹기단지에 뱀을 상징하는 주저리를 틀고 곡신을 넣어 그 단지를 업양단지라고 부르며 뱀을 가신으로 모시고 있다.

뱀에 관한 기록들은 와 에도 많이 나온다.

신라의 나해 이사금 때 뱀이 사흘을 울고 난 뒤 일 년 후 왕이 죽었다는 이야기며, 박혁거세 죽음에 대한 예견, 경문왕은 뱀과 함께 잠자기를 좋아했다는 기록 등 수없이 많다.

뱀은 주술적으로 재생 혹은 영생, 그리고 재물과 복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것은 뱀이 허물을 벗기 때문에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 태어 나난다는 의미를 가진다.

뱀이 집 밖으로 나가면 그 집안이 망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뱀이 나가려고 하면 못나가게 달래서 다시 집어넣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행위는 바로 뱀이 복과 재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신화나 전설 속에는 뱀이 사람으로 둔갑하여 인간과 정을 통하는 이야기나 은혜를 갚는 이야기와 뱀이 복수를 갚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풍물을 칠 때 굽이굽이 휘돌면서 논다. 또 장소를 이동하거나 신명나게 놀 적에도 그냥 일자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빙빙 돌거나 뱀이 꽈리를 틀듯이 뱀이 기어가는 형태로 풍물을 친다. 이런 행위는 이 풍물이 풍이족 문물이고 복희가 풍씨 집안의 사람이기 때문이지만, 뱀은 바로 우리 민족이 최대의 신으로 모시는 칠성의 화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뱀은 12지신 중 하나로 한자로 사巳라고 한다.

천문훈을 보면 사巳는 “생기어 이미 정해지다”라는 뜻으로 싹이 터서 이미 만물이 그 형상을 이루고 번무繁茂의 최절정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뱀은 양陽으로 오행은 화火를 나타낸다.

뱀 띠생은 무武 보다 문文이 가깝다. 성품이 고상하고 용모가 단정하여 도덕관념이 강하여 윗사람을 공경하고 언행이 바르다고 했다. 인덕이 없어 남을 믿다가 낭패를 보는 수가 많으며 실속이 없고 일생 남이 모르는 근심을 가지고 산다고 했다. 고진감래라 초년이 좋으면 말년이 어렵고 초년이 어려우면 말년이 좋다.

뱀띠와 잘 맞는 띠는 닭띠와 소띠 그리고 원숭이 띠다. 그러나 돼지띠와 상극으로 무슨 일이든 같이 하면 끝이 좋지가 않다.

우리 민족이 신성한 동물로 여겼던 뱀이 요즘은 한낱 정력제로 널리 알려져 뱀탕이 인기를 얻어 산에 뱀이 멸종되기 일보 전이라고 한다.

이렇게 뱀을 먹으면 정력이 좋아지고 몸이 건강해 진다는 이야기는 평안도 맹산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잔치 집에 구걸 온 거지에게 뱀이 빠진 술을 먹이고 그 거지가 앓고 있던 병은 물론이고 몸이 튼튼하게 되었다는 민담에서 비롯되었다.
심화학습 08/12/23 [02:47] 수정 삭제  
  단=심판자. 출애급이 기원전1500여년이고, 불레셋족과 싸워 패배한 단지파가 여성신상(여와상?)을 숭배했다고 이단으로 몰려 동북방 지역으로 떠났다고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고, 현재 기독교에서는 단지파를 마귀들린 지파로 설교하고, 요한계시록에서 12지파에서 단지파는 빠져 있다. 단군조선은 개국시기를 기원전2천여년으로 잡는다. 그렇다면 동북방으로 이동한 단지파의 연대를 기원전 1300년으로 잡아도 유라시아 대륙에서 살다가 300년만에 만주와 한반도로 들어왔다면 기원전 1000년경이 된다.

단지파의 일부가 세운 나라가 북유럽의 단마크(덴마크)다. 일부는 동진해서 초원길을 따라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해 올 수 있다.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치우천황가면이 그려진 고조선시대 기와장에 새겨진 고대 히브리어문자가 새겨진 기와장 5장은 그러한 유물일 수 있다. 부정할 수만은 없다. 단군조선의 개국시기를 2천여년으로 잡느냐! 아니면 1000여년으로 잡느냐의 문제에 따라 단지파의 실체가 드러난다고 본다.

단군조선개국시기가 2천여년이면 기원전 1000여년 전의 유물로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고대히브리어문자가 기록된 기와장 5개가 왜곡된 유물이 아니라면 단지파의 일부가 들어온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중국문헌에 청동기문명의 주역이 예맥족으로 고구려.부여의 선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서지역에서 청동기문화를 일어나 동북방으로 이동해서 단군조선을 개국했다. 또한 [한단고기]에 곰족중에 출현한 단족이 나온다. 이 단족이 곰족중에서 제일 강성한 부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단족과 예맥족과 단지파와 연관시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역사는 땅속에서 토해내는 유물유적이 최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12환국에서 출발한 슈메르의 한 갈래인 이스라엘민족은 족보를 따져도 동이족의 먼 후손들이며, 이스라엘민족의 역사가 5천년이라면 한국민족의 역사는 1만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후손들이 조상들의 땅을 찾아 만주와 한반도로 들어온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고대에는 족보.혈통개념이 강했고 충분히 교류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주의자들처럼 흥분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수용해서 논리적으로 반박을 해 보도록 하자!

