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집에 버젓이 광고하고 있는 '단군신화 흑마늘'이라는 술 ©편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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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일제식민시대 단군국조를 신화로 만들어 버렸던 왜곡 조작 본산인 <조선사편수회>. 우리 민족 역사서를 불태우고 왜곡시키는데 최우선적으로 앞장을 섰던 일제식민사학(한반도사관론자)의 거두, 일제가 패망하자 서울대 교수겸 학장 그리고 문교부장관을 지냈던 민족반역자 두계 이병도가 죽기 전 "단군은 신화 아닌 실존 인물"이라고 진실을 말했음에도, 또 2007년 국사책에 기록되고 있음에도 일부 장사치들의 몰염치하고 파렴치한 상업수단에 기가 콱! 막힌다. 이 사진은 2008년12월 15일 서울시내 한 술집에서 촬영했다. 과연 이렇게 진실을 숨기고 광고하면 돈을 많이 벌어들일수 있을까? © 편집국
<지난 [2편 무디게 속고 또 속는 바보나라 대한민국]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다'고 보도하자 많은 분들이 사실인지 진위를 물어와 다시 싣는다.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영국 기독교인 판사가 판결을 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해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으며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 일제식민시대때 일본군에 끌려간 아들을 둔 어머니가 일제 만행을 고발하며 아들에게 복수를 당부하는 내용의 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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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서 사진 설명/ 태평양 전쟁기 일제의 온갖 수탈로 전 가족이 굶어 죽게된 한 어머니가 일본군에 끌려간 아들에게 남긴 절명서가 2004년 8월 13일 공개됐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으로부터 입수한 이 편지는 일제가 전쟁 막바지에 조선인을 얼마나 혹독하게 수탈했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다음은 편지의 전문이다.
"명진 보아라
(내가 죽은 뒤에 이 편지를 나의 아들 김명진에게 전해주시오)
나의 사랑하는 명진아!
우리 집안 식구 다섯 사람은 모두 왜놈 때문에 굶어 죽었다.
명진아 나는 너의 아버지를 따라 가겠다. 너는 너의 힘과 지혜를 다하여 너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원수 왜놈과 싸워라
너의 아버지와 어린 동생 세 사람은 모두 굶어 죽었다. 네가 왜놈의 병정으로 뽑혀간 그 이튿날부터 순사와 면서기 놈들은 날마다 우리집에 와서 쌀을 뒤져서 빼앗아 가고 배급은 눈꼽만큼만 주기 때문에 집안 식구는 굶어 죽었다.
명진아, 네 어미와 아비를 죽인 원수를 꼭 갚아라. 너는 왜놈의 군대에 있는 동안에 온갖 방법을 다하여 왜놈의 대포와 탱크와 비행기를 비밀히 파괴하여 못쓰게 만들어라.
그리고 더 있지 못하게 되거든 왜놈의 장군을 죽이고 중요한 문서를 훔쳐가지고 우리 독립군이나 동맹군 군대로 달아나서 힘을 합하여 원수 왜놈과 끝까지 싸워라! 명진아! 나는 간다. 이것이 나의 절명서이다. 꼭 원수 갚아라 우리의 원수는 왜놈이다."
▲ 일본 잡신을 숭배하기 위해 일제시대 기독교의 대부분의 목사들이 일본 '미소기 바라이'를 "천조대신 외에는 참 하나님이 없다"고 신앙 고백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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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국 교회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에 눈감고 침묵하고 방조하면서, 암묵적이건 명시적이건 국가 권력에 협조하여 특혜를 누려왔다면 그들이 주창하는 ‘하나님’께 반성과 회개를 하여 과거에서 탈피하여 영생적인 구원을 펼쳐야 할 것이다. 과거 대한제국의 암울한 시기를 틈타 기독교를 찬양하고 전파시켰던 일제와 서양의 침략제국주의자들. 침략주의자를 대신해 허울 좋은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잡신’에 우리 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을 교묘하게 차용하여 ‘우리 종교도 너희민족의 신 하나님을 넣었으니 너희들도 믿어라’하고 설교하고 전파했음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겉으로는 그들의 잡신을 '하나님'으로 차용하면서 민중들에게 따르게 하고, 속으로는 일제에게 협력하고 부화뇌동, 야합하여 한민족의 뿌리를 없애기 위해 역사왜곡에 앞장섰다는 것이 근거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구한말 당시 동학(해가 동쪽에서 뜨는 곳의 창도. 후에 천도교로 명명)과 서양종교가 똑같이 '하나님,하느님, 하늘님' 등으로 종교의 상징성을 두었지만 일제식민시대, 동학은 갑자기 '한울님'으로 종교적 상징성을 개종해버린 사건이 터진다. 이후 천도교로서의 변화를 꿰하며 '한울(크고 넓은 울타리)님' 사상을 전파해나갔으나 우리민족의 유일신인 '하늘님 등'을 쏙 빼버린 결과 서양종교와 불교 등에 밀리면서 현재는 그 명맥만(정확한 수치는 파악할 수 없지만 천도교 관계자는 현재 천도교인은 3만명 정도, 4인가족 기준 10만명으로 추정) 유지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1919년 동학(천도교)은 조국의 독립과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각 종교를 설득하기로 하고, 특히 기독교 이승훈 목사에게 거금 5천원을 주어 목사 13명과 전도사 3명은 동참하기로 했으며, 이들은 차일피일 미루다 3.1 독립만세운동 하루전인 2월 28일에서야 민족대표 33인에 서명하게 된다.
이러한 민족적인 발로로 동학은 4인을 기준으로 추정하면 한가정에 한 둘은 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1931년 월간지 '혜성'의 종교전선종횡기(김병순 기자)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종교인 현황을 알 수가 있다. 당시의 서양종교를 믿는 사람은 28만 여명, 불교(총칭)를 믿는 사람들은 16만여명이었으며, 천도교(동학)를 믿는 사람은 무려 610만여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 2천만명 정도의 민족이라고 보면 동학을 믿는 사람이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는 당시 우리민족이 '하나님 등' 유일신을 믿어왔던 것을 동학에서 보국안민의 기치를 걸고, 유일신을 천명하고 부터 엄청난 교인이 늘어 났던 것이다. 이후 여타 종교들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하나님.하느님, 하늘님' 등 상징성에서 '한울님'으로 동학의 상징성을 개종했던 것을 추정하면, 교세가 엄청난데 따른 자만심이 들었던 것으로 풀이해 볼 수가 있다. 불교는 전회에서 '대웅전-삼신각-삼성당'등으로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과 유일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고 설파해 우리 민족이 불교를 믿게 되었다고 밝힌바 있다. 이는 우리민족이 유일신 '하나님'을 어떤식으로든 믿었던 결과이며, 동학이 '한울님'으로 개종하고 자만심에 빠지자 서양종교와 불교 등지로의 이동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의암 손병희 선생이 3.1독립만세운동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1912년에 지었다는 '봉황각'. © 편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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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자 민족을 반역한 그들이 오히려 민족의 독립에 헌신했다고 호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이 뒤바뀌니까 말을 바꾸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역사를 왜곡하는 기독교계의 행태를 우리는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일제패망 후 친일한 기독교는 떳떳하게 나설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친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후 미국을 떠받들고 민족주의자를 매도하며 오히려 민족의 독립에 앞장섰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기독교가 아닌가. 물론 일제에게 협력하지 않았던 목회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 목사들은 ‘신사참배’ 등을 하였다는 역사적 진실이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 초기 선교사들은 선교활동 보장받는 대신 교회신도들에게 비정치화를 강화시켜 일제의 식민지배 정당성과 수탈과 약탈, 민족사를 왜곡하도록 묵인 내지 방조하고 말았다. 먼저 황사영 백서 사건을 보면,
“.....예수님의 거룩한 가르침에 의거하면 전교를 용납하지 않는 자는 그 죄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중하다 했으니 이 나라를 전멸한다 해도 성교의 표양에 해로울 것이 없을 진대 ....”(황사영 백서란 프랑스주교에게 보낸 서한에서, 프랑스 군대를 동원하여 대한제국을 갈아엎어달라는 청원서. 반역죄로 처형당함)
이를 두고 어느 기독교인은 ‘신이 황사영을 시켜 이 나라는 진멸해도 된다는 사랑의 논리를 설파하고 순교하게 하심.... 이건 절대 반역이 아니라 순교라고 우기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심....’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오도하고 잘못 번역해 순교라고까지 경배 하고 있는데, 마치 조국도 없고 민족도 없는 오로지 당시와 지금의 ‘하나님(서양에선 여호와나 야훼 등 잡신을 믿는)’에 대해서 언급해보면, 역설적이게도 중국 ‘하’나라의 역사서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조선(흔히 고조선)국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산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일환으로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불태워버린 우리 역사서 20만여권 중 인류사적인 제일 중요한 ‘한단고기·대동사강 등’ 역사서는 분명 일본이 불태우지 않고 일본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것)