[규원사화]는 단군조선이 1천여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단고기]는 2천여년으로 잡는다.[규원사화]의 연대를 따른다면 단지파와 단군조선의 관계성이 성립된다. 하지만, [한단고기]의 연대가 맞다면 단지파 일부가 알타이산을 넘어서 유라시아 초원길을 따라서 충분히 들어 올 수 있겠다. 중세 히브리어문자도 아니고, 기원전 10세기의 고대 히브리어 문자가 치우천황가면에 표기되어 있다면 딱 맞아 떨어지게 된다. 열린 마음으로 연구를 해 볼 일이다. 기독교사가 확 바뀔수도 있는 문제다. 유대인들이 로마병사 판텔라의 아들이라며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예수는 성경상의 족보로 유다후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단지파는 첩경의 독사가 되어 말탄 자의 말굽을 물어 넘어 뜰릴 존재로 예언되어 있다(창세기49장). 성서와 이스라엘 민족사에서 사라진 단지파는 정말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한단고기]에 등장하는 곰족속의 단족의 실체는 무엇인가? 유라시아 초원길처럼 열린 마음으로 연구해 봐도 재미있겠다! 단지파가 뱀으로 상징화되어 있다면 뱀을 토템으로 숭배한 태호복희의 풍이족의 토템이기도 하다. 태호복희와 여와의 그림의 하반신은 뱀이다.이것은 태호복희와 여와가 풍이족임을 감안한다면, 여신상(여와 신상)을 가지고 팔레스틴을 떠난 단지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여호와=태호복희 여동생 여와=7일만에 흙으로 사람을 창조한다(창세기=참전계경 서문).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해 보자!
궁금 08/12/23 [07:01] 수정 삭제  
  위 댓글 글쓴이께서 동이족의 조상이 태호복희라 하고 있으나 이는 한족-쥐나족의 조상이 아닌가요?
제가 몰랐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상하게 성서쪽으로 가시지말고요

성서 여호와는 동이족 태호복희 여동생 여와..>이게 무슨 의미인지요?
리복재 기자 08/12/23 [08:59] 수정 삭제  
  의 제하에 [민족적인 구심점(求心点)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1편 일제잔재부터 청산해야]라는 칼럼이 보도되자 많은 독제제위께서 글과 전화를 해 주었다.

먼저, 부제목과 본문에 우리 민족의 신은 여러 신이 있는데 왜 유일신인가, 표기하려면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으로 해야 옳다, 하나님은 기독교에서 부르는 명칭이다, 애국가도 처음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하느님으로 부르고 있지 않은가...