즉, 우리 민족의 유일신인 ‘하나님’을 선교사들이 마치 자신들의 신도 하나님인 것처럼 번역하고 전파하여 당시 우리 민족이 문맹자가 많았던 시기에서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고, 이후 문맹율이 줄어들자, 희한하게도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곧 성경에 나와 있는 역사로 가르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조선사편수회’에서 단군을 신화로 왜곡하여 지금껏 우리 민족의 국조를 숨기고 서양종교가 모시는 신과 배치(이단이나 사탄)되게 만들어 놓은 데에서 기인되고 있다.
▲ 종교행사와 시국보고회때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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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우리 민족은 정치적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모함을 당하거나 억울함을 당하면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며 자신의 결백을 드러냈던 것이며, 이는 우리 민족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훈계를 주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하나님사상’은 유교·불교·기독교 등 세계 모든 종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인 종교의 근본정신이자 우리 민족의 기본사상은 경천애인(敬天愛人)으로 BC4995년부터 시작을 담고 있다.
또한 서양종교에서는 인간이 지켜야 할 ‘십계명’이 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천범(天範)’과 비슷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믿지 못하겠으면, 성경의 십계명과 우리 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의 ‘천범’을 찾아보시라.
‘하나님’과 서양종교에서의 ‘여호와 또는 여와’는 같은 신(神)이 아니다!
성경에는 모세(Mose)시대부터 '여호와신'. 히브리 사람들이 유일신으로 믿고 있는 여호와神 말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 대신 아도니아(Adonai) 즉, '나의 주님'이라고 불렀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배자들의 신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여호와신의 속성은 무엇인가. 잔인하고 질투심이 많고 난폭한 신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질투의 신·두려운 신·복수의 신·군신’등으로 묘사되어 있는 여호와신.
▲ 당나라때 한 여성의 무덤에서 발견된 복희와 여와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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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 나타난 여호와신에 대한 구절이다.(한글로 번역된 것)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 20:5)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출 34:1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복수의 신이라는 구절도 기독교인은 잘 알겠지만 비기독인이나 비종교인은 모를 것이기에 잠시 언급한다. 여호와신은 광야에서 “율례와 법도”를 어긴 60만여명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학살한 잔인한 신이다. 또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하여 가나안 족을 학살할 것을 지시한 신이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때힌 것은 때림으로 갚을 지니라...(출 21:2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가나안 7족)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니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신 7:2)
이렇듯 우리 민족의 신과 서양종교의 신은 엄격히 다르다. 창조주에게 이름은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 우리 민족은 오로지 유일신인 하나님을 알게되어 믿었고, 단지 서양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그들의 신을 우리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으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서양종교를 믿고 있는 그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의혹을 받고 있는 ‘프리메이슨(Freemason)’를 어찌 볼 것인가.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중세 유럽에 널리 퍼져 있던 건축업에 종사하던 석공(stonemason)들의 길드에 기반해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8세기에 유럽 각국과 미국으로 확산되면서 정치, 문화, 과학 등의 각계의 유명인사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대거 가입하는 추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이들 한국 기독교계가 냉철히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 구한말 최초의 선교사로 알려진 언더우드는 8살 연상과 결혼한 후 전도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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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신을 믿고 있었던 서양인들, 대한제국때 들어와 선교활동을 벌였던 선교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이 얼마나 우리 민족과 강토를 유린했는지 잘 드러난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일제로부터 선교활동을 보장받는 대가로 교회의 비정치화를 강화시킴으로써, 한국 기독교인의 정치참여와 민족해방운동을 방해하였다.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짚어 본다.
“알렌은 주한 미공사관과 선교사로 활약하면서 조선의 각종 이권을 챙겼다. 시들해진 평양대부흥운동을 백만인구령운동으로 이어간 것도 갬블(F. K. Gamble) 리드(C. F. Reid) 스톡스(M. B. Stokes) 등 선교사들의 '한국교회 부흥을 염원하는 기도 모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의 기도가 확산되어 장감연합공회에서 백만인구령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백만인구령운동 실행을 위한 위원회에 게일(James S. Gale)이 의장을 맡고, 밀러(Hugh Miller) 언더우드(H. G. Underwood) 벙커(D. A. Bunker)가 서기를 맡는 등 한국 선교를 대표하는 선교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렇듯 대부흥운동의 핵심에는 선교사들이 있었고, 이들은 우리에게 회개를 통한 부흥 경험을 안겨주었다. 아울러 감리교와 장로교 등 교파가 자유롭게 연대하고 협력하는 일치운동의 역사도 남겼다.(월간 "복음과 상황"중에서)”
그러나 선교사들의 다른 행보를 보면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대부흥운동에서 민족 현실에 참여하려는 흐름을 배제했기 때문에, 친일 선교사가 일으킨 전략적 운동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복음과상황> 161호 '나라 망하는데, 교회 부흥이라…' 참조). 하디가 자신의 사치스런 생활을 회개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선교사들의 본분을 망각한 행보가 한국 교회사의 한 장을 어둡게 수놓고 있다. 특히 초기 선교사들은 사업가적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알렌(Horace N. Allen)과 언더우드가 두각을 나타냈다.
여기서 선교사 언더우드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자면, 기독교에서는 언더우드가 한국 선교의 개척자라고 명명해놓았다는 것인데, 언더우드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 26세의 나이로 한국에 들어왔으며, 그는 북한지방으로 여러 차례 전도여행을 가서 그 곳에 있던 많은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인물. 언더우드는 8살 연상의 릴리아스 호튼과 서울에서 결혼하였다.
언더우드는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 교회의 설립하였고, 일제 당국으로부터 비호를 받으며 선교 활동을 위한 자금 확보와 한국인들에게 서양 문명의 이기를 전한다는 명분하에 석유, 석탄, 농기구 등을 수입 판매할여 '조선기독교대학(세브란스 의대와 합해져 연세대학교)‘를 설립해서 초대학장을 맡는 등, 그의 선교활동으로 그와 함께한 한국인 목회자들의 친일행적은 아무런 심판을 받지 않은 채 미군정을 거쳐 현재로 발전하였다.
초기 선교사들의 행태를 더 살펴보면 정말 이들이 우리민족의 신인 하나님을 섬기며 인간을 구원하려 했는지 분노가 인다.
알렌은 미국과의 관계 발전을 열망하는 고종의 각별한 대우를 받아 금광채굴, 철도와 전기 부설 등 각종 이권을 따냈다. 특히 한국 최대 금광으로 '노다지(No-touch)’라는 유행어를 남긴 운산금광 채광권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알렌은 이 금광을 미국인에게 넘기면서 거액의 구전을 챙겼다. 운산금광에서 총 900만t의 금광석을 생산, 5천6백만 달러의 산출고를 올렸다. 1천3백만 원을 일제에 빚져 나라를 빼앗겼는데, 한 금광에서 나라 빚의 몇 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그 돈이 고스란히 선교사를 통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이밖에도 알렌은 경인철도 부설권을 미국인 모스(J. Morse)에게 넘겨 수익을 챙겼다. 이후 모스는 170만여 원을 받고 일본에 넘겼고, 일본은 침략과 수탈의 발판으로 삼았다.