[답변] 우리민족은 원시종교인 ‘애니미즘(Animism)'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유기물과 무기물 또는 생물과 무생물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지만, 원시시대에서는 이러한 판별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물체에 정령(精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숭배하였습니다.
특히 하늘 위에 있는 태양이나 북두칠성, 고산주봉(高山主峰)과 같은 살아가면서 불가사의한 것에는 반드시 정령이 있다고 믿었고 그 정령이 우리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믿고 숭배하였습니다.
이후 우리 민족의 정령숭배는 농경사회로 발전하면서 이러한 정령들을 초월한 유일의 주재신(主宰神)을 인식하여 절대신은 하늘에 있으며 우주의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한울님. 하늘님’으로 부르다, 세상을 오직 하나이신 절대신(絶對神)이라고 하여 ‘한님. 하ㄴ.님.’, 후에 ‘한얼님’이라고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한자어로는 ‘환인(桓因). 천신(天神). 상제(上帝). 천왕(天王), 천제(天帝). 天군(天君)’ 등입니다.
이처럼 우리민족은 일찍이 ‘하나님’의 존재를 어느 민족보다도 수 천년 먼저 인식했던 민족입니다.
가까운 주변국부터 예를 들자면, 일본은 가미가마(神樣)라 하여 정령을 숭배했지만 ‘하ㄴ.님’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중국을 들자면 임금을 천자(天子)라고 불렀으며 그래서 중국인들은 하늘이 천지와 인간만사를 주재하는 최고의 신으로 알고 천자를 떠받들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창공의 자연현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브라만(Brahman)을 우주의 창조자라고 보았습니다.
이렇듯 당시 어느 민족도 창조주이며 주재신 ‘하 ㄴ.님(이하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했고 정령을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유태교나 기독교보다 수 천년 전에 인식하고 믿었던 창조주이고 유일신이며 주재자 하나님과 유태교와 기독교에서 인식하고 있는 하나님은 같은 존재인가? 하는 물음에 답변합니다.
앞서 대한제국 당시 민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와 선교를 할 때 한국문화를 깊이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선교사가 성서번역을 한 게일(Jamea S. Gale)과 클라크((C. A. Clark)는 유태교와 기독교에서 신봉하고 있는 여호와(기독신, 야훼신)가 고대 우리 민족이 인식한 하나님과 동일한 유일신이고 창조주이며 주재신이라고 기록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즉, 기독교가 1800년대 후반기에 우리나라에 와서 한민족이 유일신으로 믿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신(잡신?)를 유일신 하나님으로 내세우며 선교활동을 하였다는 증거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 선교사 등이 쓴 ‘대한국의 종교, 고대 조선의 종교’등의 책 등 많습니다.
특히,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우리 민족은 그 훨씬 이전에 ‘아버지’이상으로서 존귀하게 믿었고, 기록으로는 조선 세종대왕 18년 김호연(金浩然)이라는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에게 명하여 나라를 다스리게 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정황상이나 객관적 사실에 비추어 ‘하나님’은 선교사들에 의해 언어상의 속임수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번역의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기독교 성경이라는 곳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아닌 ‘태초에 기독신(야훼신)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옳은 번역이라고 판단합니다.
리복재 기자 08/12/23 [09:03] 수정 삭제  
  선교사들의 만행 등 여러가지 의견을 주셨습니다. 다음 편에서 진실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필진과 독자제위분들의 공유와 교감이 오가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1 08/12/23 [10:57] 수정 삭제  
  태양계의 생명을 살리는 태양에서 쏟아지는 빛은 스펙트럼상 여러갈래나 결국 하나인 태양에서 나온다. 마찬가지다. 우주에 가득차서 우주만물을 살리는 광명의 빛 또한 결국 하나다.그래서 하나님이시다. 하늘(땅.사람.창공.모든 생명체)은 곧 우주다. 그 우주속에 가득차 있으니 또한 하느님시다. 동학에서 말하는 하늘님이신 것이다. 고로 사람을 비롯한 모든 만물은 하느님(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하느님의 기운이 끓어지면 순간에 먼지로 돌아갈 존재들이여! 교만하지 말고 너희속의 빛으로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속이지 말라는 소리다.

그리고 이러한 한민족의 하느님.하나님을 기독교집단이 차용한 것이다.
[성서의 여호와는 태호복희 여동생 여와다]는 아래 주소를 참조해 주세요

http://pluskorea.net/bbs.html?Table=ins_bbs90&mode=view&uid=1944&page=1§ion=
한송이 08/12/24 [17:45] 수정 삭제  
  잘 보고갑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리고 누구도 할 수없는 일을하시는 기자님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십니다 힘내세요
독자 08/12/25 [07:05] 수정 삭제  
  기독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기독교에서만 부르는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랍습니다...
구글과 다음포털에서 논란보다는 대부분이 긍정적이고 기독인들은 거짓이라고 항변하더군요.
그치만 위 기사처럼 객관적으로 밝히고 댓글에서도 기자님께서 쓴 글을 보면 확연히 드러나요.
담임목사님께도 보여주었더니 아무말씀 안하시더군요.

마지막 리풀에서 쓴 결론이 가슴을 휘어잡습니다./

//이와 같이 정황상이나 객관적 사실에 비추어 ‘하나님’은 선교사들에 의해 언어상의 속임수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번역의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기독교 성경이라는 곳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아닌 ‘태초에 기독신(야훼신)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옳은 번역이라고 판단합니다.//
정동진 08/12/26 [12:51] 수정 삭제  
  국내뿐아니라 외국에서도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오는 기사
하나님이 기독교에서 찾는 신이 아니라는 것인데 놀랍습니다. 객관ㅂ적 사실앞에 분노도 입니다. 진정으로 이 시대의 올바른 소리를 내는 곳이네요. 자주오겠습니다.
단군국조 08/12/27 [04:40] 수정 삭제  
  초지일관 희생을 감내하며 나아가는 리기자님께 고개숙입니다.
사실 모든 언론이 꺼리는 종교문제에 과감하게 매스를 대고 민족과 조국을 위해 뛰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진즉에 선생같은 언론인이 이 나라에 나왔다면 민족적인 공동체로 발전할수있느 개혁이 이루어졌을 것인데...
진정 보수와 개혁을 지향하는 선생의 깊은 뜻을 만민이 알고 지금이라도 행해야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잘 읽고 퍼갑니다.
rlagidtnr 18/10/22 [14:02] 수정 삭제  
  오ㅒ/ 김대중 선생님이 일본 천황과 접대한 사진이나,,일본천황폐하 사망시 조의하면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노무현 해수부 장관당시 독도를 일본과 공동 관리구역으로 설정한것에 대해서는 직소리 못하는지 그이유부터 설명하고 쥐박기 사진 붙여라 아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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