한국인을 멸시하며 오만한 태도 보인 그들만의 선교사들의 행태
백만장자 선교사라고 불리던 언더우드는 선교 활동을 위한 자금 확보와 한국인들에게 서양 문명의 이기를 전한다는 명분하에 석유, 석탄, 농기구 등을 수입 판매하였다. 또한 미국이나 프랑스 공사관보다 호화스런 집에 살면서도 만족하지 않을 만큼 사치를 누린 빈톤(C. C. Vinton)은 재봉틀 1백여 대를 들여다 팔았고, 심지어 서울의 한 선교사는 여관업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교회 보수 신앙의 대부로 칭송받는 마펫(Samual A. Moffett:한국명 마포삼열)과 리 선교사조차도 압록강 연변의 나무 3천여 그루를 세금 지불도 하지 않고 벌채하려는 이권에 관계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1897년 주한 영국공사였던 힐리어(W. C. Hillier)는 "선교사들이 아니었으면 동양에 대한 상업 진출의 정보를 서구 국가들이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타운센트(L. T. Townsend) 선교사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선교 단체에 기부하는 일을 중지할 것을 권유할 정도였다.(<한국 기독교의 역사Ⅰ>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편, <개화기의 한미관계-알렌 박사의 활동을 중심으로> 일조각, <대한예수교장로회 백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일제시대에도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고, 법인을 허가하여 재산 유지를 편리하게 하도록 배려한 일제의 회유 정책에 말려들어 친일 행보를 보였다. 일제 만행을 촬영하여 외국에 알린 이유로 추방당한 스코필드(Frank W. Scofield)조차 1922년 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송별연에서 당시 <동아일보> 간부 김성수와 송진우에게 "반일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일선(日鮮) 공존의 온건한 사상을 지니는 것이 이롭다"라고 충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 당국으로부터 비호를 받으며 부와 권력을 누린 선교사들은 하디가 회개한 대로 한국인을 멸시하는 편견과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허시모(C. A. Haysmer)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허시모 선교사는 자신의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치다 들킨 김명섭 군의 얼굴에 염산으로 '도적'이라고 새겼다. 이 사건이 언론에 크게 실리면서 한국인의 분노를 샀다. 결국 허시모는 경성 고등법원에서 징역 3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조선인에게 공개 사과문을 낸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밖에도 선교사들은 여러 구타 사건과 성추행에 연루되었다.
선교사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개인의 독선과 죄를 넘어선다. 그들은 교인과 목회자의 지적 수준을 높이려 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종속되게 만들었다. 특히 장로교가 심각했다.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는 1896년 '현지 교육자 영성책'이라는 논문에서 '목회자의 지적 수준은 일반 평신도보다 약간 높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외국에 유학 보내는 일도 금지할 것을 주장했다. 대신 그는 '신령한 훈련을 많이 쌓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들 선교사들의 백인우월주의에 입각한 모욕적인 인종차별이 한국인의 민족감정을 폭발시켰고 특히 친일기독교인들의 민족적 비하 만행에 저항해 본격적인 반기독교을 주창하는 세력이 1920년대부터 불거져 나왔으나 일제와 기독교측이 밀착해 탄압함으로써 지리멸렬 되고 말았다.
●첫째, 기독교는 자본주의의 이익 관철 및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서 가능했다.
●둘째, 현실에 대한 긍정과 복종을 강요하여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말살시켰다.
●셋째, 과학사상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신과 허위를 선전하는 시대착오적인 현상.
전쟁을 즐기는 이스라엘군의 신이 된 여호와神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 온 선교사들의 활동에 대해 짚어 보았다. 그것도 주관적인 입장에서가 아닌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 선교사들이 기독복음을 전파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신으로 여호와를 주입시키는데 열을 올렸다고 판단하는데, 대체 여호와 신은 어떤 신인가.
이런 사실은 본지에서 <한민족의 '여와'와 성서의 '여호와' http://pluskorea.net/sub_read.html?uid=8922§ion=section4§ion2=와 "어떻게 '여와'가 '여호와'로 바뀌었을까?" http://pluskorea.net/sub_read.html?uid=11679§ion=section78§ion2=>제하로 보도한 것처럼 자세히 나와 있다.
‘여호와’는 한민족 배달국 제5대 태우의 환웅천황의 열두 아들 중 막내인 ‘복희’를 우사 벼슬로 중국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중국의 개국시조가 되었는데, 그때 여동생 ‘여와’가 함께 중국으로가 ‘7일 만에 천지 우주를 창조하고 흙을 빚어서 사람으로 만들었다(중국 고서 <풍속통의>)’고 전해져 중국 모든 백성들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 이 기록은 구약성경 창세기 내용과 똑같은 창조론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여와’를 따르는 백성들은 ‘악갓 족’인 수메르를 점령하고 백성들을 ‘조선 백성’이라고 명명하고 수메르 백성들을 교화하고 전도하게 되었으며, 통치수단으로 여와신을 강요하게 되는데, 구약성경은 여화와신으로 둔갑한 것으로, 이는 신앙화 작업은 반드시 인간들의 의지가 가미되어 무리하게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 신이된 여와 즉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가계로 이어져 미디안의 이드로에게 전해 오던 여호와신과 행정수단까지 이전되어 타민족을 점령한 모세 군 또한 타민족을 무자비하게 점령하고 ‘질투와 복수, 공포의 신’ 으로서 각인되어 위에서 밝힌 것처럼 구약성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우주안의 유일신 하나님은 여호와에게 그런 명령을 한 적이 없고 단지 여와의 이름을 주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즉, 한민족의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이름이 없으며 오로지 공의(公義)로써 우주를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 여호와신은 항상 피냄새를 풍기고 있는데도 현재의 이스라엘과 기독교도들은 항상 그들만의 신을 팔아 전쟁을 일으키고 유혈을 좋아하고 남의 나라를 식민지화하고 학살하고 점령지 신들을 없애는 극악무도한 짓거리를 한다. 대표적으로 로마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미국... 질투와 복수, 공포의 신으로 만들어 믿는 그들의 신이 환웅천황의 딸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고나 있을까.
▲ 우리 조상인 단군상이 목이 잘리워지고 넘어진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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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기독교가 단군상을 철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대략 이렇다.
첫째, 단군상을 만드는 것은 그것을 참배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거기에 참배하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 1, 2계명을 어기는 것이며 이는 곧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 이것이 기독교가 단군상을 철폐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즉, 기독교가 존재하는한 단군상은 온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둘째,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가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일연(一然, 1206-1289)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일종의 신화에 의한 존재인데, 이것을 국조라 하여 떠받들어 섬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 이 주장은 수많은 기독교계 학자들만이 주장하는 내용으로, 다른 정상적인 역사학자들은 단군의 실존을 증명하고 인정하였다.
셋째, 단군상을 초중고등학교에 세우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는 것. 왜냐하면 우리 나라는 국조를 인정하지 않는데, 초중고등학교에 단군상을 세운 것은 특정종교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
기독교의 역사왜곡, 우리의 조상이 단군인가 아브라함인가
교회 다니는 아이들 중에 네 조상이 누구냐고 물으면 "아브라함이에요"이라고 말하는 것을 목격할 수가 있다. 특히 서양의 특정종교의 교파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가 형제 내지 자매가 된다. 자신들의 조상은 “여호와”이다. 교회를 믿든 안 믿든지 간에 인터넷만 보더라도 온 천지가 이런류의 글이 난무하고 있다.
즉, 그들의 조상은 서양인이고 그들의 조국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시조이자 국조인 단군상을 설치하자, 기독교 단체 특히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한기총)의 <통합공과>에서 단군을 인정치 않고 신으로 매도하며 단군상을 훼손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예수를 통해 여호와신을 찾았던 것과, 우리 민족이 단군을 통해 유일신(하나님)을 찾으려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단군을 섬기는 것은 무서운 죄인 것이죠. 이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초등부, 23쪽)
“단군신화는 역사적 자료나 고고학적 증명이 뒷받침되지 않은 하나님을 떠난 허망한 인생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인 허구일 뿐이다. 즉 설화나 신화로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역사의 옷을 입힌 혹세무민의 반역사적 행위인 것이다.” (중등부, 14쪽/ 고등부, 14쪽)
그들은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가설이 성립되려면, 다음의 2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한다면서 ”⑴ 단군이 중국 만주 지방과 현재의 우리나라 전체를 다스렸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2) 다스림을 받았던 백성들 모두 자식을 낳지 않고(혹은 낳지 못하고) 죽었으며 단군만 자식을 낳아서 오늘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되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본지 사이트 전면에 ‘단군국조(http://pluskorea.net/sub.html?section=section1)’를 살펴보면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기술합니다.)
‘여호아’에 대해서는 밝혔으니 ‘아브라함’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면, 수메르에서 한민족 하나님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 가운데 수메르 백성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아브라함’이 있었다. 성경에도 기록이 전하고 있다. “하나님은 멜기세덕을 보내 여호와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아브라함이 부엘세바에 아세라 나무를 심고 거기서 여호와 이름을 불렀다.(창 21:33)”
이스라엘 상고사를 보면 여호와신은 비, 구름, 바람을 주관하는 신이었고 아세라 나무는 신목 사상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족보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사학과 창조과학에서 짜깁기를 한 그들의 아브라함은, 구약성경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수메르지역인 우루에서 출생했다.(창 11:31)
‘한민족 하나님과 성경의 여호와신은 같은 신이 아니다’라는 것을 이미 설명했고, 아브라함은 히브리 사람이 섬기는 신의 이름인 여호와, 즉 여와신을 믿는 아부라함에게 ‘너의 신은 여호와'라 칭하였던 것이다. 이는 당시 도스, 제우스, 아도나이 등 신들을 ’너의 신은 여호와‘라고 하여 아브라함은 믿었던 것이며,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피했고, 대신 '아도나이(Adonai), 즉 나의 주님' 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가나안을 점령한 모세(Mose)의 군대는 점령지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살생했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가계(家系)에서 이어졌다는 사실을 위에서 밝혔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동방에서처럼 우리도 하늘에 제사를 드리자’ 하고 모리아산에 올라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한배달국이 BC4995년부터 천제(天際, 또는 시월제 개천절)를 드렸던 거와 비교하면 약 2800년 늦게 하늘의 존재에 대해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한 네티즌은 “기독교가 드디어 맛이 갔습니다. 일본 침탈 야욕과 중국의 동북공정이 말기에 접어든 국민이 종교때문에 죽니마니 할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중에 후회해도 때는 늦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기독교인들. 단군이 없으면 우리민족도 없습니다. 시조를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며 기독교가 우리민족의 조상인 단군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 한탄을 했다.
이러한 민족, 한민족의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조상 '단군'이라도 알아야 한다. 단군을 우리 국조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신으로 만들어 버린 역적매국노 이병도의 만행과 이를 따르는 후학들의 잘못된 인식을 고쳐야 한다. 단군에 대해서는 본지가 심혈을 기울여 보도하고 있으니 참조하시길 바라며,
루마니아 신학자이자 신부인 게오르규(C. V. Gheorghiu)는 “여러분은 영원한 천자(天子)라는 것을... 고난에서 생겨나는 창조의 기쁨과 하늘과 땅이 과거와 미래가 서로 포옹하는 융합의 세계를 모를 것입니다. 당신들은 다만 당신들 나라 만이 아니라 세계가 잃어버린 영혼입니다. 천자의 영혼을 지니고 사는 여러분! 당신들이 창조한 것은 지상의 것을 극복한 전 세계에 밝은 빛을 던지는 영원한 미소입니다.(1972년 한국인에게 주는 메시지)”라며 인류의 희망찬 미래를 한국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민족적인 구심점(求心点)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3편 일제잔재청산 종교부터 개혁해야]